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조직과 전략
화석화된 전위를 넘어
마오주의의 출현이 과거의 혁명과학의 순간들과 연속이자 파열이라면, 이는 반자본주의 조직화의 중심지로서의 전위정당의 재출현을 의미하고, 따라서 혁명전략의 재개념화를 의미한다. 여기서 핵심은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결정화된 전위정당의 개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세게 곳곳에 레닌주의의 교리에 따라 조직된 정당들이 남아있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조직화와 혁명적 실천에 대한 새로운 복귀다. 이 복귀는 레닌이 보편적으로 세운 것과의 연속인 동시에, 과거의 전위정당 개념으로부터의 파열이다.
반수정주의 조직들과 마오주의 지식인들이 ‘새로운 형태의 정당’(party of the new type)에 집착했던 마오쩌둥 사상의 시기에, 이러한 새로운 복귀의 서광이 존재했다. 이 ‘새로운 형태의 정당’은 여전히 전위정당이나, 당 간부들이 ‘프롤레타리아트의 군사 참모’로 훈련된, 스탈린 치하의 소련공산당에 의해 대표되는 일괴암주의(monolithism)에 갇혀있지 않은 전위정당을 말한다. 그러나 소련 붕괴와 그에 따른 반수정주의 붕괴의 여파로, 그러한 정당을 만드는 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파열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고,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정당에 대한 선언은 아직 미숙한 것이었다.
‘스탈린주의’라는 모호한 개념에 반대하며, 전위정당 개념에 따라 조직된 당조직들마저도 스탈린이 운영했던 바로 그 조직적 문제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정통 트로츠키주의 정당들은 구소련의 사회주의 붕괴가 민주집중제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한데에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대충 혁명적 실천이 어떻게 중앙집중화되는지에 대해 땜질을 하면 납을 금으로 바꾸는 연금술사마냥 ‘스탈린주의적 관료주의’의 오류를 피할 수 있는 완벽한 전위정당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 믿는 것이다. 이 정당들은 여전히 그들이 피하고자 했던 일괴암적이고 하향식의 형태와 그대로 닮아있다. 여기에 전위정당 개념에 대한 파열이 존재할 수는 없다. 이는 스탈린 치하에서 시험되고 한계에 도달하기 전의 레닌주의에 대한 교조적인 재주장일 뿐이었다.
다른 한편, 전위정당식의 정치를 완전히 거부하는 운동주의의 출현이 있었다. 전위당론이 스탈린, 그리고 트로츠키 아래에서 화석화된 이후, 그리고 자본주의의 ‘역사의 종언’ 담론이 이러한 종류의 조직화에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이후, 많은 반자본주의 활동가들은 전위정당의 개념을 권위주의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포스트모던적이고 아나키즘적인 방식의 조직화에 이끌렸다. 결국, 스탈린의 렌즈를 통해 전위정당론을 해석한다면, 그 논리적 결과는 일괴암적이고 하향식의 조직화가 될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자본주의 중심부의 주요한 조직적 경향이었던 운동주의가 한계에 다다랐고 반자본주의 실천에 유용한 것을 전달하지 못하였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시애틀과 퀘벡시티의 시위 이후로 10년이 훨씬 지났다. 다른 제1세계 운동주의 투쟁은 반세계화의 종말에 대한 비극적인 메아리에 지나지 않았다. 한편 시애틀 시위로부터 10여년 전 제3세계에서 우리는 레닌으로부터 계승되었지만 마오주의 파열로 다소 변형된 전위정당에 의해 지휘된 인민전쟁의 재등장을 목격했다.
따라서 우리는 인민전쟁의 시대를 살고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 모든 인민전쟁은 전위정당의 필연적인 존재를 전제한다. 페루공산당은 쇠퇴의 순간에 다다르고 있었고, 네팔공산당(마오주의)는 막 인민전쟁을 시작하고 있었다. 마오주의의 이론적 지형에 따라, 오늘날 혁명적 전위정당을 발전시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다시 말하려는 새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전략으로서의 조직
조직에 대한 문제는 전략에 대한 문제로 이어진다. 어떤 조직적 매커니즘이 자본주의를 전복할 수 있을까? 아나키스트나 자율주의자들이 ‘전위정당’이 위계화와 권위주의를 낳는다고 우려한다면, 이는 어떻게 자본주의를 극복할지에 대한 좀더 큰 비판의 일부다. 만약 전위정당이 관료제와 권위주의적인 사회주의 국가, 전체주의를 낳는다면, 이러한 조직 형태를 수용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레닌주의 정당에 대한 이러한 불평은 완전히 잘못 이해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레닌주의의 기초』에서 묘사된 소위 ‘스탈린주의’ 정당이 앞서 아나키스트들과 자율주의자들이 우려했던 것과 같은 문제들을 보여준, 일괴암적인 실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조직하는 것이 최선인지에 대한 전략적 고려의 관점에서 레닌주의 조직론에 대해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조직에 대한 논쟁의 역사와 종종 나타나는 교조주의 때문에, 우리는 어떤 형태의 조직이 보다 나은지에 대한 이유를 놓치게 된다. 혁명전략을 구체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조직형태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되지 않는다.
