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정치와 진리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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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정치와 진리의 정치

우리는 흔히 자유주의 의회정치를 여러가지 신념과 이데올로기를 지닌 주체들이 다원적으로 공존하는 정치제도라고 말하고는 한다. 자유주의 의회제는 선거와 의회에서의 토의를 바탕으로 어느 신념이 더욱 적합하고 적실성 있는가를 경합하며 비적대적 경쟁과 토론을 통해 내부 모순을 해소할 수 있는 열린 체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가? 자유주의 사회에서 어느 당파가 집권하고 실권을 가져가는가의 문제가 어느 집단의 지향점과 이데올로기가 더욱 정합지인가에 대한 전사회적 경합에 의해 처리되는 경우는 극히 희박하다. 대다수의 경우, 자유주의 사회에서의 투표라는 것은 어느 쪽이 경제적 지표를 미세하게나마 더 잘 관리했는가, 어느 쪽이 어느 지방에 무엇을 유치하고 무엇을 건설했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정치의 본질은 어떤 정치가 옳으며, 공동체가 어떤 가치에 의해 통치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이렇게 볼 때, 자유주의 사회에는 본질적 의미에서의 정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주의 사회에서의 의회정치는 경제지표, 소득지표, 지역개발, 정책조정 등에 있어서의 기술적 집행과 리스크 관리의 테크닉으로 전락한다. ‘수많은 진리 간의 무한한 토론과 다원성’을 말 하지만, 그 어떤 진리도 공공의 영역에서 선언될 수 없다. 무엇이 진리인가의 문제는 결코 판결이 내려질 수 없는 상대적 영역으로 유폐되고, 모든 종류의 가치판단은 개인적 양심의 몫으로 남겨진다. 어떤 사회가 정의로운가에 대한 질문은, 어떻게 하면 실업률을 0.1% 낮출 수 있는가의 기술적인 문제로 전락한다.

갈등관리와 기술행정이라는 분야에 국한된 정부는 그 어느 정당이 대통령이나 총리 등 최고위 선출직을 차지했던 간에 정책방향과 국정추진에 있어 질적인 차이를 보이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최고위 선출직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통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적과 아군을 나누고 공동체가 나아갈 거대한 방향성을 선포하는 통치자는 의회의 법 개정안, 헌법의 조항, 관료제의 절차 속에 질식해 사라지고 오직 국가라는 거대한 관료조직을 최상층에서 미세하게 조정하는 역할만이 선출된 정부수반에게 남겨지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운명과 정치적 결단을 비롯한 정말로 중요한 결정권을 그 누구도 가지지 않고 있는 상황 속에서 그 아무리 급진적이고 비주류적인 정치집단이 대통령이나 총리를 배출하더라도 결국 그들은 갈등관리를 위해 의회의 전통을 따르게 되며, 기술행정을 위해 관료조직에 의존하게 된다.

자유주의 논자들은 이를 토의 과정이나 숙의 절차 등으로 포장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토의나 숙의는 절대로 끝나거나 결론을 도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정한 진리가 선포되는 순간, 정치적 다원성이라는 자유주의의 핵심적 요소는 스스로 붕괴하기 때문이다. 즉, 자유주의 사회에서의 ‘토론’이라는 것은 경합하는 진리 속에서 변증법적으로 행동강령을 추출하고 일치된 일반의지를 도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결론도 내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정치의 공백 속에서 관료조직은 막대한 행정적 실권을 휘두르며, 고도로 집중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관료조직은 결국 금융자본의 의도를 따르도록 설계되어 있다.

