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레닌-마오주의에 대하여 (페루공산당 제 1차 당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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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레닌-마오주의에 대하여 (페루공산당 제 1차 당대회)

편집자 서문
이 글은 페루공산당 제 1차 당대회에서 맑스-레닌-마오주의를 정의한 글이다. 기존 맑스-레닌주의에서 맑스-레닌-마오주의로 넘어오면서 어떤 부분을 계승하고 어떤 부분을 발전시켰는지 각각 철학, 정치경제학, 과학적 사회주의 세 파트로 나누어 설명하고 그 당시 행해졌던 비판들의 간단한 반박을 남겼다. 페루 공산당 현대 사회주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만큼, 해당 글을 통해 그들의 사상을 엿보는 것은 진보주의자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맑스-레닌 마오주의에 대하여

국제 프롤레타리아의 이데올로기는 맑스주의이다. 맑스주의는 계급투쟁의 도가니 속에서 생겨나 맑스-레닌주의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맑스-레닌-마오주의로 발전했다. 그리하여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전능하고-진리이기 때문에 전능하다-과학적인 이데올로기는 맑스주의, 레닌주의, 마오주의의 세 단계를 거쳤다. 이는 140년 간 공산당 선언을 시작으로 계급투쟁의 영웅적 서사를 거쳐 공산주의 정당 내에서의 치열하고 생산적인 두 가지 노선투쟁을 통해 발전되어온 변증법적 과정의 세 단계, 시기, 혹은 이정표이다. 특히 마르크스, 레닌, 마오쩌둥을 통해,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계급만이 낳을 수 있었던 사상 및 행동의 위대한 위업을 통해 오늘날 우리는 맑스-레닌-마오주의, 주로 오늘날 마오주의로 불리는 이데올로기로 무장하게 되었다.

 허나 맑스-레닌주의의 보편적 타당성이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오주의는 세 번째 단계로 널리 인정되지 않는다. 또 다른 이들은 이를 “마오쩌둥 사상”으로 받아들이기까지 한다. 마오주의의 부정과 마오쩌둥 사상으로의 수용은 모두 문제가 있지만, 본질적으로 이들은 모두 마오 주석에 의한 마르크스주의의 전반적 발전을 부정한다. 마오주의의 성격을 “주의”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마오주의가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음을 부인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국제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의 세 번째, 최신이자 최고의 단계인 맑스-레닌-마오주의, 즉 우리가 지지하고 옹호하며 방어하는 마오주의를 부인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마오주의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마오주의를 위해 싸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레닌을 회상해보도록 하자. 그는 동양으로 혁명이 전파될 때, 원칙과 법칙을 위배하지 않는 선에서 새로운 상황인 특수한 조건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맑스주의는 혁명지도의 실패 속에서 이를 알아차리는데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르쳤다. 자유주의와 가짜 맑스주의에 경도된, 현학적이고 책벌레 같은 지식인들이 새로운 국면에 반대하여 소란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올바른 길은 맑스주의를 구체적인 조건에 적용하고, 모든 혁명이 반드시 직면할 수 밖에 없는 새로운 상황과 문제를 해결하는 것 뿐이었다. 이는 수정주의자들, 기회주의자들, 그리고 반역자들에 의해 제기된 위선적인 “이데올로기, 계급, 인민의 방어” 테제, 썩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의해 타락하고 구 사회를 방어할 준비가 된 구 질서의 학자들에 의한 맹목적인 공격에 직면했다. 허나 레닌은 동양에서의 혁명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는 고루한 교조주의자들에게 거대한 충격을 가져다 줄 것이라 확언했고,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레닌은 동양의 동지들에게 마르크스주의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맡겼다.

더욱이, 우리는 스탈린 동지가 마르크스주의의 발전이 레닌주의의 단계에 들어섰다고 옳고 정확하게 선언했을 때에도 반대자들은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한다는 명분 하에 발목을 잡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혹자들은 레닌주의가 후진국에서만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레닌주의는 투쟁 속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위대한 발전 단계임이 확인되었고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통해서만 전세계에 빛났다.

