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예술 작품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 중 작은 기록이라도 남아 후대에 전해질 수 있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 외의 많은 작품이 기록은 커녕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잊혀진다.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에는 멕시코 사람들이 생각하는 죽음이 묘사된다. 누군가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승을 떠날 때 그 사람의 영혼도 소멸되는 최종적인 죽음을 맞는다는 것이다. 그와 비슷하게 지금의 문화가 형성되기까지 많은 작품이 선택받거나 죽음을 맞이했다. 정보기술의 발전이 더 많은 자료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저장매체가 발달하며 더 적은 공간으로 더 많은 자료를 저장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히 틀렸다. 인터넷상의 많은 자료들도 물질에 기반하므로 언젠가 부식되기 마련이라는 문제가 있다. 더욱이 기술의 발전은 자료를 기록하는 것만큼이나 기록된 자료를 소멸시키는 것도 쉽게 만들었다. 소규모로 운영되는 웹사이트에 게재되는 자료들은 자금난이나 다른 이유로 더 쉽게 자취를 감춘다. 한국의 이글루스, 다음 블로그처럼 운영사의 결정으로 인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기록을 보존하는 기술은 발전했을지 몰라도 어떤 기록을 남길 것인지 정하는 권력은 오히려 거대 자본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의 발전은 시민들에게 자유로운 발언의 기회를 주기도 했다. 인터넷의 시민들은 자신의 기억에 남아있지만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은 많은 자료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여 그러한 자료들의 흔적을 추적하고 발굴하기 시작했다. 광활한 인터넷 세계에서 일종의 고고학적 발굴을 시도한 것이다. 이들은 소실된 자료를 로스트 미디어(Lost Media)라고 부르며 체계화했다. 이들이 로스트 미디어를 찾아다니는 이유는 다양하다. 자신의 추억을 찾아 뛰어든 사람들도 있고, 단순히 잊혀진 자료를 찾아내는 것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로스트 미디어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인상은 어딘가 음험하고 환상적이며, 어쩌면 사회상규에 어긋나는 것이다. 이는 로스트 미디어 애호가들의 책임이 크다. 가치있고 질 좋은 자료를 발굴하는 일도 활발히 이뤄지지만 이들의 주요한 관심사 중 하나는 다크 로스트 미디어(Dark Lost Media)라고 불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기록한 매체나 반인륜적인 묘사를 담은 작품이기도 하다. 이들이 신성시하는 최고의 로스트 미디어에 9.11 테러 희생자가 쌍둥이 빌딩에서 투신하는 영상이나, 나체의 여성 청소년 캐릭터 무리가 밀폐된 공간에서 끔찍한 방법으로 자살을 기도하는 포르노 애니메이션 따위가 포함된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런 작품들이 신성시되는 이유가 애호가들의 성정이 악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상업성에 취해 고자극 일변도로 나아가는 선정적인 대중문화로 인해 보통의 자극에 무던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체제의 유지를 위해 기록을 은폐하거나 왜곡하는 국가와 자본의 권력에 대한 반발이 잘못된 방식으로 표출된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러한 병리현상이 존재한다는 점을 감안해도, 로스트 미디어 고고학은 잊혀진 민중 문화, 혹은 대중의 사랑을 받았지만 자본에 의해 소실된 문화를 되찾는다는 점에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최근에 발굴되어 가장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로스트 미디어는 <The Most Mysterious Song on the Internet>(인터넷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노래), 혹은 TMMS라고 불린 노래일 것이다. 1980년대 서독의 북부독일방송이라는 라디오에서 한 번 방송되고 잊혀진 이 노래는 녹음 테이프를 갖고 있던 한 인터넷 이용자에 의해 2007년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곡에 대한 정보는 커녕, 이 곡을 부른 뮤지션이 누구인지도 전혀 밝혀지지 않은 채 18년간 추적이 이뤄졌고, 2024년 말이 되어서야 이 곡의 정체가 드러나게 된다. 독일 록의 역사를 조사하던 한 인터넷 이용자가 FEX라는 단명한 언더그라운드 밴드의 멤버를 만나 TMMS가 그들이 녹음한 <Subways of Your Mind>라는 데모 곡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것이다. 