조직에 대한 아나키스트와 자율주의자들의 접근은 필연적으로 추상적이다. 전위당식 조직의 유를 비판하고, 모든 오류를 레닌주의의 목적인으로 취급하는 것을 전제로 한 대항전략은 모호할 수밖에 없다. 운동주의는 정의상에서도 전략에 대한 구체적 이론을 결여하고 있다. 자생성에 의해 과잉결정되는 운동주의는, 일관성없고 다차원적인 반란을 넘어서는 일반적인 전략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운동주의에 보다 일관적인 조직형태를 제공하기를 원하는 아나키스트와 자율주의자들이 있지만, 이론적이고 실질적으로 통일되어있는 혁명정당에 대한 거부는 일반적인 전략 이론의 실행을 방해한다. 군중들에게 어떤 형태의 조직된 지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혁명전략이 자생적으로 생성된 사건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닌주의적 당의 구성을 지지하는 많은 맑스주의자들은 추상적인 용어로 전략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10월 혁명을 지적하고, 적어도 레닌주의의 조직론이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주장함으로써 레닌주의의 우월성을 옹호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특정한 사회적 맥락에서 혁명을 만들어낼 전략을 레닌주의에 기반한 조직이 어떻게 제공할 수 있을지를 설명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레닌주의 조직론이 과거에 성공적이었다는 것은 특정 레닌주의 조직이 혁명을 성공시킬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단순히 조직형태를 올바르게 하면 혁명이 필연적으로 뒤따를 것이라 가정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자생성의 또 다른 형태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전략에 비추어 조직론을 논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전략에 대한 결정이 조직론에 대한 특정 질문에 자생적으로 답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 가정해서도 안된다. 마오주의 파열이 중요한 이유는 전략의 문제를 조직론을 둘러싼 논쟁의 중심으로 가지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마오주의 지형에 따르면, 레닌의 당조직론의 중요성에 초점을 두고, 레닌주의적 용어들에 기반하여 1917년에 이론적으로 확립된 것을 다시 주장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은 일이다. 요점은 맑스주의의 레닌주의적 확립보다 더욱 멀리 생각하고, 일부 아나키스트/자율주의적 비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새로운 유형의 정당’을 개념화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유형의 정당은 아래로부터, 그리고 위에서부터의 지도력이 갖는 모순을 파악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실제로 혁명을 일으키는 구체적인 이론을 표현할 것이다.
‘새로운 유형의 정당’을 향하여
맑스-레닌주의의 이론적 지형에 관한 한, 우리는 조직론의 한계를 스탈린주의 망령에 의해 표시되는 것으로 묘사할 수 있다. 회고적으로 이해했을 때, 스탈린주의는 레닌주의의 전제들을 가능한 유일한 방법으로 전달한 역사적 현상이다.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의 완수를 통해 보편적으로 증명된 [혁명정당의] 형성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의해 제기된 새로운 모순을 마주함으로써 일괴암적이고, 규율적이며, 하향식 구조로 될 수밖에 없었다. 비록 트로츠키주의가 스탈린주의의 ‘폐해’와 레닌주의의 ‘배신’에 벽을 치지만, 트로츠키주의 역시 레닌주의 지형에 대해 덜 완전한 이해에 갇혀있으며, 이 지형의 한계를 보는 것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트로츠키주의는 심지어 어떤 지형이 한계를 지닐 수 있다는 것마저 거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트로츠키주의는 레닌주의의 보편적 측면의 달성인 스탈린주의를, 레닌주의에 대한 배신이라고 잘못 추정한다. 트로츠키주의 정당들은 조직론에 대해 딱히 다른 것을 약속하지 않는다.
반면, 스탈린주의로 표현된 한계를 넘어선 마오주의는 연속성과 파열의 과정을 통해 조직적 실천의 새로운 방법론의 가능성을 연다. 이는 왜 마오주의로서의 마오주의가 이전의 마오주의와는 다른지를 보여준다. 반수정주의적 맑스-레닌주의는 스탈린주의의 유령에 사로잡힌 레닌주의 지형을 그 자체로 완전한 것으로 취급했지만, 이 지형은 스탈린에 의한 오류와 흐루쇼프 치하의 소련공산당이 생산한 수정주의 때문에, 재구성을 필요로 했다. 레닌주의의 지형을 넘어설 수 없었기 때문에 과거의 마오주의는 ‘새로운 유형의 정당’ 담론과는 무관하게 무의식적으로 스탈린주의적 조직방식에 시달리게 되었다.
마오주의의 초기적 출현은 파열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일부 스탈린주의적인 문제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예를 들어 페루공산당은 인민전쟁 기간동안 개인숭배의 교리를 재기입했다. 네팔공산당(마오주의)는 ‘프라찬다 노선’을 상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례들은 스탈린이 노정한 이러한 한계들을 극복해야 할 필요성을 의식적으로 인식하고 몇 가지 중요한 방식으로 성공했다는 점에서 파열의 시작이었다. 혁명운동의 해체로 증명된 이들의 문제와 무관하게, 페루와 네팔 인민전쟁의 조직적 발전은 군중노선의 적용에 있어 새로운 유형의 정당의 출현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요점은 새로운 유형의 정당이 성취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성취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더 중요하게도, 이러한 성취는 레닌주의의 지형이 실제로 위반될 때에만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스탈린에 의해 (또는 트로츠키에 의해) 개념화된 조직론을 선험적으로 수용하는 혁명정당의 건설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레닌주의 자체를 버리지 않고 레닌주의로서의 레닌주의 당건설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는 대부분 실질적이거나 전략적으로 적용되지 못하는 이론적 난점을 초래했다. 헬 드레이퍼의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이론을 예로 들어보자. 다른 트로츠키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1960년대에 『사회주의의 두 영혼』을 썼을 때 드레이퍼는 반수정주의와는 거리가 멀었고, 그의 식민지 쇼비니즘적인 입장은 그로 하여금 시오니즘을 일종의 민족자결의 뒤틀린 형태로 찬양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사실은 체져두고라도 드레이퍼는 정통 레닌주의의 한계를 인식할 수 있었고, 위로부터의 사회주의, 밖으로부터의 사회주의가 갖는 문제를 인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적어도 통찰력은 있었다.
