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맑스-레닌주의의 일반적 한계-1
맑스-레닌주의의 교착상태
‘새공산주의운동’은 신좌파에 대한 필연적인 응답으로서 나타났고, 소련이 아닌 중국 노선을 따르며 계급혁명을 다시 중심에 위치시켰다. 그러나 새공산주의 운동은 여전히 거의 한계에 다다른 지형으로부터 이론적 파열을 생산해낼 수 없었다. 1980년대 중국이 휘청거리기 시작하면서, 그 뒤를 따르는데 그쳤던 새공산주의운동은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일부는 해체했고, 일부는 계속하여 투쟁하였고, 일부는 방향을 전환하였다.
앞서 논한 바와 같이 이 이단적 운동이 마오주의로서의 마오주의를 이해하고 있었다고 파악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들은 소련 대신 중국에 충실하다는 점에서만 마오주의자였다. 아직 중국 혁명이 실패의 순간에 다다르지 못했기 때문에, 이들은 마오주의를 혁명과학의 발전으로 세우지 못했다. 이 불가능성이 반수정주의 운동의 붕괴를 조건지었다.
이 ‘잃어버린 10년’을 자본주의 승리에 적응한 소수의 조직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실패의 시기로 규정하는 것은 유혹적이다. 그리고 이 적응에는 페루 인민전쟁과 RIM의 창설을 받아들이는 것이 포함될 것이다. RCP-USA는 당대의 모호한 마오주의를 맑스-레닌-마오주의로 교체함으로서 새공산주의운동을 살려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CP-USA는 곧 흔들리게 될 것이다. 이들은 이제 마오주의를 거부하는 유사종교적 섹트로 전환되었다. 이 RCP-USA가 교착상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교착상태는 무엇이었으며, 왜 반수정주의 시기는 그렇게 철저히 무너졌던 것일까? 많은 조직들이 마치 하룻밤만에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리고 많은 중요한 조직들이 이 해체를 평가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답하는 것은 쉽지 않다. 캐나다의 중요한 반수정주의 정당인 WCP는 그 예시 중 하나인데, 해체의 이유를 공개 문서에서 밝히지 않았다. WCP는 캐나다 혁명운동에서 다른 새공산주의운동 조직인 엔 루테(En Lutte)와 더불어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거의 잊혀졌다.
미국의 조직인 공산주의노동자그룹(맑스-레닌주의)는 검토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당대의 다른 조직들과 비교했을 때 더 크거나 영향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해체 과정에서 생산된 문건은 전체로서의 운동에 대해 중요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톰 클라크(Tom Clark)의 책 『국가와 반혁명』(The State and Counter-Revolution)은 이 시기에 대한 공산주의노동자그룹(맑스-레닌주의)의 요약으로, 무엇이 반수정주의적 맑스-레닌주의의 주요모순인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 혁명과학의 레닌주의적 단계가 다다른 경계가 바로 그것일 것이다. 불행하게도, 클라크와 그의 조직은 맑스-레닌주의만을 파악하는데 그쳤기 때문에, 그들은 한때 받아들였지만 결국 불완전한 것으로 파악하게 된 운동의 한계에 대한 검토를 하는데 그쳤다. 마치 뉴턴 패러다임이 한계에 다다르게 된 시기 물리학자들이 문제의 존재는 알았지만, 이러한 문제가 향후의 파열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것을 몰랐던 것처럼, 이들은 모순으로서 운동의 불완전성을 그저 해석하는데 그칠 수밖에 없었다.
가능한 모순
클라크와 그의 조직이 느꼈던 모순이 맑스-레닌주의에 내재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국가와 반혁명』을 길게 인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공산주의가 비록 공식적으로는 노동계급의 정치적 교리였지만, 주요 이론가들과 가장 활동적인 지지자들의 대다수가 노동계급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이 이 모순을 구성한다. 사회주의 이론에 따르면 노동계급이 정치적이고 조직적인 지도력을 프티부르주아지 내부의 동맹에 제공해야하지만, 실제로는 프티부르주아지로부터 나온 이데올로그들이 노동계급의 정치화와 조직화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 이 계급모순은 노동대중이 그들의 실제적인 계급적 위치와 이해관계에 대해 과학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며, 따라서 그들의 자발적인 노동조합 투쟁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틀 내에서의 작은 개혁과 양보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논리적 전제에 의해 다루어지고 있다. 레닌이 언급한 것처럼, 혁명적 이론 없이는 혁명적 운동이 존재할 수 없다, [...] 그러나 [사람을] 멍청하게 만드는 노동과 삶의 조건을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공유하고 있었고, 이는 그들로 하여금 복잡한 정치이론을 창안하는데 필수적인 학술적, 과학적, 조직적 기술과 그것을 적용시키는데 필요한 시간을 갖지 못하게 만들었다. 사회주의자 지식인들은 특권적인 사회적 지위로 인해 필요한 지적 훈련과 여가시간을 가진 이들, 즉 자신들에 의해 정치적 지식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 선진노동자들은 처음에는 사회주의 이론의 첨단(尖端)에 익숙하지 않았고, 정치적 학습을 위해 지식인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운동의 주요 원칙들을 결정하고 정치적 활동의 지침을 세운 것은 지식인들이었다. [...] 노동자들의 객관적인 혁명적 잠재력은 억압받는 계급으로서의 사회적 위치와, 생산에서의 전략적 역할, 사회적으로 조건지어진 집단성과 규율의 작용이지만, 인텔리겐치아는 일관된 혁명적 전망을 보장하는 물질적 또는 사회적 조건에 대해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반대로, 급진적 지식인들로 하여금 사회주의 이론의 주요 원칙들을 형성할 수 있게 해준 바로 그 사회적 특권이 그러한 원칙들을 종국에 둘러싸고 압도하게 된 다양한 기회주의적 시각을 낳기도 했다. [...] 