맑스-레닌-마오주의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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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레닌-마오주의 만세!

소개

이 문건은 혁명적 국제주의 운동(Revolutionary Internationalist mo Movement)[1]이 1993년에 작성한 문서다. 페루공산당에서 시작된 맑스-레닌-마오주의를 정의하는 작업을 한 국가의 공산당이 아닌 각국의 공산당이 토의하여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문서라고 할 수 있다. 현 시대 진보적 운동의 중요한 이론적 기여를 한 이 문서를 읽어보기 바란다.

서문

1984년, 착취와 억압, 그리고 제국주의가 사라진 세계, 계급으로 사회가 분열되는 것을 극복한 세계 즉, 미래의 공산주의 세상을 향한 투쟁을 진전시켜 나갈 것을 결심한 전 세계의 마오주의 혁명가 중핵들이 모여 ‘혁명적 국제주의 운동’(RIM)을 창설하였다. 우리 운동이 창설된 이래로 우리는 계속하여 발전해왔으며, 마오쩌둥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오늘날, 우리는 책임을 통감하며 국제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억압받는 전 세계 대중들에게 우리의 지도 이념이 맑스-레닌-마오주의라는 것을 선언한다.

우리의 운동은 1984년 제2차 맑스-레닌주의 정당 및 단체 총회에서 채택된 혁명적 국제주의 운동 선언을 기초로 설립되었다. 이 선언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념을 옹호하며 그 기반 위에서 각국 및 세계적 차원에서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의 임무,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역사, 그리고 다른 많은 필수적인 문제들을 올바르게 다루고 있다. 오늘 우리는 선언이 우리의 이념에 대한 새로운 명확성과 더욱 깊이 있는 이해, 그리고 우리 운동의 더욱 견고한 통일성을 만들어내는, 우리 운동의 견고한 토대임을 재확인한다.

선언문은 “마오쩌둥에 의한 맑스-레닌주의 과학의 질적 발전”을 올바르게 강조하고 있으며, 그가 [맑스-레닌주의 과학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렸음을 확인한다. 그러나 우리의 선언에서 “맑스-레닌주의-마오쩌둥사상”이라는 용어의 사용은 여전히 이 새로운 단계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를 반영하고 있다. 지난 9년 동안 우리의 운동은 마오쩌둥의 맑스주의 발전을 더욱 완전하게 이해하기 위해 길고 풍부하며 철저한 토론과 투쟁에 관여해왔다. 같은 시기에, 우리 운동의 정당과 단체들, 그리고 전체로서 RIM은 제국주의와 반동에 대항하는 혁명적 투쟁에 관여해왔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페루공산당에[2] 의해 수행된 인민전쟁의 선진적인 경험으로, [페루공산당은] 수백만 명의 대중을 동원하고 나라의 많은 지역을 휩쓸었으며, 이 지역들에서 노동자와 농민들의 권력을 확립하는데 성공했다. 이론과 실천의 이러한 발전 위에서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이념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게 할 수 있었으며, 그러한 바탕에서 맑스-레닌-마오주의를 맑스주의의 새로운, 세 번째의, 그리고 더 높은 단계로 인식함으로써, 한 걸음 더 멀리 내딛을 수 있었다

맑스주의의 새로운, 세 번째의, 그리고 더 높은 단계

마오쩌둥은 혁명에 대한 일련의 필수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여러 테제를 정교하게 만들어냈다. 그러나 마오주의는 단지 마오가 남긴 위대한 기여의 총합이 아니다. 이는 새롭고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맑스-레닌주의의 종합적이고 전면적인 발전이다. 맑스-레닌-마오주의는 통합된 전체이다. 이는 칼 맑스, V.I 레닌, 그리고 마오쩌둥에 의해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인류의 계급투쟁과 생산, 과학실험에 대한 투쟁의 경험에 기반하여, 맑스주의부터 맑스-레닌주의, 맑스-레닌-마오주의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단계들로 종합되고 발전된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다. [맑스-레닌-마오주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세계를 이해하고 [그것을] 혁명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하는 무적의 무기이다. 맑스-레닌-마오주의는 보편적으로 적용가능하며, 살아숨쉬는 과학적 이념으로, 인류의 일반적인 지식발전뿐만 아니라 혁명을 일으키는 데 있어서의 응용을 통해 끊임없이 발전하며 풍부해진다. 맑스-레닌-마오주의는 모든 형태의 수정주의와 독단주의의 적이다. [맑스-레닌-마오주의는] 진실이기 때문에 막강하다.

