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사회주의란?
맑스주의는 과학이다. 무엇에 관한 과학인가? 혁명에 관한 과학이다. 혁명에 관한 과학이란 무엇인가? 혁명의 조건을 해명하고 이를 현실에서 추진하기 위한 과학, 즉 맑스가 헤겔 법철학 비판서설에서 "대중을 사로잡을 때 비로소 물리적 힘이 된다”고 말한 종류의 과학이다. 맑스주의의 과학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기인한다. 맑스주의는 고정불변하는 닫힌 체계가 아니다. 대중을 사로잡은 이론은 물리적 힘이 되고, 물리적인 힘은 사회적 실천의 원동력이 된다. 사회적 실천을 통해서 이론은 비로소 현실에 의해 검증되고, 현실의 반작용은 다시금 연구되어 그 다음 단계의 이론으로 이행한다. 이론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유일한 심판대는 실천이며, 그 실천을 통해 획득된 인식은 다시금 이론을 더 높은 단계로 견인한다. 맑스주의의 역사는 곧 이러한 인식과 실천의 변증법적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맑스주의의 역사는 연속과 단절의 끊임없는 교차이다. 맑스가 자본주의의 내적 운동 법칙을 규명하며 프롤레타리아라는 주체를 역사 전면에 등장시켰다면, 그 이후의 과정은 변화된 시대적 층위 속에서 그 보편적 법칙을 구체화하고 재배열하는 과정이었다. 지식은 단순히 쌓이는 것이 아니라, 양적 축적의 한계점에서 양질전화를 통해 지식을 배열하는 방식 자체에 대한 구조적 변동을 일으키며 스스로를 재정립한다. 이것이 바로 맑스주의의 과학성의 핵심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학성은 오늘날에 와서는 형해화 되었다.
오늘날의 수많은 ‘맑스주의자’들은 맑스주의의 역사적 실험과 그 결과의 재이론화, 재실천이라는 역사의 질곡 속에서 맑스주의를 지양하고 발전시키는 과업에 충실하기 보다는 맑스가 무엇을 말 했는가, 레닌이 무엇을 말 했는가 등의 주제에 사로잡혀 있다. 심지어는 레닌 사후 레닌주의의 정립 과정과 여러 난립한 노선들을 평가하기 위한 도구로 역사를 호출하는 것이 아니라 ‘레닌의 유언장’을 호출하는 기이하고 종교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과학이 아니라 신학이다.
현실사회주의의 패배라는 역사적 도전 앞에서 이에 정면으로 응전하고 오류를 해부하며 계승지점을 더욱 발전시키는 태도 대신 제시되는, 어떠한 ‘시도된 적 없는 진정한 사회주의’를 이데아화 하여 이를 실패에 대한 알리바이로 삼기 위한 진술인 ‘고전적 맑스주의로의 복귀’ 내지 ‘순수한 레닌으로의 복귀’ 따위의 구호들은 무엇을 함의하는가? 저런 종류의 구호들이 본질적으로 함의하는 것은 맑스주의의 모든 역사적 발전이 특정한 이론가의 초기 저술에 모두 내포되어 있었으며 우리는 이를 다시금 해석하기만 하면 된다는 훈고학적 태도이다.
우리는 맑스주의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혹은 맑스주의를 박물관에 전시하기 위해 맑스주의를 익히는 것이 아니므로 신학적 태도와 훈고학적 태도는 단호히 퇴치되어야 한다. 이를 퇴치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요구되는가? 과학사적 맥락에서 맑스주의의 역사적 발전과 변화, 연속과 단절이 교차해온 질곡들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 글의 목적이 바로 그것이다.
역사는 전당포가 아니다
뉴턴은 스스로 ‘뉴턴 역학’을 창조했다고 말한 적 없다. 다만 뉴턴의 후계 학자들이 그의 파편화 된 과학적 공로들을 체계화 하고 연결시켜 뉴턴 역학이라는 하나의 이론체계를 완성시킨 것이다. 뉴턴의 수많은 과학적 발견을 통해 물리학은 더이상 기존의 틀로는 설명될 수 없는 틀에 이르렀고, 그렇기에 뉴턴의 발견들을 계승한 오일러나 라그랑주 등의 학자들은 새로운 틀을 마련해야만 했다. 지금껏 쌓여온 물리학의 개별적 지식들을 새로운 발견에 적합한 형태로 새롭게 배열해야 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뉴턴 역학이다.