오늘날의 마오주의는 지난날의 레닌주의와 같은 상황에 처해있으며, 맑스주의가 언제나 새로운 정론과 함께 투쟁을 통해 나아갔듯이 마오주의도 결국은 승리하여 공인받을 것이다.

국제적 단계의 제국주의, 세계 대전, 전 세계적 프롤레타리아 운동, 민족해방운동, 마르크스주의와 수정주의의 투쟁, 소련의 자본주의 회복이라는 맥락 속에서 마오 주석은 활동했고 마오주의는 형성되었다. 특히 금세기의 세 가지 이정표가 두드러진다. 첫째로,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여명인 1917년 10월 혁명, 둘째로, 힘의 역학관계를 사회주의에 유리하게 틀어버린 1949년 중국혁명의 성공, 셋째, 중국혁명의 연속이자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에서 공산주의를 향한 전진을 지속하기 위한 결단이었던 1966년 대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이 그것이다. 마오 주석은 이 영광스러운 역사적 사건 중 두 가지를 이끌었다.

마오주의는 세계 혁명의 중심부이자 모순의 가장 복잡한 접합부인 중국에서, 중국을 분할하려는 제국주의 권력들에 의해 규정된 격렬하고 유혈낭자한 계급투쟁, 만주 제국의 붕괴, 1919년의 반제국주의 운동, 광범위한 소농의 격변, 민주혁명을 위한 22년 간의 무장투쟁,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위대한 투쟁, 중국공산당 내의 수정주의에 맞서 문화대혁명을 전진시키기 위한 십년 간의 열정과 함께 구체화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 중 특히 중요한 네 가지는 사건 바로 1921년의 중국공산당 창당, 1927년의 추수봉기, 1949년의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966년부터 1976년까지의 대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이다. 마오 주석은 이 모든 위업을 지도한 인물이며, 무엇보다도 중국혁명의 가장 인정받는 최고지도자였다.

마오 주석은 전쟁의 화마로 불타오르고 있던 세상에서 1893년 12월 26일에 첫 눈을 떴다. 농민의 아들이었던 그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에 의화단 반란이 일어났고, 그가 열 여덟살이 되었을 때에는 제국이 무너졌다. 교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던 그는 군대에 입대하였으며, 후일 후난성에서 농민과 학생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공산당과 노농홍군이 창설된 후, 그는 농촌으로 도시를 포위하는 노선을 제시했고, 인민전쟁과 프롤레타리아 군사론을 발전시켰다. 그는 대약진과 사회주의 건설의 원동력이었으며, 흐루쇼프와 현대수정주의자들에 맞선 투쟁의 중핵이었고, 대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의 지도자였다. 그는 혁명에 완전히 바쳐진 삶을 살아왔다. 금세기에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거둔 위대한 세 승리 중 두개를 마오 주석이 이끌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는 하나만을 이끌어도 극히 영광스러운 성취이다.

마오주의의 내용, 즉 본질에 있어서 우리는 다음의 문제들을 강조해야 한다.

  1. 이론. 맑스주의는 맑스주의 철학, 맑스주의 정치경제학, 그리고 과학적 사회주의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모든 것의 개별적인 발전은 맑스주의 전체에 통합적으로 질적 도약을 가져온다. 이러한 질적 도약을 통해 맑스주의는 더 높고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다. 마오 주석이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이러한 질적 도약을 정확하게 이루어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이에 관해 하나하나 살펴볼 것이다.

