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성과 파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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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성과 파열(4)

4. 맑스-레닌주의의 일반적 한계-2

계급문제(III)

클라크에게 있어 프롤레타리아트와 프티부르주아지에게는 계급적 본질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맑스주의 지식인은 언제나 프티부르주아지이며 프롤레타리아트는 지식인이 될 수 없다는, 피할수 없는 운명이다. 많은 부분에서 그는 레닌주의에 대해 매우 엘리트주의적인 이해를 보여준다. 지식인은 프티부르주아지이며, 프롤레타리아트는 프티부르주아지의 개입 없이는 지식인을 생산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가 프롤레타리아가 언제나 지식인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고 가정했는지, 기껏해야 지식인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교육기준의 판단자로 끝나야 한다고 가정했는지 물음을 던져야 한다. ‘혁명적 지식인’과 ‘프티부르주아지’는 단순하게 하나로 합쳐진다. (물론 이러한 합체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클라크의 주장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의 사회역사적 맥락에서의 맑스주의 지식인들은 일반적으로 특권층이자 프티부르주아였다. 그가 그것의 경계를 넘어서 볼 수 없었다면, 그것은 그의 사회적 한계 때문이며, 마오주의가 맑스-레닌주의를 넘어서는 것을 이해하려면 이 한계를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계급을 유물론적으로 이해하려 한다면, 계급은 발견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계급적 운명은 태어날 때부터 정신에 각인되는 것이 아니다. 계급간 이동은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종종 가능하다.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자수성가’ 이데올로기에 의존함으로서 방어될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프티부르주아 지식인의 몰락이 혁명을 변형시킨다고 주장하는 클라크에게 그 반대의 경우가 있는지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이 결국 프티부르주아에 합류한다면, 프티부르주아지는 약화되는가? 학자금 대출과 아르바이트를 통해 노동계급의 개인이 지식인이 될 가능성이 생겨난다는 점에서 프티부르주아들 사이에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가 갑자기 유입되는 것은 아닌가?

전체적으로 계급범주로서의 프티부르주아는 이전의 프롤레타리아를 의도적으로 포함시키는 것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대학에 진학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노동계급 출신이라고 말하는 억대 연봉의 교수를 한 명쯤 알고 있다, 이들은 진정한 계급적 본질에 호소하는, 문화의 특정 개념에 따라 계급을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부르주아 계급에 이전의 프롤레타리아가 포함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프롤레타리아에서 자본의 소유자가 된 이들은 꽤 행복해한다.

역으로 프티부르주아 지식인이 노동계급의 층위로 내려가는 것은 불가능한가? 이는 가능할 뿐만 아니라 널리 퍼져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에서 경제적 특권을 잃는 것은 얻는 것보다 더 쉽기 때문이다. 왜 이러한 하강은 프티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박탈당한 이들 사이로 들어가는 것으로 여겨지는가? 교육을 통해 계층이동을 꿈꾸다가 다시 원래의 수준으로 추락한 프롤레타리아는 어떠한가? 이들은 ‘이질적인’ 계급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돌아오는 것인가? 이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교육이 본질적으로 프티부르주아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다소 단순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가 프티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저항한다면, 조잡한 반지성주의의 관점을 취하고 프롤레타리아가 무지한 상태를 유지할 것을 요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말하고 있으므로 클라크의 모순에 근본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한계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다. 프티부르주아지가 계급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프티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가 혁명투쟁의 심장부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클라크는 레닌의 분석을 따라 경제투쟁을 벌이는 프롤레타리아트는 혁명이론을 발생시키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무능함의 원인에 대해 안토니오 그람시, 게오르그 루카치, 루이 알튀세르를 비롯한 여러 맑스주의 철학자들이 설명하려고 했지만, 클라크는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지배계급의 지배이데올로기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도 상식이며, 프티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모두 노동계급의 기본적인 의식을 형성한다. 따라서 이 구조의 피해자들은 종종 착취자와 억압자들의 가치들을 수용하여 자신의 희생을 정당화하려 시도하곤 한다.

자생성주의와 개량주의는 프롤레타리아 사이에서 이념적으로 널리 퍼져있는데, 자본주의 지배의 공포에 대한 ‘상식적’인 반응이기 때문이다. 이 이데올로기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프롤레타리아의 수준으로 가라앉는 지식인들의 가치들만큼이나 프티부르주아적이다.

따라서 이념적 혼란을 과학적으로 걸러낼 수 있는 일관된 정당이나 조직의 필요성이 생겨난다. 문제는 단지 프티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특권적 지식인들에 의해 도입된다는 것만이 아니다. 이 이데올로기가 이미 노동계급 사이에 퍼져있다는 것 역시 문제다. 이는 지배계급의 가치의 반영이다.