뉴턴 역학은 의심의 여지 없이 물리학의 새로운 단계였으며, 뉴턴 역학의 확립은 인류 지성사에 막대한 도약을 안겨주었다. 후세에 제기되는 뉴턴 역학과 모순되는 적지 않은 발견들에도 불구하고 뉴턴 역학은 아직도 살아있다. 그 새로운 발견들마저 뉴턴 역학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에 어느 과학자가 갑자기 현대 과학의 몇가지 문제들을 제시한 후 그 해결책으로 뉴턴 역학으로 돌아가서 뉴턴이 남긴 텍스트를 제외한 다른 모든걸 부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그것은 신종 컬트 내지 사이비 종교 쯤으로 여겨질 것이다.
어째서인가? 첫째로, 저러한 주장이 뉴턴 역학의 과학성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생동하고 발전하는 과학으로서의 뉴턴 역학이 신학적 해석의 대상으로 격하된다면 뉴턴 역학은 더이상 과학이 아니게 된다. 둘째로, 뉴턴의 텍스트로 돌아간다면 애초에 뉴턴 역학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뉴턴 역학은 분명히 뉴턴의 지식적 발견들에 직접적으로 의존하지만 그 자체로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다. 뉴턴 역학은 뉴턴의 지식들을 배열하여 하나의 체계로 완성시킨 후계 학자들의 논의를 통해 창조된 것이다. 그들을 배제하고서 대체 어떻게 뉴턴 역학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겠는가?
맑스주의 또한 마찬가지이다. 맑스의 어록으로 돌아가 ‘진정한 맑스’를 찾는 행위, 레닌의 어록으로 돌아가 ‘진정한 레닌’을 찾는 행위 등은 비생산적일 뿐만 아니라 비과학적이며, 맑스주의에 대한 야만적 파괴이다.
맑스는 맑스주의자가 아니었으며 레닌은 레닌주의자가 아니었다. 맑스와 엥겔스는 죽기 전까지 자신의 이론들을 자기완결된 거대체계의 형태로 제시하는 과제를 완료하지 못하였고, 레닌은 언제나 레닌주의자가 아니라 맑스주의자를 자처했다. 맑스는 맑스주의에 대해 언급한 적 없으며, 레닌 또한 맑스주의의 새로운 단계에 대해 언급한 적 없다. 그렇기에 맑스는 맑스주의자가 아니고, 레닌은 레닌주의자가 아니며, 맑스의 어록은 맑스주의와 무관하고, 레닌의 어록은 레닌주의와 무관하다.
그렇다면 맑스주의, 레닌주의는 도대체 무엇인가? 간단하다. 맑스주의와 레닌주의는 맑스와 레닌의 사후에, 그들이 남긴 파편화된 실천과 지식을 후대의 혁명가들이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맞게 재배열하며 탄생한 것이다. 맑스주의는 아우구스트 베벨, 빌헬름 리프크네히트, 쥘 게드, 게오르기 플레하노프, 카를 카우츠키 등 수많은 제2인터내셔널의 이론가들에 의해 정립 되었으며 레닌주의 또한 그의 뒤를 이은 볼셰비키와 학자들에 의해 정립되었다. 스탈린의 <레닌주의의 기초>, 오토 쿠시넨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 마르크 미틴의 <헤겔과 유물변증법>, 게오르기 디미트로프의 <코민테른 7차 대회 보고서> 등이 그 시도였다.