맑스주의 철학에 있어서, 마오 주석은 변증법의 본질인 모순 법칙을 발전시켜, 이를 유일한 기본 법칙으로 확립했다. 또한 모순 법칙을 구성하는 두 번째 도약인 지식 이론에 대한 마오 주석의 심오하고 변증법적인 이해에 더하여, 우리는 마오 주석이 모순 법칙을 정치에 능숙하게 적용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마오 주석은 철학을 대중들에게 전달하여 맑스가 제시한 과제를 완수했다.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에 있어서, 마오 주석은 변증법을 통해 토대와 상부구조의 관계를 분석했으며, 생산력주의에 반대하여 상부구조와 의식이 토대를 변화시킬 수 있고, 정치적 힘을 통해 생산력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함을 통해 수정주의 이론에 맞선 맑스레닌주의의 투쟁을 이끌었다. 그는 정치가 경제의 집중적 표현이라는 레닌주의의 명제를 발전시켜 모든 분야를 정치가 지도해야 하며, 정치 작업이 경제 작업의 핏줄이라고 선언했다. 이 모든 것은 단순히 일련의 경제 정책을 넘어, 정치경제에 대한 올바른 지도로 이어졌다.

봉건제나 다른 구시대적 제도에 기반한 피억압 국가들에서 제국주의에 의해 발전되는 자본주의를 관료자본주의라고 부른다. 관료자본주의에 대한 마오주의 이론은 신민주주의 혁명이 당면과제인 국가의 인민들에게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종종 간과되고는 한다. 이는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중요한 문제로, 관료자본주의에 대한 이해로 부터 혁명을 위한 올바른 지도력이 형성되며, 신민주주의 혁명을 제 2단계, 즉 사회주의 단계로 진전시키기 위한 경제적 기반은 관료 자본의 몰수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허나 정치경제학에 대한 마오 주석의 공헌 중 가장 중요한 점은, 마오 주석이 사회주의 정치경제학을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소련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에 대한 마오 주석의 비판은 매우 중요하다. 중국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방법에 대한 그의 논지 또한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농업을 근간으로, 산업을 선두 부문으로 삼고, 중/경공업과 농업의 관계에 의해 지도되는 산업화를 추진하며, 중공업 중심 경제 건설과 동시에 농업 및 경공업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마오 주석의 중국 사회주의 건설 방법론의 핵심이다. 우리는 대약진 운동과 그 실행조건들을 조명해야 한다. 대약진 운동의 실행 조건이란 다음과 같다: 첫째, 적절하고 올바른 노선의 설정. 둘째, 양적으로 다양한 규모의 조직 형태. 셋째, 거대한 추진력, 즉 대중을 스스로 움직이게 하고 최종적으로 승리하게 하기 위한 엄청난 노력. 우리는 대약진의 운동과정을 즉각적 결과보다는 역사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노동조합 및 인민공사와의 연결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사회주의 법칙(수십년 간의 짧은 실험 동안 완전한 꽃을 피우지 못했으며, 법칙과 특수성에 대한 더 나은 이해를 끊임없이 방해받은)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객관과 주관에 대한 마오 주석의 가르침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조혁명촉생산(抓革命促生产, 혁명을 움켜쥐고 생산을 촉진하라)” 라는 말로 함축되는, 혁명과 경제발전의 관계에 대한 마오 주석의 가르침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의 결정적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마오 주석의 맑스주의 정치경제학 발전에 대해서는 지금껏 많은 언급이 없었다.

과학적 사회주의에 있어서, 마오 주석은 계급이론을 경제적, 이론적, 이념적인 측면에서 분석했으며,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라는 명제를 통해 예외 없고 보편적인 법칙으로서 혁명적 폭력과 한 계급에 대한 폭력적 대체로서 혁명을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피억압 국가에서의 권력장악 문제를 농촌을 통한 도시포위 노선을 통해 해결했고, 이러한 노선의 보편적 법칙을 제시했다. 또한 마오 주석은 사회주의 하에서의 계급투쟁에 대한 이론을 훌륭하게 정의하고 발전시켰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사이, 자본주의 노선과 사회주의 노선 사이, 그리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는 여전히 적대가 지속되며 어느 쪽이 승리할지는 결정되어 있지 않고, 프롤레타리아가 마침내 스스로의 권력을 공고화하여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완성할 때까지 복고와 반복고가 반복되리라는 것이 마오 주석이 제시한 사회주의 하에서의 계급투쟁 이론의 핵심이다. 마지막으로, 과학적 사회주의에 대한 마오의 공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에서 혁명을 지속하기 위한 역사적 해결책인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을 공식화했다는 것이다.