드레이퍼는 러시아의 집산주의적 체제에서 상대적으로 특권적인 관료를 서구의 자본가들에 대비시킨다. 이러한 지점에서 소련 경제체제의 호소는 중산층에 기반한 사회주의의 역사적 호소와 일치하며, 지식인, 기술자, 과학자, 관료 등의 계층에 대한 호소다. 드레이퍼의 분석에 따르면 지배계급은 화폐권력이나 소유권보다는 국가 권력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따라서 자기 자신을 비자본주의적이지만 엘리트주의적인, 새로운 권력자로 시각화한다.
드레이퍼의 분석은 당대의 핵심적인 투쟁과 분리되어있었기에 혼란스럽지만, 앞에서 톰 클라크가 한 보다 구체적인 분석과, 이 장에서 이루어진 레닌주의 정당의 일괴암주의에 대한 설명을 반영하는 듯하다. 프롤레타리아트를 대변하는 정당에 의해 강요되는 위로부터의 사회주의 문제에 대응하여, 드레이퍼는 노동계급이 레닌주의 정당을 만들어내는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를 옹호한다. 위로부터의 사회주의와 다른 점은 엘리트주의, 관료주의, 외부로부터의 사회주의 도입일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의 자기해방’에 대한 맑스와 엥겔스의 논설을 이론적 개념으로 전환하면,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는 정당의 부과를 요구하는 이론이 아니다. 노동계급이 이미 노동조합과 같은 자신의 조직된 기관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풀뿌리 노조 지도부에 아래에서 이들이 자율적이고 자생적으로 혁명적인 조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투쟁과 대중운동으로부터 벗어난 대부분의 이론들과 마찬가지로, 드레이퍼의 이론은 노동조합화된 노동계급에 의해 전위가 형성되는, 아래로부터의 레닌주의로 스스로를 개념화하는 테일러주의의 실천으로 귀결된다. 게다가 공식적으로 전통적인 레닌주의 당건설로부터 분리되었지만, 실질적으로 레닌주의의 핵심적인 정통성 중 하나를 구체화한다. 즉, (조직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프롤레타리아의 가장 진보한 부분인 노동계급과, 혁명을 만들어내는 전략으로서의 반란 이론. ‘반란전략’의 정통성은 차치하고라도, 노동조합화된 노동계급에 대한 드레이퍼의 추정, 그리고 노동조합과 맑스주의에 대해 쓴 것들이 당시 정치적으로 의심받았다는 사실을 잠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권운동과 흑인민족주의 투쟁에 대해 조사해보면 노동조합이 종종 경제적, 인종적으로 특권을 지닌 노동자 집단으로 채워졌다는 점에서 반혁명적일 수도 있고, 또 많은 경우에 그러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새공산주의운동 조직들이 작성한 인종에 대한 많은 글들은 이 문제를 이미 다루고 있었고, 따라서 드레이퍼가 시대에 뒤떨어진 사회주의를 옹호할 때 미국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더 나은 이해를 발전시켰다.
많은 경우, 드레이퍼가 시작한 이론에만 초점을 둘 뿐, 그의 수많은 단점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 이론은 특히 제1세계의 지식인들과 분파들에 의해 많은 인기를 누렸다. 드레이퍼 본인은 다소 구식이고, 일반적으로 이론적으로 흥미롭지는 않지만, 그의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개념화는 일부 현대 맑스주의 학자들에 의해 이용되었는데(이들은 캐나다의 New Socialist Group이나 미국의 Solidarity와 연계되어 있다.) 이들은 운동주의적 비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드레이퍼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이 이 문제를 회피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믿었다. 드레이퍼주의는 이론적으로 유사레닌주의의 형태를 지니지만, 실제로는 운동주의의 자생성주의를 유지한다.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나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해방”이라는 말은 근사하게 들리지만, 이는 이론적이라기보다는 수사적인 것이다. 이 이론의 문제는 그것이 유물론적 계급론에 배치된다는 것이다. 어떠한 사회구성체를 이루는 노동자들의 이질적 신체는 노동자들이 노조로 조직되더라도 자생적인 의미에서 반드시 사회계급으로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드레이퍼와 당대의 지지자들에 의해 사용된 “자기해방”이라는 관념론적 개념이 구체적인 적용을 결여하고 있는 이유다.
이미 우리는 계급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의미를 재조사하는 방식을 검토했기 때문에,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가 이 영역에 도달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즉, 노동자들의 의식이 자연적으로 혁명적이게 되도록 하는 프롤레타리아적 본질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의미에서 노동계급은 자기해방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지배계급의 지배적 사상은 노동자들을 포함한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이들의 의식을 부분적으로 결정하는데, 이는 혁명적 운동이 세계 자본주의의 “가장 약한 고리”, 반봉건반식민의 맥락에서 가장 자주 발생하는 이유다. 가장 약한 고리에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제국주의 중심부에서 가지고 있는 정도의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지 못한다.