관료조직은 스스로의 행동양식을 정함에 있어 그 사회 안에서 합의된 바라고 전제된 상식이나 글로벌 스탠다드 따위를 따른다고 주장하지만, 그 상식과 글로벌 스탠다드를 창조하는 것은 다국적 자본이다. 세계화, 유연한 노동시장, 글로벌 리더 양성, 규제완화, 자유무역 따위의 개념들을 과연 각국의 관료조직이 스스로 창안했을까? 그 누구도 통치하지 않는다는 비지배자유의 허울 좋은 구호의 본질은, 그 누구도 정치적 주체로서 사회의 통치에 참여할 수 없으며, 그 누구에게도 현상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주권 없는 사회의 주권자는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물질적인 힘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자들, 즉 금융독점자본가들 뿐이다.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집단적 인민의 주권자화에 있는데, 자유주의는 공적 영역에서의 모든 주권을 분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삼권분립, 권력기관 간의 상호견제, 헌법을 통한 선출권력의 속박, 봉쇄조항, 비선출 사법부의 막대한 권한… 이 모든 것의 본질은 인민주권의 탄생을 억제하고 제압하는 것에 있다. 삼권분립의 창시자인 몽테스키외가 철저한 귀족주의자였으며, 존 로크의 영향을 받아 현대 자유주의 정치제도의 기틀을 마련한 미국의 소위 ‘건국의 아버지’들이 인민정치를 경멸하고 혐오했다는 사실, 그들이 어떤 의도로 상원과 사법부를 건설했는가에 대한 역사적 기록들은 이 모든 것을 증명한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유일하게 인정되는 보편적 합의라는 것은 천부인권이다. 모든 인간은 양심의 자유, 사유재산권, 신체에 대한 자기소유권, 참정권 등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러한 천부인권론의 본질은 무엇인가? 천부인권론의 본질은 인간의 권리가 하늘로부터 부여된다는 것이다. 천부인권론의 핵심은 인간의 권리는 물질세계에서의 투쟁을 통해 쟁취되거나, 사회의 발전에 의해 변동되는 것이 아니다. 아주 노골적인 논자는 이를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덜 노골적인 논자는 자연법 등의 논리를 통해 천부인권론을 정당화한다. 즉, 인권이란 인간의 생활환경, 즉 존재적 조건들로부터 도출된 것이 아니라 신에 의해서든 자연법에 의해서든 선험적으로 부여된 고정적인 권리이다. 이러한 고정된 권리를 침해한다고 여겨지는 자는 방역의 대상이 되고, 이를 넘어선 추가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자는 인간에게 책정된 고유한 권리의 선을 넘어서려 하는 몽상가로 취급된다. 자유주의 제도는 공동체 내에서 구성원들에게 부여되어야 할 권리에 대한 논의나 그 확대 등에 대한 논의를 차단하는 한 편, 정치를 이미 주어졌다고 주장되는 권리들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수동적 경비업무 속에 가둔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급진주의자들은 천부인권을 침해하는 방역의 대상이다. 재산에 대한 물리적 재분배는 사유재산권에 대한 침해이며, 봉건적 종교교육에 대한 폐지를 주장하면 양심의 자유에 대한 침해가 된다. 누군가는 자유주의 사회가 반대파들에게 자유와 관용을 베푼다고 말 하지만, 자유주의 사회는 반대파를 정치적으로 격퇴할 대상이 아닌 사회로부터 분리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본다. 천부인권과 모순되는 주장을 하는 자는 단순히 정치관이 다른 것을 넘어서 자유주의 사회의 절대적인 가치를 분쇄하려는, 도덕적으로 타락했거나 정신이 온전치 못한 자들로 간주된다. 즉, 자유주의라는 열린 사회의 적은 곧 환자이거나 범죄자인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상대방을 경합하는 진리를 가진 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는 타력에 의해 급진화된 금치산자 내지 열등감에 잡아먹힌 병리학적 대상으로 취급되지 않는가? 자유주의 사회는 정치적 적대세력을 단순히 격퇴하고 제압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인격을 격하하고 도덕적 명분을 들어 심판 내지 단죄하려 할 수밖에 없다. 어째서인가? 자유주의 사회는 그 어떤 진리도 선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정한 진리를 명분으로 들어 그 진리를 실현하는데 있어 방해되는 세력을 배제하려는 적과 아군의 정치가 사라진 자유주의 사회에서 적대세력을 격멸하는 유일한 방법은 대중의 상식과 도덕감정에 호소하는 것 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유주의 사회는 자유주의의 전제와 대립되는 정치적 적대세력과 그 어떤 토론이나 합의도 도출할 수 없으며 오직 대중의 도덕감정에 호소하여 상대방을 격리와 치료가 필요한 도덕적 타락자로 낙인찍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진리라고 믿으며, 너의 진리는 우리 공동체에 해롭기 때문에 퇴출되어야 한다”는 정치적 경합은 자유주의 사회 내에서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자유주의 사회가 적을 다룸에 있어 적대세력의 정치적 강령에 대한 비판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적을 전체주의에 세뇌된 사고불능자나 반체제세력에게 선동당한 극단주의자 정도로 규정하여 질병 보균자를 다루듯 격리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러한 방역적 폭력에 있어 자유주의 국가는 결코 그 누구도 폭력의 무게나 책임을 감당하게 하지 않는다. 판사는 법전을 따랐을 뿐이고, 관료는 상부의 지침에 따랐을 뿐이며, 대중은 시스템이 제공한 정보를 소비했을 뿐이다. 폭력은 존재하지만, 그 폭력의 무게를 온전히 짊어지는 결단자는 소멸한다. 오직 자신들의 손에 그 어떤 피도 묻히지 않은 채 상대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작업을 반복하는 거대한 관료조직만이 존재할 뿐이다.

