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공화당 의원들이 쿠팡 개인정보 유출에 관한 남한 정부의 수사가 미국 기업에 대한 압박이라며 남한 정부에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쿠팡이 대한민국 국민들의 개인정보를 허술하게 관리하고 이 사실을 은폐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엄정하게 수사하고 처벌해야 할 관리부실 책임을 “미국기업에 대한 탄압”이라며 일방적인 프레임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이 의원들은 모두 쿠팡 본사의 적극적인 로비 대상들이었고, 심지어 쿠팡은 백악관에도 로비를 하며 본인들의 책임을 회피하려 들고 있다. 엄연한 미국의 한국 내정에 대한 개입임에도 불구하고 파쇼정당 국민의힘의 의원들은 물론 위성락 등 청와대 내부에서까지 미국의 입장을 헤아려야 한다는 굴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아함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한국 내정개입은 단지 트럼프와 그 수하들이 벌이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 해방 이후 남한에 항상 이어져온 영향력 행사라는 것은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번 글에서는 미국이 한국 정치에 어떻게 개입하는지, 우리나라의 엘리트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미국에게 정치적으로 종속되었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1. 미국의 한국 정치개입 역사
현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정치개입의 대표적인 초기 사례 중 하나는 김구 암살이다. 김구 암살범 안두희는 미 정보기관 CIC(오늘날 CIA)가 창설한 백색테러조직 백의사의 단원이었다. 1946년 조지 릴리 소령이 작성한 문서에 따르면 당시 김구은 CIC의 주요 제거 대상이었다. 이 외에도 많은 기록에서 당시 남북협상 등 분리된 남한 정권의 창설을 막고자 했던 김구 선생을 미국이 제거하고자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미국의 제거대상인 정치인이 미국의 사주를 받고 있는 조직의 조직원에게 암살된 것이다. 이후 다른 정치적 견제대상이 없어진 이승만은 본인의 권위를 본격적으로 확립한다.
또한 5.16, 12.12 등의 군사쿠데타에서도 미국의 영향력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은 전적으로 미국에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군의 움직임을 파악 못할 수 가 없었고 오히려 이들을 돕거나 방조하지 않았다면 이들이 쿠데타를 성공할 수 없는 구조였다. 실제로 5.16 쿠데타 당시에 UN사령부(한국에 주둔하는 UN사령부는 UN의 이름만 빌린 미군조직이다.)는 1월부터 박정희의 계획을 파악했지만 이를 방조했고, 당시 CIA국장 덜레스는 64년 영국 BBC 방송에 출연하여 5.16쿠데타를 자신이 한 가장 큰 성공이라고 언급했다. 또 12.12 쿠데타 당시에도 미 국무장관이 특정 정치세력과 집권을 논의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주한미군 사령관을 전두환 노태우 등 육사 11기와 친분이 깊던 존 위컴으로 교체하고 신군부를 지원했다.
이후에도 5.18 민주화운동에 대응하며 한국의 공수부대가 치안 병력으로 사용되는 것을 승인해주며 사실상 학살에 협조했다. 그리고 6. 29 선언때도 민주화운동이 고조될때도 버티던 전두환을 미국 대사가 압박하여 사퇴 및 직선제 개헌을 전두환이 스스로 내놓게 했다. 군사정권의 성립부터 해체까지 모두 미국의 의중을 거스르지 못한 것이다.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정치에 대한 미국의 개입은 지속되었다. 김영삼-김대중 당시 미국과 제국주의 자본의 지배를 받는 IMF의 대출을 받으면서 금융시장 개방, 대규모 해고 및 비정규직 양산 등 제국주의 자본에 이윤을 넘기고 남한의 노동자들을 불안한 노동에 강제로 집어넣었다.
이명박 집권 당시에도 버시바우 당시 미 대사를 중심으로 한 주한 미 대사관에서 적극적으로 국정에 개입했다. 당시 미 정부는 미대사관이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정부간 정책조정위원회를 가동하여 한국에 FTA 비준, 쇠고기 시장 개방, 이라크 파병연장 등을 한국 정부에 관철시키기로 결정했다. 이후 버시바우는 한국의 외교인사들을 만나 이것들을 관철할 구체적인 일정과 계획을 내놓으라고 강요했고, 이후 한국정부에서 이 의제들은 모두 관철되었다.
