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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루 마줌다르 선집-수정주의와 싸움으로써 농민 투쟁을 이끌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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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루 마줌다르 선집-수정주의와 싸움으로써 농민 투쟁을 이끌어가자

수정주의와 싸움으로써 농민 투쟁을 이끌어가자

1966년

선거 이후에 당(CPI-M) 지도부의 직접적인 행동으로 우리의 우려했던 바가 타당했다고 판명되었다. 정치국은 우리에게 “비국민회의 출신의 장관을 반동으로부터 보위하는 투쟁을 수행할 것”을 지시했다. 이는 맑스주의자들의 핵심 과제가 계급 투쟁을 심화시키는 것이 아닌, 내각을 변호하는 것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당원대회는 노동자 계급 내부에 경제주의를 확고히 구축하려는 목적에서 소집된 것이다. 그 후 곧바로, 산업 내부의 휴전 협정이 내각 발의에서 체결되었다. 노동자들은 게라오를 구사하지 말도록 요구받았다. 이보다 더 적나라한 계급 협조적 표현이 어딨겠는가? 고용주에게 착취를 위한 전권이 주어진 뒤, 노동자들은 어떤 투쟁도 벌이지 말 것을 요구받았다. 강력한 대중 운동의 결과로 출범한 정부에 공산당이 합류한 직후, 계급 협조적 노선이 채택되었다. 오래전부터 중국의 지도자들은 국제적 논쟁에서 중립으로 남은 자들이 곧장 기회주의 노선을 택할 것이라 내다봤다. 이제 중국의 지도자들은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이들이 실은 수정주의자들이며 그들이 곧 반동 진영으로 넘어갈 것이라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우리는 이 예측이 얼마나 정확한지 경험하고 있다. 우리는 노동 계급의 배신자들을 목도하고 있다. 여기에 공산당 지도자, 하레크리슈나 코나르의 성명을 추가할 수 있다. 처음에 그는 모든 귀속토지(vested land)가 소작인에게 분배될 것이라 약속했다. 그러더니 분배되는 토지의 몫이 대폭 축소되었다. 결국 올해, 그는 현존하는 합의가 흔들릴 일은 없을 것이라 공지했다. 토지 수익의 감면은 하급 토지개혁 관리(Junior land reforms officers/JLROs)의 처분에 맡겨졌다. 농민들은 청원서 제출 절차를 안내받았다. 강제 토지 점거가 허락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달받은 것은 덤이었다. 하레크리슈나 바부는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구성원일 뿐만 아니라 서벵골 내 크리샤크 사바의 총무이기도 하다. 1959년 농민들이 귀속토지 혹은 베나미(benami) 토지를 되찾는 투쟁을 벌였던 것은 그가 이끄는 크리샤크 사바의 요청에 응한 것이었다. 지주를 위해 정부는 탄압을 택했으며 퇴거를 위한 판결을 내리고 있다. 그렇지만 농민들은 많은 경우에 토지 소유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마을의 단합된 힘으로 그 토지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장관이 된 후에 크리샤크 사바의 지도자는 그들의 운동을 지지했을까? 아니다. 그가 말했던 바의 의미는 귀속토지가 재분배된다는 것이었다. 누가 분배한다는 것인가? 이 점에 있어 하급 토지개혁 관리(JLROs)는 크리샤크 사바의 견해를 좇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견해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하레크리슈나 바부는 그에 대한 어떤 보증도 약속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일 하급 토지개혁 관리가 크리샤크 사바의 견해를 거절한다면, 농민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강제적인 토지 점유를 허가받을 수 없을 것이다. 하레크리슈나 바부는 이 점에 대한 자기의 입장을 밝히는 데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정부와 조타다르(jotedar)의 수금원처럼 행동하는 꼴 아닌가? 