사회주의 운동 내의 별개의 경향들이 반대자들의 이러한 점을 인정하고 격렬한 논쟁과 상호비난 속에서 서로를 ‘소부르주아 기회주의’로 비난할 수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이 전체 운동에 해당한다는 것을 인정하려들지 않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클라크가 보고있는 모순이 변증법적 의미에서의 모순이라는 것이다. 즉, 비이성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파악되고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클라크는 단순히 전직 혁명가로서 맑스-레닌주의를 총체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가 극복되어야 하지만, 극복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만약 클라크가 단순히 맑스-레닌주의를 틀린 정치[노선]으로 거부한 것이 아니고, 이론적 재발명을 지지한 것이라면 그가 주장한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그 핵심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 노동조합에 사로잡히게 된 계급은 그 자체로 혁명정당과 일관된 혁명이론을 생산하지 못하고, 경제주의(‘노동조합주의적 의식’) 또는 반항적인 아나키즘만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우리는 맑스-레닌주의 철학에 대한 알튀세르의 분석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는데, 그는 노동에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하는 노동계급이 노동계급의 지배이데올로기에 따라서만 반란을 상상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 노동계급에게 다가가는 혁명정당은 프티부르주아지로 구성되는 경향이 있다. 이들만이 이론과 혁명에 대해 빈틈없는 평가를 내릴 수 있었는데, 그들이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노동자들과 달리, 학생이나 학자가 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사회적 특권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레닌이 카우츠키의 주장, 즉 당이 프티부르주아지에 의해 시작된다는 것에 동의했다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지식인들에 의해 시작된 당은 프롤레타리아가 자본주의의 매장인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 역시 지식인이 될 수 있도록 혁명적 이론을 전달하여야 한다. 노동자들은 혁명과 혁명적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 지식인들에게 의존해야 한다.
- 노동자들의 지적 발전은 프티부르주아 교육자에 의해 결정된다. 노동자들이 제대로 배우고 있는지, 무엇을 먼저 배워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프티부르주아 지식인들이다. 따라서 모순의 맹아가 발생한다. 프티부르주아 계급이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에 대해 권위를 가지게 되지만, 어떻게 계급적 위치가 프티부르주아지인 이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과 이데올로기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 프티부르주아지는 운동을 담당한 채로 남아있으며, 그들의 전망은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로 오인되어진다. 반혁명은 정확히 맑스-레닌주의 운동의 프티부르주아적 기반에 의해 발생한다.
위의 주장은 다음의 모순으로 요약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적 이데올로기를 견지하는 혁명정당을 자발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른 한편으로 프티부르주아에 의해 대신 발전된 정당이 혁명을 완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핵심은, 맑스-레닌주의가 올바른 한편으로 맑스-레닌주의가 틀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을 분석하는데 앞서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가 맑스-레닌주의, 특히 전 스승이었던 루이 알튀세르에 의해 철학적으로 묘사된 맑스-레닌주의를 지난 몇십 년간 비판해왔던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맑스주의, 특히 레닌주의적 변종에 우려를 표했던 랑시에르는 “노동계급 정체성의 다른 정의”를 발굴해내는데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냈다. 맹아적인 마오주의의 통찰에 영향받았던 랑시에르는 맑스-레닌주의의 문제를 파악할 수 있었지만 맑스-레닌-마오주의로 나아가는 대신 자생성주의와 접근성이 떨어지는 역사적 분석을 혼란스럽게 받아들였다. 저자는 랑시에르의 분석보다 접근가능성이 높고 더욱 정교하기 때문에 클라크의 덜 유명한 분석을 선택한 것이다.
변증법적인 것으로서의 맑스-레닌주의의 모순
여기서 클라크에 의해 강조된 모순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멈출 필요가 있을 것이다. 종종 과거 시대의 투쟁들에 내재한 교조주의에 사로잡혀 우리는 종종 쉽게 이 시대에 대한 비판을 거부한다. 클라크의 비판에도 수많은 단순한 거부들이 존재할 수 있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운동에 혁명적 정치를 도입하는 지식인들이 본질적으로 ‘프티부르주아지’인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기각일 뿐이다. 우리는 클라크 자신이 프티부르주아 지식인이고, 그 자신의 불평으로 인해 그의 분석이 약화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그저 말놀이에 불과하다.
