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성과 파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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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성과 파열(2)

2. 과학의 교조주의적 그림자

과학의 문제

저자는 ‘마오주의’의 이름과 개념 사이의 구분을 통해 마오주의로서의 마오주의가 새롭지만 잘 이해되지 못하고 있음을 주장하였다. 이를 통해 우리는 마오주의가 마오쩌둥이라는 이름을 넘어서는, 세계사적 혁명에 대한 평가를 통해 발생된 것임을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적 유물론을 과학으로 개념화하는 것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는 건 논쟁적이다. 특히 소비에트적 교의, 그리고 매우 비과학적인 맑스주의 이해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변증법적 유물론’의 존재론 하에서 설명될 수 있다는 이러한 접근은 헤겔의 과학 개념에 대한 기계적 해석에 더욱 가깝다. (엥겔스의 자연변증법과 같이 변증법을 자연화하고 그것을 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러한 예시다.) 따라서 맑스주의 이론에 대한 개념화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는 것은 오래된 복귀가 아닌 새로운 복귀다. 이는 과학적 진리의 절차로서의 역사적 유물론을 더욱 잘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복귀를 위해서는 과학에 대한 모든 주장이 독단적 그림자와 초과학적 이중성을 지니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스스로가 과학임을 인지하는데 실패하는 맑스주의는 초과학의 사례다. 여전히 맑스주의 과학에 대해 오래된 이해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보다 정통적인 맑스주의는 ‘유물론적 변증법’과 ‘기계적 형이상학’과 같은 문구를 교조적으로 반복함으로서 스스로가 기계론적인 이론임을 인지하는데 실패한다.

역사적 유물론이 과학적-이론적 지형임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철학과 이론이 맑스주의에 의해 융합되는 길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며, 맑스주의 이론과 철학적 실천 양자에 명료성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맑스주의 이론과 철학의 융합은 역사적 유물론의 빈곤을 초래한다. 따라서 역사적 유물론이 과학적-이론적 지형이며, 철학은 이러한 지형에 영향받은 자율적 과정임을 구분하는 것은 일차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맑스주의는 따라서 철학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과학이다. 이는 역사적 유물론이 중요한지에 대한 수많은 논쟁들을 빗겨나갈 수 있게 해준다. 즉,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파악된 이 이론적 지형이 중요한 이유는 사회-역사적 현상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유물론이 과학임을 견지하는 것은 개념적 지형에 대한 명료화를 낳는다. 맑스나 엥겔스가 이러한 과학의 정초에 있어 ‘존재’나 ‘의식’과 같은 철학적 언어를 사용한 것은 철학적이라기보다는 은유적인 것에 가깝다. 비슷하게 다른 과학자들 역시 ‘원자’, ‘원소’와 같은 철학적 언어를 차용하였다. 그리고 물리학, 생물학, 화학이 존재론이라는 철학적 범주 하에서 결정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과학적 실천과 완전히 동떨어져있는 것이다.

과학으로서의 역사적 유물론은 과학에 대한 대부분의 교과서적 정의에 부합한다. 1) 주어진 자연적 현상에 대한 (초자연적 범주에 의한 설명이 아닌) 자연적 설명을 제공한다. 2) 설명력과 최고의 설명에 대한 추론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3) 이론적 발전을 설명하는 일반적인 운동의 법칙(계급투쟁)을 가정한다. 4) 일반적 운동법칙은 시험가능성과 반증가능성을 지닌다. 5) 어떻게 이론적 지형이 미래를 향해 열려있는지를 결정하는 진리의 절차를 발생시킨다.

몇몇 냉소주의자들은 이러한 과학에 대한 정의 자체가 철학적 결정의 일종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회고적으로만 ‘철학적’이다. 이는 이미 존재하는 것에 대한 철학적인 기술이라는 점에서만 ‘철학적’이다. 위의 정의에 부합하는 물리학, 생물학, 화학의 진리 과정은 철학적 기술에 의해 약화되지 않는다. 이러한 과학들은 철학적 불평불만과 무관하게 구체적인 영향력을 지닌다.

프랑수아 라뤼엘(François Laruelle)은 맑스주의가 물질의 범주에 대한 개념화에 의해 제한되어 있고, ‘물질’에 대한 철학적 결정은 자체적인 이론을 형성할 수 없기 때문에 이론의 확장에 있어 관념론적 보충물을 요구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만약 맑스주의가 철학적인 것으로 남아있다면 라뤼엘의 비판은 과학의 자격을 거부하는 모든 맑스주의에 의해 그 힘이 유지될 것이다. 비과학적 유물론은 실제로 철학의 영역에서 발견될 것이고, 그렇다면 ‘물질’이 무엇을 의미하고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관념론적 범주들로 후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맑스와 엥겔스가 물질의 범주를 관념론적으로 추정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들은 다른 과학자들이 그러하듯 단순히 세계를 서술한 것뿐이다. 그리고 라뤼엘이 만약 다른 과학자들의 유물론을 기각하고 싶다면 그는 철학만으로는 생산할 수 없는 과학의 결과들을 기각해야 할 것이다.

