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실종사건 허위종결 사태와 경찰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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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실종사건 허위종결 사태와 경찰개혁

검찰이라는 진지 하나를 허물었다고 해서, 그 권한을 넘겨받은 경찰과 중수청과 공소청이 저절로 민중의 것이 되지는 않는다. 민주적 감시 및 통제체계를 구축하지 않는다면, 10월 2일 이후 우리가 손에 쥐게 될 것은 파시스트 진지 하나를 허문 자리에 세 개의 작은 요새를 새로 지은 결과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제주 실종사건 허위종결 사태와 경찰개혁

오는 10월 2일, 비로소 파쇼공안기구 검찰청이 폐지된다. 수사권은 경찰과 새로 출범하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만이 가지게 되고, 검찰은 수사권 없이 기소권만을 지닌 공소청으로 개편될 예정이다. 2026년 7월에는 여당 주도로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권을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이 또한 오는 10월 2일부터 적용된다.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 검찰청 해체, 보완수사권 폐지라는 검찰개혁의 내용들은 전적으로 올바른 것이다. 검찰은 그 시작부터 파시스트 정권의 사냥개로 탄생한 조직이며, 오랜 세월 국가기구 내 파시스트들의 가장 강력한 진지 중 하나로 기능해왔다. 검찰의 선택적 수사와 기소 편의주의, 민주진보 진영에 대한 공안탄압은 오래된 폐해였다. 그 권력을 해체하는 것은 남한의 민주주의를 완성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과업이다.

그러나 검찰청이 사라지고 보완수사권이 폐지된다고 해서 검찰개혁이, 사법개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비선출 관료기구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는 더 근본적인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물론 집중화된 검찰권력을 조각내고 파시스트 진지를 파괴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는 민중에 의한 통제와 감시 없이는 결실을 볼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는 곰팡이를 닦아낸다 해도 통풍과 햇빛이 없다면 공기 중의 포자가 금세 다시 곰팡이를 피워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최근 불거진 제주 실종사건 허위종결 사태는 이러한 사실을 재증명한다. 그러나 역으로 이번 사태를 빌미로 보완수사권 폐지, 나아가 검찰개혁 자체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는 이들이 파시스트 진영은 물론 진보 진영 일각에서도 나오고 있다. 이것은 사태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무지의 소산이거나 파시스트 공안기구의 존속에 이해가 있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주장이다.

이 글은 제주 허위종결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지목하고, 그 해결을 위한 올바른 방안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주 실종사건 허위종결 사태

지난 5월 12일 밤, 제주도민 장 모 씨가 한림읍의 숙소를 나간 뒤 연락이 끊겼다. 사흘 뒤인 5월 15일 저녁 남자친구가 실종신고를 접수했고, 신고를 받은 제주서부경찰서 소속 부 모 경장은 단 2시간 30 분 만에 "장씨와 연락이 닿았지만 위치를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사건을 종결시켰다. 부 경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실종자 프로파일링 관리 시스템에 등록된 장씨 자료를 삭제하면서 그 사유란에 '교통사고 사망'이라는 완전히 허위인 사유까지 기재했다. 장씨는 신고 접수 104일 만에 야자나무 농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것이 처음도 아니었다. 부 경장은 7월 2일에도 60대 남성 박 모 씨의 실종신고를 접수해 5시간여 만에 "소재를 발견했다"며 허위로 사건을 종결했는데, 이 허위 기록은 상급자 결재 단계에서 아무런 확인 없이 통과되었다. 박 씨는 실종 51일 만인 8월 22일에야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조사 결과 부 경장이 실종수사팀에서 근무한 1년 5개월 동안 298건에 달하는 실종사건들을 맡았으며, 그중 최소 27건을 허위로 종결시켰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심지어 장 씨 사건을 은폐한 지 불과 한 달 뒤, 부 경장은 치매 노인을 발견한 공로로 경찰청장 표창까지 받았다. 부 경장은 과거 가정폭력으로 감찰 조사를 받은 전력이 있었고, 최근에는 여성 화장실 불법촬영 혐의로 직위해제를 당한 상태이다.