간단히 요약되었지만 잘 알려져 있고 부인할 수 없는, 이러한 기본적인 문제들은 마오 주석이 맑스주의의 구성 요소들을 발전시키고 맑스주의를 새롭고 더 높은 세 번째 단계인 맑스-레닌-마오주의, 즉 마오주의로 발전시켰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이제부터는 위에서 언급한 것들에 의해 파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다른 구체적 요점들을 살펴보며 간략한 종합을 지속하도록 하겠다.

  1. 신민주주의는 세 가지 유형의 독재에 대한 맑스주의 국가론의 정의가 발전한 것이다. 세 가지 유형의 독재란 다음과 같다. 1) 미국 같은 구민주주의 국가와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한 피억압 국가들에서의 부르주아 독재. 2) 수정주의자들이 권력을 탈취하기 이전의 소련과 중국에서 실행되었던 프롤레타리아 독재. 3) 노농동맹에 기초하여 공산당의 지도를 받는 노동계급이 이끌어가는 연합독재인 신민주주의. 신민주주의는 중국 민주주의 혁명기에 형성되었고, 페루에서는 근거지와 인민위원회, 그리고 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통해 실현된다. 이러한 국가이론의 전개 속에서, 국가체제, 즉 정치 권력을 쥐고 있는 계급, 혹은 계급독재와 그 정치권력의 집행 기관인 정부체제 사이의 핵심적인 차이를 강조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신민주주의는 마오 주석이 발전시킨 가장 중요한 명제 중 하나로, 프롤레타리아만이 이끌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부르주아 혁명-민주주의 혁명, 즉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새로운 국면을 훌륭하게 정의하고 있다. 신민주주의 혁명은 새로운 경제, 새로운 정책, 새로운 문화를 의미한다. 신민주주의 혁명은 총을 들어 낡은 질서를 전복하고 새로운 질서를 건설하는 것으로, 세계를 개조할 유일한 방법이다.

끝으로, 우리는 민주혁명으로서의 신민주주의가 주로 민주적 과제를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민주적 과제가 실현되는 것으로 사회주의적 과제 또한 일부 진전된다는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 같은 나라 가 지니는,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단계의 문제에 대한 전반적 해결책을 제공한다. 신민주주의 혁명은 민주혁명 단계가 완수되는 즉시 조금의 지체도 없이 사회주의를 향해 전진할 것을 보장한다.

  1. 세 가지 무기. 혁명의 세 가지 무기는 당이 당과 군대, 통일전선 간의 관계를 명확하게 이해할 때만 성공적으로 구축될 수 있다. 당은 전쟁의 수행과 무장한 인민의 힘에 근거한 신 국가의 방어에 있어서 이 세 무기 간의 관계를 이해하고 무기의 건설을 지도해야 한다. 건설의 핵심적인 요인은 올바르고 정확한 사상노선의 원칙이다. 투쟁의 주요 형태인 조직은 프롤레타리아 노선과 부르주아 노선의 투쟁 속에서, 그리고 주로 전쟁을 통해 표출되는 계급투쟁의 폭풍 속에서, 이데올로기적-정치적 토대 위에서 건설된다.