저자는 클라크가 지적한 모순이 반수정주의적 공산주의의 시기와 그 한계에 대한 비판으로 기능할 수 있으며, 이 모순과 변증법적으로 통일된 마오주의 파열의 필연성에 대해서 말해준다는 점에서 극도로 중요하다고 평가한다. 따라서 이 모순은 마오주의적 파열에 의해 생산된 철학적 개입을 통해서만 대답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진퇴양난은 기각되거나, 모순의 한쪽만을 승인하는 방식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혁명정당의 자생적 발전과 프티부르주아 지식인에 의한 당의 강제된 실행 양자가 올바른 혁명운동을 생산해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모순이다. 전자는 불가능하며, 후자는 반혁명적이다.
우리는 다양한 비마오주의 맑스주의 조직들이 이 모순을 비일관적이게나마 이해하고 있었고, 궤변적인 방식으로 해답을 시도해왔다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헬 드레이퍼(Hal Draper)의 이론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socialism from below)는 조직된 노동계급이 자생적인 노동조합의 투쟁을 통해 당을 건설할 수 있다고 보았지만, 이러한 일은 실제로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고, 모호한 선동 이상의 전략으로 추구될 수 없을 것이다. 드레이퍼주의 이외에도, 자신의 특권을 인지한 전직 지식인들로 구성된 ‘선교사’ 정당들(missionary parties)도 있다. 이들은 자신의 구호와 강령을 내걸고 노동계급이 ‘올바른 노선’을 깨닫기를 기다리는데 모든 시간을 사용한다. 반세기가 지날 때까지, 이들은 여전히 기다리기만 하고 있다.
클라크의 조직이 새공산주의운동의 다른 조직들에 비해 덜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 모순이 별로 분석할 가치가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국가와 반혁명』에서 제기된 혐의들을 피해가는, 부정직한 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산주의노동자그룹(맑스-레닌주의)보다 더 중요한 조직들도 같은 모순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 문제를 해결할 에너지나 시간이 없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캐나다의 반수정주의 시기의 두 중요한 조직 중 하나였던 WCP 역시 클라크의 모순과 비슷한 어떤 것을 해산을 요약한 문건에서 언급하고 있다. 『WCP에 대한 요약의 요소들』(Elements of a Sum Up of the WCP)에서 간부단(the caucus)은 조직의 해산에 있어 “당지도부와 최고 간부들의 사회적 구성”이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클라크의 모순은 중요한 것으로 남아있게 된다. 이 교착상태로부터 어떠한 조직도 벗어날 수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 모순은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누가 결정하는가?
앞서 저자는 마오주의의 이름과 개념의 차이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톰 클라크의 책 『국가와 반혁명』은 이름과 개념의 차이가 갖는 중요성을 증명하여준다. 한때 ‘마오주의자’로 정체화했던 클라크의 조직은 그 이름에 해당하는 의미를 이론화할 수 없었다. 여전히 맑스-레닌주의의 마지막 단계에 갇혀 있었지만, 『국가와 반혁명』은 ‘마오주의’가 맑스-레닌주의의 다른 표현에 불과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조직들과 마찬가지로 클라크의 조직은 중국혁명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고, ‘마오주의’를 신민주주의 혁명의 원칙들로 축소시킬 수밖에 없었다.
만약 클라크와 그의 조직이 중국혁명에 대한 철저한 평가를 제시할 수 있었더라면, 그들은 이 모순의 해결에 필연적인 요소들을 포착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문화대혁명기에 대중들은 고삐에서 풀려났고, 프티부르주아 지식인들은 하방을 떠나게 되었다. 클라크가 지적한 모순은 사회주의에 필연적인 모순으로 판단되었고, 그러한 이유에서 사회주의가 왜 계급사회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판단내려질 수 있었다.
오늘날의 마오주의자들에게 문화대혁명은 신민주주의의 한정적인 중요성을 무색하게 하는, 보편적 중요성을 지닌다. 이는 새공산주의운동 시기의 반수정주의자들이 문화대혁명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공정하게 평가하자면, 클라크의 책은 포스트 68 공산주의 운동에 극도로 영향력이 있었던 문화대혁명을 다루지 않았다는 점에서 특기할만 하다. 어떻게 새공산주의운동에 문화대혁명이 비추어졌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 이것이 혁명이론의 보편적 발전으로 이해되기 시작하는지다. 우리는 문화대혁명에 대한 이론을 맑스-레닌주의의 모순과, 혁명과학의 현 단계에 대한 도전의 필연성에 대한 인식으로 여겨야 한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사회주의 시기를 부르주아가 당내에서 출연하는 시기로 인식하는 것이고, 대중들에게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 ‘프롤레타리아독재하에서의 계급투쟁’을 주장하는 마오주의자들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당내의 특권적 지식인들에게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클라크보다 더 멀리 나아간다. 프티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 이전의 ‘상식’이었고, 노동자들은 이 가치 아래에서 사회화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이데올로기들은 전체 사회주의 시기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제는 경제주의가 중요한 문제가 아닌 사회주의 건설기에도 노동자들은 공산주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프티부르주아 지식인들에게 대항하여 동원되어야 한다.
문화대혁명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클라크의 책은 거부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마오주의자들을 당혹스럽게 할 수 있는 질문들을 던져야 한다. 왜 마오는 문화대혁명 동안 책임을 지지 않았는가? 왜 마오와 그의 충실한 추종자들의 일부는 당 지도부에 대한 포격에서 벗어나 특권을 누렸는가? 우리는 마오를 넘어선 마오주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클라크의 비판이 갖는 중요성을 인지해야 한다.