맑스의 유물론은 철학적 범주가 아니다. 맑스는 이미 가정된 존재론적 질문들이나 사변적 철학 없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맑스가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결정한다”고 주장했을 때 그는 존재론적인 의미에서의 존재와 인식론적 의미에서의 의식을 가정한 것이 아니다. ‘존재’(Being)는 단순히 ‘있는 것’과 사람들이 실제로 마주치는 것들을, 의식(Concsciousness)는 단지 이 사회적인 삶의 토대에 대한 이해를 의미할 뿐이다.

역사적 유물론의 용어들이 철학적으로 풍부한 용어들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옳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용어들이 여전히 철학에 속해있다고 주장하거나 맑스가 사변적 존재론을 대신하는 ‘사회적 존재론’(social ontology)을 정초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 과학적 지형을 철학적 권위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다른 과학들 역시 이러한 철학적으로 풍부한 의미를 갖는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학의 진리 과정이 발전할수록 새로운 용어들이 발전하고 철학과 이론 사이의 틈은 점점 더 벌어진다. 힉스 보손이 발견되었을 때쯤 원자론자들로부터 빌려온 물리학의 용어들은 훨씬 발전해있었다. 마찬가지로 맑스가 <자본>을 집필할 때쯤이면 철학으로부터 빌려온 용어들(존재, 의식, 소외 등)로부터 멀어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생산양식, 생산력, 이윤율 저하 경향 등)

철학으로부터 과학이 분리되면서 과학은 철학이 약속했지만 결코 이룰 수 없었던 것을 달성할 수 있었다. 과학은 실재(reality)에 대해 검증되고 측정되고 실험되고 반복될 수 있는 구체적 답변을 제공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실제의, 물질적 진리과정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코페르니쿠스의 가설은 어떤 철학적인 사변적 노력도 달성할 수 없었던 진리다. 형이상학으로부터 벗어나는 ‘계몽’(enlightenment break)을 통해 성립된 진리의 역사적 조건을 갖추지 못한 존재론은 단지 존재의 구조나 실존의 의미를 찬미했을 뿐이며 논리학의 법칙을 벗어나는 영역에서는 과학적 이론이 건설하는 것과 같은 진리과정을 건설할 수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철학이 진정한 ‘과학’이라는 헤겔의 주장을, 계몽의 탈신비화에 맞서 철학을 재특권화하기 위해 과학의 출현을 거부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헤겔의 체계에 정통했던 포어이바흐는 헤겔의 체계를 지금까지의 철학의 성취로 인지했지만 사변신학의 일종으로 분류했다. 따라서 우리는 철학적 허용으로 보이는 용어들에 의존하는 것이 역사적 유물론과 다른 여타 과학들을 철학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라는 걸 인지해야 한다.

과학은 무언가를 하고, 철학은 이러한 것을 추측하고 이해하려 한다. 역사적 유물론의 과학은 다른 이론들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할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혁명을 일으킨다. 맑스주의의 과학으로서의 효과에 대한 증거는 맑스주의의 실천이 계급투쟁으로 구현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과학적인 것에서 교조적인 것으로

계급투쟁에 의해 증명되고, 사회적 세계 전체가 실험실인 역사과학은 다른 과학들이 흔히 그렇듯 쉽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역사과학에도 다른 과학에서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초과학자, 사이비과학자들이 뒤따른다. 그러나 평평한 지구나 창조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일반 과학계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과 달리, 역사과학에서의 초과학자들은 언제나 파악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역사과학에 대한 맑스와 엥겔스의 견해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일반적인 주저함에 기인한다.

예를 들면, 혁명과학의 의미를 오인하고, ‘변증법적 유물론’이라고 불리는 것이 모든 과학들의 배후의 웅장한 통일이라고 믿는 이들이 있다. 예를 들어 테드 그랜트와 엘런 우즈는 맑스주의가 현대 물리학에 대한 메타과학적 접근을 허용한다고 믿기 때문에, 일부분 모호한 뉴턴주의를 지지하는 아인슈타인의 범주들을 거부한다. 우리는 이러한 맑스주의 초과학자들이 과학에 철학을 융합시키고, 사회적 존재론(social ontology)을 추구함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맑스주의를 과학적 지형으로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멀어지고, 따라서 맑스주의의 철학적 표준화를 시도할 때 초과학적인 경향을 지니게 된다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가장 나쁜 사례에서 그들은 과학적 권위의 언어를 사용하는 한편, 맑스주의가 검증불가능하다는 포퍼의 불평을 확증한다. 검증되지도, 검증될 수도 없는 트로츠키주의의 ‘영구혁명’과 같은 사례가 그러한데, 따라서 이는 초과학의 명확한 사례로 기능한다. 철학의 영역으로 깊이 침잠하면서도, 모종의 과학적 권위 비스무리한 것을 통해 실재를 정초하고자 하는 프랑크푸르트 학파 역시 그러하다. 이러한 주장들은 우리로 하여금 맑스주의를 과학적 방법론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메타과학이나, 완결된 사회적 존재론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역사적 유물론은 과학으로, 계급투쟁이 원동력임을 인식할 때만 현상을 과학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계급사회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는 우리로 하여금 과학적 방법론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막기도 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우리로 하여금 결국에 실패하게 된 위대한 혁명들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보편적인 교훈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만든다. 따라서 과학의 발전에 대한 과학적 이해의 기반을 부정하고, 세계사적 혁명에서 보편화된 계급투쟁을 부정하고, 혁명과학의 개념을 부정하여 메타과학적 접근으로 도피하는 것은 유혹적이며, 이는 단지 초과학 이상 이하도 아니다.