게다가, 이것은 매우 중요한데,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는 자신들이 피하고자 했던 종류의 엘리트주의를 생산한다. 이 이론을 지지하는 대부분의 지식인들과 조직들은 거의 대중적 작업을 하지 않으며, 대중들을 향해 멀고 넓게 나아가려 하지 않으며, 이상화된 그들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스스로를 해방하는 것을 단지 기다리는데 만족한다. “외부로부터 도입”되거나 심지어 “하향식” 구조를 지녔던 정당들 중 다수는 드레이퍼를 따르는 이들보다 때때로 덜 엘리트적이었다. 이 조직들 많은 수가 사회적 조사 없이 지적으로만 조직이론에 참여한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결국, 군중의 가장 낮은 층에 몰두하게 된다면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이론에 따르면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에 방해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군중노선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당은 자본주의를 종식시킬 필요성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을 끌어들이려고 노력하면서 대중정당이 된다. 때로 당 지도부는 문화대혁명의 시작 단계에서 군중의 포격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와 위로부터의 사회주의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새로운 유형의 정당은 지도체계를 유지함으로써 이론과 실천의 통일성을 유지하지만, 그러한 지도를 또한 대중이 이끌 것으로 이해하고, 사회의 모든 이들을 지도자로 변화시켜려고 하며, 따라서 “하향”적인 측면을 “상향”적 개념에 의해 균형을 이루는 정당이다. 이러한 정당은 레닌주의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당의 전략과는 분명히 다른 혁명전략을 만들어 낼 것이다.
운동주의 비판을 통하여
드레이퍼주의적 해결책이 아니라면, 이 새로운 유형의 정당은 무엇인가? 드레이퍼주의적인 해결책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1) 레닌주의 정당이 자생적으로 스스로를 구축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투쟁의 학문적 포기이자 종교적 희망이다. 2) 새로운 유형의 정당은 당에 대한 레닌주의적 개념 이상을 요구하며, 이는 조직론으로 이어진다. 3) 노동조합이 노동계급의 “가장 조직된” 요소이기 때문에 정당이 노동조합 구조 내에서 나타날 것이라는 갓정은, 이러한 노동조합 구조가 자본주의에 의해 조직된다는 것을 망각하는 것이고,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잊는 것이다. 드레이퍼주의는 최종심급에서 운동주의적 경제주의다. 즉, 드레이퍼주의에 따르면 조직화된 노동계급의 경제투쟁을 바탕으로 실행가능한 사회운동이 자발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현대 운동주의는 종종 경제주의를 피하고, 억압과 관련된 정치화의 장소들을 포괄한다.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여러 운동들은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이성애중심주의, 장애차별주의 등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실현된다. 현대 운동주의는 레닌주의로 끝나는 이론적 지형에 따라 이해되어온 혁명적 조직이론에 있어 파열의 필요성을 말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따라서 마오주의가 전위당론으로의 새로운 회귀에 있어서의 개방을 예시한다면, 전형적인 레닌주의 정당에 대한 운동주의적 거부는 이 문제를 해소하는데 필요한 비틀림을 제공하는 변증법적인 역압(逆壓)으로 취급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스탈린 치하에서의 당의 형성을 레닌주의적 지형의 완성으로 판단하는 자율주의의 비판을 살펴보자. 앞서 언급한 것처럼 스탈린주의적 정당 형성은 레닌주의적 조직론의 역사적 완성이기 때문에 이 비판은 어떤 점에서 옳다. 새로운 유형의 정당 이론으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마오주의 파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알랭 바디우조차 이러한 비판에 어느 정도 정당성을 부여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운동주의도 아니고 전위정당론도 아닌 것을 지지하게 되었다. 즉, 혁명 정당이 아닌, 전투적이고 규율적인 조직이다.
더 두드러지는 것은 아마도 노쇠한 자본주의가 불러온 복잡성의 수준에 대응할 수 있는 혁명적 조직과 전략에 대한 로버트 비엘(Robert Biel)의 요구일 것이다. 레닌과 마오 시대 이후로 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 단계는 더욱 복잡해졌다. 생태적, 사회적 ‘배수구’를 통해 스스로를 지탱하고, 저항운동의 창의성을 적절히 활용하고 억제하며, 비엘이 말하는 ‘경로의존성’을 생성함으로써 자본주의는 점점 체계적으로 내재화되었다. 쇠약한 자본주의의 맥락에서,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조직형태에 의존하는 것은 파국적으로 붕괴하는 복잡한 시스템이 제기하는 필연성에 대응할 수 없다. 따라서 비엘은 혁명적 운동이 “공간 연결과, 새로운 생산양식의 근간이 되는 구성요소의 조합에 관한 문제 때문에 새로운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체계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좌파는 시스템적 미래학과 관련되어있어야 한다. (...) 하지만 무엇보다 비판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과거의 레닌주의 정당이 이러한 복잡성을 해결할 수 없었다는 것은 옳지만, 비엘의 요구는 레닌주의 패러다임이 만들어낸 모든 것에 대한 완전한 거부를 의미해서는 안된다. 투쟁의 복잡성을 인식할 것에 대한 비엘의 요구는 반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근본적인 혁명정신 없이 저항적 결사체들이 자생적으로 전략, 헤게모니를 만들어내는 형태의 통일적 조직에 대한 거부요구로 읽을 수 있다. 운동주의는 맑스-레닌주의 조직론이 만들어낸 혁명적 순간에도 근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혁명적으로 파산한 것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레닌주의가 중요한 역사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물려받은 문제를 레닌주의가 생산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전통적인 레닌주의 정당, 소위 “프롤레타리아의 참모”정당이 만들어낸 문제를 지니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혁명에 접근할 능력이 없는 운동주의를 거부한다. 레닌주의의 문제점이 무엇이든 간에, 레닌주의를 거부하는 것은 운동주의적 실천을 초래할 것이다. 정당(또는 그 유사한 것)을 통해 조직하는 것을 거부하는 데에서 어떤 다른 것도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운동주의의 내재적 결함은 레닌주의가 필요하다는 인식으로 이끈다. 하지만 동시에, 레닌주의적 정당형성의 구조 내에는 반혁명적 관료제가 내재하고 있다. 이러한 딜레마는 마치 해답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군중노선에 기초하고 있으며, 종합적인 투쟁정당이 되는데 충분한 새로운 형태의 마오주의 정당이 요청된다.
