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성과 파열(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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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성과 파열(5)

5. 마오주의적 개방

새로운 질문들

맑스-레닌주의의 한계를 넘어선 마오주의라는 이론적 지형은 반수정주의 시기에 수많은 조직의 해산으로 이어졌던 중요한 문제들에 해답을 제공했다. 이러한 질문은 젠더, 섹슈얼리티, 인종 등을 정체성에 기반한 문제들에 대한 투쟁 속에서 제기된 것이었다. 비록 자본주의 중심부에 위치했다고 하더라도 수많은 맑스-레닌주의 조직들은 인종과 인종주의에 대해 제한적이지만 중요한 방식으로 답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투쟁들은 맑스-레닌주의의 역사적 유물론에 있어 여전히 걸림돌이었다.

인종과 인종주의의 문제는 민족문제의 렌즈를 통해 굴절되었지만, 여전히 그 적용은 제한적이었다. 여성해방의 문제는 종종 맑스, 레닌, 마오에 의해 만들어진 성명과 혁명적 사회들의 제도적 관행을 통해 해결되었던 것으로 간주되었고 이러한 성명과 관행은 역사적으로 중요했지만, 그것으로는 페미니즘 운동이 제기한 문제들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데 충분하지 않았다. 실제로 트로츠키주의자들과 함께 반수정주의 조직들이 페미니즘을 프티부르주아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꽤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맑스-레닌주의의 도전에 있어 가장 중요했던 것은 섹슈얼리티와 성 정체성, 퀴어와 트랜스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이는 종종 혁명적인 조직들에서 쇼비니즘적인 관행을 만들어냈다.

RCP-USA는 퀴어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반동적인 행동을 보였다. 스톤월 항쟁에도 불구하고 몇 십년간 퀴어들은 반동세력의 목표물이 되어왔지만, RCP-USA는 이 문제에 관해서는 쇼비니즘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게이와 레즈비언들은 비정상적인 것이자 ‘부르주아의 퇴폐’로 치부되었다. RCP-USA의 퀴어 당원들은 근본주의 기독교의 반동성애 프로그램과 다를 바 없는 기괴한 재교육을 받아야 했다. 1930년대의 혁명조직이나 반봉건사회의 혁명조직이 그러한 잘못된 입장을 취했다면 몰라도, 스톤월 항쟁과 레이건 시대를 거치는 미국의 혁명조직들이 대중의 혁명 의식보다도 뒤쳐져 있다는 것은 매우 기괴한 일이다. 당대의 가장 중요한 공산주의 조직이었던 RCP-USA는 불행히도 이러한 반퀴어 노선을 내세웠고, 이들은 그러한 입장을 취하는 유일한 조직이 아니었다.

따라서 반체제적 투쟁들은 맑스-레닌주의의 경직성 때문에 그들이 활성화될 수 있었던 반수정주의 운동에서도 종종 배제되었다. 이러한 경직성에 대한 응답으로, 맑스주의는 정체성 기반의 운동에 관여된 이들에게 미심쩍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왜 퀴어 혁명운동은 자신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운동에 참여하여야 하는가? 왜 특권적 정체성을 지닌 이들이 많은 조직들의 지도부 자리를 차지해야만 하는가? 이러한 의문들은 맑스-레닌주의가 자본주의 중심부에서 한계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발생한다. 예를 들어 캐나다의 엉 뤼뜨(En Lutte)는 비슷한 문제에 직면하여 해산되었다. RCP-USA와는 반대로, 이들은 그러한 문제가 공산주의 운동에 의해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해했지만, 이론적으로 반수정주의적 맑스-레닌주의를 이 요구와 동일시할 수는 없었다.

맑스-레닌주의가 한계에 직면하였기 때문에, 그리고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함께 마주해야 했던 모순에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맑스-레닌주의는 전통적인 맑스주의의 바깥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조사할 능력이 없었다. 반수정주의적 공산주의를 지켜내는데 전념했던 맑스-레닌주의 단체들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해 혁명적 이론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하는데 집중할 수 없었다.