이들의 레닌주의 '창조' 작업은 단순히 레닌의 이론적 기여를 하나로 묶는 것을 넘어, 맑스 이후의 맑스주의, 제국주의 시대의 맑스주의를 레닌과 볼셰비키의 경험을 중심으로 재정립하고자 하는 인식론적 단절의 시도였다. 후일 인도공산당(마오주의)는 레닌주의를 '제국주의 시대의 맑스주의이자 맑스주의의 두 번째 단계'라고 규정한다
레닌의 디아도코이들
물론 이러한 소련 집권세력의 시도 외에도 독자적인 방식으로 레닌과 볼셰비키의 경험을 체계화 하여 새로운 맑스주의로서의 레닌주의를 축조하려는 시도는 존재했다. 그러한 시도는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그 중 첫 번째는 트로츠키와, 트로츠키를 지지한 일부 좌익반대파의 스탈린 비판을 계기로 스탈린 체제의 반대항으로 제시된 레닌주의가 존재한다. 두 번째로는 알튀세르가 중층결정과 정치의 자율성 개념을 중심으로 제시한 이론적 계급투쟁의 수단으로서의 철학적 레닌주의가 존재한다. 세 번째로는 보르디가와 일부 좌익공산주의자들이 주장한, 레닌과 볼셰비키의 실천 내에서 전위당의 권력집중을 통한 혁명의 가속이라는 측면을 부각시킨 초레닌주의가 존재한다.
이러한 조류들에 대한 내재적 비판을 수행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지만 그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혹은 이러한 조류들 중 어느것이 '레닌의 실제 주장'과 합치하는지를 논할 수도 있겠으나, 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맑스주의의 신학화, 맑스주의의 훈고학화에 불과하다. 레닌의 유언장을 바탕으로 어떤 것이 올바른 레닌주의인가를 논하는 작업 또한 매우 황당한 방법론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레닌주의는 '레닌의 사상'이 아닌, 맑스주의의 두 번째 형태이며 레닌과 볼셰비키의 경험을 통해 재정립된 맑스주의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진정한 레닌주의인지, 즉 무엇이 진정한 혁명과학의 발전과정인지는 레닌의 실제 주장이 ‘어떤 레닌주의’에 적실하게 반영 되었는가의 문제와 아무런 관련도 없다. 레닌이 스탈린을 지지했느니 트로츠키를 지지했느니 혹은 이론에 구애받지 않는 구체적 상황에서의 구체적 노선을 지지했을 뿐이니 하는 논제는 맑스주의를 발전하는 과학으로 바라보지 않고, 특정한 '교부'의 주장과 어록들을 계승하고 고수하는 것으로서 내적 합리성을 연역적으로 갖추게 되는 신학으로 바라보게 하는 쓸모없고 유해한 말씨름일 뿐이다
맑스주의는 혁명에 대한 과학이다. 그렇다면 레닌주의는 '개선된 맑스주의', '개선된 혁명과학'에 불과한가? 그렇지 않다. 바슐라르가 지적했듯이, 지식의 양적 발전이 특정한 한계에 달하면 지식을 조합하고 정렬하는 질적 형태가 변화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인식론적 단절'로 표현된다.
레닌주의는 1) 제국주의와 민족해방운동에 관하여, 2)새로운 유형의 프롤레타리아 당에 관하여, 그리고 3)변증법적 유물론에 관하여 기존의 맑스주의와의 인식론적인 단절을 겪었다. 기존의 맑스주의의 지식이 배열되는 형태 하에서 설명될 수 없었던 영역으로 인해 맑스주의가 이론의 한계점에 봉착한 1차세계대전 전후의 상황에서, 그러한 한계점을 돌파하고 맑스주의를 새롭게 재정립한 두 번째 단계의 맑스주의, 두 번째 단계의 혁명과학이 곧 레닌주의인 것이다. 레닌주의는 맑스주의와의 지식적 연속성을 지니면서도, 그 지식이 배열되는 방식에서 '인식론적 단절'을 겪는다.