『공산주의의 필연성』에서 전개된 운동주의 비판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운동주의적인 운동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이 운동이 그들에게 끝인 것처럼 행동하게 하는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공산주의자들은 자생적인 운동에 참여함으로써 첫 발을 내딛는다. 그러한 운동은 필요한 것이고 보편적인 경로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이 첫 단계가 모든 것이 되고, 영구적인 단계가 되는데, 이들은 자발성만을 인정할 뿐, 의식의 적극적인 역할과 그 구체화로서의 공산당을 부인한다.
요점은 따라서, 바퀴를 재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마차 바퀴를 현대식 타이어로 교체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해서, 마오주의는 맑스주의나 맑스-레닌주의에 추가된 것이 아니라 변형된 것이다. 이러한 비판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운동주의의 비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레닌의 전위당론이 스탈린 하에서 한계와 완성에 이르렀음을 이해하고, 마오주의의 관점에서 레닌주의적 보편성의 순간을 변화시킬 방법을 찾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조직적이고 급진적인 분견대, 즉 발전하는 혁명정당의 맹아가 존재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이 장려하고 발전시키는 대중운동이 존재한다. 당의 맹아는 대중운동 속에서 배양되며, 헤게모니의 영역을 확장한다.
일탈
여전히 레닌주의적 지형에 갇혀있는 레닌주의적 전위당론은 더 이상 미래의 발전에 열려있지 않다. 예외는 있지만, 그러한 정당은 일반적으로 혁명전략으로서의 반란이론(theory of insurrection)에 치우쳐 있다. 결국, ‘우파적’ 그리고 ‘좌파적’인 전략적 ‘일탈’이 존재한다. 우파적 일탈에는 선거주의 또는 입당주의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인 사회민주주의적 개량주의가 존재한다. 좌파적 일탈에는 체 게바라의 포코주의 전략과 같은 모험주의가 존재한다. 그러나 레닌주의적 정당형성이 기준이 된다면, 일탈의 분류는 다소 도식적이게 된다.
우리는 레닌주의적 정당이 베른슈타인과 카우츠키의 수정주의에 대한 대응으로 등장했고, 따라서 국가에 협조하기보다는 혁명을 일으키고 국가를 전복시키며,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확립하고자 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우리는 레닌주의 정당이 선전에 전념하는 아나키스트 조직이라기보다는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전위로 인정받고자 하는 의도도 알고 있다. 레닌주의 정당형성에 대한 이해에 기초하여, 레닌주의 당이 거부하고자 했던 전략과 유사한지의 여부에 따라 “좌파적” 또는 “우파적” 편향을 분류할 수 있다.
게다가 그러한 분류는 반란에 대한 볼셰비키적 전략을 평가하도록 이끈다. 한편으로, 볼셰비키적 전략은 국가가 반란과 내전을 통해 제압되고, 점령되고, 파괴되는 순간을 목적하므로, 궁극적으로 국가와의 협력을 거부한다. 다른 한편으로, 볼셰비키적 전략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참여로 혁명을 완수하고자 하며, 이 계급을 전투적 모험주의의 스펙타클 속에 남겨두지 않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추산은 추상적 수준에서만 단순한 것이다. 동시에, ‘일탈’은 기회주의와 초좌익주의 사이의 불안정하지만, 중요한 변증법의 논리적 결과다. 최종심급에서 이러한 ‘일탈’은 레닌주의의 지형 내에서 극복할 수 없는 맑스-레닌주의의 모순에 의해 생성된 논리적 표현이다. 결국 이러한 혁명전략의 실패한 길들이 정말로 레닌주의로부터 벗어난 것인지를 증명하는 것이 어려울 때 일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부정확할 수 있다. 레닌주의가 맑스주의가 직면한 모순을 결정할 수 있는 아르키메데스의 점인 것처럼, 외부적인 것, 또 다른 아르키메데스의 점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르키메데스의 점을 결여한 일부 레닌주의 정당은 반란을 일으키기 위함이라고 주장하면서 선거정치에 굴복하게 된다.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은 입당주의에 대한 방어의 논리로 인용된다. 입당주의는 부르주아 정당의 건설에 참여하고, 평당원을 분열시키고, 총파업과 내전을 서서히 추진해나간다. 이는 전술적으로 올바른 것으로 취급되는 냉소적 형태의 기회주의다. 이 문건은 사회민주주의적 정치, ‘덜 악한’ 부르주아 정당에 대한 지지, 노동조합의 경계 안에만 갇혀있는 모든 종류의 정치에 대한 근거로써 인용된다. 모든 종류의 전투성은 초좌파주의의 의심스러운 사례로 취급되며, 모험주의와 초좌파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레닌주의자 및 유사레닌주의자들의 주장은 실제로 기회주의적일 수도 있는 실천을 지지하기 위해 동원된다.