혁명과학의 투사들은 이러한 경향에 맞서 투쟁해야 하지만, 이러한 투쟁은 불행히도 종종 일종의 교조주의를 생산해낸다. 이러한 점에서 맑스-레닌-마오주의는 아직은 매우 교조적인 경향들로부터 면역이 되어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교조주의의 기본적 문제들

마오주의는 어떠한 ‘순수한’(pure) 공산주의의 개념도 거부해야 한다. 이러한 개념을 추구하는 맑스주의적 경향은 정당화의 논리를 방법론과 보편적 통찰이 아닌, 누구에게 쓰여졌는지에서 찾는다. 이는 교조주의다.

마오주의로서의 마오주의로 이어지게 된 초기의 반수정주의 경향에서는 이러한 ‘순수한’ 공산주의의 개념을 비판하는 교조적 수정주의(dogmato-revisionism)라는 용어가 존재했다. 호자주의자들에게 적용되는 이러한 ‘교조적 수정주의’는 극단적 정통주의(ultra-orthodoxy)에서 기인한 수정주의로 이해되었다. 신성시되는 문건들과 성인들에 대한 종교적인 헌신은 혁명과학을 소거하며, 결과적으로 유물론에 반대되는 수정주의를 낳는다.

마오주의가 가지고 있는 창의적인 이론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마오주의와 관련된 반수정주의적 전통에 이러한 교조주의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부정직한 것일 테다. 마오주의 역시 교조주의로 빠질 수 있다. 무엇보다, 공산주의가 ‘과학’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주장은 반과학적인 교조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과학적 기반을 지닌 유일한 혁명적 이론임을 주장하는 것은 다른 실천이나 전통을 ‘관념론적’이거나 비일관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투쟁은 때때로 종교적인 의식 같은 것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우리가 맑스주의에 교조주의의 혐의가 없다고 주장하면 주장할수록, 혁명적 세력을 결집하고 정치적 노선을 선전하는 것은 단지 유사종교적인 사고방식만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면 좌익민중주의적 현상을 거부하는 일부 마오주의적 경향들은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 혁명(Bolivarian Revolution)과 같은 것들을 ‘사회파시즘’(social fascism)이라고까지 이름 붙인다. 사회주의 건설의 구체적인 수단이 부재한 사회운동을 항상 무비판적으로 지지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행동은 무릎반사적인, 교조적인 거부에 가깝다. 아마 처음부터 그러한 실수가 존재했겠지만, 페루공산당의 잔존 세력 역시 ‘곤잘로 사상’에 대해 종교적으로 논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동일한 비판이 밥 아바키안에 대해 개인숭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RCP-USA에도 적용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혁명적 인물들에 대한 공산주의 조직들의 맹종에는 여러 예시가 있다. 예를 들어, 스탈린에 대한 개인숭배는 특정 시기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특징이었는데, 엔베르 호자의 반수정주의 변종은 이러한 개인숭배를 이어받은 것이다. 마오주의 역시 이러한 교조적 실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는데, 문화대혁명기의 마오쩌둥에 대한 개인숭배가 그러하다. 중국 바깥의 반수정주의 조직들은 이러한 풍조를 모방하였다. 아비마엘 구즈만을 ‘맑스주의의 네 번째 검’으로 선언한 페루공산당 역시 그러하다. 따라서 교조주의는 과거에 내재해있으며, 극복되어야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아지스(Ajith)는 “개인숭배는 맑스주의에서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완전히 거부하는 대신 마오는 극단적인 표현을 비판하는데 그쳤다. 중국의 복잡한 계급투쟁의 상황에 호소하여 정당화를 꾀하고 있지만, 이러한 개인숭배는 원칙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 마오를 인용함으로서 지도부 숭배를 정당화하는 마오주의 정당들의 현대적인 예시는 이 문제에 대한 명확성을 얻어야 할 필요성을 환기시킨다”고 평가한 바 있다. 여기서 아지스는 명료하게 마오주의와 마오쩌둥의 중국공산당을 구분하고 있다. 단지 마오와 중국혁명에 대한 충실성을 갖는 것을 넘어 스스로를 마오주의자로 정체화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교조적 관행을 깨버려야 한다. 아지스는 맑스-레닌-마오주의 조직들이 자신들의 정당화를 위해 과거의 문제들을 상속하고 있음을 인지한다. 다른 글에서 아지스는 “당과 지도부 숭배를 미화하는 현재의 관행은 (...) 권력에 복종하는 정치적 문화를 약화시키기보다는 강화시킬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위험은 ‘당 내에 바로 부르주아지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증폭된다”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마오주의자들이나 인도의 마오주의자들을 비롯한 맑스-레닌-마오주의 조직들에서 지도부 숭배는 일반적으로 거부되고 있지만, 여전히 개인숭배는 마오주의 운동의 중요한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마오주의가 주된, 맑스-레닌-마오주의’(Marxism-Leninism-Maoism, principally Maoism)와 ‘곤잘로 사상’을 내걸고 페루공산당을 추종하는 이상한 마오주의 경향이 RIM 해체의 과정에서 생겨나고 있다.