박근혜 정부 당시에도 정부 초기 박근혜 정부가 중국 전승철 기념행사 참석,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가입 등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자 미국은 THAAD(사드, 종말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도입을 강요했다. 이북의 미사일 위협을 방지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제로는 중국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억제하려는 용도였다. 박근혜 정부는 미국의 압력을 이기지 못해 사드 배치를 강행했고, 중국과의 관계는 급속히 악화되어 한한령이 내려졌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실패한 이후 박근혜 정부는 완전히 종미적 외교정책으로 전환하여 한일 지소미아(韓日 GSOMIA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 협정)를 체결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문재인 정부 시기에도 청와대가 대북 협상을 시작하자 미국은 한미워킹그룹이라는 초법적인 기관을 만들어 해당 협의체 내에서 대북 협상 주도권을 미국이 일방적으로 가지는 시스템을 바탕으로 남북관계의 개선을 철저히 방해했고, 코로나 당시 협력도 대북제재 위반이라며 일방적으로 가로막았다. 결국 북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와 적대적 두 국가 선언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미국의 한국 내정 간섭들이 오늘날 이재명 정부에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개인이나 그 행정부의 돌발행동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2. 한국 엘리트들의 대미 복종과 그 기원
앞서 언급한 미국의 개입들에는 언제나 미국에 의해 포섭된 한국의 종미적 엘리트 집단의 적극 협조가 밑바탕 되었다. 이 엘리트들의 매국적인 행동과 한국 정부 방해를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노무현 정권 때부터 존재하던 외교라인 내 자주파-동맹파 갈등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민주당 터울에 있는 외교안보인사들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한미동맹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외교안보인사들을 동맹파, 미국 일변의 외교정책이 아니라 자주적으로 여러 국가들과 관계를 수립하자 하는 비주류 인사들을 자주파라고 불렀다. 노무현 정권에서 이들은 본격적으로 충돌했고 결과적으로 내부 투쟁은 동맹파의 승리로 끝났다. (물론 자주파도 외교적 루트만 강조할 뿐 경제적, 정치적 종속에는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대북 관계에 있어서 미국에게 전적으로 의존한 한계가 있으나 이는 추후에 다루기로 하자).
두 집단의 갈등은 동맹파 관료들이 자주파 인사들과 노 전 대통령을 상대로 사석에서 비난했다는 투서가 나돌아 당사자인 당시 북미3과장 조현동과 외교부 장관 윤영관 외교부장관이 사퇴할 정도였다. 주류였던 동맹파 관료들이 정권과 국민을 얼마나 무시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때 당시 동맹파로 분류되었던 반기문 외교안보수석은 용산기지 이전 협상에서 노 전 대통령을 따돌리고 독자적으로 협상을 진행했다. 당시 민정수석실에서 작성한 협상보고에 따르면, 대통령이 반미주의자이므로 협상에서 배제한다는 것이 내부 방침이었다. 즉, 미국에 대한 입장이 대통령의 통치권보다 더 중요한 척도였던 것이다. 이 때 동맹파들은 환경복원 관련 협정을 SOFA 협정 내부 문서로 처리해 국회비준을 받지 못하게 했다. 다만 이후 전국민적 반발이 심해 결국 포괄적인 내용은 한국 국회의 비준을 받게 처리하고, 그 내용을 한국법을 존중해 미국 비용으로 복구한다고 발표했지만 실무적인 내용은 따로 처리하여 국회 발표선에서만 끝나게 하는 꼼수를 부렸다. 그리고 그 내용도 치명적인 위협이 아니면 처리하지 않는다고 결정해 결국 한국 정부가 환경 복구 비용을 지불케 했다.
남북 정상회담과 한미 통상교섭 때도 여러 내부 간부들이 미국과 직접 접촉하여 국가 정보를 미국에 바쳤다. 2차 남북정상회담 준비 때부터 당시 박선원 통일안보전략 비서관을 중심으로 이종석 국가안보보좌관, 국정원 간부 서훈 등의 소규모 전권그룹을 꾸려 미국과 직접 소통하며 외교안보 관련한 한국 정부의 정책과 전략을 미국에 직접 보고했다고 한다. 미국과 소고기 수입 관련 협상을 할 당시 미 대사관은 한국 경제전략담당 김승호 비서관을 만나 남한 정부의 입장을 사적인 루트로 사전에 탐문하고 이를 기반으로 협상전략을 짰다.
또 오늘날 논란이 되고 있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처음 인정한 것도 당시 동맹파의 독단이었다. 위성락 당시 북미국장이 국가안전보장회의도 무시한 체 미국 측에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겠다는 각서를 2003년 당시 일방적으로 발송하고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이를 2004년에서야 파악했다는 것이다. (위성락씨는 추후에 이를 부정했다.) 한미 FTA협상 당시에도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과 독자적으로 연락해 한국의 방침을 미리 알려주고 미국이 이에 대응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남한의 엘리트 집단이 남한이 아닌 미국의 이익을 위해 이렇게까지 봉사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 그 이후에도 한국 엘리트의 대미 종속은 지속되었다. 이명박 정권 당시 한덕수 주미대사가 미국 기업들과 독자적으로 만나 이들의 불만 사항을 수집하고 한국정부에 전달하며 미국 기업들의 대변인 노릇을 하고, FTA 협상 때 독자적으로 약가 상한제 폐지안을 들고와 경질된 일과, 윤석열 정권 당시 김태효 국가안보실 차장이 미국이 한국 대통령실을 도청했음에도 나쁜 의도로 도청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옹호하는 등 정권을 막론하고 이런 자들이 실무자 자리를 차지해왔다.