국회의원조차도 차마 그렇게 염치없이 봉건 계급을 변호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 지도자의 이러한 지시를 따르는 것은 맹목적으로 봉건 계급의 착취와 지배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따라서 공산주의자의 책무는 이 지도부의 반계급적 그리고 반동적인 역할을 당원과 사람들에게 폭로하고, 계급 투쟁을 심화시키는 원칙을 고수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소작인과 빈농이 하레크리슈나 바부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청원서를 제출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몇몇 귀속토지는 의심의 여지 없이 노는 땅이지만 그중 대부분은 경작이 가능한 땅이다. 그러한 땅을 점유한 농민들이 있다. 오늘날 그들은 허가증 덕택에 토지를 향유하고 있다. 혹은, 조타다르의 한몫을 챙겨주는 중이다. 그 땅이 재분배될 때, 빈농 및 소작인 사이에 마찰이 생길 것은 불가피하다. 이를 기회로 부농은 농민 운동 전체에 그들의 지도권을 확립할 것이므로, 부농이 유세를 위한 기회를 잡았듯이 또한 그들은 봉건적 영향력의 협력자이다. 그러므로 하레크리슈나 바부는 오늘날 투쟁의 길을 저버리려는 것만이 아니라, 훗날의 농민 투쟁이 전투적이지 않도록 조치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인민민주주의 혁명의 계획을 도입했으며 그러한 혁명의 과제는 농민을 위해 토지개혁을 시행하는 것이다. 농민의 이익을 위한 토지개혁은 봉건 계급의 지방에 대한 입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봉건 계급으로부터 토지를 장악하고 그것을 소작인과 빈농에게 분배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운동이 경제주의의 한계에만 국한된다면 우리는 절대 이를 실행할 수 없을 것이다. 귀속토지에 대한 운동이 있었던 모든 지역에서, 귀속토지의 점유권을 획득하고 허가증을 확보한 농민들은 농민 운동에 더는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이 우리의 경험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빈농 계급이 일 년 이내에 변동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중농(中農)이 된다. 따라서 빈농과 소작인의 경제적 요구는 더이상 그의 요구가 아니다. 그러므로 경제주의는 투쟁하는 농민의 단결 내부에 단절을 만들어내며 소작인과 빈농들을 좌절시킨다. 경제주의의 옹호자들은 농민들이 얻을 수 있는 논이 몇 먼(maund)인지 혹은 몇 비가(bighas)의 땅인지, 그 면적으로 모든 운동을 판단한다. 농민들의 투쟁 의식이 증대되었는지 아닌지는 결코 그들의 척도가 아니다. 따라서 그들은 농민들의 계급의식을 함양하는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희생 없이 그 어떤 투쟁도 벌어질 수 없다는 점을 안다. 마오쩌둥 주석은 투쟁이 있는 곳에 희생이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쳤다. 투쟁의 초기 단계에는 틀림없이 대중의 힘보다 반동의 힘이 더 강하다. 그러므로 장기간의 투쟁이 될 것이다. 대중은 진보적인 세력이므로 그들의 힘은 날로 강해질 것이며, 반동 세력은 빈사 상태이기에 그들의 힘은 꾸준히 감소할 것이다. 따라서 대중이 희생을 각오하지 않는 한 어떠한 혁명적 투쟁도 성공할 수 없다. 이 기본적인 혁명관으로부터 경제주의는 부르주아적 전망의 막다른 길로 현혹한다. 이것이 바로 당 지도자들이 그들의 활동으로 달성하려는 바다. 과거 우리의 모든 농민 투쟁을 돌아보면 당 지도자들이 상부에서 농민 간 타협을 강요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농민 운동에 있어 노동자 계급의 투지만만한 지도부를 이룩하는 것은 당 지도부의 책임이다. 그들은 전에도 이걸 하지 않았고 지금도 안 하는 중이다. 이제 그들은 법과 관료제에 의존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레닌이 말하기를, 설령 몇몇 진취적인 법률이 제정되더라도 관료 체제가 그것의 집행을 담당하게 되면 농민들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우리의 지도자는 혁명적 진로로부터 멀리 벗어났다. 농촌 혁명은 지금, 이 순간에 당면한 과제이다. 이 과제는 미완인 상태로 있을 수 없으며 이를 하지 않고서는 농민을 위한 어떤 도움도 이뤄질 수 없다. 그러나 농촌 혁명을 수행하기 전에, 주 권력의 파괴는 필수적이다. 주 권력의 파괴 없이 농촌 혁명에 매진하는 일은 노골적인 수정주의를 뜻한다. 따라서 주 권력의 파괴는 오늘날 농민 운동 제일의 주된 과제이다. 