이는 경찰관 한 명의 일탈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허위 입력이 상급자 결재를 무사통과했다는 사실, 298건에 달하는 사건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고 별다른 검증 없이 처리될 수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문제가 있는 인사가 표창까지 받으며 조직 안에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개별 경찰관의 일탈 이전에 그것을 걸러낼 통제 장치 자체가 애초에 부재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러니 검찰을 남겨두자는 자들

이 사태를 접한 국민의힘은 기다렸다는 듯 보완수사권 폐지를 문제 삼고 나섰다. 박형수 법제사법위원회 간사는 경찰에 전적으로 수사를 맡길 만한 자질과 시스템이 없다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재개정해 원상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행정안전위원회 강명구 간사 역시 경찰에 수사를 맡길 수 있느냐는 의문이 번지고 있다며 검찰의 견제 장치가 사라지는 데 대한 우려를 앞세웠다. 이들과 다른 많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동일하다. 경찰의 부실수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보완수사권이 존치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일견 타당한 우려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저들의 주장이 검찰이라는 기관의 ‘견제와 감시’가 실제로는 정치적 사건에서의 선택적 수사와 제 식구 감싸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은폐한다는 데 있다. 검사의 보완수사권이 살아있던 지난 수십 년간 경찰 수사가 부실했던 사례, 인권을 침해한 사례, 수사가 조작된 사례는 차고 넘쳤다. 검찰의 존재가 그것을 막아준 적은 없다. 역으로 검찰은 당파적인 이유로 경찰수사에 개입하여, 수사를 방해하거나 표적수사를 지휘해왔다. 검찰의 견제란 실상 검찰 스스로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부합할 때만 작동하는 선택적 견제였을 뿐이다.

이들 중 일부는 이번 형소법 개정안이 검사의 수사참여 일체를 차단하는 것처럼 호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완수사권은 검사가 직접적으로 수사를 지휘할 권리만을 의미하며, 보완수사권이 폐지된다 하여도 검사는 여전히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다. 국민의힘은 마치 보완수사권 폐지로 경찰이 블랙 박스가 될 것처럼 선전하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권한이전만으로는 부족하다

내란세력의 반동적 공세뿐만이 아니다. 개혁을 지지하는 쪽의 대응 역시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여당 원내대표는 사태에 유감을 표하며 경찰이 뼈를 깎는 쇄신으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밝혔고, 대통령 역시 경찰의 지휘감독 체계 전반을 점검하라 지시했다.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이 여전히 관료기구 내부의 자체 쇄신, 즉 경찰이 스스로 경찰을 감찰하고 스스로 지휘체계를 정비하는 수준에 머무른다면, 똑같은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따름이다.

수사권이 검찰에 있든 경찰에 있든 중수청에 있든, 권한이 비선출 관료조직에 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검찰청을 해체하고 그 기능을 경찰청과 중수청, 공소청으로 이관하는 것은 집중된 권력을 여러 기관으로 분산시키는 작업이며, 이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권한을 잘게 쪼개어 나누어도, 각각의 관료기구들이 여전히 그들만의 폐쇄적인 내부 논리로 움직인다면, 파편화된 권력 역시 얼마든지 새로운 형태의 무책임과 은폐를 재생산할 수 있다. 부 경장이 독단으로 사건들을 종결처리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유별나게 대담해서가 아니라, 국민에게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비선출 관료집단 특유의 무사안일주의 때문이다.

검찰의 노골적인 반동성과 비교해 과소평가될 뿐이지, 경찰 역시 파시스트 정권의 의지를 집행하여 민중을 억압해온 폭력집단임은 다르지 않다. 그들은 조국분단에 반대하는 제주도민들을 미군정과 함께 학살했다. YH무역 여성노동자들이 일방적 해고통보에 맞서 투쟁할 때에는 천 명이 넘는 경찰을 투입해 180명 남짓의 여성노동자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경찰은 박종철 열사를 고문하여 죽음에 이르게 했고, 이한열 열사 또한 최루탄으로 살해했다.

