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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반미’를 해야하는 이유
그리고 우리가 건설해야 할 조직의 모습
2025년 여름, 나는 제8기 대학생 통일 대행진단에 참여하였다. 벌써 80년이나 지나버린 분단된 조국을 마주하며, 80년이라는 시간 동안 미국에 종속된 내 조국의 모습을 직시하며, 자주적인 통일 조국에 대한 열망을 가지게 되었다.
이번 대행진단은 단순한 견학이나 체험 활동이 아니었다. 대행진단 기간 동안 외쳤던 구호들인 한미연합훈련의 중단, 미국의 내정간섭 반대, 내란세력 청산, 조국통일의 실현은 모두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한 모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
대행진단의 일정 중 가장 먼저 접하게 된 것은 한미연합훈련의 현실이었다. 내가 자란 환경에서 한미연합훈련은 ‘국가 안보를 위한 필요 불가결한 조치’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 훈련이 실제로 한반도에서의 전쟁 위기를 어떻게 고조시키고 있는지, 한반도 전체 주민들의 삶에 어떤 공포를 안겨주는지를 구체적으로 접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특히 군사훈련의 시뮬레이션 내용이 북측 체제 붕괴를 전제로 하거나, 대규모의 선제타격 시나리오를 포함한다는 사실은 반드시 이 훈련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만들었다. 이것이 단순한 군사 훈련이 아니라, 실질적인 ‘전쟁 연습’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자, 나는 한반도의 미래가 미국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위기감을 뼈저리게 느꼈다. 또한, 포천에서의 한미연합훈련 중 오폭 사고를 자세하게 접하면서 한미연합훈련이 단순히 한반도의 긴장을 강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 삶에 위협을 준다는 공포감 또한 강하게 느꼈다.
군사적 위협 속에서 살아가는 북측 주민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공감하게 되었고, 우리의 안보 논리가 그들에게는 어떤 공포로 작용하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분단은 단지 선을 그은 것이 아니라, 적대감의 감정을 체화시키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조장하는 대표적 사례가 바로 이 반복되는 한미연합훈련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분노와 책임감을 동시에 느꼈다.
대행진단의 일정 중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대한 교양도 많이 있었다. 나는 한국이 나름대로 주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욱 심각하게 우리나라가 미국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시작전통제권이 여전히 한국군에 없다는 사실, 그리고 한미연합훈련을 포함한 주요 안보 정책의 결정권이 실질적으로 미국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은 나에게 깊은 회의를 안겨주었다. 이것은 단지 군사적 문제를 넘어 국가 주권의 문제, 더 나아가 우리 국민이 결정해야 할 미래에 외세가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현실이었다. 문재인 정부 시기 있었던 협상들에 대하여 트럼프가 “그들은 우리의 승인 없이 아무것도 못할 것”이라고 말한 것과, 9.19 군사합의 이후 한미워킹그룹을 만들어 진행된 미국의 압박은 미국을 끊어내지 않고서는 평화도, 협상도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했다.
“통일은 우리 민족끼리 이루어야 한다.” 이 말이 그 어느 때보다 실감났다. 그러나 그 ‘우리끼리’라는 말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동시에 절감했다. 미국은 분단 체제를 관리하고 있으며, 때때로 남북 사이의 대화와 협력 시도를 제한하거나 방해해 온 당사자였다. 이런 현실을 마주하면서 나는 분노와 무력감을 동시에 느꼈고,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도권을 우리가 되찾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새롭게 가지게 되었다.
캠프 험프리스와 군산 미군 기지에서 했던 투쟁이 인상 깊었다. 미군의 기지를 보호하기 위해 깔린 수많은 우리 경찰들의 모습에서 나는 이 나라가 누구의 나라인가에 대한 의문과 분노를 가지게 되었다. 대추리의 대한민국 국민들을 쫓아내기까지 하면서 세워진 캠프 험프리스 담벼락에 계고장 하나 붙일 수 없는 현실은, 너무 참담했다. 그러나 함께 하는 동지들을 보면서, 참담함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희망도 함께 보았다.
이번 대행진단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또 다른 주제는 내란세력 청산의 과제였다. 군사독재와 학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은 이들,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내세워 집권하였고 그들은 검찰을 통하여 반대 세력을 제압하려다가 되지 않자 25년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국민들을 죽이고 다시 한 번 이 땅에 독재 정권을 세우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을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북한을 끊임 없이 도발하고 긴장 상 태를 유도했다. 이들의 당사에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진행한 기억이 난다.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무서웠는지, 정문 앞 기자회견부터 경찰을 엄청나게 배치하고, 극우 세력들이 방해하던 것이 생각난다.
자신들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두렵다는 것은, 그들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계엄에 대하여 사과하지도 않고, 그것에 항의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듣기 조차 무서워하는 이들의 모습에 자신감이 생겼다.
이번 대행진단의 마지막 주제였던 ‘조국통일’은 앞선 모든 문제를 관통하는 핵심이었다. 통일이라는 단어가 때로는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 과정과 내용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면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없는 주제임을 느꼈다.
조국통일은 단지 제도적 통합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남과 북의 구성원이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를 회복하며,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이번 대행진단을 통해 통일이 단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실현해야 할 역사적 책임이라는 점을 더욱 확고히 인식하게 되었다.
특히, 통일 문제를 남북만의 문제로 국한시키지 않고,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어떤 원칙을 세워야 할지를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많았던 점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고민의 바탕에는 청년의 역할과 책임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 세대가 이 문제에 눈을 감고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면, 통일은 그저 ‘미완의 과제’로 남고 말 것이다.
대행진단의 4박 5일 동안, 나는 수많은 감정을 경험했다.. 처음에는 막연한 흥미로 참여했던 일정 속에서 나는 불안, 분노, 좌절, 반성, 다짐이라는 감정의 굴곡을 고스란히 경험했다. 무엇보다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반미 투쟁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에 대한 반성”이었다. 통일 문제를 말하면서도 나는 그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내 나라의 주권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대행진단은 그런 나 자신과 마주하게 했고, 이제는 ‘알고 말하는 사람’이 아닌 ‘행동하는 청년’이 되어야 한다는 각오를 심어주었다.
또한 대학생 통일 대행진단은 단순한 활동이나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에게 새로운 시선을 제공한 ‘사건’이었고, 이후의 삶에서 어떤 입장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순간이었으며 내가 만들고자 하는 조직과 공동체의 이상향의 목격 순간이었다. 매일 밤 오늘의 모범 조원을 추천하고, 모두가 서로를 위해서 일하고자 하는 모습도 강하게 마음 속에 남았다. 떠넘기지 않고, 서로가 기꺼이 서로를 돕는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내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속하게 되는 모든 공동체가 그런 모습이 되기를 바라게 되었다. 이 또한 대행진단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치열하게 실천하는 이들과 함께하면서 나는 이제 내 꿈은 조국통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조국통일을 말하는 사람으로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그 길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와 같은 청년들이 이 길 위에 계속해서 서 있을 때, 우리 민족의 통일은 언젠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이다. 그 희망을 잃지 않으며, 나는 앞으로도 통일의 길을 향한 작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 웹진 반란의 편집자들과 독자들도 이 길에 함께 해주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