따라서 맑스-레닌주의 운동의 붕괴는 이론적 공백을 초래했다. 이 공백에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맑스주의, 포스트식민주의 등이 밀어 들어왔고, 학술적 이론들의 혼란스러운 무리들은 계급적 착취 바깥의 억압을 절충적, 사변적, 사이비유물론적 또는 관념론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한계를 지니며 시대착오적인 맑스주의보다 더 급진적이라고 주장하는 이 이론들은 계급, 생산관계, 혁명정당, 역사적 주체와 같은 구체적 범주들을 교차성, 억압적 구조, 자율성과 연대, 탈중앙화된 주체 따위로 바꾸어놓았다. 이러한 대체는 정치적 실천의 영역에서 정체성 정치와 운동주의로 이어졌다. 이러한 이론들은 강점이 무엇이든 간에 겉모습의 수준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것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1) 학술계에서 일시적으로 맑스-레닌주의가 탈각되면서 생겨난 진공으로 인해 이들 이론들이 발생했다는 사실. 2) 이론적 설명(즉,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장애 차별)이 필요한 현상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이 공백이 메워져야 했다는 것. 3) 공백은 혁명적 공산주의의 일시적 패배와 반혁명의 맹습으로 인해서만 생겨났다는 것. ‘역사의 종언’으로 이름붙여진 반혁명의 시대와 그에 따른 혁명적 공산주의 운동의 일시적 쇠퇴가 없었더라면 이러한 새로운 급진적 이론들이 자본주의 중심부에서 패권을 얻을 수 있었을지 의심스럽기 때문에 마지막 점이 핵심이다. 따라서 정체성 정치와 그 주변의 이론들은 그 출현의 중요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으로 반혁명의 실천과 이론이 되고 있다.

체계화의 역사적 순간

진실은 혁명적 공산주의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맑스-레닌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억압에 반대하는 운동이 비맑스주의 이론에 의해 설명되던 과도기는, 공산주의 운동이 일시적인 공산주의의 붕괴와 이 시기의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이해와 함께 재등장할 수 있도록 자신의 한계를 파악하고 재통합하는 반혁명의 시기였다.

억압에 맞서는 급진적인 투쟁들이 등장한 이후에 마오주의가 발생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이러한 현상을 유물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지형 위에 놓여있다. 따라서 이러한 혁명적 유물론으로의 복귀는 새로운 복귀(new return)이다. 맑스-레닌주의를 넘어서지 못한 채 이데올로기 노선투쟁만을 벌이려 하는 맑스주의자들은 조잡하고 정형화된 개념들에 몰두하는 것으로 전락했다. 마오주의는 마주한 문제들에 대해 더 새롭고 창의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했고, 이러한 접근은 역사적으로 유의미하며 20세기 초반의 화석화된 이론이 아니라는 점에서 올바르게 유물론적이다.

분명히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마오주의적 접근의 맹아는 1988년 이전에도 마오주의의 이름을 가졌던 다양한 반수정주의 문건들에도 존재했다.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이나, 사미르 아민의 초기 정치경제학 작업들, RU/RCP-USA의 쇼비니즘에 응답했던 퀴어 반수정주의자들(소저너 진실 조직(Sojourner Truth Organization)이나 로스엔젤레스 스터디 그룹)이나 자신들이 속한 사회적 맥락 속의 쇼비니즘에 대항한 퀴어 반수정주의자들(캐나다 엉 뤼뜨(En Lutte)의 게이와 레즈비언위원회), 흑표당의 이론,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영국 혁명적공산주의자연합(Revolutionary Communist League of Britain), 그리고 다른 맑스주의적 접근들은 역사적 한계에서 나온 것으로, 마오주의의 풍부한 지형을 위한 수 백개의 씨앗들을 구성한다. 여기에 우리는 사카이(J.Sakai)의 『정착민』(settlers)과 부치 리(Butch Lee)와 레드 로버(Red Rover)의 『밤눈』(Night-Vision)과 같은 지하운동(subterranean movement)의 문건들 역시 더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마오 역시 이러한 문제를 설명하는데 유용한 이론들을 생산했는데(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모순론』) 어떤 사람들은 비록 단편적인 방식이라고 하더라도 이 이론을 실제로 사용하고자 했다.

혁명적 공산주의의 과학적 단계로서의 마오주의의 발생은 핵심적인 이론적 개념들을 중심으로 체계화된 이론의 탄생을 의미했다. 체계화는 왜 그리고 어ᄄᅠᇂ게 과거의 이론화가 이론적 한계에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 알려주며, 어떤 과거의 이론화가 유용한지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얀 샙과 로버트 영(Rovert M. Young)이 지적한 것처럼, 진화론에 대한 최초의 체계화된 설명인 다윈의 『종의 기원』은 인간과 자연의 발전에 대해 알고자 했던 과거의 시도들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한계를 지녔던 과거의 이론화들은 다윈주의 이론의 궤도 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되었다.