이 과제가 전국 단위, 주 단위로 벌어지지 않으면 농민들은 조용히 기다려야 하는 걸까? 아니다. 맑스-레닌-마오쩌둥 사상은 우리에게, 어느 지역에서건 농민들이 정치적으로 격앙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지역에서 주 권력을 파괴하는 과제를 추진해야만 한다고 가르쳤다. 이것이 바로 농민의 해방구로 알려진 곳이다. 이 해방구를 건설하는 투쟁이 오늘날 농민 운동의 가장 시급한 과제이며 당면 과제이다. 우리는 무엇을 해방구라 불러야 할까? 우리가 계급의 적들을 그곳에서 타도할 수 있는 해방된 농민 지구를 그렇게 불러야겠다. 이 해방구를 건설하기 위해서 우리는 농민의 군대가 필요하다. 우리가 군대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농민이 마련하는 무기를 신경 쓴다. 고로 우리도 무기를 원한다. 농민들이 까끄라기를 모으러 나서는지 아닌지는, 그들이 정치적으로 격앙되었는지 아닌지 우리가 판단할 때의 기준이다. 농민들은 어디서 총을 얻어야 할까? 계급의 적들은 총을 가지고 있고 그들은 마을에 산다. 그들로부터 총을 탈취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무기를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고로 우리는 그들로부터 총을 노획해야겠다. 이를 위해서는 농민 민병대가 모든 전술을 익혀야 하며 이는 계급의 적들이 사는 집에 불을 지르는 것부터 시작된다. 게다가 우리는 불시에 정부군을 공격함으로써 그들로부터 무기를 확보해야 하겠다. 우리가 이러한 총기 수집 활동을 준비할 수 있는 지역은 빠르게 해방구로 변모할 것이다. 따라서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무장 투쟁을 확립하는 정치론을 농민 대상으로 널리 선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더욱이 총기 수집 활동을 수행하는 소규모 비밀 부대를 조직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무장 투쟁의 정치론을 선전하는 것과 동시에 이 부대의 구성원들은 총기 수집이라는 특수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행하려 할 것이다. 고작 총기 수집만으로는 투쟁의 성격이 바뀌지 않는다―그렇게 수집된 총기는 사용될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농민들의 창의력은 성장할 것이며 투쟁은 질적인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이는 빈농과 소작인, 노동 계급의 확고한 동맹에 의해서만 수행될 수 있다. 중농(中農)도 협력자이지만 그들의 투쟁의식은 빈농과 소작인만큼 강렬하지 못하다. 따라서 그들은 맨 처음부터 투쟁의 참여자가 될 수 없고, 그들에게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이는 계급 분석이 공산당의 필수적 과제인 이유이다. 중국의 위대한 지도자, 마오쩌둥 주석은 그러므로 이 과제에 첫 번째로 착수했으며 혁명적 투쟁의 진로를 오류 없이 짚을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 조직적 업무의 첫 번째 요점은 농민 운동 속에서 빈농과 소작인의 지도부를 설립하는 것이다. 빈농과 소작인의 지도부가 설립된다는 것은 무장 투쟁의 정치론을 토대로 농민 운동을 조직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이는 농민 계급 때문인데, 그들이 가장 혁명적이기 때문이다. 농업노동자의 독립된 조직은 이 과제에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오히려 농업노동자의 독립된 조직은 경제주의에 기반한 노동조합 운동을 목표로 하는 경향을 조장하고 농민 사이의 갈등을 격화시킨다. 동맹 계급의 단결은 강화되지 못했다. 우리의 농업 체계에서는 봉건 계급의 수탈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맥락에서 질문 하나가 떠오르는데 소자산가와의 타협에 관한 질문이 그것이다. 이 점에 있어 무엇이 공산주의자의 관점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타협과 관련해서 우리가 지지하는 사람을 고려하면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에 반하는 다른 어떤 계급도 지지할 수 없다. 농민 운동(인도)에서 공산주의자는 항상 프티부르주아의 이해(利害)에 따라 빈농과 소작인의 이익을 포기하도록 강요받았다. 이는 빈농과 소작인의 투쟁 의지를 약화시킨다. 