칼 맑스

칼 맑스는 거의 150년 전에 처음으로 혁명적 공산주의를 개발했다. 절친한 전우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도움으로, 그는 종합적인 철학 체계인 변증법적 유물론을 개발하였고, 인류의 역사를 형성하는 기본 법칙을 발견하였다.

맑스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착취와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내재적인 무정부성과 모순을 폭로하는 정치경제학을 발전시켰다. 칼 맑스는 그의 혁명적 이론을 국제 프롤레타리아트가 수행하는 계급투쟁과의 긴밀한 연관 속에서, 그것에 복무하기 위해서 발전시켰다. 그는 제1인터내셔널을 건설했고, 엥겔스와 함께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라는 외침을 담아「공산당 선언」을 작성했다. 맑스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려 한 최초의 위대한 시도였던, 1871년 파리 코뮌(Paris Commune)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그 교훈을 요약했다.

그는 세계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그들의 역사적 사명에 대한 이해로 무장시켰다. [그것은] 혁명을 통해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이 권력,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통해 사회를 다른 여러 계급들로 분열시키는 토대가 제거될 때까지 사회적 조건들을 변형시켜나가는 것이다.

맑스는 프롤레타리아 운동 내부의 기회주의자들에 맞선 투쟁을 이끌었는데, 그들은 [임금]노예제도 자체의 존재에 도전하지 않고 임금노예의 조건을 개선하는 것에 노동자들의 투쟁을 한정시키고자 하였다.

맑스의 입장, 관점, 방법이 모여 맑스주의라고 불리는 것이 되었고, 이는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의 발전에 있어서의 첫 번째 위대한 이정표를 상징한다.

V.I 레닌

V.I. 레닌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 혁명운동과, 수정주의에 맞선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투쟁을 이끌어나가는 과정에서 맑스주의를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 발전시켰다.

수없이 많은 기여에 더해, 레닌은 자본주의의 발전을 가장 높은 단계이자 마지막 단계인 제국주의로 분석하였다. 그는 세계가 한 줌의 제국주의 열강과 절대 다수의 억압받는 민족과 인민들로 나뉘어져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제국주의 열강이 그들 사이에서 세계를 재분할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었다. 레닌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를 제국주의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시기라고 표현했다. 레닌은 새로운 형태의 정치정당인 공산당을, 권력을 장악하는데 있어 혁명적 대중을 지도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필수적인 도구로 발전시켰다.

가장 중요한 것은 레닌이 1917년 제정으로부터 갓 벗어난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을 승리로 이끌어,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처음으로 프롤레타리아 정치권력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의한 혁명적 독재를 수립하고 공고히 할 수 있게 하면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론과 실천을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레닌은 제2인터내셔널 내부의 수정주의자들에 맞서 생사를 건 투쟁을 벌였는데, 그들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배반하였으며 노동자들에게 제 1차 세계대전에서 그들의 제국주의적 주인들의 이익을 수호할 것을 요구했던 이들이다.

“10월의 포성(guns of October)”과, 레닌이 수정주의에 맞서 벌였던 투쟁은 공산주의 운동을 전 세계로 더욱 전파시켰고, 억압받는 인민들의 투쟁을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통합시켰으며, 제3(혹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이 결성되었다.

레닌에 의한 맑스주의의 전반적이고 종합적인 발전은 프롤레타리아 이념의 발전에 있어 두 번째 위대한 도약이었다.

레닌 사후, 이오시프 스탈린은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제국주의 침략자들뿐만 아니라 내부의 적들에도 맞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수호했고, 소련에서 사회주의 건설과 변혁의 대의를 추진해나갔다. 스탈린은 프롤레타리아 이념의 발전에 있어 맑스-레닌주의가 두 번째 위대한 이정표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국제 공산주의 운동을 위해 싸웠다.