어쨌든, 혁명적 공산주의의 새로운 단계는 맑스-레닌주의의 한계를 넘지 못했던 맑스주의 운동들과 이론가들이 분석하지 못한 채 남아있는 현상들에 대한 정치한 유물론적 개입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러한 현상들에 대한 과학적 평가를 제공하는데 필요한 요소들은 마오주의 지형 내에 존재한다.

앞의 장에서 설명한 것처럼, 저자는 이론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의 지형에 철학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목적한다. 이는 이론의 경계를 탐색하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왜 또는 어떻게 맑스-레닌-마오주의가 이 문제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대답하는지를 다루지 않는다. 철학의 역할은 의미에 대한 문제를 말하고, 주어진 이론적 지형의 가능성을 설명하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마오주의가 한 때 공산주의 이론이 파악할 수 없었던 것에 대답을 제공할 수 있는 이론적 지형이라는 사실이다. 마오주의는 이 문제들에 단순히 대답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정치하고 혁명적인 해답들을 제공하기 때문에 다른 이론적 접근보다 더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유물론적 문제들

마오주의가 혁명과학의 새로운 복귀를 나타낸다고 했을 때, 마오주의가 포스트모던/포스트맑스주의/포스트식민주의 이론에 의해 설명되던 문제들에 대해 더 잘 갖춰져 있는 것은, 구체적인 정세에 대해 구체적인 분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유물론적이기 때문이다. 대안적인 급진적 이론들은 총체화를 부정했고, 표면적인 분석만이 가능했기 때문에 깊이있는 설명력을 갖추지 못했다.

이 실패를 묘사하기 위해서 우리는 미셸 푸코, 주디스 버틀러, 가야트리 스피박, 에드워드 사이드 등이 ‘권력’의 개념을 묘사하는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역사가 근본적으로 억압과 배척의 역사였다는 것을 가정하는 추상적인 범주로서의 ‘권력’을 이들과 같은 사상가들이 거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푸코의 계보학적 접근에 따르면 역사는 총체화의 순간을 만들어내는 권력의 역사에 불과하다. 이는 의미를 강요한다는 점에서 살인적이다,

권력에 대한 이 이론은 결코 유물론적인 의미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 이론가들 중 어느 누구도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이외에는 권력의 기원과 의미를 명확하게 말할 수 없다. 이들은 권력의 기원을 밝히는 일이 살인적인 총체화(totalization)의 행위라고 쉽게 말한다. 그러나 이는 중요한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다. 권력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면, 왜 이것이 문제인지조차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관념론이 이 권력의 개념 뒤에 있다는 것이다. 유물론적인 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러한 권력의 개념은 플라톤적인 형태와 유사해진다. 즉, 인간주체성(human agency)을 넘어서고 인간주체성을 생산하며, 역사를 발생시키는 이데아적인 개념이다.

반면, 유물론자들은 이러한 모든 개념들이 역사적으로 매개된 상황에서 살아가고 생산하는 인간들에 의해 생성된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벗어나 권력에 대해 말하는 것은 권력이 물질적인 것이라는 것을 무시하는 것으로, 의미가 없는 것이다. 엥겔스는 뒤링이 유사하게 권력 개념을 사용하는 것을 비판할 때 이러한 주장을 했다. 그는 권력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최종심급에서 인간에 의해 정치적, 경제적으로 생산되는 것이라는 점을 뒤링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푸코와 그 주변의 사상가들이 뒤링이 주장했던 사변적 범주들을 사실상 다시 주장한다는 점에서 저자는 그러한 사상들이 별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맑스를 초월했다고 주장하는 이 사상들은 사실상 반동적인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다. 사실상 맑스주의가 일시적으로 만들어낸 공백에 관념론이 채워진 것 뿐이다.

마오주의에 의해 열린 지형은 과거의 맑스주의나 대안적인 급진적 이론들이 일반적으로 준비되지 않았던 현상들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유물론적 관심(materialist concerns)으로의 새로운 복귀다. 대안적인 급진적 이론들이 외양의 영역만을 다루는데 그쳤다면, 과거의 맑스주의는 거친 유물론적 범주들을 되새김질하는데 시간을 낭비해왔다. 우리는 다른 억압들의 물질적 기반에 대해 말하는데 있어,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와 관련이 없는 이러한 조잡한 개념들에 찬성하면서 이러한 억압들을 거부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억압들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유물론적 분석임에도 불구하고, 유물론적인 분석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는 지형의 개방에 대해 말하는 것은 사변적인 포스트-이론들에 전념하는 이들에게 불쾌한 것으로 여겨진다. 관념론자는 모든 유물론적인 접근을 속류적인 것으로 치부한다. 레닌은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비슷한 문제를 맞닥뜨리게 되는데, 우리는 역사가 비극으로 반복된다는 것에 놀라서는 안된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을 다루는 마오주의적 개입은 필연적으로 속류적인 유물론으로 치부될 터인데, 이는 이러한 분석이 얼마나 복잡하고 통찰력있는지와는 무관하다. 이것은 어떤 점에서 역사적 유물론의 강점이다. 이는 전문화된 학술적 이론들의 배반적 흐름에 현혹되는 것을 거부하고, 이 특권적인 이론에 반대하여 ‘속류적인’ 대중의 요구를 주장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적 군중노선과 계급구성