중농과 부농에 대해서도 우리는 다른 입장을 취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부농을 중농으로 여긴다면 빈농과 소작인은 좌절할 것이다. 또는 우리가 중농을 부농으로 여긴다면 중농의 싸우고자 하는 열의가 약해질 것이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는 마오쩌둥 주석의 지시에 따라 모든 지역에서 농민의 계급을 분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인도 농민의 불만은 폭발했다. 그들은 여러 차례 공산당으로부터 지도를 구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무장 투쟁과 총기 수집 활동의 정치론이 유일한 길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 길은 노동 계급의 진로이며, 해방의 길이고, 착취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를 수립하는 길이다. 인도의 모든 주에서 농민들은 오늘날 불만을 가진 상태이고, 공산주의자는 그들에게 진로를 제시해야만 한다. 그 진로란 무장 투쟁과 총기 수집 활동의 정치론이다. 우리는 해방의 유일무이한 진로를 확고히 지지해야 한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모든 종류의 이기심, 집단 심리, 수정주의, 부르주아지의 추수주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찬사에 전쟁을 선포했으며, 혁명의 불타는 영향은 인도에도 전해졌다. 그 혁명의 외침은 다음과 같았다. “모든 종류의 희생을 결연히 각오하고, 진로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차례차례 없애자.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아무리 제국주의가 지독한 모습이어도, 아무리 수정주의가 놓은 덫이 역겹더라도 반동 세력의 천하는 저물 것이고, 맑스-레닌-마오쩌둥 사상의 광명은 모든 어둠을 밝힐 것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된다: 부분적인 요구에 대한 농민의 대중 투쟁 욕구는 이 시대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가? 분명히 그러한 갈망은 존재하며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다. 인도는 방대한 땅이며 또한 농민들은 많은 계급으로 분리되어 있고, 따라서 정치적 의식도 모든 지역과 계급을 통틀어 동일한 수준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분적인 요구를 토대로 한 농민 대중 운동의 실현 가능성과 여지는 항상 존재할 것이며, 공산주의자는 항상 그 기회를 십분 활용해야 할 것이다. 부분적 요구를 위한 운동을 수행하는 데 있어 우리는 어떤 전술을 도입해야 할까? 또 그러한 전술의 목표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우리 전술의 요점은 폭넓은 농민 계급이 격분했는지 아닌지이며, 우리의 기본적 목표는 농민의 계급의식을 기르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들이 폭넓은 기반의 무장 투쟁 진로를 따라 전진했던 아니든 간에 말이다. 부분적 요구에 기반한 운동은 계급 투쟁을 증폭시켜야 한다. 광범위한 대중의 정치적 의식은 성장해야 한다. 광범위한 농민 대중은 열성적으로 헌신해야 하며, 투쟁은 새로운 지역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부분적 요구를 위한 운동은 어떤 형식이라도 취하겠지만, 공산주의자는 항상 농민 대중에게 더 진전된 투쟁의 형식이 필요함을 선전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공산주의자들은 투쟁의 방식이 농민들에게 최선의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실 공산주의자들은 농민을 대상으로 혁명적 정치론, 즉 무장 투쟁과 총기 수집 활동의 정치론을 지지하는 선전을 항상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선전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은 아마 민중 대표를 선출하고자 마음먹을 것이며 우리는 그러한 운동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백색 테러의 시기에 그러한 민중 대표의 실효성은 절대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민중 대표들은 농민들을 투쟁으로 점점 끌어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부분적 요구에 대한 운동이 절대 규탄되어서는 안 되지만, 이러한 운동이 경제주의의 방식으로 수행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더군다나 경제적 요구에 대한 운동이 자동적으로 정치적 투쟁의 형식을 갖추게 될 것이라 강변하는 것도 잘못이다. 