마찬가지로, 게바라의 포코주의를 받아들인 이들은 레닌주의 전위정당이 반란을 일으킨 대중 앞에 나타날 수 있는 ‘고양이 없는 웃음’이 될 수 있고, 실제로 반란을 촉진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에 받아들였다. 체 게바라는 자신의 포코주의 이론이 마오쩌둥의 인민전쟁 이론을 전술적으로 구현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반란이론의 전술적 구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작은 결사체는 반란을 만들어내기 위해 군사적 모험주의에 착수한다. 이에 따르면 국가는 스스로 반동적인 것으로 드러내며, 억압을 강화하기 때문에 대중의 급진화와 반란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이 전략을 수용하는 사람들은 위의 범주의 ‘일탈하는’ 레닌주의자들을 기회주의자로 생각할 것이다. 이는 ‘모험주의자’들로 추정되는 많은 이들이 레닌주의적 전향으로 배신당하거나 버림받았기 때문이다.
전략적 노선
마오주의가 조직론의 새로운 복귀가 아니고 레닌주의가 그 자체로 완성된 이론이었다는 전제를 거부하는 것은 정확히 볼셰비키 혁명으로부터 무비판적으로 들어올려진 혁명전략, 즉 반란이론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순수하게 레닌주의적인 정당의 논리적 운명이다. 이는 혁명정당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완벽한 대역인 ‘총참모’라는 가정에서 철학적으로 명확하게 따라오는 것이다.
어떻게 완벽한 레닌주의 정당이 혁명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대중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전통적인 노동자 조직(예를 들어, 노동조합)을 총파업의 순간으로 밀어붙이기 위한 장기적인 법적 투쟁에 참여하기. 가능한 모든 경제투쟁, 파업을 활용하여 ‘노동조합적 계급의식’을 가진 이들이 ‘혁명적 계급의식’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만약 장기적인 법적 투쟁이 성공을 거두게 되고, 총파업의 시기가 도래하게 되면 당 간부들이 파업에 나가게 됨으로써 노동조합적 계급의식으로부터의 단절에 영향을 미쳐 내전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군대와 경찰은 분열하게 되며, 가장 규율있고 조직화된 정당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여 대중을 이끌게 될 것이다. 볼셰비키가 권력을 획득한 방법으로 인용되는 위의 공식은 레닌주의 전위당론에서 바로 도출된 것이다. 이는 트로츠키주의자들과 레닌주의자들 모두가 지지하는 전위주의(Vanguardism)다.
인민전쟁 전략은 마오주의의 발생으로 인한 개방의 결과로 나타난다. PCP와 RIM은 인민지구전이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전략이라고 주장했다. 맑스-레닌-마오주의는 이 전략을 중국혁명의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보편적’ 통찰 중 하나로 제시했다. 불행히도 이 주장은 여전히 더 많은 발전을 필요로 한다. 오늘날 혁명적 투쟁을 이끄는 일부 마오주의 단체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인민지구전이 제3세계에서 혁명을 수행하는 방법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제국주의 중심부에서는 반란전략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인민지구전이 이미 수용가능한 것으로 간주되는 곳에서는 제국주의 중심부에서 혁명을 수행하려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논쟁할 필요가 없다.
1990년대 초 이래로, 인민전쟁이 세계 자본주의 중심부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이론화함으로써 인민전쟁의 보편성에 대한 주장을 정교하게 설명하려고 시도한 단체는 캐나다의 PCR-RCP와 이탈리아의 nPCI뿐이었는데, 이들의 설명 방식은 다소 달랐다.
따라서 인민지구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직 이 분야에 이론화의 결여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의해 제한되어야 한다. 게다가 현대 마오주의 경향들이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저자는 이러한 전략이 어떻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이론을 설명하는데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저자는 인민지구전에 관련되어있지만 이 전략의 보편성을 거부하는 조직들이 마오주의자들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기껏해야 우리는 반란이론이 보편적이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10월 혁명 이후 반란이론이 충실하게 적용된 모든 곳에서 빠르게 소멸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수한 레닌주의적 전략의 거짓된 보편성을 인정하는 일이 인민전쟁의 보편성이라는 공리를 도출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여전히 가설로 남아있다. 하지만 저자는 레닌주의의 전위당론이 마오주의의 연속성-파열의 순간에 변형되는 방식 때문에, 인민전쟁 전략이 어떻게, 그리고 왜 설득력있는 가설인지를 탐구하고 싶어한다. 순수한 레닌주의 전위정당이 반란전략을 생산한다면, 새로운 유형의 마오주의 정당은 다른 전략적 접근법을 개발할 것이다.
당의 형성에 대한 변형된 이론은 변형된 전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는 레닌주의 지형에만 속한 전략에 투자해왔던 이들에게 처음에는 이단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유형의 마오주의 정당은 어떤 전략 이론을 생산해 낼 것인가? 모든 진보적인 대항헤게모니 운동을 통해 사회 곳곳에 자리잡고자 하는 운동들의 운동은, 이러한 운동들에 투자하지 않으면서 그 급진적 요소들이 자신의 궤도를 향해 끌려오기를 바라는 정당 형성과는 필연적으로 다른 접근방식을 가질 것이다. 노동조합 의식에 따라 조직된 혁명적 주체를 ‘생산의 지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상상하기보다는 분산되어있는 프롤레타리아트를 찾는 정당 역시 분산 전략을 개발할 것이다. 군중노선을 적용하고, 그러한 군중에서 가장 급진적인 요소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정당은 프롤레타리아트 정체성에 대한 전통적인 레닌주의자가 이해할 수 없는 복잡성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민전쟁론은 전통적 레닌주의의 경계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현실을 이해하는 정당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레닌주의의 중요한 측면인 파열과 연속성을 재확인하는 이론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민전쟁론은 마오주의가 레닌주의와 다른 것처럼, 단순히 반란주의와 다른 전략이 아니다. 인민전쟁 전략은 전략의 변형으로, 마오주의의 연속성-파열의 순간에 파악된 것이다.