그렇다면 수많은 '레닌주의' 중 어떤 것이 맑스주의의 진정한 두 번째 단계인가? 이것은 단순히 그 레닌주의자들을 레닌의 어록과 비교하는 방법론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맑스주의라는 체계를 전제로 한 연역적 논쟁을 통해서 해결될 수도 없는 문제이다. 헤겔 법철학 비판서설에서 맑스가 지적했듯이, 이론은 대중을 사로잡아서 비로소 물리적 힘이 된다. 즉, 이론은 그 대중적 실천을 통해 비로소 세계에 물리적으로 작용되며, 이러한 물리적 작용은 과학적 실험으로서 기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 유물론자들은 인식과 실천, 재인식의 변증법을 통해 인간의 인식범위와 필연의 인지로서의 자유를 확대시킨다. 인식의 확대는 실천을 통해 이루어지며, 실천만이 이론의 심판대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위의 문제는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어느 레닌주의가 혁명운동을 성공 시켰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스탈린의 레닌주의만이 혁명운동을 성공시켰다. 동유럽 반파쇼 파르티잔 혁명, 중국 신민주주의 혁명, 쿠바 인민민주주의 혁명은 모두 스탈린의 레닌주의, 즉 맑스레닌주의에 기초하여 이루어졌다.
물론 가설의 영역에서는 다른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 만약 트로츠키나 혹은 그 밖의 '다른 레닌주의자들'이 소련의 권력을 잡았더라면, 그들 역시 같거나 혹은 더 나은 성과를 도출했을 것이라는 대체역사적 상상은 언제나 매혹적이다. 그러나 유물론자는 공상이 아닌 실재하는 역사에 발을 딛고 서 있어야 한다. 이론의 구체적 성과와 오류에 대한 진지한 탐색은 오직 '현실로 화한 이론'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역사의 실험실에서 검증되지 못한 채 서재에만 머문 가설들은 결코 과학의 단계로 진입할 수 없다. 그 바깥에는 오직 지적 유희로서의 공상과 미련 섞인 대체역사만이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맑스레닌주의가 겪은 패배를 분석하고 이를 넘어서려는 시도 또한, 다른 '우월한 가설'을 찾는 여정이 아니라 역사에 의해 유일하게 승인되었던 그 지점, 즉 맑스레닌주의의 지평 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트로츠키의 레닌주의는 일부 서구 중심부 좌파들의, '우리는 사악한 전체주의자가 아니다'라는 면죄부로 기능하고 있을 뿐이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생전 트로츠키의 전위당 중심주의와 일부 트로츠키주의 내부 전통에서의 전투적 생디칼리즘 전통 사이에서 길항하며 일관적인 주장을 제출하고 있지도 못하다.
알튀세르의 레닌주의는 이론의 자율성을 주장함으로써 그 역으로 실천의 이론으로부터의 자율성을 승인시키고 말았다. 이론이 연역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면 이론은 이데아 속에 유폐된다. 역설적으로, 이는 실천이 이론을 직접적으로 매개하지 못하게 만들고 결국 속류적인 경험론과 알튀세르 자신이 그토록 경멸했던 자생성 만능주의로 침잠하고 만다. 이후 알튀세르의 이론이 발리바르를 경유하여 정립된 소위 ‘사회연대정당론’, ‘사회운동정당론’은 완전히 볼셰비키의 역사적 경험과 분리되었다. 결국 오늘날 알튀세르의 사상을 추종하는 집단들은 알튀세르가 언급한 '주체없는 과정'의 가장 열화된 양태만을 보이고 있다.