마오주의가 반식민반봉건의 맥락에서 가장 억압받는 이들에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지도부 숭배의 문제를 설명하는 하나의 방식이지만, 그다지 설득력 있게 들리지는 않는다. ‘봉건제에 대한 신비화’는 지도부 숭배가 왜 자본주의 중심부의 새공산주의 운동에는 존재하지만 반봉건적 맥락의 마오주의 조직들에는 부재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마오주의만이 지도부 숭배에 책임이 있다는 추정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지도자’에 대한 교조주의는 알바니아 공산주의, 캐나다공산당(맑스-레닌주의)를 비롯한 다른 비마오주의 조직들에도 존재한다. 여기에 스탈린과 트로츠키에 대한 숭배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마오주의만이 교조주의의 사례라고 주장하는 것은 비역사적인 태도일 것이다.

사실 개인숭배의 문제는 공산주의 일반과 마오주의에 영향을 미치는 교조주의에 있어 부차적인 문제다. 종교적인 외양을 띄기 때문에 개인숭배는 비판적인 공산주의자들에게 쉽게 거부되는 가장 뻔한 형태의 교조주의다. 따라서 개인숭배는 오늘날의 맑스-레닌-마오주의가 맞서 싸워야할 핵심적인 교조주의는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교조주의는 ‘순수한’ 공산주의에 대한 믿음에서 발생된다.

따라서 ‘위대한 지도자’에 대한 숭배를 거부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종교적인 태도의 문제는 남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교조주의는 다른 공산주의 경향들에도 존재하지만, 맑스-레닌-마오주의 내에서 발생하는 교조주의는 사뭇 다르다. 다른 경향들에서 교조주의는 혁명적 실천의 부재에 대한 보상으로 발생하지만, 마오주의 경향에서의 교조주의는 역사적인 혁명적 경험들에 기반한다. 따라서 저자는 이 장에서 마오주의에서 드러나는 교조주의를 다루며, 이러한 교조주의는 마오주의에 있어 해가 될 뿐이다.

게다가 이러한 교조주의의 문제는 맑스주의, 레닌주의, 마오주의가 의미하는 과학적 내용을 명목론적(nomological) 형태에서 분리해내지 못하는 운동의 역사적 무능에 있다. 앞서 논한 바와 같이 맑스주의가 칼 맑스라는 이름으로 축소될 수 없지만 말이다. 이러한 모순은 심각한 철학적 문제다. 이러한 문제는 이론적으로 맑스-레닌-마오주의를 지지하면서도 잘못될 수 있는 다른 경향을 비판하는 것을 거부하는 소위 ‘비판적’ 마오주의를 지지하더라도 피할 수 없다. 이데올로기에서의 계급투쟁은 필연적이고, 우리의 선구자들이 이 필연성을 거부했다면 우리는 혁명적 이론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교조주의는 혁명과 현 단계의 이론에 충실하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바로 혁명과학의 실천으로부터 생겨난다. 이것은 아마도 맑스주의, 특히 맑스-레닌주의의 핵심적인 모순일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교조주의가 형식논리적 모순이 아닌, 변증법적 대립물의 통일임을 주장한다. 이것은 우리가 교조주의나 ‘반교조주의’를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천을 이해하기 위해 이 핵심적인 모순의 의미를 이해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에서의 전투성

앞서 저자는 혁명과학의 의미를 밝히는 것으로 이 장을 시작했다. 과학은 미래를 향해 열려있다는 점에서 종교와 구분된다. 진리는 절대적으로 종결되지 않으며, 과정이다. 과학은 필연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보편적 적용가능성의 사슬이다.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배울 것이 절대 남지 않았다는 것이며, 헤겔이 정신의 발전이 철학의 완성에서 끝날 것이라 믿은 것처럼 인간 이해의 끝에 도달했다고 믿는 것이다. 사유를 중지시키며, 독선적이고 편협한 이데올로기로 끝맺지 않기 위해서는 교조주의를 피해야 한다.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이 자신의 이론에 대해 종교적인 지지자처럼 행동하도록 강요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새로운 과학적 이론의 발견은 결코 선형적이며, (과학자들이 발견하도록) 운명지워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중요한 과학 이론들이 종종 과거의 이론적 지형의 한계를 넘어서는 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한 모형이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과학의 한 단계가 한계에 봉착하게 되면 다양한 경쟁하는 모형들이 발생하게 되며, 이데올로기적 노선투쟁은 어떤 이론이 과학의 발전 속에서 보존될지를 결정한다. 과학자들은 한 모형이 헤게모니를 쟁취함으로서 파열이 끝맺어질 때까지 믿음의 신봉자처럼 행동한다. 얀 샙(Jan Sapp)의 『기원:생물학의 진화』(Genesis:The Evolution of Biology)는 과학, 특히 생물학에서의 노선투쟁을 기록한 책이다. DNA 모형을 둘러싼 투쟁뿐만 아니라, 저자는 다윈과 진화론의 지지자들이 어떻게 사회적 전투를 벌이게 되었는지를 다룬다.