포코주의 전략과는 반대로, 인민전쟁론은 반란이론의 모험주의적 표현과 혼동되어서는 안된다. 인민전쟁론은 당을 비밀리에 운영되고 대중과 분리된 무장 결사체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반란을 선동하지 않고도 국가권력에 도전할 수 있는 능력을 발전시키는 대중정당을 건설하는 것을 목적한다. 결국, 현대국가는 봉기를 진압하도록 훈련되어 있고, 대중은 국가장치에 맞서 싸울 준비가 부족할 것이다. 인민지구전의 보편적 측면은 반식민지반봉건적 맥락에 적용될 수 있는 특정한 전술적 측면과 혼동되어서는 안된다.(예를 들어, 농촌으로 도시를 포위)
만약 인민지구전이 보편적이라면, 모든 사회적 맥락에 적용될 수 있는 요소는 사실 단순한다. 당을 건설하는 동안 인민군대의 배아를 육성하는 것. 대중과 연결되고, 대중의 명령에 따라 그들을 당의 궤도로 끌어들임으로써 개입하도록 발전하기. 지구전의 단계들을 통과하기 위해 대중 속에 깊이 결합한 운동을 건설하는 법을 알아내기. 이 단계들은 힘의 축적, 전략방어, 전략균형, 전략공세로 구성된다. 여기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략은 궁극적으로 반란전략보다 더 복잡하며, 대중 전체로 퍼져나가 행동을 통해 전위로서의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정당의 발전을 요구한다. 모든 혁명정당은 과정이다. 군중노선으로부터 발생한 마오주의 전략론은 이 사실을 인지한 것이다. 즉, 혁명정당은 인민전쟁을 만드는 장기적인 과정이다.
인민전쟁?
저자는 마오주의로서의 마오주의에 있어 인민전쟁이 중요한 통찰이라는 주장에 일반적으로 동의하지만, 현대 마오주의자들 사이에서 이것이 논쟁적이라는 점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논쟁이 마오주의의 이름과 개념 사이의 혼동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과거의 반수정주의적 맑스-레닌주의 운동은 인민지구전이 오직 봉건/반봉건적 맥락에만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자본주의 중심부에서는 ‘10월 혁명의 길’이 혁명의 전략으로 남아 있었다. 우리는 심지어 마오 자신은 중국혁명을 만든 그의 전략이 혁명과학의 보편적 발전을 충족한다고 믿지 않았을 것이라 주장할 수도 있다.
여기서 저자는 레닌주의 전위정당론이 마오주의에 의해 변형되었다면, 이 전위정당론에 의존하는 전략론 역시 마오주의의 발생으로 인해 변형되었을 것이라 주장한다. 이미 우리는 반란이론이 순수한 레닌주의적 지형의 한계에 기반하여 개념화된 이론이라는 것을 살펴본 바 있다. 따라서, 반란이론에 대해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인민전쟁의 보편성을 부정하는 것은 마오주의가 정당 형성에 대해 할 말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마오주의의 보편성의 중요한 측면에 대한 부정일 수도 있다.
인민전쟁의 보편적 전략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모든 요소들은 마오쩌둥의 전략론적 저술에서 찾을 수 있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회고적으로 정리되어야 한다. 또한 철저한 맑스-레닌주의자였던 마오는 자신이 새로운 이론적 파열의 싹을 틔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따라서 이러한 요소들은 마오가 당시 생각했을 수 있었던 것과 분리될 필요가 있다. 인민전쟁론의 특정 측면은(예를 들어, 농촌으로 도시를 포위) 마오쩌둥 너머의 역사적 지점에서만 이해되는 보편적 측면에 따라 재구성되어야 한다. 우리는 레닌이 프롤레타리아 독재 이론을 구성하기 위해 맑스와 엥겔스의 일부 무질서한 주장을 돌아볼 때나, 마오쩌둥이 군중노선을 이론화하기 위해 레닌의 일부 무질서한 주장을 돌아볼 때 같은 종류의 회고적인 독해를 발견한다.
최초의 마오주의 파열은 1988~1993년 사이에 이루어졌는데, 인민전쟁이 보편적으로 여겨지기 시작하였다. 『맑스-레닌-마오주의 만세』는 ‘제국주의에 억압받는 국가’에서의 혁명을 만드는 방법을 명확히 한 마오쩌둥의 인민전쟁론에 실제로 특수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지만, 여전히 인민전쟁 이론이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는 개별 국가의 구체적 조건에 맞게 적용되어야 하는데, 특히 오늘날의 세계에 존재하는 두 가지의 일반적 유형인 제국주의 국가와 억압받는 국가의 혁명 경로를 고려하여야 한다.