왜 이 엘리트들은 매국적, 숭미적 행보를 보이는가? 이들 대부분은 미국에서 유학을 하며 여러 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받거나, 행정을 시작하며 미 대사관 등 여러 미국 관료들과 접촉하며 자연스레 포섭된다. 미국과 접촉하며 자녀들의 미국국적 등 여러 특혜를 받고 편의를 제공하는 루트가 자연스레 열리는 것이다. 특히 이런 엘리트들과 기업인들을 모아 미국의 아젠다와 목적을 가르치는 삼극회의 같은 비공개 회의를 통해 이들을 통솔하며 대미종속을 유지, 심화하고 있다.
3. 내정간섭과 대미종속을 타파하려면
이재명 정부의 출범 이후에도 미국의 내정간섭은 멈출 줄을 모른다. 쿠팡의 사례만 보더라도 쿠팡의 로비를 받는 의원들과 백악관 인사들이 미국 기업 탄압을 멈추라며 남한을 압박하고, 야당의원들도 정부가 감히 미국의 기업을 수사한단 이유로 반미정권이라며 현 정부를 비판하며, 심지어 위성락 현 국가안보실장이 언론매체에 나와 쿠팡문제 때문에 핵잠 등 안보사안이 진행되지 않는다며 미국의 입장을 헤아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외에도 전작권 전환 조건을 맞추라며 국방비 증가를 주장하고, 방시혁 수사를 방해하는 것을 보이고 있다. 남한 사회에 뿌리내린 미국의 영향력과 간섭은 그리 쉽게 때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득세하고 미국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남한 사회의 대미 종속은 미국의 남한 수탈이 더 강해지고, 남한은 미국의 최전선으로 내몰려 민중들만 피해를 볼 것이기에 더욱 철저히 내정간섭에서 벗어나 자주국가가 되어야 한다.
이른바 자주파 관료, 정치인들의 주장도 일리는 있지만 한계점이 명확하다. 대표적인 인사로 조국혁신당의 김준형 국회의원이 있는데, 김 의원의 주장은 미국 일변도의 외교, 안보정책을 넘어서 호주, 캐나다, 유럽 등 글로벌 중진국과의 연계를 통해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준형 의원의 숭미 일변도의 외교, 정치 지형에서 미국의 쇠락과 다극화 현상에 대한 이해가 깊은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서방국가들과의 관계에 의존해야 한다는 해당 주장은 여전히 국익보다는 서방의 이익에 치중되어 있다/
우선 글로벌 중진국들이라고 불리는 국가들은 현재 미국에 협조 중인 제국주의 열강이거나 혹은 미국에 종속된 제국주의 국가들인데, 이들은 미국의 독단적 이탈과 유럽과의 관점차이로 갈등하는 것이지 여타 식민지, 반식민지 국가의 자주를 지원할 생각이 없다. 이들의 이득과 반식민지 한국의 이득은 충돌한다. 실제로 유럽은 자국의 쇠락한 생산력으로는 러시아를 견제할 수 가 없어 관료자본주의 국가 한국에게 EU자본에 종속된 동유럽 지역에 무기를 공급하도록 주문하고 있고, 또 PURL(우크라이나 우선 지원 목록)에 한국이 합류하라고 압박하며 자국의 힘이 아닌 한국의 힘으로 러시아와의 제국주의 전쟁을 지속하려 한다.
또 한편으로는 제도권 내의 진보적 반미주의자들의 주장, 즉 외교적 전환만으로 대미 종속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도 문제적이다. 남한 사회는 정치, 경제, 군사 등 전방위적으로 미국에 종속되어 있는 반식민지 관료자본주의 사회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주주배당, 특허비용, 대출금 상환 등으로 미국에 이윤을 바치고 있고, 국가보안법 등으로 남북간 자유로운 교류를 방해하며, 전시작전권 통제를 통해 한국군이 본질적으로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게 제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교 노선 자체를 바꾸는 것부터 미국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며, 어쩌다 아웃사이더들이 집권한다 하더라도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총동원하여 이들을 내쫓을 것이다. 즉 남한사회에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넘어서, 미제국주의와 파시스트들에게 봉사하는 국가기구를 민중에게 봉사하는 새로운 국가기관으로 대체하는 총체적 변혁이 요구된다.
건국준비위원회와 조선인민공화국이 다하지 못했던 미완의 건국, 제국주의자들에 의한 통치기구를 파괴하고 민중에 의한 진정한 민주국가를 수립하는 미완의 과제를 완수하는 것만이 정치적, 경제적 자립과 건강한 국민경제의 건설을 위한 유일한 방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