물론 클라크의 모순을 형식적 결론으로 받아들인다면 이러한 계급의식의 분석은 쉽게 반박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프티부르주아 지식인들의 작업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계급에 대한 프티부르주아적 분석이며, 궁극적으로 무의미한 것이다. 하지만 앞서 본대로 클라크의 분석은 바로 그 결론에 의해 약화되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적 조직의 심장부에 프티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도입된다는 것을 지적한 점에서는 클라크가 옳다. 당이 계급의 의미를 명확히 밝히고 이론과 실천에 따라 조직된 혁명적 구조를 통해 계급의 의미를 만들어내고 강제하는 것이 요구된다 하더라도, 여전히 정통 레닌주의 정당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당 내부의 프티부르주아적 의식이 피할 수 없는 문제라는 점이다.

군중노선

클라크의 모순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맑스-레닌주의의 경계를 완전히 설명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중국에서 혁명이 붕괴한 것이 어떻게 클라크가 활동하던 시기의 새공산주의운동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아주 일부의 반수정주의 조직만이 주자파들이 지휘권을 잡았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이들은 당이 스스로 쇄신하고, 지식인들은 대중의 의지를 대변하고, 정당의 권위(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를 정의할 수 있는 당의 궁극적 권리에 기초함)에 도전하는 것은 반혁명적이라고 생각했다. 덩샤오핑이 이끄는 중국공산당의 노선에 도전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한 개 이상의 조직이 퇴보하여 무너졌고, 4인방의 편에 섰던 이들은 반수정주의의 이전 가정들이 무한한 퇴행의 문제처럼 보이는 새로운 지형에서 길을 잃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오쩌둥과 중국공산당이 이제는 의문시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반수정주의 이데올로기의 중심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민주집중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당이 처음에는 비판했던 것과 같은 수정주의를 언제 시작하게 되는가, 수정주의 자체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와 같은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했다.

앞서 살펴본 클라크의 요약은 맑스-레닌주의의 유전자에 수정주의가 기록되어있기 때문에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더 나쁘게, 이 모순은 해결될 수 없는 것일 수 있다. 기껏해야 (그리고 저자가 제안한 것처럼) 이 모순은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해결책을 필요로 하는 변증법적 모순이었다. 이 운동은 프티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감염되었는데, 이는 당 자체가 계급적 입장에 근거하여 혁명적 이데올로기의 자격을 부여하는 프티부르주아에 의해 주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클라크의 요약은 이상하게도 당대 반수정주의자들을 매혹했고, 맑스-레닌-마오주의가 될 맹아적 개념에 대한 사건이었던 문화대혁명에 대한 평가를 제공하지 못했다. 클라크는 프티부르주아 계급이 시골로 하방하여 대중의 권위 아래에 놓였던, 그리고 당의 권위 자체가 잠시 의문시되었던 역사의 한 순간을 무시한다.

분명히 문화대혁명은 목적을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클라크의 모순은 남아있다. 당은 마땅히 가야 할 곳까지 가기를 거부했고, 재교육에 대한 프티부르주아 계급의 저항은 반혁명에 영향을 미칠만큼 컸고, 마오쩌둥은 처음에 지지했던 혁명에 등을 돌렸을 수도 있다. 이는 맑스-레닌주의의 한계이며, 이러한 한계는 혁명과학의 새로운 단계의 출현을 예고한 세계사적 혁명에 의해 도달되고, 일시적으로 위반되었다. 중국혁명의 과정에서 클라크가 지적한 모순은 이론화되었다. 프티부르주아가 실제로 당내에 있고,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당의 퇴보를 초래하며, 당이 이 이념에 영향을 받으면서 대중을 이끈다는 것은 중대한 문제다. 해결책은 당에 대해, 그리고 서로에 대해 대중의 고삐를 풀어주는 것이었다. 이데올로기 심급에 대한 문제는 클라크의 분석이 다루는 것보다 훨씬 컸다.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성립 이전의 상식이었던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기본적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었고, 사회 전반에 만연했다. 그리고 이것은 왜 사회주의가 계급사회로 남아있는지를 설명한다.

우리는 문화대혁명이 맑스-레닌주의의 모순을 넘어서는 방법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 이는 당이 단순히 대중을 이끌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은 대중들에게 책임을 져야 하며, 대중들로 하여금 계급투쟁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때 혁명의 의미를 정의했던 프티부르주아 지식인들은 자신이 대표한다고 주장했던 바로 그 혁명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중국이 이 혁명을 완수하지 못한 것은 이러한 이해를 논리적 결론까지 따르는데 실패했다는 점, 그리고 맑스-레닌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지형을 언뜻 보았지만 여전히 역사적 경계에 갇혀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 시기의 실패와 성공에 대한 평가만이 맑스-레닌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이론적 파열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1988-1993년의 마오주의의 출현은 중국혁명에서 나타난 개념들에 의한 혁명과학 분야의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마오주의는 클라크의 모순을 과학적으로 인식하며 반혁명으로 이어진 과정을 정확히 설명할 수 있고, 따라서 레닌주의의 경계를 넘어서는 실천을 지시한다. 레닌주의 정당은 프롤레타리아의 개념이 당 자체에서 완성된다는 이해에 따라 완성된다. 스스로를 프롤레타리아의 ‘작전 참모’로 취급하는 당은 개념화된 계급에 잠기지 않고, 항상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의 의미를 개념화할 뿐만 아니라 동원하려는 사회계급에 스스로 잠기는 당을 사고하는 것은 마오주의의 영역이다. 이것이 바로 군중노선이다. 당은 대중에게 혁명 이론을 가져다주고, 당원들로 하여금 대중 속으로 잠기게 하며, 대중들을 끌어들여 당 자체를 변형시킨다.