이 발견으로 인해 정식 음반을 내지도 못하고 잊혀졌던 FEX는 재결성하여 올해 초 <Subways of Your Mind>가 수록된 음반을 정식으로 발매하고 활동을 재개하였다. TMMS를 찾으려는 많은 이들의 노력은 이름 없는 노래의 주인을 찾는 문화인 로스트웨이브(Lostwave)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비밀의사중주라는 인디 뮤지션이 만든 <오늘을보내>라는 곡이 <Modern.mp3>라는 이름으로 애호가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아는 매체가 아직까지 발굴되지 않은 일도 존재한다. 1973년 방영된 일본 만화 <도라에몽>의 첫 애니메이션이 그러하다. 지상파 방송국 니혼 테레비에서 방영되었던 이 애니메이션은 반년간 방영된 직후 원본 자료가 소각되었고, 남아있는 녹화본도 시간이 지나면서 소실되거나 봉인되었다. 1차적 원인은 제작사인 니혼 테레비 동화가 모기업에 의해 폐업되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원작자의 불호로 인한 것이라거나 이후 제작되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사히 테레비판 애니메이션을 밀어주기 위해서라는 등 여러가지 소문이 있지만 어찌됐든 판권을 보유한 후지코 · F · 후지오 프로가 남아있는 자료의 공개를 막으면서 우리가 공식적으로 접할 기회는 전무한 상황이다. 지금도 일본의 로스트 미디어 애호가들은 이 작품의 행방을 찾아다닌다. 같은 해 제작된 포르노 영화에서 이 작품이 방영되고 있는 TV가 나오는 장면을 찾아낼 정도이다. 몇 년 전에는 한국의 비디오 가게에서 이 애니메이션이 녹화된 비디오를 대여해줬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한국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로스트 미디어의 존재가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한국의 인터넷 시민들이 한 번이라도 이름을 들어봤을 “흙오이”가 그 주인공이다. 2002년 대선의 유력 대권주자였던 이회창은 노무현의 부상으로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고졸 인권변호사 출신의 서민 후보였던 노무현과 서울대를 졸업해 대법관과 국무총리를 거친 귀족적인 자신의 대비가 정치적으로 득이 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서민 후보이기는 커녕 그와 다를 바 없는 반노동적 신자유주의 우파 세력의 대변자였다는 사실은 차치하고, 이회창은 자신도 서민적인 후보임을 증명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농산물 시장을 방문하여 상인이 팔고 있던 오이를 흙도 털어내지 않고 한 입 베어무는 모습을 홍보하기도 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 오이가 자라면서 흙이 묻을 일이 없는 식물이라는 것이다. 이회창이 이 일로 상대 측의 거센 비판과 민중의 조소를 받고서 이 사건은 한 때의 해프닝으로 끝나게 된다.
몇 년 뒤 사람들은 이회창이 흙 묻은 오이를 먹는 사진을 다시 찾아보려 했지만 그런 사진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로스트 미디어라는 개념이 한국에 수입되기도 전에 사람들은 이 “흙오이” 사진을 찾아 사방팔방을 돌아다녔지만 사진은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저 간접 증거로 “이회창이 흙 묻은 오이를 씻지도 않고 먹었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 한국 최초의 로스트 미디어에 대한 논쟁에도 각자의 정치적 입장이 드러난다. 누군가는 이 사진의 존재 여부 자체가 민주당의 흑색선전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누군가는 한나라당, 지금의 국민의힘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기록을 말소시켰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로스트 미디어를 둘러싼 많은 사건들이 보여주고 있는 사실은, 상업적으로 높은 성과를 거두어 자본가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주거나 비평 권력의 간택을 받아 역사에 남은 작품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있는 훌륭한 예술이라는 것이다. 또는 어떠한 예술이 가치있는가를 정하는 것도 일종의 권력이 작동하는 행위라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많은 작품을 모두 역사에 남길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떠한 작품은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당사자와 사회에 이득이기도 하다. 그러나 좋은 작품이, 좋은 문화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잊혀지는 일을 막는 것 또한 예술의 해방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