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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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신교와 보편적 세계관의 발전

우리는 종교가 발견한 진리를 존중한다. 그러므로 종교를 파괴하고자 한다. 종교의 가장 높은 발전은 종교의 종말이다. 그 종말은 종교의 사상적 성취를 지우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종교라는 형태로 자신의 역사 속에서 발견한 진리를 초월적 존재의 지배로부터 해방한다. 신의 권위가 폐위될 때에야 인간의 세계는 비로소 인간의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세계를 실제로 장악하는 일은 혁명적 실천을 요구한다. 진리가 인간의 역사적 삶 속에서 생산된다면, 그 진리는 역사의 운동을 의식적으로 조직하는 주체를 통해 자신의 현실성을 획득해야 한다.

이론

[독자투고]형식논리학 시리즈 2부: 사회주의권의 형식논리학 수용사

변증법적 논리학의 역할은 일반적인 사유 전개의 역사성에 대한 이론으로서, 형식 논리학의 상위에서 작용하는 논리학이다. 한편, 형식 논리학의 역할은 연구 대상이 되는 특정 문제를 고정시켜 놓고 그 안에서 기계적인 논증을 구성하는 논리학이다. 특정 문제를 해결하려면 변증법적 논리학은 그에 맞춘 형식 논리학을 창출하여야 하고, 형식 논리학은 변증법적 논리학 없이는 그 구축과정을 해명할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변증법적 논리학과 형식 논리학은 층위가 구분되면서도 상호 의존적이다.

[독자투고]형식논리학 시리즈 1부: 형식논리학의 범위에 대한 소개

현재 형식논리학은 전제들에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규칙들이라는 매우 추상적인 규정 외에는 최소한의 공통 법칙들이 없다. 형식논리학은 가족유사적인 논리 체계들의 집합이다. 변증법적 논리학의 형식논리학에 대한 관계설정은 현재 형식논리학의 최소 공통 법칙이 없음을 인지한 상태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현실사회주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역사를 장식물로 삼지 말자. 물신의 대상으로 삼지도 말자. 그들의 생산적 패배를 거름삼아 우리의 승리를 만들자. 사회주의라는 말이 흘러가는 옛 이야기로 남지 않게 하자. 성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를 공정히 논하고 계승과 지양을 동시에 행하여 선배 혁명가의 무덤들에 남겨진 잔해들을 지양의 용광로로 보내 오늘날 우리가 휘두를 혁명과학의 전능한 검을 벼려내자.

파국의 시대에 자유인으로 사는 법

인간의 죽음은 태산보다 무거울 수도, 깃털보다 가벼울 수도 있다. 삶 또한 그럴 것이다. 깃털처럼 가볍게 살아가봤자 시대적 파국 속에서 불쏘시개로 전락할 운명이라면, 차라리 우리 함께 태산처럼 무거운 삶을 살아보자.

일원론적 맑스주의 세계관의 재정립을 위한 테제들

인간이 만들어온 모든 이상들의 기저에는 맹목적 필연에 대한 반역의 의지, 즉 자유에 대한 타오르는 사랑이 존재했다. 인간의 역사는 이상성의 부여와 이상의 실현을 통해 그 자신을 자유케 하는 역사이며, 동시에 즉자적 자연에게 이상성을 부여하여 자연을 맹목에 지배받는 즉자적 상태로부터 해방해 전체자연을 자유롭게 하는 프로메테우스의 역사인 것이다

당의 동심원적 건설에 대하여

노동계급의 당, 혁명적 간부들의 당인 공산당은 동심원적으로 건설되어야 한다. 동심원적으로 건설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의 동심원적 건설은 마오주의 당론의 핵심이며, 당-대중 간의 관계를 침투와 동원이라는 단순한 역학을 넘어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단계를 통하여 유기적이고 총체적인 형태의 군중노선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단계의 당건설 이론이다. 또한 노동계급의 당으로 하여금 선전과 조직을 넘어 장기인민혁명전쟁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혁신적인 당건설이론이기도 하다.

운동 재생산을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

활동가 재생산의 위기는 오늘날 운동사회가 마주한 가장 거대한 화두 중 하나다. 노동운동, 학생운동을 비롯한 제반 사회운동 전반에서 신진 활동가가 발굴되지 않고, 유입 동력이 가파르게 급감하는 현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된 치명적인 사안이다. 활동가가 재생산되지 못하면 조직이 유지될 수 없고, 조직이 무너진 자리에서 운동의 지속가능성을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과학으로서의 맑스주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오직 미래만이 우리가 발을 내딛을 수 있는 방향이다. 과학적 사회주의자들은 이제 맑스레닌주의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그 거인이 끝내 보지 못했던 지평선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한다. 그 행진의 끝에는 우리가 찾던 새로운 단계의 맑스주의가, 그리고 그 새로운 단계의 맑스주의가 산출해낼 새 시대의 혁명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