맑스-레닌주의가 무너졌던 시기에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마오주의가 이러한 문제들에 혁명적인 통일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해답을 제시할 도구들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다른 이론들은 이러한 통일성을 거부해왔다. 이러한 거부는 연대를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에 혁명을 진척시킬 것이라고 희망을 걸 수 없다. 맑스주의는 계급에 기반한 운동, 부르주아 헤게모니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으로부터 진정한 혁명적 연대가 나올 수 있다고 주장해왔고, 마오주의는 이러한 통찰력으로 지속되고 있다.

동시에, 다른 맑스주의자들은 계급투쟁의 일차적인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다른 투쟁들이 ‘계급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라고 무시하거나, 프롤레타리아가 아닌 다른 계급적 주체(즉 ‘다중’)가 있다고 주장할 것을 강요받아왔다. 마오주의는 이러한 문제들을 계급투쟁의 이론 속에서 설명할 수 있는 도구를 지니고 있다. 세계의 대다수가 프롤레타리아로 남아있을 때, 그들을 추상적인 계급개념에 종속시키는 것, 이들을 일시적으로 제쳐두는 것, 완전히 새로운 계급범주들을 구성하는 것은 부인(denial)의 행위다.

앞서 논의한 것처럼 마오주의의 보편적 측면 중 하나인 군중노선은 우리로 하여금 혁명적 군중이 추상적인 프롤레타리아트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마오주의가 프롤레타리아트의 범주를 군중의 범주로 대체하려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이러한 것이 대체가 아니라 이론적 확장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를 군중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화된 ‘노동계급’을 군중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혁명적 군중은 프롤레타리아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노동계급이다. 왜냐하면 프롤레타리아는 정확히 세계 노동의 대부분을 제공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의미에서 노동계급이 아니다. 왜냐하면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는 노동자 계급의 가장 억압받고 착취받는 요소들 사이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프롤레타리아트를 군중의 관점에서 분석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주어진 맥락에서 노동계급의 구성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중심부에서는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있고, 이로부터 일정한 이득을 얻는 노동계급이 존재한다. 동시에, 비노동조합원 노동자들과 실업예비군들은 정확하게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일부인데, 왜냐하면 이들은 한때 프롤레타리아트로 취급받았던 노동계급의 수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석은 우리로 하여금 혁명적 계급의 구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인종주의적인 사회적 맥락에서 인종화된 노동자들은 계급 전체차원에서 노동조합화의 특권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훨씬 더 프롤레타리아화 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구성은 계급적으로 통일되지 않은 억압의 현장에 의해 과잉결정된다. 가령, 우리는 혁명운동과 부르주아 유색인종 여성 사이에 어떠한 통합의 기초도 찾을 수 없을지 모르지만, 유색인종 여성들이 부르주아 계급의 소수를 구성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혁명운동은 계급노선에 따라 진행되어야 하고 어떠한 혁명운동도 반혁명에 기득권을 지닌 부르주아 계급과의 동맹을 추구해서는 안되지만, 계급노선이 부분적으로 다른 억압의 장소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계급은 언제나 억압의 옷을 입는다. 인종주의, 이성애중심주의, 능력주의 사회는 언제나 이질적인 억압의 순간들에 영향을 받는 계급 분할을 만들어 낼 것이다. 계급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계급의 구성과정도 이해해야 한다.