87년의 형식적인 ‘민주화’ 이후에도 이들의 반동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포항에서 건설노동자 하중근을 살해한 자들, 정리해고에 저항하는 쌍용차 노동자들을 폭력으로 찍어누른 자들, 염호석 노동자의 시신을 탈취하려 한 자들이 누구였는가? 백남기 농민을 물대포로 살해한 자들이 누구였는가? 윤석열이 내란을 일으키자 국회를 봉쇄하고 국회의원들의 출입을 가로막은 것은 경찰이 아니었던가?

불과 얼마 전인 9월 3일 방송의 날에도 경찰은 비정규직·특수고용 방송노동자들의 권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 현장에서 불법적인 검문을 요구하고, 이에 불응하는 참석자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했다. 심지어는 그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참석자의 응급차를 환자와 보호자에게 통보하지 않고 병원이 아닌 용산경찰서로 이송하는 짓까지 벌였다. 검찰을 해체한다고 해서 경찰의 이러한 폭력성, 반동성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에 불과하며, 국가기구 전체의 문제를 검찰조직 하나의 문제로 축소하여 진정한 개혁을 가로막는 행위이다.

투표용지 부족과 투표수 허위입력 등 선관위의 선거운영 파행, 조희대 사법부의 내란세력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등 또한 그들이 국민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비선출 관료조직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검찰이라는 하나의 진지를 해체하는 데서 멈춘다면, 우리는 국가기구 곳곳에서 똑같은 곰팡이가 다시 피어나는 것을 계속 목격하게 될 것이다.

통풍과 햇빛을 만드는 일

그렇다면 곰팡이가 자라지 못하게 하는 통풍과 햇빛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것은 관료기구 스스로 만드는 내부 규정이나 자체 감찰이 아니라, 그 기구 바깥에서 민중이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감시와 통제의 권한이다. 구체적으로는 다음의 세 가지 형태를 제시할 수 있다.

첫째, 독립적 조사권을 가진 시민감시기구의 설치다. 현행 국가경찰위원회나 자치경찰위원회는 대부분 퇴직 경찰, 법조인 등 관료 출신 인사들로 채워져 있고, 실질적인 권한은 없는 형식적 심의기구에 머물러 있다. 경찰조직을 실질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지역주민과 시민사회의 대표자들로 구성되고 독자적인 조사권, 자료제출요구권, 징계요청권을 가진 시민감시위원회가 필요하다. 조직 내부인이 조직 내부를 감시하는 구조로는 같은 은폐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둘째, 절차 자체를 은폐가 불가능하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실종사건 종결과 같이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사안은 단독 결정이 아니라 복수의 담당자에 의한 교차 확인을 의무화하고, 모든 종결 기록과 통화기록, 위치정보 등의 근거자료를 사후 감사가 가능한 형태로 자동 보존해야 한다. 이는 경찰 스스로 도입할 수도 있는 기술적 장치이지만, 요지는 그 설계와 감사 권한이 경찰 자신이 아니라 외부의 감시기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상시적이고 실질적인 의회 감시다. 사건이 터진 뒤에야 열리는 일회성 국정감사나 청문회가 아니라, 상임위 차원에서 관료기구의 운영을 상시적으로 점검하고 자료를 요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갖춰져야 한다. 이는 경찰뿐 아니라 중수청, 공소청을 포함한 모든 비선출 권력기관에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할 원칙이다.

 

나가며

검찰청이 사라지고 보완수사권이 폐지된다. 우리는 이 변화를 열렬히 환영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검찰개혁이 끝났다고 말하는 것은, 곰팡이가 슨 벽 한 면을 닦아내고 나서 집 전체가 깨끗해졌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검찰이라는 진지 하나를 허물었다고 해서, 그 권한을 넘겨받은 경찰과 중수청과 공소청이 저절로 민중의 것이 되지는 않는다. 민주적 감시 및 통제체계를 구축하지 않는다면, 10월 2일 이후 우리가 손에 쥐게 될 것은 파시스트 진지 하나를 허문 자리에 세 개의 작은 요새를 새로 지은 결과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제주에서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이제 우리는 검찰개혁을 넘어 모든 비선출 권력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라는 본질적 과제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검찰개혁은 반드시 완수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종착점이 아니라 시작점이다. 검찰을 시작으로 경찰, 사법부, 나아가 국가기구 전체에서 파시스트 진지를 파괴하고 민중에 의한 통제를 확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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