자유주의 사회의 숨겨진 주권자이자 지배계급인 금융과두들은 평시에는 자유주의 정치제도의 복잡하고 형식적인 절차들 속에 스스로를 은폐하지만, 막상 자신들의 생존과 존립이 위협받는 상황이 오면 그들은 자유주의 제도의 영속성이라는 환상을 깨고 나와 주권적 폭력을 돌출시킨다. 자유주의라는 명목 하에 체제를 유지하던 자들이 막상 체제가 위협에 빠지자 극단적인 무력과 폭력을 동원해 지배계급 내부의 모순을 해소하고 명료하게 적을 규정하여 반대파들을 절멸시킨 사례는 적지 않다. 유럽에는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있으며, 남미에는 피노체트와 바티스타가 있었으며, 한국에도 박정희와 전두환이 있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진리를 선포하는 정치,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당당하게 논하고, 적대적인 다른 진리들과 철저히 경합하는 정치, 즉 진리의 정치가 요구된다. 적이 단죄되어야 할 범죄자이기 때문에 처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과학과 진리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적이 사회에서 배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적과 맞서는 결단의 정치, 적이 정의로울 수도 있고 자신보다 도덕적일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우리의 진리에 기반한 정치적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적대세력과의 물리적 경합에 돌입할 수 있는 정치가 요구된다.

진리의 정치의 현실적 실현에는 상대가 광인이거나 도덕적으로 타락한 인간말종이라고 낙인찍지 않고도 당당하게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맞서 싸울 수 있는 전사적 주체가 요구된다. 이는 적을 인정하면서도 망설임 없이 적과 투쟁할 수 있는 미덕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전사적 윤리를 수용하지만, 오직 물리력만을 유일한 척도로 간주하여 단순한 승패의 논리와 끝없는 투쟁에 대한 강조로 인해 악무한에 빠져드는 봉건적 전사윤리와는 구분된다. 혁명정치의 주체들은 당면한 투쟁을 넘어 생활세계 속에서 직접 자신이 사회적 생산을 수행하고 투쟁 이후의 세계를 설계하며 정치적 폭력이 불러온 사회적 후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정치적 프로젝트에 대한 입법자이자 동시에 그 프로젝트를 위한 물리력을 행사하는 집행자들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혁명정치의 주체들이 취득해야 할 덕성은 과거의 전사적 윤리를 뛰어넘는 전사적이면서도 노동자적인 혁명군중의 덕성이다.

진리정치의 주체인 혁명군중은 무기한적 토의 속에서 정치적 결단과 주권자를 은폐시킨 자유주의 제도를 분쇄하고 새로운 진리와 도덕을 선포한다. 새로운 주권자는 관료제와 절차 속에 숨지 않고 정치적 주체인 스스로를 사회 속에서 공공연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새롭게 선포되는 진리는 자유주의 사회에서의 천부인권론 같은 추상적 보편의 형태를 띄어서는 안 된다. 인권은 보편적이고 영속적인 가치가 아닌, 자연과 인간사회의 특정한 발전단계에 따라 나타난 제반조건에 의한 계급투쟁의 결과물이다.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지 않고,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그렇기에 모든 도덕, 모든 진리, 모든 보편성은 허공으로부터, 혹은 독단적 연역으로부터 도출되어선 안 된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식의 추상적 보편에 기인한 명제는 실제 현실에서 발생하는 계급적 착취와 힘의 불균형을 은폐할 뿐이다.