파열로서의 레닌주의
클라크의 모순이 어떻게 레닌 이전의 맑스주의보다 맑스-레닌주의에 관련이 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가와 반혁명』의 초반부에서 클라크는 레닌주의 국가론이 근본적으로 레닌주의적 혁명이론의 발전에 속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레닌의 논쟁이 파리코뮌에 대한 엥겔스의 해석에 기반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론은 맑스와 엥겔스에게 일관되게 전개되지는 않았다. 클라크는 레닌이 자신의 국가론이 맑스와 엥겔스로부터 바로 도출된 것인 양 보이게 했다고 보았다. 클라크는 레닌이 당대 기회주의자들(카우츠키와 동조자들)을 인용할 때 그들의 프티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무자비하게 다룬다고 말한다. 한편 레닌은 맑스와 엥겔스에게는 동일한 비판 기준을 적용하지 않으며, 기회주의자들을 공격하기 위해 그들의 권위적인 통찰력에 의존한다. 레닌은 맑스와 엥겔스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념을 제공하는 전략적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들의 계급적 위치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어야 했다.
우리는 레닌이 자신의 국가론을 맑스와 엥겔스로부터 직접 도출했다고 믿었다는 클라크의 추정이 왜 그런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오히려, 클라크는 레닌의 논쟁이 갖는 수사적 형태를 개념적 내용과 동일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맑스와 엥겔스에 대한 레닌의 충실성을 다루는 같은 장에서 클라크는 맑스와 엥겔스에게 『국가와 혁명』과 같은 일관된 국가론이 부재했다고 주장한다. 이 불협화음은 중요하다. 만약 레닌이 맑스와 엥겔스가 국가에 대해 저술한 모든 것을 읽을 수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자신의 통찰이 맑스와 엥겔스의 통찰과 동일하다고 믿었다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가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인다. 레닌은 아마 그가 강조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선택적이라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레닌은 카우츠키나 베른슈타인이 그랬듯, 맑스와 엥겔스의 ‘권위’를 수사적으로 이용하여 이단적인(heterodox) 이론적 발전을 방어한 것일 테다.
우리는 과학에 있어 모든 파열이 연속성 속에 위치한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파열은 이전의 이론적 단계의 일반적 개념들을 동원하고, 당대의 모순을 넘어서는데 불충분했던 사상가들의 맹아적 통찰로부터 살아있는 이론의 발전을 도출해낸다. 『국가와 혁명』에서 레닌이 수행한 것은 연속성의 행위가 아니라, 맑스와 엥겔스가 넘어서는데 실패한 경계를 넘어서는 파열의 행위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역사적 유물론에서 이론적 파열을 생산하는데 실패한 다른 시도들과 마찬가지로 레닌의 시도를 이론적으로 막다른 길에 도달했다고 평가해야 한다. 여러 정돈되지 않은 비판과 분석에도 불구하고 맑스와 엥겔스는 진정으로 일관된 혁명 전략을 생산하는데 불충분했다. 우리는 맑스와 엥겔스가 그러한 일관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레닌 덕분이라고밖에 상상할 수 없다.
따라서 클라크의 모순은 맑스와 엥겔스의 분석에 내재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맑스-레닌주의와만 관계가 있다. 레닌이 『국가와 혁명』의 이론을 방어하기 위해 수사적으로 맑스와 엥겔스를 동원하는 것은 그가 다른 곳에서 이들을 인용하는 방식이 의도적으로 선택적이라는 점과 모순된다.
클라크의 모순을 레닌 이전의 맑스주의가 아닌 맑스-레닌주의에 위치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전체 과학(entire science)를 문제삼을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맑스와 엥겔스는 정말로 프티부르주아였을지도 모르며,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에 대한 일관된 이론, 즉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전술을 생산해내지 못했다. 대신 그들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필수적인 역사과학을 만들어내었고, 모든 역사가 계급투쟁의 역사라는 것을 포착하였다. 맑스와 엥겔스는 혁명적 필연성을 분석하고 공산주의 조직의 초기적 형태를 만들어냄으로서 혁명적 필연성에 이데올로기적인 내용을 제공하였다. 이것은 왜 『공산당 선언』이 프롤레타리아를 만들어내는 역사에 대해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하여 설명하지만, 이 계급의 이데올로기적 내용과 혁명 전략에 대해서는 짧게 설명하는데 그치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공한다. 파리코뮌에 대한 분석은 약간의 비일관적인 통찰을 제공하지만, 클라크가 지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반이론을 형성하는데에는 불충분했다.
따라서 클라크의 모순은 프롤레타리아 전략과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를 이론화하지 못했던 맑스와 엥겔스에게 적용될 수는 없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전략적 내용을 이론화하는 것을 방해했던 맑스와 엥겔스의 특권적인 사회적 위치는 그들이 자본주의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제공할 수 있었던 바로 그 이유였다. 맑스와 엥겔스의 경계는 다른 모순에 의해 규정되었고, 레닌은 그 모순을 해결하였다. (이에 대한 증명은 러시아 혁명이 세계사적 혁명이라는 사실에 있다.) 하지만 그러한 모순의 해결은 클라크가 정확하게 파악한 것과 같은 새로운 모순을 만들어내었다.