그것은 자발성에 대한 숭배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운동은 대중들에게 나아갈 길을 보여주고, 전망의 명확성을 발전시키도록 도우며 헌신하도록 북돋워 준다. 투쟁의 모든 단계마다 단일한 과제가 주어진다. 그 과제가 수행되지 않는 한, 투쟁은 더 높은 단계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시대의 특별한 과제는 바로 무장 투쟁과 총기 수집 활동의 정치론이다. 이 과제를 수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건, 투쟁은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지 못할 것이다. 투쟁은 무너지고, 조직은 와해되며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도 혁명의 유일한 길이 있는데, 그것은 레닌이 보여줬던 길―인민의 군대와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1905년 레닌은 이 두 과제가 러시아 전역에 있어 실현 가능하지 않았음에도, 이것이 가능하면 어느 곳에서나 수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마오쩌둥 주석은 레닌이 제시한 이 진로를 살찌웠다. 그는 인민전쟁의 전술을 가르쳤고 중국은 이 진로를 따라 해방을 이뤘다. 오늘날 그 길을 베트남, 태국, 말라야, 필리핀, 버마, 인도네시아, 예멘, 레오폴드빌, 콩고, 그 외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따르고 있다. 그 길을 인도 역시 택하고 있으며, 나갈랜드, 미조람, 카슈미르 지역이 따르는 해방 전선의 통치와 인민의 군대를 건설하는 길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노동 계급이 인도의 민주주의 혁명을 이끌어야 한다고 요구받고 선언될 것이며 노동 계급은 가장 확고한 맹우인 농민의 투쟁에 지도부를 제공함으로써 이 과제를 수행할 것이다. 따라서 농민 운동을 조직하고 그것을 무장 투쟁의 단계로 끌어올리는 것은 노동 계급의 책무이다. 노동 계급의 전위는 무장 투쟁에 참여하기 위해 마을로 가야 할 것이다. 이는 “지방에서 무기를 수집하고 무장 투쟁의 기지를 세우는” 노동 계급의 핵심 과제이며, 이는 노동 계급의 정치론이자 권력 탈취의 정치론으로 불린다. 우리는 이 정치론을 기반으로 노동 계급을 고무시켜야 한다. “모든 노동자를 노동조합으로 조직하자”라는 구호는 노동 계급의 정치 의식을 고양시키지 못한다. 이는 물론 우리가 더 이상 어떤 노동조합도 조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우리가 당의 혁명적인 노동자들을 전부 노동조합 활동의 수렁으로 빠트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뜻하며, 노동 계급을 대상으로 정치 선전을 수행하는 것이 그들의 과제가 되어야겠다. 다시 말해, 무장 투쟁과 총기 수집 활동, 그리고 당 조직 건설의 정치론을 선전하는 것 말이다. 프티부르주아지를 대상으로도 우리의 핵심 과제는 정치 선전과 농민 투쟁이 갖는 의미를 선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전선에서 당의 책무는 농민 투쟁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그 투쟁에 참여할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과제를 수행하는 정도만큼, 우리는 민주주의 혁명에서 깨어있는 지도부의 단계에 도달할 것이다. 당의 이 기본적인 맑스-레닌주의 노선을 반대하는 것은 단지 수정주의자로부터 비롯되는 것만이 아니다. 수정주의자들은 곧장 계급 협조적 노선을 따르는데, 따라서 혁명이 있는 것이다; 부르주아 정당이 권력을 장악했으나 노동자, 농민 그리고 병사 소비에트의 수중에도 권력이 있다. 이 이중 권력의 존재 때문에, 노동 계급의 지도부는 실권을 잡았으며 이들 소비에트에서 프티부르주아 정당이 권력을 부르주아지에게 넘겨주었을 때 노동 계급이 10월 혁명을 성취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인도의 객관적인 상황을 분석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도에서 벌어지는 투쟁으로부터 교훈을 얻지 않는다. 