마오쩌둥은 『모순론』을 쓰고,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상부구조가 최종심급에서는 경제적 토대의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하부구조를 언제나 방해하고 부분적으로 결정하기까지 한다고 주장했을 때, 이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 물질적 필연성에 의해 한 시기에 생겨나는 이데올로기는 생산양식의 존재론적 단절에 의해 단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데올로기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으며, 토대 자체에 영향을 주고 토대를 재배열한다. 자본주의는 『자본』에서 묘사한 것과 같은 순수한 생산양식이 아니며, 『자본』에서도 그러한 계기가 존재한다. (즉, 시초축적에 대한 장)

알튀세르는 종종 ‘최종심급은 절대로 오지 않는다’고 주장한 바 있다. 마오의 통찰에 영향을 받았던 알튀세르가 말한 것은 이데올로기적 포장이 벗겨진, 순수하게 추상적인 계급투쟁의 심급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판의 방향이 반수정주의적 맑스-레닌주의였고, 심지어 프랑스 공산당의 수정주의적 정통주의의 편을 들었던 알튀세르는 이러한 통찰의 전모를 파악할 수 없었다. 이제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가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장애에 영향을 받지 않는 범주가 아니라고 선언하기 위해 이러한 통찰을 취해야 한다.

마오주의는 경제적 토대의 방해에 의해 생겨난 구성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계급에 대한 군중적 이해를 요구한다. 혁명적 과학의 발전의 연장선 상에 있는 마오주의는 ‘최종심급’의 중요성을 거부하는 정체성 정치를 거부한다. 최종심급은 절대로 오지 않지만, 언제나 내재적이다. 계급은 다른 억압의 장소들과 분리된 추상적 범주가 아니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범주다. 예를들어 인종주의적이고 성차별주의적인 사회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인종화되고 젠더화된 구성을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이런 사회에서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경험하는 사람들 중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이들은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억압의 현장을 다루고자 했던 맑스-레닌-마오주의 이론가들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한정자를 사용하는 것이 유용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가령, 프롤레타리아 페미니즘을 논하는 마오주의자들은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게 한다. 1) 부르주아 여성으로부터 ‘혁명적’ 주체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보는 페미니즘과 그들의 페미니즘을 구분하기 위해서 2) 정체성 정치와 달리, 페미니즘 투쟁이 더 광범위한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일부일 때 말이 된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행히도 근미래에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반차별주의, 프롤레타리아 반이성애중심주의, 프롤레타리아 반장애인차별주의를 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유물론적 개입들은 정체성 정치의 진부한 ‘교차성’ 접근을 차단하고, 혁명적 통일성을 만들어낼 것이다. 달리 말해, 이는 계급구성에 있어서의 프롤레타리아 군중노선이다.

속류 유물론

마오주의가 요구한 계급통일은 혁명적 공산주의를 대체하려 시도한 이론들에 의해 제기된 질문들을 무시하기를 원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항상 속류적 유물론으로 취급받을 것이다. 계급투쟁이 실천의 전투적 기반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계급을 억압받는 정체성 중 하나로 취급하는 이들에게 저주가 되는 주장이다. 사회적 계급이 최종심급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계급축소주의의 혐의를 쓰게 된다. 저자는 우리가 그러한 축소주의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모든 과학은 구체적인 현상을 제거하여 범주들을 추상화함으로써 과학으로 기능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계급투쟁의 공통분모로 사회현상의 복잡성을 축소하는 것은 이 복잡성에 대한 거부가 아니다. 오히려, 축소는 우리로 하여금 구체적인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하는 추상의 방법론이다. 계급축소주의는 설명하고자 하는 현상을 올바르게 설명해내지 못하거나, 유사플라톤주의 관념론으로 이탈하여 계급을 초역사적인 것으로 파악하려 할 때에만 문제가 된다. 이러한 유물론적 접근을 속류적인 것이라 일축하는 것은 세계를 이해하려 하는 모든 형태의 과학적 시도들을 일축하고, 우리를 다시 신비화와 미신의 영역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

그러나 이 중 어떤 것도 우리가 속류적인 유물론의 혐의를 무시해야 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과거의 실천으로 돌아가는 교조적인 행동을 경계해야 한다. 역사적 유물론의 영역 밖에서 취급되던 문제를 이해하려는 모든 역사적 유물론의 시도에 대해 속류적인 유물론의 혐의가 제기되는데에는 이유가 있다. 심지어 유물론자들마저도 ‘속류적’이라고 여길 수 있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기각이 있다는 것은 인식할만한 가치가 있다. 이러한 기각은 계급축소주의가 계급본질주의로 변하는 것이자, 한때 비맑스주의적인 급진적 이론의 영역에 가해졌던 이론적 폭력이다.