이러한 맥락에서 실천은 항상 동원된다. 증명은 과학적 실천에 의해 요구된다. 그리고 과학적 실천은 때로 다양한 경쟁 모형을 방어하는데 충분할 정도로 광범위하기도 했지만, 조정과 이차적 개념의 발생(예: ‘오컴의 면도날’)은 난해하고 불명료한 이론들을 제거하는데 사용되기도 하였다. 생산양식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과학의 경로는 다른 방향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문제는 우리가 역사적 발전을 이해하기 위해 선형성을 가정한다는 것이다. 가능성이 좁아지기 전, 언제나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은 존재했다. 새로운 이론의 필연성은 다양한 우연성을 생산해낸다는 것이다.

모든 과학이 이데올로기적 투쟁을 요구한다면, 교조주의의 혐의는 더욱 복잡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이론에 대해 전투적인 태도를 보이는 과학자들은 단순히 교조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지지한 투사들은 뉴턴 패러다임을 수호하고자 교조주의적인 태도를 보였던 이들과 동일한가? 비슷하게, 마오주의자들은 실험이나 창조적 발전을 거부하는 ‘순수한’ 맑스주의의 지지자들과 동일한가? 전자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진보적이지만, 후자는 시대에 뒤쳐졌다.

로버트 비엘(Robert Biel)이 정확히 언급했듯, 위험성은 언제나 반수정주의적 전투성에 내재하고 있다. 정통(orthodoxy)을 고수하고자 하는 모든 운동은 제국주의가 존재했던 모든 시기와 관련이 있다. 언제나 “보수적이고 새로운 생각들에 두려움을 느낄”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했다. 그러나 어떤 투쟁도 위험성 없이는 발생하지 않는다. 게다가 가장 최근의 반수정주의 운동들은 “자본주의 하에서 착취와 억압, 공황과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맑스와 레닌의 가르침을 버리는” 것에 대항하여 맑스-레닌주의의 정통을 수호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조주의에 빠져드는 것은 파열을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한계에 도달한 정통성을 보존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불가피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혁명과학이 발생하는 단계에서의 전투성이 수정주의 앞에서 혁명적 이데올로기를 방어하기 위한 전투성과 같은 것인지의 여부다.

아마 여기에 또 다른 연속성과 파열의 순간이 있을 것이다. 교조주의의 가능성은 보존되지만, 이는 새로운 기회주의에 대항해 오래된 것을 수호해왔던 과거의 반수정주의자들과 달리, 오래된 것의 정통성에 대항하여 새로운 것을 옹호해나가는 것이다. 이 차이는 후에 다시 다루어질 것이다. 이를 완전히 이해하고 연속성과 파열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a) 맑스-레닌주의의 한계와 두 형태의 반수정주의가 갖는 구체적인 차이점 b) 혁명과학의 파열로부터 얻어진 반수정주의 그 자체. 이 측면들을 이해하기 앞서 우리는 과거에 내재한 교조주의의 위협을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

자격(Qualifications)

우리는 ‘교조주의’의 혐의가 토론을 침묵하게 하고 수정주의를 촉진시키는데 사용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앞서 논한 바와 마찬가지로 교조주의는 역사적 국면의 필연성에 의해 강요될 수도 있다. 수정주의자들은 그들의 이론에 대한 어떠한 공격도 교조적이라고 비판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그리고 새로운 과학의 단계를 옹호하는 반수정주의 투사들은 파열보다는 연속성을 옹호하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교조주의는 실제적인 위험이 될 수도 있다. ‘정통성’을 옹호하는 입장을 강요받게 되면서 투사들은 교조주의의 혐의가 수정주의에 의해 부과된 숙명임을 발견하게 된다.