에 있어서, 마오 주석은 새로운 유형의 정당이자 프롤레타리 정당, 즉 공산당의 필요성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이를 맑스-레닌-마오주의 정당이라고 부를 것이다. 당의 목표는 국가 권력을 정복하고, 정복한 권력을 방어해내는 것으로, 즉 인민전쟁과 당은 불가분의 관계에있다. 마오 주석이 그린 당의 형태란 인민전쟁 자체를 위한 조직이자 대중에 기초한 조직이며, 다수 대중의 통일전선에 기초한 조직이다. 당은 혁명의 단계와 시기에 따라 발전하고 변화한다. 당은 프롤레타리아 노선과 부르주아-비프롤레타리아 노선 간의 두 가지 노선 투쟁으로 구성되는 모순으로부터 발전의 동력을 얻는다. 이는 본질적으로 수정주의에 대한 투쟁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당의 활동에 있어서 사상노선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과, 당조직과 당원들을 올바른 이념과 노선으로 조직시켜 프롤레타리아 노선이 강철같은 지배력을 발휘하게 하기 위한 정풍운동의 필요성을 알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가 주도적 역할을 하는 신민주주의 정권 하에서도 당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강화 발전시켜 공산주의를 쟁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하며, 이를 위해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전방위적으로 앞서야만 한다.

혁명군은 새로운 유형의 군대로, 프롤레타리아와 인민대중의 이득에 기초하여 당이 정한 정치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조직이다. 혁명군은 전쟁을 수행하고, 인민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생산하고, 대중을 동원한다는 세 가지 임무를 지닌다. 혁명군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이데올로기인 맑스-레닌-마오주의와 당이 수립한 군사 및 정치노선을 기반으로 구축되어야 하며, 이는 무기가 아닌 사람을 기반으로 하는 군대이다. 또한 혁명군은 대중으로부터 나와 항상 대중과 연결되어 있고, 그들을 진심으로 섬겨 물과 고기의 관계처럼 대중 속에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마오 주석에 따르면 인민은 인민군 없이 아무 것도 쟁취해낼 수 없으며, 당은 군대에 있어 절대적인 영도 행사해야만 한다. 당이 총을 지배하되, 결코 총이 당을 지배하게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마오 주석은 새로운 유형의 군대를 건설함에 있어서의 원칙과 규범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역설하는 한 편, 반혁명 쿠데타를 통해 군대의 지배권이 찬탈될 경우 군대가 자본주의의 회복에 이용될 수 있다며 경고했다. 또한 마오 주석은 인민군에 대한 레닌의 테제를 발전시켜서 전인민무장을 누구보다도 깊숙하게 파고들었고, 인민과 프롤레타리아를 결정적으로 해방시킬 무장한 인민의 바다를 만들어내는 길을 제시하였다.

통일전선은 인민전쟁을 통해서 혁명과 반혁명 간의 투쟁을 벌이기 위해 구성되는, 반혁명 세력에 맞선 혁명 세력들의 단결이다. 통일전선을 이론적으로 가장 먼저 완성하고 그 원칙을 확립한 것은 마오 주석이며, 통일전선은 구체적으로 노농동맹에 기초한 통일전선, 당에 의해 대표되고 종합적으로 당의 지도를 받는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통일전선, 인민전쟁과 혁명, 그리고 프롤레타리아와 인민대중의 권익을 위한 권력장악을 추구하는 통일전선 등의 형태를 띈다. 통일전선은 혁명의 모든 단계에서 동일한 형태를 띄지 않으며, 단계와 시기 별로 각각의 특수성을 지닌다. 마찬가지로, 특정한 혁명에서의 통일전선과 세계적 차원에서의 통일전선은 둘 다 같은 일반법칙을 따름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르다. 나아가 통일전선을 연합독재의 한 형태로 인식하고 항일전쟁 당시에 마오 주석이 이끌었던 항일통일전선과 국가의 관계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는 민주혁명에 직면직면한 우리가 연구해야 할 주제이다.