여기서 다시 RCP-USA가 퀴어 저항의 요구들에 적절히 개입할 것을 거부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명백히 ‘속류적인’ 동시에 쇼비니즘적이었다. 퀴어들은 ‘부르주아적 퇴폐’의 산물로 여겨졌고, 그들의 성적 정체성은 남성지배의 산물로 여겨졌다. 세련된 유물론자들이라면 RCP-USA의 입장이 유물론적이라기보다는 관념론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이들의 입장이 유물론의 이름으로 내세워졌다는 사실은 맑스주의의 비판자로 하여금 모든 맑스주의가 속류적이라고 치부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마오주의는 실제의 속류적 유물론을 넘어서듯이, 이러한 속류적 유물론의 혐의를 넘어서야 한다. 이러한 억압의 현장들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위한 이론적 요소들은 이미 자리를 잡았고, 그것들을 통합하기 위한 과학의 추가적인 발전이 기다려져 왔다. 마오주의는 겉모습에 갇혀 혁명적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는 반공 이론가들의 트집잡기로는 발목잡혀선 안될 새로운 개방이다.

다시,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

1장에서 논의했었던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의 문제로 돌아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맑스-레닌-마오주의가 이전의 맑스-레닌주의가 가졌던 것과 같은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갖추고 있지 못한 만큼, ‘속류적 유물론’으로의 복귀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혁명적 공산주의의 전반적인 후퇴는 맑스주의 없이는 단편적이고 단절적인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이론적 조사를 필요로 하는 일련의 현상을 남겼다.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가야트리 스피박, 호미 바바, 장-뤽 낭시 등의 사상가들은 이 후퇴로 인해 버려진 영토를 이어받았고, 이론적 헤게모니를 성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헤게모니는 어떤 점에서 모순적이었다. 총체화(totalization)을 거부하는 한편으로, 총체화된 헤게모니를 생산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파편화와 단절은 자연의 본질적인 사실로 간주되었고, 차이의 총체성은 정치적 미덕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마오주의적 파열은 이러한 파편적인 이데올로기적 지형을 아직 전지구적 차원에서는 극복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연속성과 파열의 순간이 물려받은 역사적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을 때쯤에 마오주의를 넘어서는 이론적 국면을 논하는게 다소 무의미한 이유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과학 내부에서 발생했을 때, 이 시대의 문제가 완전히 다루어지지 않았다면 아직 그것은 완성된 것이 아니다. 그러한 패러다임은 이러한 질문들에 응답하는 능력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 넘어설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마오주의가 단지 그것이 출현한 시기의 역사적 문제를 설명하기 시작했을 뿐이며, 이러한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소진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마오주의의 선언에서 요구되는 것은 통일되지 않은 현상들의 성좌의 통일이다. 역사적 유물론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미래를 향해 열려있다는 점에서 마오주의는 그렇게 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맑스-레닌-마오주의 이론을 선포한 혁명들은 이 현상학적 성좌에 관여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오주의가 이 문제들에 가져온 혁명적 통일은 혁명적 실천 속에서 발견되며, 종국에는 이러한 문제들을 생산해낸 환경 자체를 바꾼다는 것이다.

실천을 작동시키기

문제는 혁명적 계급노선에 따라 이러한 억압의 장소들을 통합시키는데 기반한 실천을 작동시키는 데에 있다. 우리들 중 일부는 정체성 정치의 이론과 실천에 익숙해져있기 때문에 이러한 새로운 복귀가 요구하는 실천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혁명과학이 만들어내는 구체적인 연대를 갈망했고, 마오주의가 우리의 질문을 ‘소부르주아적’인 것으로 여기기보다는 대답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끌렸다.

그러나 이러한 억압의 장소들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맑스-레닌-마오주의가 우리에게 가르쳐주어야 하는 것은 계급투쟁을 추구하는 전투적 조직을 정체성의 외양에 초점을 두는 일련의 실천들로 대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치 노선이며, 이는 언제나 계급문제다. 이러한 억압의 장소들이 혁명조직에 제기하는 문제를 인식하는 것은 옳지만(예를 들어, 혁명조직의 지도부가 주로 백인, 시스젠더 남성이라는 것) 이러한 문제를 정체성의 수준에서 다루는 것이 해결책을 제공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혼란을 야기할 뿐이다.

경찰이기도 한 퀴어 유색인종 여성의 관점이 단순히 그녀의 정체성 때문에 허용되어야 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아마 정체성 정치의 접근법을 긍정하는 이들도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지만, 우리는 왜 아니라고 대답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일종의 반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우리는 정치노선이, 그 노선을 옹호하는 사람의 정체성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실제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 대답이 ‘아니오’라는 것을 모호하게라도 알고 있다.