게다가 ‘교조주의’의 혐의는 ‘과학’에 대한 모든 형태의 담론을 종교적인 것으로 느끼는 이들에 의해 평준화된다. 신수정주의 운동이 표준화되어있고, 일관된 이론적 노선을 지닌 혁명정당들이 과거의 것으로 여겨지는 맥락에서, ‘교조주의’는 모호하고 아무거나 좋은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는 모든 것으로 정의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모든 원칙적 토론은 억눌려지며, 레닌이나 마오를 언급하는 것은 혐오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다시 교조주의의 이름과 개념 사이의 간극을 발견하게 된다. 이름은 개념적 명료성 없이 맑스주의 과학에 대한 충실성을 지니는 모든 것에 적용되지만, 이름 이상의 어떠한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이 이름을 사용함으로서 수정주의자들은 자신이 경멸하는 맑스주의에 대한 논의를 교조적으로 금지했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과학의 유추를 다시 동원해야 하며, 과학에 충실하고자 했던 이들이 현실을 재신비화하려했던 이들만큼 교조적이었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과거로의 회귀를 추구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곤경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발적으로 반동적 이데올로기를 수용하였다. 혁명과학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일부는 변화의 경계에 갇혀 전진하기를 거부했고, 일부는 혼란에 빠져 후퇴했다. 나머지는 혁명운동을 따라 이러한 경계를 넘어설 수 있었다. 멈추어섰거나 후퇴한 이들은 그들의 실패에 대한 이유를 만들어냈고, 그들이 새로운 대안적 운동을 만들어낸 행세를 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를 정당화하는 동시에 다른 주장을 하는 이들을 교조주의로 비난하였다. 빅뱅이론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과학자들의 예시를 들어보면, 일부는 이 이론을 종교적인 태도로만 해석할 수 있었기 때문에 빅뱅이론을 ‘종교적인 것’으로 여겼고, 다른 이들은 영적인 범주들로 후퇴했다. 이들은 자신의 후퇴를 과학적인 것으로 여겼고, 빅뱅이론을 전투적으로 옹호한 모든 이들을 교조주의로 비판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맑스-레닌-마오주의의 투사들은 그들의 이론이 본질적으로 이단적(heterodox)이라 할지어도, 형식적으로는 교조적일 수밖에 없다. 마오주의의 투사들은 일관된 이론적 노선에 근거한 조직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교조적’이고 ‘종파주의적’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온전한 의미의 평가

저자는 교조주의가 혁명과학의 새로운 단계가 발생하는데 있어 내재적임을 보여주었다. 중국의 세계사적 혁명을 통해 새로운 단계가 발생하였음은 분명하지만, 이 혁명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불충분하다. 우리는 파열이 존재하였으며. 1988년과 1994년에 표현될 수 있었음을 이해하고 있따.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철학적 발전을 요하는 이 새로운 이론적 지형에서 표류하고 있다.

1994년 RIM 선언과 같은 거친 스케치에도 불구하고, 이 지형은 여전히 탐색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이 이론적 파열을 탐색할 수 있게 해주는 일반적 범주들은 보편적인 것으로 표현되었지만, 보편성의 의미는 여전히 모호한 것으로 남아있다. 새로운 혁명운동들이 발생하고 있던 시기에 우리는 마오가 이끈 혁명의 세계사적 성격을 파악할 수 있었을 뿐이다. 아마도 우리의 맑스-레닌-마오주의에 대한 이해는 스탈린의 맑스-레닌주의의 이해와 비슷할 것이다. 스탈린의 맑스-레닌주의 이해가 가졌던 한계는 문화대혁명기에 이르러 레닌주의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가능해지면서 파악될 수 있었다.

따라서 맑스-레닌-마오주의는 발생하고 있지만 불완전하다. 이는 과거의 세계사적 혁명에 대한 추정을 통해 보편성의 일반적 법칙들을 파악하고 있지만, 문화대혁명이 스탈린의 레닌주의 이해가 갖는 모호함과 오해를 교정할 수 있었듯이 다른 세계사적 혁명을 요구하는 한, 발전과 자기인지를 필요로 한다. ‘스탈린주의’에 문이 닫혔듯이, ‘곤잘로 사상’이나 ‘프라찬다 노선’ 또는 다른 변종들에도 문이 닫혀야 한다. 세계사적 혁명 없이 이 사상들은 단지 교조적인 것에 몰두할 뿐이다.

따라서 새로운 지형의 의미와 그것이 요구하는 것에 대한 철학의 발전이 요구된다. 우리가 단순히 마오주의를 종교적으로 주장하는데 만족한다면, 그 발전의 중요성을 파악하는데 실패할 것이다. 더욱 나쁜 것은 이 지형이 세계사적 혁명 없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상상한다면, 우리는 혁명운동의 생산 없이 이 과학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주장하는 RCP-USA나 다른 ‘포스트마오주의’ 조직들의 회원이 되는데 그치게 될 것이다.

핵심은 진정한 교조주의가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다. 1) 운동이 미래를 향한 문을 닫고 전투적 선동에만 갇혀있을 때, 그리고 새로운 이론적 지형의 문제들이 대답되었다고 믿을 때. 2) 운동이 최근에 열린 지형의 질문들이 새로운 지형을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고 상상하면서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향할 때. 전자는 일반적 개념들을 협소하게 적용하는 종교적 선언으로 만족하면서 스스로를 구석에 가둔다. 후자는 스스로를 혁명적 사유의 새로운 길로 정당화하기 위해 미신에 불과한 이론에서 종교적인 정당화를 시도한다.