  1. 인민전쟁은 국제 프롤레타리아의 군사 이론이다. 이는 프롤레타리아가 처음으로 수행한 투쟁, 군사행동, 그리고 전쟁-주로 중국 농민들에 의한-에서 얻어낸 이론적이고 실제적인 경험이다. 마오 주석의 공헌을 통해 프롤레타리아는 군사 이론을 획득하게 되었지만, 이를 둘러싸고 아직도 많은 오해와 혼란이 존재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대다수가 중국 인민전쟁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다. 일반적으로 중국 인민전쟁은 게릴라전이라는 협소하고 경멸적인 규정으로만 이해된다. 이는 마오 주석의 게릴라전이 전략적 성격을 띄었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인식이다. 이러한 견해는 어떻게 게릴라전이 본질적인 유동성을 지니며, 기동성을 발전시키고, 진지전과 기동전을 행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어떻게 마오 주석이 게릴라전을 통해 전략공세를 수행하고 외부로부터의 공격과 내부로부터의 반란을 결합시켜 중소도시를 점령할 수 있었는지 또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중국 인민전쟁의 4단계, 그 중 특히 농민전쟁에서 인민해방전쟁에 이르기까지의 기간 사이에 발발한 항일전쟁은 거대한 인구의 대량동원을 이뤄내어 20여년 간 전개된 혁명전쟁의 다양한 측면과 복잡성, 그리고 대중의 참여를 보여준다. 해당 전쟁은 수많은 경험들을 노농대중에게 선사했고, 이는 특수히 연구되어 원칙, 법칙, 전략, 전술, 규범을 확립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마오 주석이 프롤레타리아의 군사이론인 인민전쟁 이론을 확립할 수 있었던 것은 계급투쟁의 도가니나 마찬가지였던 당대 중국의 경험과 맑스-레닌주의의 기반 덕택이었다.

그 후에 마오 주석은 핵폭탄과 미사일의 존재와 그것들의 효력에 대한 충분한 이해 하에, 핵무기의 등장으로 인한 새로운 조건 하에서 강대국과 초강대국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인민전쟁을 옹호하고, 또한 발전시켰다. 요컨대, 인민전쟁은 핵전쟁에 맞선 프롤레타리아와 인민의 무기이다.

인민전쟁의 보편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의 핵심은 여러가지 혁명의 유형과 각 혁명의 구체적인 조건을 파악하여 인민전쟁의 보편적 타당성과 적용 가능성을 인지하는 것이다. 이를 인지하기 위해서는 페트로그라드 봉기 모델은 그 봉기 이후로 단 한번도 반복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숙지해야 하고, 2차대전 도중의 반파쇼전쟁 및 파르티잔 전쟁을 고려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10월 혁명이 단순히 봉기만을 통해서가 아니라 몇 년 동안 지속된 혁명 전쟁을 통해서 비로소 성공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제국주의 국가에서의 혁명은 오직 혁명전쟁의 형태로만 구상될 수 있으며, 오늘날 혁명전쟁은 오직 인민전쟁만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오늘날의 공산주의자들과 혁명가들, 프롤레타리아와 인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는 혁명전쟁의 절대적 지지자이며 이는 이롭고 해롭지 않다. 이는 곧 맑스주의다.” 라는 신념을 강고히 다질 필요가 있다. 이는 곧 우리가 인민전쟁의 절대적 지지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1. 대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의 역사적 의의는, 문화대혁명이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에서 혁명을 지속하는 문제에 대하여 마오 주석이 제시한 답이며, 이를 통해 맑스-레닌주의가 광범위하게 발전되었다는 점에 있다. 중국공산당에 따르면, 문화대혁명은 “중국 사회주의 혁명의 발전에 있어서의 더욱 폭넓고 새로운 단계이다.” 어떤 정세적 맥락 위에서 이런 말이 나왔을까? 대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결정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부르주아 계급은 전복되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대중을 타락시키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오래된 사상, 문화, 관습, 습관을 이용하여 복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는 이에 맞서 행동해야만 한다. 프롤레타리아는 부르주아 계급에게 전면적 타격을 가해야 하며, 부르주아 계급의 모든 도전에 맞닥뜨려 프롤레타리아의 새로운 사상, 문화, 관습, 습관을 퍼트려야 한다. 즉, 사회 전체의 정신을 변화시켜야 한다. 우리의 당면한 과제는 주자파 권력들에 대항하여 투쟁하고 이를 전복하며, 부르주아 반동학술권위와 부르주아 계급을 비롯한 모든 착취계급의 이념을 비판하고 부인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프롤레타리아는 교육, 문학, 예술을 비롯한 전분야에서 사회주의 체제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사회주의 경제구조와 모순되는 부문을 변화시켜야 한다.”