러시아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 원인은 연합 전선이라는 전술의 올바른 적용이었다. 연합 전선의 전술이라는 문제는 인도에서도 똑같이 중요하다. 그러나 인도 민주주의 혁명의 전술은 형식상 달라질 것이다. 인도에서도, 나갈랜드, 미조람, 카슈미르 그리고 여타 지역에서 투쟁은 프티부르주아 지도부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다. 민주주의 혁명에서, 그러므로 노동 계급은 그들과 연합 전선을 형성함으로써 전진해야 할 것이다. 여타 새로운 지역 곳곳에서 투쟁은 부르주아 혹은 프티부르주아 당의 지도하에 벌어질 것이다. 노동 계급도 그들 연합에 합류할 것이며 이 연합의 핵심 기준은 반제국주의 투쟁과 민족 자결권이 될 것이다. 노동 계급은 불가피하게도 분리 독립의 권리와 함께 이 권리를 인정한다.

인도에서 10월 혁명의 노선을 따라 혁명을 꿈꾸는 자들이 비록 혁명적일지라도, 그들의 교조적인 관점 때문에 그들은 선명한 지도부를 꾸릴 수 없다. 그들은 농민 투쟁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며, 따라서 노동 계급 내에서 무의식적으로 경제주의의 선전원이 된다. 그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의 경험을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 그들 중 일부는 체 게바라의 추종자가 되며 농민, 즉 인도 민주주의 혁명의 핵심 세력을 조직하는 과제를 강조하는 데 실패한다. 그 결과, 그들은 불가피하게도 좌익 일탈(Left deviation)의 피해자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점진적으로 그들이 스스로 깨우치는 것을 도와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그들을 편협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 또한 우리 사이에는 중국 공산당과 위대한 마오쩌둥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또 그것이 유일한 길이라 받아들이는 일군의 혁명적 동지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공산당원의 수양을 논함>이라는 책을 자기 수양의 유일한 길이라 보며 결과적으로 심각한 탈선에 빠져들었다. 레닌과 마오쩌둥 주석이 가르친 자기 수양의 유일한 맑스주의적 진로는 계급 투쟁의 진로이다. 오직 계급 투쟁의 불길 속에서 담금질을 거친 공산주의자만이 순금이 될 수 있다. 계급 투쟁은 공산주의자의 진정한 학교이며 계급 투쟁의 경험은 맑스-레닌-마오쩌둥 사상의 광명 속에서 입증되어야 하고 이를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한다. 따라서 당 교육의 요점은 맑스-레닌주의의 가르침을 계급 투쟁에 적용하는 것이며, 그 경험을 토대로 하는 일반적 원칙에 도달하고, 경험으로 파악된 원칙들을 사람들에게 도로 가져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에서 사람으로’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는 당 교육의 기본 요점이다. 이 혁명적인 동지들은 당 교육의 이러한 근본적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당 교육에 있어 공상적인 탈선을 저지른다. 마오쩌둥 주석은 어떤 교육도 실천과 유리될 수 없다고 우리에게 가르쳤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실천이 배움이다.’ 자기 수양은 현 상황을 혁명적 실천을 통해 변화시키는 과정에서만 가능하다. 전 세계의 혁명가들이여, 단결하라!

노동자-농민의 혁명적 단결이여 영원하라!

마오쩌둥 주석 만세!

  1. 인도에서 구매자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대리인의 이름으로 거래된 재산 따위를 가리킨다.
  2. 힌디어로 ‘경작지를 소유한 지주’를 뜻한다.
  3. 역) 아마도 총기의 수집 과정을 농민들이 작물을 수확하는 과정에 비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4. 1939년 류사오치가 발표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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