따라서 저자는 레닌 자신이 혁명적 전략에 있어 맑스와 엥겔스의 이론을 완벽하게 대표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는 카우츠키가 자신의 입장을 밀어붙이기 위해 맑스와 엥겔스의 다른 구절들을 활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당대의 공산주의 운동 전체는 맑스와 엥겔스의 서로 다른 측면들을 강조한 다양한 경향들의 혼란 그 자체였다. 왜 레닌이 특정 구절을 강조하였는지는 그의 관심대상(계급혁명과 그것을 달성하는 방법)과 수사적 능력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레닌이 한 것은 파열에 영향을 준 이론적 작업을 하는 것이자, 맑스와 엥겔스의 맹아적 통찰에 대한 호소를 통해 파열에 영향을 주는 과정에서 연속성을 강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파열은 맹아적 통찰을 강조했다는 점에서만 연속적인 것은 아니다. 이론적 파열을 강제하는 과정에서 레닌은 맑스와 엥겔스의 방법론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이 연속성-파열의 순간은 러시아의 세계사적 혁명 이후에 비로소 증명될 수 있었다.
레닌주의 정당의 구성
클라크의 모순은 혁명과학의 기초, 즉 맑스와 엥겔스가 정초한 역사적 유물론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최초의 전략적 적용에는 영향을 주었다. 그렇다면 질문이 되돌아온다. 레닌은 혁명전략에 관해 단순히 맑스와 엥겔스의 프티부르주아적이고 비일관적인 반영을 단지 적용한 것에 불과한 것인가? 레닌은 ‘노동조합주의적 의식’이 ‘혁명적 의식’을 생산하는데 불충분하다는 점에서 프티부르주아 지식인의 정당을 주장한 것일까? 레닌주의의 최종적인 결과는 본디 프티부르주아 이론가들의 통찰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반혁명으로만 이어지는가? 마지막 장에서 다루게 될 레닌주의 정당의 보다 큰 한계는 내버려두고, 일단은 이 잠재적인 모순에만 집중한다.
맑스-레닌주의의 이론적 한계에 관한 한 클라크는 옳다. 조직된 투쟁정당에 대한 레닌의 이론화가 프티부르주아 맑스주의 지식인의 정당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적어도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부에서는 여전히 구체적인 상황이 맑스-레닌주의적 실천을 만들어낸다는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사실 레닌의 조직론은 종종 혁명적 지식인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이론으로 이해되어왔다. 왜냐하면 지식인들은 혁명과학과 구체적인 상황을 연구할 시간과 수단을 가졌기 때문이다. 프티부르주아 몽상가들의 유치한 환상은 이러한 맑스-레닌주의 해석에 의해 정당화된다. 대학에 작고 교조적인 ‘전위’ 조직들이 그렇게 많은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문제는 제쳐두더라도, 레닌이 특권적 지식인들에 의해 지도되는 정당을 주장했다고 보는 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오독한 것이다. 레닌이 카우츠키에 동의한 것은 당이 지식인들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지, 지식인에 의해서만 당이 지도되고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차르정 하에서의 지식인과 학생들은 특권과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크가 불만을 가지는 것은 이러한 전위당 해석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발견될 수 있고, 또 실제로 역사적으로 맑스-레닌주의자들에 의해 유지되어왔기 때문이다. 만약 혁명적 이데올로기가 외부로부터 도입되어야 한다면, 우리는 경제주의에 의해 생산된 이데올로기를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이들이 프롤레타리아 밖에 존재하는지 질문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이 대중에게 혁명적인 이데올로기를 가져올 정당을 구성하고 정의하는가?
정당 구성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대신, 특권적 지식인에 의해 정당이 시작되었다고 추정하는 것은 종종 자연스럽다. 게다가, 이는 역사적으로 존재해온 혁명정당과 기획들에 대한 완전히 잘못된 평가도 아니다. 맑스-레닌주의는 역사적 한계에 도달했을 때, 전위당에 대한 이러한 해석에 실제로 영향을 받았다.
만약 우리가 클라크의 모순을 변증법적인 것으로 평가한다면, 맑스-레닌주의의 계기에는 자생적으로 혁명적인 것과 반혁명적인 것이 내재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맑스-레닌주의가 실패인만큼이나 성공적이었다는 것, 중국혁명에서의 완성이 한계를 증명하고 과학의 새로운 단계에 대한 개방을 제공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맑스-레닌주의에는 혁명 정당의 합리적 핵심이 지식인들에 의해 구성될 필연성에 대한 정확한 무언가가 존재한다. 결국 혁명운동이 실천을 통일할 수 있는 이론을 가지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사회적 상황이 무엇인지, 그 계급 구조가 내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러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어떻게 논리적으로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철저한 평가가 필요하다. 자신의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는 혁명적 전략에 대한 유용한 어떤 것도 제공할 수 없다. 역사가 가르쳐준 것처럼, 어떤 모델이 적용되어왔던 사회적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그 모델을 특정한 사회적 맥락에 적용하는 것은 곧바로 실패를 낳는다.