상술한 조건 위에서,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지구 역사 상 가장 거대한 정치적 사건이자 가장 거대한 대중 동원이 일어났다. 마오 주석은 “작금의 대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체제를 공고히 다지고 자본주의의 복고를 막아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필수적이며, 가장 시의적절한 조치이다.”며 문화대혁명의 목표를 설정했다.

우리는 두 가지 지점을 강조해서 살펴봐야만 한다. 1) 문화대혁명은 프롤레타리아의 정치권력 강화를 향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발전의 이정표를 세웠다. 이는 혁명위원회를 통해 구체화되었다. 2) 1976년의 반혁명 쿠데타 는 문화대혁명의 무용성을 증명하는 사례가 아닌, 오히려 프롤레타리아 독재제 하에서도 끊임없이 복고와 반복고 간의 투쟁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이는 공산주의를 향한 인류의 거침없는 행군에 있어서 문화대혁명의 필수성을 증명한다.

  1. 세계혁명. 마오 주석은 세계 혁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제국주의가 무너져가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하여, 작금의 세계의 추세가 혁명이기에 대중의 역할이 해가 갈 수록 거대해질 것이고, 결국 그들은 그 누구도 막지 못할 거대한 변혁 역량을 형성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또한 마오 주석은 인류 전체가 공산주의로 나아가거나, 혹은 그 누구도 공산주의로 나아가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제국주의 시대에 대한 특수한 관점 하에, 마오 주석은 “향후 50년에서 100년”이 위대한 역사적 순간이며 현재는 세계 패권을 두고 싸우고 핵전쟁으로 전세계를 위협하는 양키 제국주의와 소련 사회제국주에 대항하는 투쟁이 시작되는 시기라고 규정했다. 마오 주석은 프롤레타리아가 핵전쟁 위협을 규탄하고 양대 제국주의 세력에게 인민전쟁으로 맞서서 혁명을 일으킬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아가, 마오 주석은 피압박국가의 역사적 중요성과 그들의 미래에 대한 관점, 그리고 제국주의의 붕괴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경제적 관계들에 근거하여 “세 개의 세계가 생겨나고 있다.”는 자신의 이론을 내세웠다. 상술한 모든 것은 우리에게 세계혁명을 위한 전략전술을 발전시켜야 할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 가장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마오 주석의 글과 진술은 거의 남겨져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에게 남겨진 아주 적은 양의 문건마저도 우리에게 마오 주석의 놀라운 예견들을 보여주고 있다. 마오 주석이 우리에게 남겨준 예견들은 우리가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이해하고 이에 봉사하기 위해 따라야 할 주요한 원칙들이다.
  2. 상부구조, 이념, 문화, 교육. 이에 관한 문제들은 마오 주석에 의해 날카롭고도 깊게 연구되었으며, 결국 해결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문제에 있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결론적으로, 상술한 논제들은 맑스주의의 더 높은 단계, 즉 세 번째 단계인 마오주의를 이해하려는 누구에게나 다음의 사실을 명백히 증명하고 있다 : 오늘날 맑스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맑스-레닌-마오주의자, 즉 마오주의자가 된다는 것만을 의미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를 두 가지 질문으로 이끈다.

마오주의의 핵심은 무엇인가? 마오주의의 가장 핵심적 영역은 바로 정치권력의 문제이다. 어떤 정치권력인가? 프롤레타리아를 위한-프롤레타리아의 독재권력, 즉 공산당이 이끄는 무장집단에 의한 정치권력이다. 더욱 명백히 말하자면, 마오주의의 핵심은 1) 민주혁명 단계에서 프롤레타리아가 영도하는 정치권력, 2) 사회주의 건설과 문화혁명의 국면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한 정치권력, 3) 인민전쟁 시기에서 공산당이 이끄는 무장집단, 즉 인민군에 기반하는 정치권력이다.