달리 말해, 교조주의는 과학의 본성 때문에, 그리고 전투적 충실성이 요구되는 순간들 때문에 언제나 위험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저자는 트로츠키주의와 달리, 이 사유의 영역을 발전시킴으로서 위험이 중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유의 장을 탐색하는데 있어, 철학적 개입이 요구된다. 이데올로기적인 노선투쟁에 내재적인 교조주의에 맞서 싸워야 하며, 이는 맥락 속에서 놓여져야 한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이 헤게모니를 얻었을 때, 비로소 그 이론의 의미가 제대로 평가되었다. 맑스-레닌-마오주의에 대해서도 온전한 의미의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형식에서의 혁명과 실천에서의 수정주의의 격차

1994년 RIM의 선언 『맑스-레닌-마오주의 만세』는 맑스-레닌주의의 발생 이후 ‘순수한’ 맑스주의에 매달리는 것은 수정주의를 만들어내는 것이라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맑스-레닌-마오주의가 발생한 이후 ‘순수한’ 맑스주의나 ‘순수한’ 맑스-레닌주의에 매달리는 것 역시 수정주의를 만들어낸다. 일견 이러한 주장은 교조적으로 들린다. 교조주의가 맑스주의에 실제적인 방해가 된다는 점에서, “맑스-레닌-마오주의를 신봉하지 않으면 수정주의자이고 가짜 맑스주의자”라는 주장은 교조주의를 내포할 수 있다.

저자는 이미 주어진 과학의 지형이 발전하는데 있어 교조적인 태도와 실천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는 것을 보여준 바 있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RIM의 주장을 독해하는데 있어 교조주의적이기보다는 과학적인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저자는 맑스-레닌-마오주의 운동 전체가 일관되게 이 과학적 함의를 밝혀내고 있지 않으며, 때때로 교조적인 태도로 전락함을 인정한다.

물리학의 예를 들어보았을 때,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과 특수상대성이론이 지형을 바꾸어놓은 이후에도 순수하게 뉴턴의 이해방식에 매달리는 것을 올바른 물리학자의 자세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지점에서 뉴턴의 세계관을 전투적으로 옹호하는 이들을 과학의 발전을 저해하는 반과학적 태도를 견지하는 ‘수정주의자들’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RIM의 선언은 교조적이라기보다는 과학적인 것이다. 이것은 마오주의의 인식론적 단절을 부정하는 이들을 유사맑스주의자, 수정주의자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원칙적으로 수정주의를 거부하며 계급혁명을 꿈꾸는 정직한 맑스주의자들일 수 있다. 핵심은 이들의 실천이 아니다. 이들은 이론적으로 막다른 길을 향해 있으며, 이미 극복된 이론의 역사적 순간에 머물러 있기에 그들의 통찰은 제한되어 있다. 이들은 아인슈타인의 파열을 이해하지 못한 뉴턴주의 과학자가 수정주의자인 것과 같은 의미에서 수정주의자다.

우리는 RIM의 통찰의 온전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맑스주의가 마오주의에 의해 열린 지형에서만 진정으로 살아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철학적 개입 뿐만 아니라 이 영역의 발전을 요구한다. 우리는 여전히 새로운 지형의 문턱에 서있다. 우리가 이 파열의 완전한 의미를 조사했을 때 비로소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무엇이 연속되고 무엇이 연속되지 않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연속성과 파열이 언제나 변증법적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맑스에서 레닌으로 이어지는 과거의 연속성의 패턴을 통해서 파열을 파악하는 것으로는 이 변증법적 관계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아인슈타인 이론의 초기 지지자들 역시 코페르니쿠스부터 뉴턴까지의 연속성을 통해 이 파열을 평가했고, 여전히 일반상대성이론과 특수상대성이론이 가지고 있는 이 역사와의 연속성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러한 점에서 RIM의 과학적 통찰은 쉽게 교조적인 것으로 전환될 수 있다. 왜곡된 방식으로, 마오주의 고수를 명시적으로 선언하지 않는 이들을 반공주의자로 간주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다. 심지어 PCP의 잔재는 ‘곤잘로 사상’에 대해 완전한 충성을 선언하지 않는 모든 운동과 인민전쟁을 수정주의로 폄훼한다. 이러한 교조주의적 언행은 이론적 지형이 실제의 혁명을 통해서만 발전할 수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그러나 맑스-레닌-마오주의의 출현 이후 어ᄄᅠᆫ 혁명도 문화대혁명보다 더 멀리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지형의 문턱에서 이념적으로 투쟁하는 것에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이 문턱에서도 철학적 개입은 유용할 것이다.