『네팔에서의 인민전쟁과 여성해방』(People’s War and Women’s Liberation in Nepal)의 저자 히슬라 야미(Hisla Yami)는 클라크의 모순과 같은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야미는 혁명과학이 구체적 정세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제공하는 지식인 특권층에 의해 발전할 때 가장 억압받고 착취받는 이들이 동일한 분석을 해낼 수 없다면 반혁명의 가능성은 중요한 위험으로 상존한다는 점을 인지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특권층은(야미의 맥락에서, 그리고 대부분의 맥락에서 남성들은) 착취받고 억압받는 이들보다 혁명에서 잃을 것이 더 많았다. 이러한 초기 이론가들은 혁명이론에 대해 깊은 이해로 무장하지 않는다면 빠르게 반혁명 이론가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클라크의 모순은 쉽게 기각될 수 없다. 야미는 이론의 발전이 구체적 정세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보는 한편으로, 이러한 분석이 가능했던 이들이 특권적 사회적 위치를 점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반식민반봉건의 사회구성체에서 빈농 여성은 빈농 남성과 동일한 교육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
계급문제(I)
어떻게 마오주의가 맑스-레닌주의의 모순을 해결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이것이 어떻게 클라크의 모순과 연결되어있는지에 대해서 분석해야 한다. 클라크의 암묵적 이해가 어떻게 난국으로 이어지는지를 검토하기 전에, 저자는 사회계급이 이해되는 방식에 관하여 논한다. 클라크의 모순은 프롤레타리아가 자신의 의미를 찾고, 프롤레타리아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 외부의 대리자(즉, 정당)를 경유해야 한다는 점, 따라서 혁명적 주체로서의 프롤레타리아는 당을 통한 주체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이러한 점에서 정당은 자기해방을 해야하는 프롤레타리아의 대리물로서 드러난다. 만약 정당이 프롤레타리아 외부에 존재한다면, 어떻게 정당은 프롤레타리아 정치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인가? 만약 프롤레타리아가 당을 통해 의식화된다면, 프롤레타리아는 어떤 정당이 프롤레타리아 노선을 표현하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이러한 명백한 모순도 계급을 본성이나 본질이 아닌 사회적 범주로 취급할 때 드러나는 것처럼 혼란스럽지는 않다.
맑스와 엥겔스에 의한 자본주의 분석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구조가 최종심급에서 생산수단을 소유한 소수의 계급과 노동을 하며 자본주의적 사회가 재생산될 수 있도록 하는 대중 간의 긴장을 통해 결정된다고 보았다. 프롤레타리아 정치는 이러한 과학적 추정에서 파생된다. 기생자들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이들이 지휘권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가치를 생산하는 이들이 지휘하는 사회를 추구하지 않는 정치는 프롤레타리아 정치가 아니다. 이러한 이해에서 맑스는 프롤레타리아의 사회적 분류를 도출해낸다. 자신의 사슬 말고는 잃을 것이 없는 이들은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서 기생적이지 않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가장 많은 투자를 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통찰이 단순히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한계를 넘어서는데 필요한 것에 대한 평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사슬말고는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이 사실에 대해 어떻게 의식적이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고 있다. 이는 단지 자본주의를 전복하는데 필요한 사회적 세력만을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계급은 추상적 분류이며, 과학적 분석은 보편적으로 적용되려면 추상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사회계급에 대한 날 것 그대로의 공식을 구체적인 방식으로 다루고, 맑스의 즉자적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분류가 노동자 계급이 스스로 역사적 사명을 파악할 것이며 어떻게든 구체적인 의미에서 계급을 형성할 것이라는 것을 함의한다고 본다면 잘못일 것이다.
랑시에르가 『프롤레타리아의 밤』에서 주장했던 것처럼, 맑스의 추상적인 공식은 노동자들의 본질적인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들의 삶이 어떠한 것을 의미하는지를 알려주는 것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이다. 랑시에르에게 있어 맑스주의(특히 맑스-레닌주의) 기획은 잘못된 것이다. 맑스주의는 노동계급에게 경험(lived experience)의 의미를 교육하려고 시도하지만, 이는 노동계급 스스로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 의미는 종종 계급투쟁의 맑스주의적 개념화를 거스른다. 프롤레타리아라고 부르는 것이 사실은 단일한 의미로 규정되지 않는 이질적인 노동계급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계급에 대한 맑스의 이론화는 노동자들의 본질적인 의미를 설명하는 것과 관계가 없다. 맑스의 이론화는 자본주의의 한계와 누가 가치를 창출했는지, 이 가치를 창출한 이들이 자신들이 혁명을 통해 잃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어ᄄᅠᇂ게 이러한 한계를 위반할 수 있는지에 대한 평가에 기초한다. 따라서 맑스와 엥겔스가 프롤레타리아를 논할 때, 이는 자본주의가 전복될 수 있는 위치와 이 위치에 기초한 분류를 말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분류가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대한 과학적 평가의 결과이며, 이질적인 노동자 집단의 ‘진정한’ 정체성을 설명하는 시도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만약 우리가 이질적인 노동자 집단이 프롤레타리아를 생산할 것이라 가정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맑스와 엥겔스의 프롤레타리아 정치에 대해 말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너무나 설득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공통의 혁명적 기획으로 통일되지 않는다면 노동계급의 반란은 대부분 경제주의에 의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론적으로 통일되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프롤레타리아 정치를 가져올 수 있는 당은 필수적인 것이 된다. 