마오쩌둥

마오쩌둥은 수십 년 동안 중국혁명을 지도하고 현대 수정주의에 맞서 세계적으로 투쟁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도, 이론과 실천에서 자본주의의 복원을 막고 공산주의를 향한 발전을 지속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 독재하에서 혁명을 시행하는 방법을 찾는 과정 속에서, 맑스-레닌주의를 새롭고 더 높은 단계로 발전시켰다. 마오쩌둥은 맑스주의의 세 요소인 철학, 정치경제학, 과학적 사회주의를 전부 크게 발전시켰다.

마오는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마오쩌둥은 인민전쟁의 이론과 실천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군사학을 발전시켰다. 마오는 전쟁을 수행하는데 있어 무기가 아니라 사람이 결정적인 요소라고 가르쳤다. 그는 각 계급마다 그들만의 구체적인 성격과 목표, 수단과 함께 고유한 형태의 전쟁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모든 군사논리는 “당신은 당신의 방식으로 싸우고, 나는 나의 방식으로 싸운다”라는 원칙으로 요약될 수 있으며,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자신만의 이점을 활용할 수 있는 군사 전략과 전술을 구축해야 한다고 평하였다. 그는 이러한 이점이 혁명적 대중의 진취성과 열정을 해방시키고 이에 의존함으로써 활용될 수 있다고 보았다.

마오는 기지지역을 확보하고 체계적으로 정치권력을 구축하는 정책이 대중을 해방하는데 있어서, 그리고 인민의 무장력과 파도처럼 확장되어가는 정치권력을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핵심이라는 것을 확립시켰다. 그는 기지지역에서 혁명적 변혁을 수행하는데 있어 대중을 지도하고, 혁명전쟁을 진전시키기 위해 이 지역을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했다.

마오는 당이 총을 통제해야하며, 총이 당을 통제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당은 혁명전쟁에 착수하며 그것을 지도할 수 있는 수단으로 건설되어야 한다. 그는 혁명적 폭력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혁명의 중심 임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인민전쟁에 대한 마오쩌둥의 이론은 어느 나라에서도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지만, 이는 각 나라의 구체적인 조건에 적용되어야 하며, 특히 제국주의 국가와 피억압국가라는, 현재 세계에 존재하는 두 가지 일반적인 유형의 국가에서의 혁명 경로를 고려해야한다.

마오는 제국주의에 의해 지배받고 있는 나라에서 어떻게 혁명을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해결했다. 중국혁명을 위해 그가 세운 기본경로는 혁명의 이론과 실천에 대한 헤아릴 수 없는 기여를 나타내며, 제국주의에 의해 억압받는 국가들의 해방을 이루어내기 위한 길잡이가 되었다. 이는 장기화된 인민전쟁(protracted People's War), 즉 농촌에서 도시를 포위하며, 무장투쟁이 투쟁의 주요형태이며, 당이 이끄는 군대가 대중조직의 주요형태이며, 농민들, 그 중에서도 주로 가난한 농민들을 동원하여 농민혁명을 수행하며, 제국주의, 봉건주의, 관료자본주의에 맞서 신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하기 위해 공산당의 지도하에 통일전선을 건설하며, 사회주의 혁명의 필수적인 서곡으로서 혁명의 첫 단계의 승리 이후에 곧바로 뒤따라야 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영도하는 혁명적 계급들의 공동독재체제를 건설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오는 “세 가지 법보[3]”(三个大法宝), 즉, 당, 군대, 그리고 통일전선이 모든 나라에서 구체적인 조건과 혁명의 경로를 고려하여 혁명을 일으키는데 필수적인 도구라는 테제를 내세웠다.

마오쩌둥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철학인 변증법적 유물론을 크게 발전시켰다. 특히, 그는 모순의 법칙인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이 자연과 사회를 지배하는 근본법칙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만물의 통일과 정체성은 일시적이면서 상대적인 반면 대립물간의 투쟁은 끊임없고 절대적이라고 보았으며, 이것이 급진적 파열과 혁명적 도약을 가져다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이해를 이론과 실천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는데 능숙하게 적용하면서 실천이 진리의 유일한 원천인 동시에 궁극적인 기준임을 강조하였고 이론에서 혁명적 실천으로의 도약을 강조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마오는 프롤레타리아 인식론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는 철학을 대중들에게로 가져갔고, 예를 들자면, “합이위일(合二为一, 둘이 하나로 합쳐진다)”라는 수정주의적 테제에 반대하여 “일분위이(一分为二, 하나가 둘로 나뉜다)”라는 것을 대중화시켰다.