대중 속으로 잠기지 않고, 당의 형성에 대중을 동원하지 않는 당은 결코 전위가 될 수 없다. 만약 당 간부들이 지식인들로만 구성되어 있다면 이들은 자본에 의해 쉽게 매수될 수 있을 것이다. 프롤레타리아가 당을 지탱할 것을 발견한 당 간부는 예비 학자들에게 당의 규율에 대해 가르칠 것이고, 이들은 당의 지식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마오주의적 전환은 모든 당원들이 지식인이 될 것을 요구한다)

특권을 가진 지식인에 의해 당이 시작될 수는 있지만, 프롤레타리아를 동원함으로서 그 이상의 형태를 갖추게 될 것이며, 이를 통해 당은 전위가 될 수 있도록 단련될 것이다. 군중노선은 일반적으로 “군중으로부터, 군중에게로”로 정의되는데, 이때 마오가 ‘~부터’를 ‘~에게로’보다 앞에 놓은 것은 혁명적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시간적 순서가 아니라 중요도의 순서이다. 비록 최종심급에서 혁명적 이데올로기는 군중에게서 나오고, 당원들은 군중과 다른 방식으로 발생했지만, 군중노선의 실천은 혁명적 이념을 가지고 대중에게로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혁명운동의 참여자들이 이론을 대중들에게 가져가는데 성공했다면, 그들은 변형된 대중들로부터 나타나 혁명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가르칠 새로운 간부들을 끌어들일 것이다. 그리고 혁명정치를 승인하는 메커니즘에 있어 ‘~부터’의 순간이 ‘~에게로’의 순간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만약 잃을 것이 사슬밖에 없는 이들이 혁명적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 이론에는 의문이 제기되어야 한다.

군중노선에 따라 마오주의는 외부에서 나오는 혁명이론은 프롤레타리아 내부에서 그 한계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프롤레타리아의 가장 급진적 파벌에 의해 이것이 거부된다면, 혁명이론은 다시 생각되어야 한다. 만약 혁명이론이 운동을 변형시킬 새로운 이들을 끌어들인다면, 혁명이론은 노동계급에게 부과된 이질적인 가식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연속성과 파열

인민전쟁을 주도해온 마오주의 조직들은 단순히 특권층 프티부르주아지가 이끄는 단체가 아니다. 맑스-레닌-마오주의 운동에 속한 지식인들조차 제1세계 프티부르주아 지식인들과 동일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오히려 우리는 이런 운동들이 프티부르주아 지식인들을 거부해왔다는 비판을, 특히 일부 학문적 좌파들로부터 받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만약 프티부르주아 학자들이 마오주의 운동이 세련되지 않고 후진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이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의 기준을 대표한다고 상상한다면, 그것은 마오주의가 클라크의 모순을 극복한 경우일 수도 있다.

그러나 클라크의 모순은 맑스-레닌주의의 모순일 뿐이며, 클라크는 그가 비판했던 이론적 지형을 마오주의가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국가와 반혁명』은 문화대혁명의 세부사항을 언급하기를 거부하며, 따라서 1970년대 말 덩샤오핑의 쿠데타를 검토하는데 실패하였다. 반수정주의의 한계를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해 맑스-레닌주의의 경로를 도표화한다는 점에서 클라크의 책은 의미가 크다. 그러나 그의 비평은 한계에 도달할 뿐 그것을 극복할 수 없었다. 따라서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클라크의 맑스-레닌주의적 비평은 같은 논리의 희생양이 된다. 이 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무엇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을 구성하는지를 결정하는 당의 지식인들에게 모순이 있다면, 정확히 같은 이유로 의식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메타적 주장을 펼치는 맑스주의 지식인 역시 문제를 겪게 될 것이다. 즉, 당이 혁명적 이념을 결정하고, 혁명적 기준에 대한 판단을 내릴 정치적 권리를 갖는 것이 모순이라면, 클라크가 혁명적 이념의 전체적 의미와 모순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도 모순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장의 처음에서 저자가 주장했던 것처럼 클라크의 모순을 변증법적인 모순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맑스-레닌주의는 올바른 동시에 올바르지 않다. 여기에 변증법적 통일을 요구하는 모순이 있으며, 이 통일성은 마오주의가 만들어낸 틈에 존재한다. 세계사적 혁명의 순간에 포착된 맑스-레닌주의의 보편적 요소와의 연속성은 세계사적 실패의 순간에 포착된 맑스-레닌주의의 한계로부터의 파열과 통일된다.

클라크의 이론은 모호하더라도 혁명과학의 새로운 단계에 있어 이정표였다. 이제 우리는 아직 그 자체의 한계에 도달하지 못한 새로운 이론적 지형에 있음을 발견하고 탐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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