그렇다면 외부로부터 프롤레타리아 정치를 도입하는 정당은 어떻게 그것에 대해 알 수 있을까? ‘프롤레타리아트’를 사회적 계급으로 이해하게 하는, 역사와 사회에 대한 과학적 평가에서 파생된 정치이기 때문이다. 또한 프롤레타리아 정치는 계급투쟁의 역사, 특히 러시아와 중국의 위대한 두 세계사적 혁명으로부터 배운 정치이며, 사람들에게 혁명의 기억을 가져다 줄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당이 프롤레타리아트를 대체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 당은 프롤레타리아트를 지휘할 프티부르주아 지식인의 정당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쉽게 매수될 수 있는 지식인 계층이 프롤레타리아에게 의식을 가져오고 지휘권을 갖는 혁명적 주체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아니다. 실로 사슬 외에는 잃을 것 없는 이들을 조직하는 힘은, 이 계급이 일단 스스로를 계급으로 의식하게 되었을 때 혁명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있다. 이는 즉, 새로 생겨나는 정당이 전위당이 되려 한다면, 노동계급의 가장 급진적인 요소를 찾고 조직하여 혁명이론을 알고 당을 프롤레타리아당으로 변모시킬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의식적 이해와 혁명의 필연성은 혁명을 지지함으로써 잃을 것이 없는 이들이 더 급진적이고 지속가능한 정치를 가져올 수 있도록 외부에서만 도입될 수 있다. 당은 프롤레타리아를 생산하고, 프롤레타리아는 당을 생산한다.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이러한 이해를 유념했을 때, 당이 되고자 하는 조직은 경제주의가 덜 완성된 층의 노동계급에 집중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계급 전체가 경제주의를 대체해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잃을 것이 많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것을 통해 당 자체가 전위로 조직될 수 있을 것이다. 대중들에게 그들의 경험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가지고 간다는 것은, 대중들의 가장 혁명적인 힘이 작동되었을 때 대중으로부터 운동의 변형이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이론이 그들의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리고 경제주의에 매혹되지 않은 이들을 찾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는 혁명운동의 착취적 기반을 규명하고자 하는 사회조사의 과정 속에서 발견되지만, 프롤레타리아는 이 운동에 모이면서 일관된 계급으로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운동 역시 변형되고,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이해 역시 가장 착취받는 이들로부터 배움으로써 변화된다. 따라서 우리는 조직적인 사회조사의 과정을 통해 프롤레타리아를 개념화하는 운동을 통해서만 프롤레타리아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이때의 사회조사는 착취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에 따라 진행되고 자본주의를 종식시키는 방향이어야 한다. 종국에 우리는 이러한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이해를 혁명운동의 기초로 만들면서 운용할 수 있게 된다.
계급문제(II)
클라크의 모순이 변증법적인 것이 아니라 형식논리적인 것이라 가정해보자. 만약 프롤레타리아 혁명운동이 항상 외부로부터 유입되어야 하는 계급 이념에 의해 오염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이 클라크가 주장하는 모순이라면, 이는 앞장에서는 설명한 것과 다른, 사회적 계급에 대한 정의에 달려있을 것이다.
이 정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주어진 생산양식의 일반적 논리를 이해하기 위해 사용되는 과학적 범주가 아니라, 경험적으로 발견되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러한 정의를 따르면 프롤레타리아는 노동과정의 특정 지점에서 구체적이고 명확한 집단으로 발견된다. 조잡한 의미에서 물질적 장벽인 계급분할은, 특정 계급의 의식이 내부적이며 따라서 외부에서는 이해될 수 없다는 점에서 현실에 대한 카스트적 이해에 더 가깝다. 달리 말해, 경험적인 것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 내부에서만 프롤레타리아트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앞서 랑시에르가 『프롤레타리아의 밤』에서 주장한 바이다.
랑시에르의 좌익공산주의적이고 반구조주의적 통찰은 아주 흥미로운 방식으로 정통 맑스주의자들의 주장과 교차한다. 정통 맑스주의자들 역시 프롤레타리아를 노동계급에 대한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개념화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즉, 생산의 정점에서 노동하는, 노동자들 중 가장 조직된 분파) 정통 맑스주의자들이 랑시에르(그리고 클라크)와 다른 점은 이 계급의 진정한 혁명성을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는 ‘허위의식’을 제거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만약 계급이 이러한 방식으로 이해된다면 랑시에르와 클라크가 옳을 것이다. 어ᄄᅠᇂ게 경험적으로 알려진 프롤레타리아 밖의 누군가가 허위의식을 제거하고자 희망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계급을 이러한 방식으로 정의하게 된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클라크의 모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계급구성에 대한 조잡한 이해의 한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유물론적 이해와는 거리가 멀고, 맑스와 엥겔스 역시 계급을 이론화하는데 있어 사회계급을 신비화하는 것에 처음부터 대항했다. E. P. 톰슨이 지적한 것처럼, 계급이 발견되기보다는 만들어지는 사회적 현상이며, 따라서 더 커다란 사회적 힘에 의존한다는 가정은 맑스주의의 위대한 통찰 중 하나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한 사람의 사회적 위치는 자연의 법칙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적으로 결정된다. 즉, 사회적인 원인들이 강력히 작용한다. 하층 계급은 본성적으로 하층인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산양식의 논리에 따라 억압과 착취로 밀려내려가기 때문이다. 사회를 지도하는 소수는 본성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단지 운이 좋거나 성공적이었을 뿐이다.