철학은 적어도 전투적인 교조주의에 의문을 제기하고, 마오주의적 파열로 열린 지형을 탐색해나갈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모험은 실제로 새로운 이론적 발전을 만들어낼 것인데, 왜냐하면 이는 현재 맑스주의 과학의 살아있는 선택지로 열려있는 유일한 지형이기 때문이다. 한편 다른 쪽은 이론상으로 수정주의에 반대하지만 실천적으로는 수정주의에 해당한다. 마오주의의 파열에 연결된 철학은 이론상의 혁명과 실제에서의 수정주의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뒤를 되돌아보기

앞서 논한 바와 같이, 마오주의적 파열에 연관된 이들은 때때로 앞이 아니라 뒤를 바라본다. 과거의 패턴들은 여전히 새로운 지형에 방해물로 작용한다. 마오주의자들이 트로츠키주의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그러한 예시다. 마오주의자들은 트로츠키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과거의 논쟁들과 모욕들을 동원해 맑스-레닌주의의 파괴자이자 배신자로 낙인찍는다.

그러나 트로츠키주의가 역사의 뒤안길로 남겨져야 하는 것으로 온전히 이해되려면, ‘파괴적인’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막다른 골목길로 취급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거로 되돌아가 트로츠키주의자들을 ‘반혁명적’이라고 일축하는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다른 과학과 마찬가지로, 과학의 구체적인 영역의 경계를 따라 스스로 증명된 패러다임을 통해서만 전진할 수 있으며, 다른 모든 접근법들은 수정주의자들의 막다른 골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발전하는 과학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의도적으로 수정주의자인 것은 아닌 조직과 개인이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 어떤 면에서 이들은 우리의 동맹일 수도 있다.

트로츠키주의는 차치하고라도, 우리는 과거의 행동패턴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교조주의의 문제를 여전히 지니고 있다. 저자는 모든 이들이 과학적 발전을 파악하고, 한계와 좌절을 넘어서기를 바란다.

우리는 이러한 중요한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마오주의의 새로운 단계는 조사하고 발전할 가치가 있는가? 아니면 단지 과거의 반수정주의적 공산주의에 맑스-레닌-마오주의라는 옷을 입혀야 하는가? 새로운 혁명과학의 단계로 나타나기 위해서 마오주의는 맑스-레닌주의와의 연속성일 뿐만 아니라 파열이어야 한다. 이 파열을 파악하기 위해 우리는 맑스-레닌주의를 수호하던 과거의 방식을 포기하고, 마오주의의 연속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아가 이 파열의 의미를 파악해나가야 한다.

필연성으로서의 파열

마오주의 파열의 의미를 탐색하기 위해서 우리는 마오주의 발생 이면의 근거들을 파악해야 한다. 어떠한 과학에서도 이론적 파열은 진공 속에서 생겨나지 않는다. 파열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근거들을 갖는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천재적인 과학자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생각해 낸 것이 아니다. 파열은 뉴턴 물리학이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과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새로운 단계는 과학이 한계를 넘어 미래를 향해있을 때 이론화된다. 마오주의 파열은 맑스-레닌주의가 한계에 다다르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이론적 파열은 엮사적 필연성에 의해 강제된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세계자본주의가 ‘역사의 종언’을 선포했다. 동구권이 붕괴되며, 중국이 자본주의의 길을 선택하였고, 반수정주의 공산주의 운동이 와해되는 것은 맑스-레닌주의의 한계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맑스-레닌주의의 한계는 동시에 과학을 포기하고 반자본주의 운동의 초기로 되돌아가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일 유혹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맑스-레닌주의의 한계에 대한 가장 유혹적이면서도 쉬운 대답은 그것을 거부하고 네오아나키즘, 드레이퍼주의, 포스트모던적 실천으로의 파열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모호한 운동주의야말로 가장 단순하고 게으른 해결책이었다. 이것들은 새로운 이론도 아니었고, 과거의 계급투쟁이 만들어낸 이념들의 재판일 뿐이다. 이론의 위기에서 과학자들은 종종 과거의 이론으로 회귀해 마치 새롭고 비판적인 이론을 발견한 것처럼 군다. 알튀세르는 다음과 같이 썼다.

“‘위기’는 그들[과학자들]을 놀라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 놓이게 하거나, 심지어는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심한 편견을 가지게 해 신념을 강하게 흔들어 놓는다. 주변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공황에 빠진 그들은 단순히 주어진 과학적 개념과 이론에 의문을 던져 그것을 바로잡거나 재구성하지 않고, 실천 자체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과학의 가치’에 대해.”

하지만 모든 과학은 언제나 위기에 도달하는데, 이는 이론적 지형이 한계에 도달하고 파열을 요구하는 과정일 뿐이다. ‘과학적’이고 따라서 ‘미래를 향해 열려있는’ 모든 과학은 필연적으로 위기를 마주한다. 어떠한 이론도 절대적이지 않으며, 각 과학적 단계는 역사가 제시한 문제들에 해답을 던질 수 있을 뿐이다. 비판적인 과학자의 임무는 주어진 이론적 지형의 한계 앞에서 진리과정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적 파열의 파악을 통해 그들의 실천의 유효성과 과학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마오주의는 맑스-레닌주의가 도달한 교착상태에 살아있는 혁명과학의 거부가 아니라, 파열의 이론화를 통해 해결책을 던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마오주의 파열을 필연화하는 맑스-레닌주의의 한계를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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