보르디가의 초레닌주의는 혁명 운동은커녕 유의미한 대중 투쟁조차 영도한 바 없다. 그들의 실패는 개별 전술의 실패가 아닌 구조적 필연성에서 기인한다. 보르디가는 맑스주의의 불멸성을 내세우며 맑스주의가 맑스의 텍스트로부터 단 한 치도 수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광신적 태도는 그들의 ‘당’을 대중의 구체적 요구로부터 절연시켰고, 파시즘이라는 거대한 위협 앞에서도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파시즘 간의 일체의 차별성을 부정하는 이론적 결벽증에 빠지게 했다. 결국 실질적으로 대중운동에 대한 일체의 유기적 개입을 거부하고 유기적 중앙집권 이론을 통해 민주집중제를 고도로 위계적인 조직형태로 재해석한 보르디가의 엘리트주의는 그의 레닌주의를 현실을 변혁하는 무기가 아닌 박물관 속의 전시물로 전락시켰다. 좌익공산주의의 수많은 몰락한 분파 중에서도 보르디가주의가 가장 비참한 형태로 몰락한 이유는, 그들이 스스로를 역사의 실험대 위에 올리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유일하게 역사의 실험을 겪고 역사에 의해 승인된 레닌주의는, 또한 유일하게 인식-실천-재인식의 변증법을 이론적 차원에서 가능케 하는 레닌주의는 스탈린을 포함한 소련 집권세력에 의해 축조된 형태의 레닌주의, 즉 맑스레닌주의 뿐이다. 물론 이것이 맑스레닌주의의 무오류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관점은 레닌주의의 한계와 오류를 특정한 악마적 지도자의 과오를 돌리지 않고 그 내재적 문제점을 직면하여 진정한 의미에서의 비판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
핑계와 알리바이를 넘어서기
물론 맑스레닌주의는 소련과 중국의 반혁명을 통해 역사적 패배를 겪었다. 하지만 이러한 패배는 같은 방식의 실패를 반복한 ‘비생산적 패배’가 아닌, '생산적 패배', 즉 기존에 존재한 적 없으며 새로운 실천적이고 이론적인 과제를 제공한 과학적 발전도상의 패배였다. 그들은 두 번째 단계의 맑스주의인 맑스레닌주의를 극한까지 밀어붙여 이전에 그 누구도 다다르지 못한 지점까지 나아간 끝에 맑스레닌주의의 내재적 한계에 의해 역사의 역공을 받아 패배하고 만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계급투쟁의 문제, 그리고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문화적·이데올로기적 투쟁의 문제, 또한 수정주의의 문제라는 과제를 남긴 채 맑스레닌주의는 역사적으로, 그리고 생산적으로 패배한 것이다.
현실사회주의의 패배와 스스로를 분리하여 이론적 순결성을 지키고 싶어하는 몇몇 ‘맑스주의자’들의 희망과는 다르게도 이러한 패배는 단순한 '스탈린주의'의 패배가 아닌 레닌주의의 패배이며, 맑스주의의 두 번째 단계의 패배이다. 즉, 레닌주의는 첫 번째 단계의 맑스주의가 1차대전을 전후로 한계점에 봉착하였듯이 또 다시 인식론적 단절의 순간에 도달하였다. 즉 역사는 포스트-스탈린주의, 혹은 세 번째 단계의 맑스주의를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맑스레닌주의는 실천 과정에서 수많은 오류를 범했고, 때로는 비극적인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스탈린이라는 개인의 악마성이 저지른 우발적 사고가 아니다. 그것은 역사에 의해 유일하게 승인된 형태의 레닌주의가 가졌던 구조적 한계의 발현이었다. 레닌주의는 사회주의 사회의 계급투쟁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했고, 그 결과 당내 수정주의 세력을 대중운동과 사상투쟁(단결-비판-단결)이 아닌 행정적 수단으로 처리하는 오류를 범했다. 또한, 혁명 이후에도 잔존하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끈질긴 생명력을 간과했으며, 반식민지 국가에서의 독자적인 혁명 방법론이나 프롤레타리아트의 군사 전략을 체계적으로 개념화하는 데 미흡했다.
대중과 당의 괴리,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하에서 형성된 혁명주체의 불완전성, 그리고 당 중앙이 타락했을 때 노동계급이 취해야 할 행동 지침의 부재. 이 모든 것은 두 번째 단계의 맑스주의가 해명하지 못한 공백이었다.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발생한 반혁명은 바로 이 과학적 공백을 파고든 역사의 역공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 패배를 외면하거나 악마화를 통해 사회주의의 역사적 실천경험으로부터 분리할 것이 아니라, 패배의 요인들을 면밀히 해부함으로써만 다음 단계의 과학으로 나아갈 수 있다.
폐허 위에서 부활하여
이제 우리 앞에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이 놓여 있다. “그렇다면 맑스레닌주의의 한계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이 거대한 질문은 과거로의 도피를 통해서는 응답될 수 없다. 실패의 기억이 두려워 ‘고전적 맑스주의’로의 회귀를 주창하며 텍스트의 순결함을 칭송하거나, 역사적 실천의 실험실에서 이미 도태된 비주류 레닌주의의 파편들을 발굴해 위안을 삼는 것은 과학의 길이 아니다. 그것은 골동품 수집가의 취향일 뿐, 혁명가의 방법론이 될 수 없다.