마오쩌둥은 “인간과, 인간만이 세계사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라는 이해를 심화시켰다. 그는 군중노선(群众路线)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켰다. “(산발적이고 비체계적인) 대중의 사상을 취하여, (연구를 통해 집중되고 체계적인 사상으로 전환시켜) 집중시키고, 대중 곁으로 가서 대중들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때까지 이 사상을 설명하고 고수하며, 행동으로 옮기고, 또 그러한 행동을 통해 이러한 사상의 정확성을 시험한다.” 마오는 물질이 의식으로 전환될 수 있고 의식이 물질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심오한 진리를 강조하며, 인간 활동의 모든 분야에서의 인간 의식의 역동적인 역할에 대한 이해를 더욱 발전시켰다.

마오쩌둥은 흐루쇼프를 지지하는 수정주의자들이 주도하는 현대 수정주의에 맞서 국제적인 투쟁을 이끌었다. 그는 현대 수정주의자들에 대항하여 공산주의적 이념 및 정치노선을 방어했고,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들에게 그들과 결별하고 맑스-레닌-마오주의 원칙들에 기반한 당을 구축할 것을 요구했다.

마오쩌둥은 소비에트 연방의 자본주의 복원이 갖는 교훈과 결점을 소련 사회주의 건설의 긍정적인 성과와 더불어 통찰력 있게 분석하는데 착수했다. 마오는 스탈린의 위대한 공헌을 방어하면서도 스탈린의 오류들을 요약했다. 그는 중국 사회주의 혁명의 경험과 중국공산당 내부의 수정주의자 지도부에 대항하여 되풀이되는 두 가지 노선의 투쟁을 요약했다. 그는 능숙하게 유물변증법을 사회주의 사회의 모순을 분석하는데 적용했다.

마오는 공산주의를 향한 역사적 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이끄는데 있어 당이 전위의 역할을 권력을 장악하기 전에도, 장악하는 도중에도, 장악하고 나서도 수행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당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적인 성격을 어떻게 보존할지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켰고, 그것은 기층당원들에 대한 부르주아적이고 프티부르주아적인 영향에 대항하는 적극적인 이데올로기적 투쟁과 당원들의 이데올로기적 개조, 비판과 자아비판, 당 내의 기회주의적이고 수정주의적인 노선에 대항하는 두가지 노선 투쟁을 일으키는 것을 통해 가능했다. 마오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권력을 장악하고 당이 사회주의 국가의 주도세력이 되면, 당과 대중 사이의 모순이 사회주의 사회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의 이행기로 특징짓는 모순들의 집중된 표현이 된다고 가르쳤다.

마오쩌둥은 정치경제학, 생산 자체의 모순적이고 역동적인 역할, 그리고 사회의 정치적 및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와 생산 사이의 상호관계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이해를 발전시켰다. 마오는 소유체계가 생산관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사회주의하에서는 공공 소유가 형식에서뿐만 아니라 내용에서도 사회주의적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는 사회주의적 소유체계와, 생산관계의 다른 두 측면인 생산 내에서 인간 사이의 관계와 분배체계 사이의 상호작용을 강조했다. 마오는 정치가 경제의 집중된 표현이라는 레닌주의의 테제를 발전시켜, 사회주의하에서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적인 노선의 올바름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실제로 생산수단을 소유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았다. 반대로, 그는 수정주의의 발흥이 부르주아지의 발흥을 뜻한다고 지적하였으며, 사회주의적 경제적 토대가 갖는 모순적 성격을 감안한다면 만약 그들이 권력을 잡게 되었을 때 주자파[4]들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급조해내는 것은 쉬운 일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수정주의적 생산력론을 깊이 비판했고, 상부구조와 의식이 토대를 변화시킬 수 있으며 정치권력으로 생산력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이 모든 것들은 마오의 슬로건 “혁명을 움켜쥐고 생산을 촉진하라”(抓革命, 促生产)에 표현되었다.