허공 위에서 이루어지는 보편성의 선언과 즉자적 개별성에 대한 무제한적인 용납은 동전의 양면에 불과하다. 보편자는 개별자를 통해서 스스로를 드러낸다. 즉, 사회적으로 실현될 수 있고 실현되어야 할 보편성은 공중에 부유하고 있는 연을 장대로 건지듯이 추상적 사유에 의해서 연역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거짓 보편성은 실존하는 모순들을 가리고 인간생활의 제반조건들을 은폐하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진정한 보편성은 개별 인간들이 생활세계 속에서 자신의 삶과 사회적 활동을 수행하며 체득하는 사회적 인식으로부터 추출된다. 하지만 단순히 개별자들의 의견을 총합하여 수렴하는 것으로는 보편성은 체득될 수 없다. 보편적 진리란, 개별자들의 파편화된 무제한적 욕망을 단순히 발산하게 방임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 내에서 집체적 토론과 토의를 수행한 후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개인들의 사회적 인식으로부터 추출된 행동강령을 실천과 검증을 통해 고도화하고 이론화하는 작업을 통해서만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도출되는 보편적 진리는 실천과 재인식, 검증과 재실천이라는 과학적인 절차에 따라 객관적 정합성을 띌 뿐만이 아니라 개별자들이 사회 내에서 자신들이 생활하는 제조건에 의해 도출되었기 때문에 인민의 일반의지라는 속성 또한 지닌다. 이는 자유주의자들이 논하는 자유선거니 투표니 하는 절차를 통해서도 이룩될 수 없고, 영도자나 민족적 지도자 따위가 선험적으로 선포하는 구호나 강령을 통해서도 이룩될 수 없는 개인과 공동체의 완전한 합일이자 과학적 진리의 실현이다. 기층의 집체토론을 통해 확립된 구체적 보편은 ‘착하게 살아라’ 따위의 허공 위의 교조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의 통일적 행동을 통해 인간활동의 기본적이고 절대적인 기반이 되어 자리잡는다. 이러한 사회에서 개인주의니 집단주의니 하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과 집단이 하나가 되고, 개별자와 보편자가 하나가 된다. 개별자들이 무의식적으로 체득하고 있는 사회적 인식을 집단적 진리로 승화시켜 공동으로 실천하는 일련의 과정은 앎과 행동을 일치시키고, 생산주체의 자기규율을 통해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일치시킨다. 개인이 따라야 할 보편적 진리는 교리서나 법전 같은 외부적 요건에서 기인하지 않고 자신 스스로의 존재적 조건에서 도출된다. 그렇기에 개인과 공동체 간의 모순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며, 자유와 필연 또한 하나로 일치된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다는 생리적 상식을 당연하게 여기는 만큼이나, '나는 우리의 정치를 실천한다'는 행동강령을 자연스러운 존재의 양식으로 삼게된다.

이러한 진리정치는 사회주의 사회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된다. 대중은 파편화된 개인이 아닌, 자신들이 생산하고 생활하는 생활의 터전에서 대중조직과 당의 세포로 조직된다. 공장, 농장, 학교, 연구소, 생활공동체 등의 모든 현장은 집단적으로 진리를 도출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지행합일의 단위가 된다. 대중은 생산현장에서 현장 민주주의를 통해 스스로를 자기규율하고, 당 간부는 기층단위의 집체토론을 통해 도출된 인민의 사회적 인식과 문제의식을 당에 제출한다. 선진적인 노동자들로 구성된 당은 수많은 기층단위로부터 제기된 사회적 인식을 맑스주의 과학에 따라 재조합하고 하나의 행동강령으로 녹여내 대중에게 돌려주는 군중노선을 실천한다.

인민의 대표자들은 더이상 자유위임을 받아 무기한적 토의와 절차, 합의 속에 스스로를 가두는 자유주의 사회의 정치인이 아닌, 인민의 개별적 인식을 의사기구에 전달하고 집체토론을 통해 과학적 이론으로 발전 강화시키며, 현장의 목소리를 왜곡하거나 사적 욕망을 절차에 개입시킬 시 언제든 소환되고 파면될 수 있는 과학의 전달자가 된다. 당이 더이상 개별자로부터 드러나는 보편성을 체득하지 못하고 복고와 반과학의 길을 걷는 퇴행적 집단으로 타락한다면 문화대혁명에서의 사례처럼 인민들은 스스로를 조직하여 타락한 당중앙을 타격하고 정화하여 과학적 진리 아래 사회를 다시 묶어세워서 무너진 보편성을 재조립한다.

자유주의의 방역정치는 종결된다. 적대세력은 더이상 범죄자나 도덕적 타락자로 취급되지 않고, 인간사회와 자연의 발전을 거스르기에 정치에서 배제되어야 할 세력으로 취급된다. 마오쩌둥이 논하였듯이, 인민 내부의 모순은 집체토론과 합목적적 토의 속에서 녹여내며 인민 외부의 모순은 인민권력의 강권과 격멸 아래 합리적으로 처분된다. 이러한 처분을 집행하는 인민과 당은 절차나 시스템 뒤에 숨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될 생산과 진리의 실현 속에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스스로의 폭력의 후과를 담담하게 감당한다.

인민은 더이상 추상적 교조를 수동적으로 수용하거나 파편화된 개인적 욕망의 무제한적 발산 속에서 고립되지 않는다. 인민이 자신들의 사회적 생산 속에서 체득한 사회적 인식은 당의 군중노선을 통해 강령과 지침으로 자리잡으며, 이러한 강령과 지침은 인민 생활의 구체적 노선이 된다.

자유주의 정치는 지속될 수 없으며, 지속 되어선 안 된다. 자유주의가 몰락할 때 지배계급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마지막 발악으로 호출한 파시즘 또한 결코 평범한 인간들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인간의 생활 속에서 진리를 추출하고 그 진리를 당당히 선포하여 자유주의에 의해 해체된 인간공동체를 회복하고, 새로운 사회, 새로운 국가, 새로운 문명, 새로운 인간을 주조할 사회주의의 진리정치만이 인류사회의 유일한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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