진정한 과학적 방법론은 맑스레닌주의가 역사적으로 마주한 한계 지점을 정직하고 면밀하게 분석하는 데서 시작된다. 맑스레닌주의와의 역사적 연속성과 그 혁명적 본질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되, 그 체계가 필연적으로 파열을 생산한 단절의 지점에 충실하게 임하는 것. 이것만이 맑스주의를 과학이라 믿는 이들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태도이다. 뉴턴 역학의 한계가 물리학의 종말이 아닌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으로의 도약을 의미했듯, 맑스레닌주의의 패배는 더 높은 차원의 혁명과학을 향한 인식론적 단절의 서막이다.
따라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진정한 논제는 명확하다.
“세 번째 단계의 맑스주의는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힌트를, 우리는 마오주의의 지평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마오쩌둥이 제시한 문화대혁명론은 사회주의 하에서의 계급투쟁의 문제를, 신민주주의론은 반식민지 국가에서의 혁명의 문제를, 인민전쟁론은 레닌주의의 단계에서 완전히 파악되지 못하였던 프롤레타리아 군사전략의 문제를 맑스레닌주의가 마주한 한계점 너머로 밀고 나아가는데 성공했다. 마오쩌둥과 중국공산당의 후기 실천들은 맑스레닌주의가 끝내 해명하지 못했던 내재적 한계들을 돌파하기 위한 맹아적 형태의 무기들을 마련했다.
이후 마오주의는 인도, 터키, 페루, 필리핀, 아프가니스탄 등지의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실천되고 역사적 경험을 축적했으며, 1980년대에는 전세계의 마오주의자들이 혁명적국제주의자운동(RIM)의 기치 하에 집합하여 그때까지 파편화 된 형태의 지식으로만 존재하던 마오주의를 페루공산당의 주도 하에 진정한 정치적 이론체계로서의 마오주의로 재정립 하였다. 마오쩌둥과 중국공산당의 실천들이 인식론적 단절을 위한 조건적 지식들을 산출하였다면 혁명적국제주의자운동은 오랜 길항과 지식의 실천적 축적 끝에 비로소 지식을 새롭게 배열할 틀을 초기적으로 마련한 것이었다.
물론 마오주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레닌주의의 수많은 디아도코이들처럼 마오주의 또한 수많은 정립의 시도들이 존재한다. 마오주의라는 이름의 체계는 아직 역사라는 엄혹한 실험대 위에서 검증을 거치는 과정 중에 있다.
그렇기에 이론적 발전의 창문은 여전히 미래를 향해 열려 있다. 과거로의 낭만적 회귀나 포스트모더니즘적 자포자기, 현실사회주의의 악마화를 통한 자기순결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한, 맑스레닌주의의 공백을 메우려는 그 어떤 진지한 시도도 이 담론장에 오를 자격을 갖는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발을 딛고 서야 할 곳은 이미 역사적으로 도태된 이론의 쓰레기더미가 아니다. 우리는 오직 맑스레닌주의의 지평 위에서만, 맑스레닌주의를 극복하려는 시도들로 이 담론장을 채워야 한다. 그것만이 파편화된 경험론과 추상적 관념론을 거부하고, 맑스주의를 다시금 승리하는 혁명과학으로 부활시킬 수 있는 유일하고도 올바른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맑스주의 진리의 영구불멸성은 그 요소들의 고정불변함이 아니라 영원토록 자기 자신을 발전시키고 역사에 도전할 수 있는 위대한 생명력에 존재한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오직 미래만이 우리가 발을 내딛을 수 있는 방향이다. 과학적 사회주의자들은 이제 맑스레닌주의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그 거인이 끝내 보지 못했던 지평선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한다. 그 행진의 끝에는 우리가 찾던 새로운 단계의 맑스주의가, 그리고 그 새로운 단계의 맑스주의가 산출해낼 새 시대의 혁명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