마오쩌둥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시행하는 경험에 있어 커다란 도약을 상징하는 문화대혁명을 시작하고 이끌었다. 사회주의 사회 내부에서 발생했으며 특히 당 지도부에 집중되어있던 주자파(류사오치, 린뱌오, 덩샤오핑 등)를 타도하기 위해 수억 명의 인민들이 봉기를 일으켰다. 마오는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대중들이 주자파들에게 도전하게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사회주의 사회에서조차 착취 계급과 그들의 사고방식이 사적으로 보존되어 있는 모든 영역에서 절대 다수의 이익, 관점, 의지를 강요하도록 이끌었다.

문화대혁명의 커다란 승리는 10년간 중국에서 자본주의가 복원되는 것을 방지했고, 교육과 문학, 예술, 과학연구 및 상부구조의 다른 영역들뿐만 아니라 경제적 토대에서도 커다란 사회주의적 변혁을 이끌었다. 마오의 지도 아래에서 대중은 자본주의를 발생시키는 토양, 예컨대 도시와 농촌, 노동자와 농민,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사이에 존재하는 세 가지 커다란 차이나 부르주아적 권리 등을 파내어버렸다.

치열한 이데올로기 투쟁과 정치투쟁의 과정에서, 수백만의 노동자들과 다른 혁명적 대중들은 그들의 계급의식과 맑스-레닌-마오주의에 대한 숙달을 크게 심화시켰고 정치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했다. 문화대혁명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국제적 투쟁의 일부로서,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훈련장으로서 벌어진 것이다.

마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구현하기 위해, 혁명적 지도력의 필요성과 아래로부터 혁명적 대중들을 각성시키고 [혁명적 대중들에게] 의존할 필요성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를 파악했다. 이러한 면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강화하는 것은 아직 세계적으로 성취된 바 없는 가장 광범위하고 깊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실행이기도 하며, 대중 옆에서 그들을 수정주의자들에 맞선 투쟁으로 이끌고 쓰라린 패배의 앞에서도 맑스-레닌-마오주의의 깃발을 계속하여 높이 들었던 장칭이나 장춘차오[5] 같은 영웅적인 혁명 지도자들이 나선 것도 이로 인한 것이다.

레닌은 “계급투쟁을 인정하는 데서 더 나아가 프롤레타리아독재까지 인정하는 사람만이 마르크스주의자” [6]라고 말했다. 마오쩌둥이 지도한 문화대혁명을 통해 얻은 귀중한 교훈과 진보에 비추어볼 때, 이 구분선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이제 계급투쟁을 인정하는 데서 더 나아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계급의 객관적 존재, 적대적 계급모순과 당 내의 부르주아지[의 존재], 공산주의에 이를 때까지 사회주의의 전 기간에 걸쳐 계속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하의 계급투쟁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만이 맑스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오쩌둥이 강력하게 말했듯, “이 문제에 대한 명확성의 부족이 수정주의로 이어질 것이다."

1976년 화궈펑과 덩샤오핑의 반혁명 쿠데타에 따른 자본주의 복원은 마오주의나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의 세계사적 성과와 막대한 교훈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패배는 사회주의 사회의 본질에 대한 마오의 테제들과 프롤레타리아 독재하에서 혁명을 지속해야 할 필요성을 확인시켜준다.

분명히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은 세계사적 혁명의 서사시이자, 세계 공산주의자들과 혁명가들이 거둔 승리의 고점이며, 불멸의 성취를 상징한다.비록 우리가 그 과정 전체를 다시 밟아야 할지라도, 문화대혁명은 우리에게 우리가 이미 적용하고 있는 위대한 교훈들을 남겼다. 예를 들면, 우리 계급이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적 변혁이 근본적이라는 점이 있다.