따라서 계급에 대한 본질주의적 개념은 전자본주의적 세계관으로부터 계승된 문화주의 때문에, 맑스주의 계급론이 표현하고자 했던 그 복잡성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본가가 될 수 있었던 소수의 노동계급 개인들은 ‘자수성가’의 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를 신성시했지만, 때때로 부르주아 문화에 따라 교육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스스로가 프롤레타리아적이라고 믿으며 박탈의 문화를 취하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리버럴 엘리트’에 대해 말하는 백만장자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러한 엘리트주의가 문해력으로 정의된다는 점에서 이들이 ‘보통 사람’을 대변한다고 상상해볼 수 있다. 동시에 프롤레타리아의 생활수준으로 전락한 지식인 역시 그들이 받은 교육 때문에 비밀스러운 부르주아로 판단될 것이다.
우리가 계급을 문화주의적 태도로 정의한다면, 우리는 외부로부터 오는 당의 개념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당이 모으고 완전하게 하고자 하는 혁명적 주체를 말하는데 있어 그러한 당은 불충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질주의적/문화주의적 이해는 일종의 자생성주의(spontaneism)를 함의한다. 자생성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자생적인 투쟁에 과정에서 혁명도, 그것을 이끌 당도 만들어낼 수 없다. 암암리에 이러한 계급에 대한 이해를 촉진했음에도 불구하고 클라크는 다음과 같이 암시함으로서 이 가능성을 차단했다. a) [자생성주의는] 역사적으로 단 한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다. b) (제한된 형태의 자발성주의를 암시하는) 혁명 국가에 대한 헬 드레이퍼의 이론들은 막다른 골목을 마주한다. 따라서 드레이퍼주의자들의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자생적 자기조직화의 가능성까지 기각한다면, 클라크의 모순은 혁명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까지 해석될 수 있다.
클라크의 모순에 대한 이러한 이해에 기초하였을 때, 그의 분석을 비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계급에 대한 그의 정의에 따르면 비판하는 이가 ‘프티부르주아’이며(분석을 이해하고 비판하기 위해서는 공식적이고 특권적인 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에), 따라서 그의 모순 밖을 사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클라크의 모순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모든 시도는 바로 그 모순의 희생양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피할 수 없는 반혁명의 굴레에 갇히게 된다. 만약 프롤레타리아트가 역사적으로 그들의 상황과 혁명적 이념을 이론화할 수 없었더라면, 그러한 상황과 이념을 이론화하고자 시도하는 어떤 이들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비프롤레타리아트에 속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대변하는데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탈식민주의와의 이상한 동시성이 있다. 가야트리 스피박은 서발턴이 스스로 말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이름으로 말하는 시도가 불가능한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그러나 스피박은 맑스주의 지식인들이 소외된 이들을 대변할 권리가 있는지에 대해 논쟁을 하는 순간에도,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을 대변한다고 말하는 특권적 지식인이었다. 클라크의 분석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한다. 프티부르주아 지식인의 무능력을 이야기할 때도 클라크는 그의 계급분석에 기반했을 때 프티부르주아 지식인이었다. 무엇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클라크가 말한 모순을 파악하지 못했다.
핵심은, 클라크가 맑스-레닌주의의 주요 모순을 설명하는데 있어(그리고 저자는 이 점에서 클라크가 옳았다고 말한다) 그가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모순의 희생양이 된다는 것이다. 클라크의 계급분석대로라면 우리는 프티부르주아 지식인이 되지 않고서는 계급에 대한 정의조차 제공할 수 없다.
만약 계급에 대한 혁명적 개념이, 발견된 것이지 만들어진 것이 아닌 혁명적 계급에 의해서만 제공될 수 있고, 이 계급이 개념적 정의를 제공하는 계급(본질적으로 프티부르주아적인 것으로 추정되는 지식인)이 아니라면, 어떤 계급이 프롤레타리아적이고 혁명적인지에 대해서 알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계급이 있는지 아는 것도 불가능하다.
여기서 요점은 만약 클라크의 계급분석을 논리적인 결론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이것이 그리는 이론적 경계의 전능함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없고, 심지어 그것이 맞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클라크의 모순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 면에서 말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같은 이유로 모순되기 때문이다. 아무도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의 의미를 말할 수 없다면 클라크도 말할 수 없다. 그의 모순을 그렇게 극단적인 태도로 이해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무의미해보인다는 점에서, 그가 그렸던 경계와 계급에 대한 암묵적인 정의는 비판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클라크는 계급에 대한 이해가 있는 것처럼 보이며, 우리가 만일 계급의 의미를 명시적으로 논의하려 함으로써 동등하게 프티부르주아라는 비판을 받는다면 우리는 클라크 만큼 유죄일 것이다. 그리고 그가 유죄라면 그의 모든 분석은 같은 모순에 의해 붕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