마오주의란 무엇인가? 마오주의는 맑스주의의 세 번째 단계이며, 제국주의가 붕괴해가고 혁명이 일어나는 시대의, 또한 프롤레타리아가 민주혁명을 영도하고 문화대혁명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사회주의를 강화 발전시켜가는 시대의 맑스주의이다. 마오주의는 현대 수정주의에 대한 가장 거침없는 투쟁을 통해 맑스주의의 가장 지배적 조류가 되었다.

  1. 마오주의를 둘러싼 투쟁들. 마오주의를 둘러싼 중국 내에서의 투쟁은 1935년, 마오 주석이 중국공산당의 지도자로 취임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우경 노선이 득세하고 있던 1969년 중국공산당 제5차 당대회는 문화대혁명을 총결산하면서 처음으로 당이 맑스레닌주의-마오쩌둥 ‘사상’의 지도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적인 영역에서 마오주의는 1950년대부터 영향력을 지니기 시작했지만 문화대혁명을 계기로 비로소 영도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후 마오 주석은 맑스주의의 세 번째 단계인 맑스레닌주의-마오쩌둥 ‘사상’의 창시자로 떠받들어졌다. 마오주의는 세계적으로 현대수정주의와 첨예하게 맞섰고, 이들을 폭로했으며, 이러한 투쟁은 중국공산당 내부에서도 수행되었다. 국제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의 가장 높고 새로운 세 번째 단계인 마오 주석의 붉은 깃발은 높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오늘날 마오주의는 소련 수정주의, 중국 수정주의, 알바니아 수정주의의 삼면 공세에 직면해 있다. 또한 맑스주의에 대한 마오 주석의 공헌을 인정하는 자들 중에서도 맑스주의가 아직 맑스레닌주의의 단계에 머물러있다고 믿거나, 맑스레닌주의-마오쩌둥 ‘사상’만을 수용할 뿐 마오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도 존재한다.

고르바초프, 덩샤오핑, 라미즈 알리아 , 혹은 카스트로의 지도를 받는 페루 수정주의자들은 지속적으로 마오주의를 공격해왔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반마오주의자, 반맑스주의자, 가짜 맑스주의자, 기회주의자들이 집합해있는 소위 ”연합좌파” 뿐만이 아니라 ”페루 공산당”(이 글을 쓴 주체가 아닌 다른 정당) 을 자칭하는 델 프라도 일당들의 수정주의에도 맞서 그들을 규탄하고 폭로해야만 한다. 일전에 덩샤오핑을 비난하며 스스로를 ”위대한 마오주의자들”이라 선언한 델 프라도 일당은 이제는 덩샤오핑의 수족이 되었다. 우리의 과제는 수정주의자들에 맞서, 그들을 마오주의를 증명해내는 거울로 삼고, 인민전쟁의 발전과 민주혁명의 승리를 위해 노력하면서 끊임없이 저들과 투쟁하는 것이다. 이는 전략적인 차원에서 불가피한 과제이다.

1966년, 곤잘로 의장이 당의 재건을 목적으로 설립한 분파에서 시작된 현 페루공산당은 오랜 시간에 걸쳐 맑스-레닌-마오주의를 받아들였고 그 기치를 높이 들어올렸다. 인민전쟁을 거치며 우리는 마오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맑스-레닌-마오주의를 지지하고 이를 실천할 것을 엄숙히 서약했다. 우리는 마오주의를 세계혁명의 영도이념으로 자리잡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왔다. 마오주의는 진정한 붉은 깃발이자 불멸하는 승리의 보장이다. 프롤레타리아와 피억압국가, 전세계의 민족들은 그들 각자의 거침없는 싸움 속에서 영원한 황금빛으로 빛나는 공산주의를 향해 행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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