위와 같은 인용은 권위에 기대어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 혁명적 전략론이 맑스-레닌-마오주의를 시작시킨 바로 그 과정에 의해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인민전쟁과 관련된 현대 마오주의 내부의 논쟁은 사실 마오쩌둥 사상과 마오주의 사이의 충돌로부터 생겨난 논쟁일 수도 있고, 더 정확히는 반수정주의적 맑스-레닌주의와 맑스-레닌-마오주의 사이의 논쟁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인민지구전을 주변부에 위치시키고, 자본주의 중심부에서는 반란 이론을 고수하려는 것은 이 책이 다루는 마오주의로서의 마오주의를 만들어낸 것과는 크게 무관한, 반수정주의적 맑스-레닌주의 노선이다.
인민전쟁의 잠재적인 보편성에 대해 생각하도록 이끌어야할 근본적인 주장은 이미 명백해졌다. 만약 정당 형성 이론이 마오주의에 의해 변형되었다면, 전략론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군중노선을 따르는 전위당, 즉 새로운 유형의 정당에서 나오는 것은 단순하고 제한적인 반란 이론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이 스스로를 재활성화하기 위해 대중 속으로 가고, 상향식과 하향식의 비적대적 변증법적 관계에 의해 스스로를 구성할 때 반란이론보다 더 복잡한 전략이 생산된다.
이미 존재하는 내전
새로운 형태의 마오주의 정당은 레닌주의 패러다임과 연속성에 있으며,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그 운동들을 이끌 수 있는 전투적이고 규율있는 전위가 되기를 추구하는 혁명정당이다. 레닌주의 페러다임의 한계에서 파열된 마오주의 정당은 레닌주의적 일괴암주의로부터 교훈을 얻는다. 마오주의 정당은 상향식 창의력과 하향식 규율이 균형을 이루는 군중노선에 따라 발전하는 정당이 될 것이다. 이러한 정당은 필연적으로 재구성된 구조를 반영하는 전략론을 만들어낼 것이다.
반란 전략이 레닌주의로서의 레닌주의 정당에게 특별한 이유는, 합법적 선동 이후 대중적 불안의 순간에 파업과 봉기를 일으킬 수 있으며, 가장 일관되고 규율있는 혁명조직이 자생적인 반란을 통제하는 조직구조에서 파생된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전략은 1917년에 효과가 있었지만, 측정가능한 수준의 성공으로 반복된 적은 없었다. 따라서 보다 정교한 전략의 필요성이 존재한다.
흥미롭게도,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대한 보다 정교한 전략의 필요성은 1906년 칼 리프크네히트에 의해, 반란 이론에 의문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파악되었다. 리프크네히트는 고도로 발달한 군사기술과 전략, 군대의 규모, 다양한 계급의 불리한 지역적 분포,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의 경제적 격차 등으로 인해 프롤레타리아트에 비해 군대의 우월성이 커졌음을 지적하며, 미래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지금까지 일어난 어떤 혁명보다 더 어려울 것임을 지적한다.
10월 혁명으로부터 나온 전략 이론이 이 문제에 대해 올바른 답변을 제공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잘 해봐야 이는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없는 20세기 초 러시아의 특수성에만 적용된 부수적인 이론이었다. 더욱이,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기 11년 전 리프크네히트가 쓴 『군사주의에 관하여』는 1905년 러시아 혁명의 도시 게릴라 전술에 주목하고 있으며, 이러한 발전이 시대적이고 보편적이라고 보고 있는데, 이는 리프크네히트가 파악한 프롤레타리아 군사전략의 문제가 반란 이론으로 쉽게 해결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오늘날 프롤레타리아트가 대항하는 군대는 1906년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조직적이다. 1917년 러시아에서는 적의 군사력이 이미 엉망진창이었고, 완전히 발달된 자본주의적 군대도 아니었다. 이러한 점에서 같은 전략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게으른 사고의 결과다.
마찬가지로 만약 우리가 중국혁명을 인민지구전의 가장 중요한 전술적 구성요소로 축소시킨다면, 우리는 또한 1949년 중국에서나 볼 수 있었던 반식민지반봉건의 특수성에 보편성을 희생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리프크네히트의 문제에 답하려면 러시아와 중국의 경험에서, 마오주의의 출현과 군중노선을 추구하는 당의 전략적 가능성에 의해서만 드러나는 보편적 요소를 찾아야 한다.
대중 속으로 빠져드는 당만이 반란 이론을 한 단계 넘어서는 일관된 전략을 개발할 수 있다. 새로운 유형의 정당은 규율잡힌 일괴암적 정당의 영역에서 혁명을 계획하기보다는 대중 사이에서 자신의 확산을 목표로 삼아야 하며, 그 확산에서 혁명을 만드는 과정을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조직은 무수한 전선을 통해 모든 투쟁에 촉수를 분산시켜 군사적 저항의 근원이 될 선진적인 세력을 축적한다. 군사적 경험을 쌓고 천천히 퍼져나가 세포와 이중권력의 씨앗을 축적하며, 전략적 방어의 순간을 시작하는 것은 모든 인민전쟁이 따르는 수순이다. 페루공산당이 1981년 선거를 보이콧하고 투표소에 불을 지르기까지 했을 때, 이들은 구 페루공산당에서 나온 작은 조직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계급투쟁에 참여하여 당을 건설하겠다는 의지는 그것이 성장하고 대중 속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하였다.
내전은 이미 존재한다.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지와 의식적으로 싸우지 않을 때에도 수많은 학살을 초래하는 계급투쟁에 참여해야 하며, 이러한 참여는 가시화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