맑스-레닌-마오주의: 세 번째 위대한 이정표

중국혁명의 과정에서 마오는 맑스-레닌-마오쩌둥주의를 많은 중요한 영역에서 발전시켰다. 그러나 우리의 이데올로기가 도약하게 되고, 세 번째의 위대한 이정표인 맑스-레닌-마오주의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은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의 도가니 속에서였다. 맑스-레닌-마오주의라는 더 높은 차원에서,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은 이전의 위대한 지도자들의 가르침을 훨씬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마오쩌둥의 초기 기여들 역시 더 깊은 중요성을 띄게 되었다. 오늘날, 마오주의 없이 맑스-레닌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실로, 마오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맑스-레닌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혁명적 이념의 발전에 있어 각각의 위대한 이정표들은 격렬한 저항을 마주했고, 치열한 투쟁과 혁명적 실천에서의 적용을 통해서만 인정받을 수 있었다. 오늘날 혁명적 국제주의 운동은 맑스-레닌-마오주의가 세계 혁명의 지휘관이자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수억의 세계 프롤레타리아와 억압받는 대중들이 점점 더 세계 제국주의 체제와 모든 반동들에 대항하는 투쟁으로 나아가고 있다. 적과의 전쟁터에서 그들은 그들만의 깃발을 찾게 된다. 혁명적 폭력을 통해 권력을 손에 쥐기 위해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은 우리의 보편적 이념으로 무장하고 대중들 사이로 전파시켜 그들을 해방시키고 세력을 조직해야 한다. 이를 완수하기 위해, 혁명적 국제주의 운동으로 단결된 맑스-레닌-마오주의 정당들은 존재하지 않던 곳에 형성되어야 하고, 존재하는 정당들은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억압받는 인민들이 권력을 손에 쥘 수 있도록 인민전쟁의 승리를 준비하고, 착수하고, 수행하기 위해 강화되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맑스-레닌-마오주의를 옹호하고, 수호하며, 무엇보다도 적용시켜야 한다.

우리는 맑스-레닌-마오주의에 입각한 새로운 형태의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을 형성하도록 우리의 투쟁을 진전시켜야만 한다.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마오쩌둥이 가르쳤듯, 우리 모두가 다 같이 공산주의로 가거나 우리 중 누구도 가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무기를 주조하지 않고서는 승리를 향해 나아갈 수 없다.

마오쩌둥은 “맑스주의는 수천 개의 진리로 구성되어 있지만, 최종적인 분석에서 그것들은 한가지, 조반유리(造反有理, 모든 반란에는 이유가 있다)로 귀결된다.” 혁명적 국제주의 운동은 대중의 반란을 출발점으로 삼아,전세계의 프롤레타리아와 혁명가들에게 맑스-레닌마오쩌둥주의를 받아들일 것을 요청한다. 이 해방적이고 당파적인 이데올로기를 프롤레타리아와 모든 억압받는 이들이 절실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오직 이것만이 수천 년의 계급착취를 쓸어버리고 새로운 공산주의 세계를 탄생시킬 수 있는 대중들의 반란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맑스-레닌-마오주의의 위대한 붉은 깃발을 높이 들자!

1993년 12월 26일


  1. 혁명적 국제주의 운동은 1984년 17개의 마오주의 정당과 조직들이 모여 결성한 국제조직으로, 1993년 본 문건을 통해 맑스-레닌-마오주의를 맑스주의의 “새로운, 세 번째의, 그리고 가장 높은 단계”로 정식화하였다. 이는 국제 마오주의 운동에 한 차례의 분열을 가져왔으며, ‘맑스-레닌주의-마오쩌둥사상’을 지지하는 마오주의 조직들의 이탈로 이어졌다. 내부적 문제들과 정치적 이견들로 인해 RIM은 사실상 2007년 활동을 중단하였다. 이후 ICL(International counmmist league)이라는 마오주의 국제조직이 등장하였으나 예전만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진 못하다.
  2. 여기서 페루 공산당은 1969년 아비마엘 구즈만의 주도로 결성된 페루공산당-빛나는 길(PCPSL)으로 알려져 있는 정당을 의미한다.
  3. 불교의 진리를 담은 불경을 보배에 비유하는 말. 이하 모든 중국어 병기는 역자들의 편집에 해당한다.
  4. 자본주의를 향한 길로 나아가는 당권파(當權派, 집권세력)을 뜻하는 말.
  5. 문화대혁명을 주도했던 중국공산당의 지도자들
  6.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국가와 혁명』, 문성원, 안규남 옮김, 돌베개, 2015, 6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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