때로 정체성은 주어진 정치적 노선을 매개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후자다. 따라서 혁명적 정치노선에 근거한 조직이 정치가 정체성의 영역으로 축소되는 집단보다 훨씬 중요하다. 따라서 백인 남성으로 구성된 혁명적 조직이 유색인종 여성으로 구성된 집단보다 인종차별과 성차별주의에 대해 더욱 혁명적인 분석을 내놓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당연히 마오주의자로서 우리는 이러한 분석이 더 나은 것이라 하더라도 전자의 조직이 가지고 있는 구성에 의문을 제기해야 하며, 이론과 실천 사이의 격차 속에서 백인과 남성 회원을 넘어서 성장하는데 실패했다고 지적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외양(정체성)과 실체(정치노선) 사이의 괴리는 철학적 개입을 필요로 하는 중대한 문제다. 일단 억압받거나 특권을 지니는 정체성의 발전이 역사를 벗어난다고 가정하는 것은 반유물론적이다. 반면 이 매우 단순한 사실을 기반으로 정치를 구축하는 것은 실체적 깊이를 결여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체성과 정치적 노선이 양자를 매개하며, 후자의 매개가 더 결정적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정체성 정치의 지지자들은 맑스가 ‘백인 남성’이었기 때문에, 그의 작업은 억압적인 것으로 거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맑스의 상황, 그리고 그의 그러한 정체성은 사실이고, 종종 그의 분석은 유럽중심주의와 남성중심적 시선을 매개하고 있지만, 이러한 문제로 인해 맑스의 작업이 완전히 오염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단순하면서도 몰역사적인 것이다. 혁명운동의 역사를 조사하고 나면, 우리는 맑스(그리고 엥겔스)에 의해 설립된 이론이 백인이나 남성이 아닌 군중들에게 극도로 중요한 이론으로 이해되어왔다는 것을 인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두 가지 선택을 하게 된다. 1) 이 이론의 내용이 이론가의 정체성보다 중요하며, 이론이 일시적으로 배제했을 수 있는 이들에 의해 약점을 넘어 발전되었다는 것을 인식한다. 2) 이 이론을 중요히 여기는 군중들의 억압적 정체성은 거의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서발턴 군중들이 공산주의 지도자들을 총체화함으로써 대변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마지막 주장은 공산주의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대변하는 군중들의 능력을 무시하는 것인데, 이렇게 말하고 있는 이들 역시 같은 군중을 ‘대변’하고 있는 것인만큼 다소 터무늬없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특권적 정체성으로부터 부여받은 한계에 대해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정치적 내용에 기반하여 파악될 필요가 있는데, 왜냐하면 살아있는 공산주의 과학에 한하는 한 정체성의 결함에 대해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맑스의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하는 가장 쉬운 방식은 그것을 기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역사적 유물론의 방법론이 비유럽 문화에 대한 잘못된 역사적 분석을 약화시킨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맑스 자신의 범주들을 통해 스스로 유죄판결을 받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맑스주의자들에게는 맑스주의의 혁명적 ‘내용’에만 매달리는 이론적 관행이 존재하는데, 이는 내용이 어떻게 형식에 의해 매개되는지를 제대로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정치노선의 내용에 충실함을 선언하려면, 우리는 이 노선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충실함을 선언해야 한다. 사회적 상황은 중요하고, 사회적 존재는 사회적 의식을 결정하며, 계급적 위치는 부분적으로 다른 억압의 장소들에 의해 구성된다. 여기서 맑스-레닌-마오주의는 어떻게 외양이 실체를 매개하고, 정체성이 정치노선의 내용을 매개하는지에 대해 철저하게 이해하려고 시도한 유일한 맑스주의 경향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억압의 장소들이 어떻게 계급을 매개하는지에 대한 이해는 마오쩌둥의 초기 사회조사 연구(중국 사회의 계급분석, 후난성 농민운동 조사보고서)와 『모순론』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맑스-레닌-마오주의의 결정화 이전의 마오주의 문헌들에서도 명백하다.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과 같이, 마오쩌둥과 중국혁명의 영향을 받은 유물론적 궤적들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이러한 풍부한 이론적 역사는 한때 정체성 정치의 어떤 형태에 심취했던 많은 급진주의자들(저자를 포함)을 역사적 유물론의 서사로 다시 이끌었고, 이것이 바로 정체성 정치의 관행을 우리의 조직생활에 수입하려고 하는 경향이 여전히 극복되어야 하는 이유다.

괴리

이 절의 목적은 맑스-레닌-마오주의의 파열이 비맑스주의 이론의 일로 취급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개방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를 조사하는 것이다. 저자는 마오주의와 다른 접근들 사이에 경계선을 그음으로써, 이러한 개방의 철학적 상황들을 설명하고자 시도했다. 저자의 일반적인 요점은 마오주의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보다 체계적이며 혁명적으로 답변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질문들은 마오주의적 분석과 실천이 더 많은 투사들을 끌어들일 수 있도록 한다.

만약 맑스-레닌주의의 한계가 마오주의의 단계에 의해 위반되었다고 한다면, 마오주의 이론은 세계공산주의가 일시적으로 후퇴했을 때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과학은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제공할 수 있을 때 그 힘이 증명된다. 혁명과학의 새로운 단계는 이러한 요구들에 대응할 수 있는 이론적 도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문제는 앞서 논한 바와 같이 정치의 실천적 작동에 놓여있다, 마오가 말했듯, 구체적 상황에 대한 올바른 분석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맑스주의는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마오주의가 많은 혁명적 투쟁들에서 다른 문제들을 고려하는 정치노선이 어떻게 작동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데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다. (가령 혁명운동의 남성지배적인 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것을 목표로 하는 인민군에서 여성민병대의 폭발적 증가)

한편 어떤 마오주의자들은 이러한 문제를 설명하려 하면서도 과거의 맑스-레닌주의의 패턴에 따랐기 때문에 이러한 이해를 종합할 수 없었다. 다른 쪽에는 ‘정체성’에 대한 반공주의적 이론화의 한계를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정체성 정치의 실천에 갇혀 있어서 전투적인 실천조차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괴리가 역사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면, 여전히 극복되어야 한다. 그리고 맑스-레닌-마오주의를 통해 이 모순은 느리고 고통스럽지만 극복되고 있으며, 경계선은 이미 그려지고 있다.

문화대혁명

마오주의 국가로 대표되는 파열의 양상은 문화대혁명에 대한 이론이 이끄는 파열로 이해되어야 한다. 레닌주의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이르기까지 혁명의 필연성을 확립하기 위한 단계라면 마오주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내부에서 혁명이 지속되어야 하며, 상부구조에 보존된 반혁명 이데올로기에 맞서 투쟁하기 위해 사회주의 운동이 문화대혁명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단계다. 비맑스주의적인 급진적 이론들이 제기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론적 개방에 대해 논하고 나서 이러한 문제들의 주변에 경계선을 긋는 것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은 다소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은 정확히 문화대혁명 이론의 관심사다. ‘경제적 토대’에서의 투쟁은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에서의 투쟁과 통일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문화대혁명에서 주장된 바이고, 이 투쟁이 마오주의 출현에 있어 필요한 이론적 통찰력을 만들어 낼 것이었지만, 중국혁명의 맥락에서 이는 너무나 작고 늦었다.

만약 마오주의가 가장 최근의 세계사적 혁명에서 얻은 통찰을 진정으로 종합하는 혁명과학이라면, 문화대혁명 이론을 즉시 받아들여 적용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마오주의 이론이 요구하는 이론화이며, 맑스-레닌주의와의 파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맑스-레닌주의에는 몇 가지 조직화되지 않은 통찰력이 존재했지만, 혁명 조직이 설립된 바로 그 순간부터 문화대혁명의 필연성을 파악할 수 없었다.

군중노선, 비판과 자아비판, 문화대혁명은 과학의 새로운 단계라고 주장하는 마오주의의 상호연결된 측면으로, 오늘날 어떤 혁명 조직이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운동을 구축하는데 필수적이다. 여기에 던져볼 가치가 있는 몇 가지 질문이 있다. 조직은 혁명적 군중들의 의지를 조직하고 이론적 지도를 제공하는 한편으로 이들의 의지에 따라 건설되는가? 이 조직은 스스로를 비판하고 잘못되었다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가? 운동의 간부들은 인민에게 봉사하고 있는가? 그리고 일관된 정치노선에 묶여있으면서도 정체성 정치를 추구하는 서클들에서 하는 것과 같이 자신의 특권을 확인하고 자아비판할 수 있는가? 운동은 지배계급의 지배적 이념을 초월하고, 특정 이데올로기적 순간들이 어떻게 경제적 기반들을 과잉/과소결정하는지를 파악하고, 문화대혁명의 대장정을 통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개혁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는 것을 실패하는 것은 마오주의의 이름을 개념으로 만드는 이론적 통찰력을 구체적으로 적용하는데 실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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