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조슈와 무파와드 폴
개요
1. 칼 마르크스는 사회주의 혁명이 자본주의가 더 발전한 국가들에서 먼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왜 사회주의 혁명은 자본주의 발전 초기 단계에 불과한 러시아와 중국에서 먼저 일어났을까?
2. 1956년부터 1978년 까지의 중국의 발전이 사회주의적이었는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2(A). 국영 산업 부문에서 생산 관계는 어떻게 변화했는가?
2(B). 집단 농업 부문의 생산 관계는 어떻게 변화했는가?
3. 1949년부터 1978년까지 상부구조가 어떻게 봉건제와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회주의 체제로 변화했으며, 이러한 변화에 문화대혁명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가?
4. 중국의 사회주의 발전 과정에서 어떤 추가적인 성과가 있었나?
5 .중국의 사회주의 발전 전략은 무엇이었고, 중국의 사회주의 발전은 다른 식민지 및 반식민지 국가의 자본주의 발전 전략과 어떻게 달랐나?
6. 중국은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서 어떤 도전과 어려움에 직면했나?
7. 1976년 반혁명 세력이 정권을 장악한 후 중국과 중국 인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7-1 정치권력 장악과 자본주의 '개혁' 실행
7-2 생산관계의 근본적 변화
7-3 상부구조의 근본적 변화
7-4 중국 자본주의 "개혁개방"과 제국주의 세계
7-5 중국 자본주의 “개혁개방”과 중국의 노동자계급 투쟁
7-6 중국 자본주의 "개혁개방"이 중국의 토지, 자원, 환경에 미친 영향
7-7 중국 자본주의 "개혁개방" 속에 깊은 모순
7-8 국제 사회주의 혁명속에 중국과 중국 인민
결론
역자의 말
이 글은 중국계 미국인 파오유 칭이 쓴 [From Victory to Defeat China's Socialist Road and Capitalist Reversal]를 번역한 것이다.
인용문의 경우 사정 상 한국에서 미리 번역된 책을 찾아볼 시간이 없었기에 일단 번역한 다음, 영어 원문을 같이 써놓았다. 주석의 경우 따로 저자 주라고 쓰지 않은 것들은 모두 역자가 달아놓은 것이다.
서문
-조슈아 무파와드 폴[1]-
이 책의 서문을 써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저는 -이상주의자들이 실제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는 우연의 일치로- 1998년 파오위칭이 덩위안쉬와 공동 집필한 [사회주의의 재고]를 다시 읽고 있었습니다. 제가 가르치고 있던 강의에서는 그 심오한 에세이의 일부분을 골라 독서 노트를 작성하고 있었습니다. 이 책의 서문을 요청받은 순간은 제가 2017년 [사회주의의 재고] 제2판 서문을 읽고 칭의 명료한 사상에 충격을 받던 바로 그 때였습니다. 제 학생들도 그 명료함을 인정했고, 그 중 탁월한 일부는 '사회주의 실패'를 '사회주의 패배'로 재구성한 그녀의 문제의식을 신선하게 받아들이고, 책의 일부분만 수업 범위로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책 전체를 다 읽었습니다. 저는 마르크스주의와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관한 강의에서 이 텍스트를 여러 철학 작품들 다음에 배치하여 학생들이 최근의 급진적 정치 경제학 연구에 접근하도록 독려했습니다. 학생들이 몇 주 동안 읽었던 추상적인 텍스트와 관련해서 말이죠.
위의 일화는 저와 같은 철학자가 표면적으로는 정치 경제학 작품인 책의 서문을 쓰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파오위칭의 작업은 철학적 탐구가 필요한 범주적 구분을 만들어냅니다. 제 전공은 정치 경제학이 아니라 철학이기 때문에 칭의 작품에 대한 저의 감상은 철학적 관점에 따라 작동합니다. 즉, 나는 그녀가 정치 경제학의 범주를 사용하여 사고의 명확한 경계를 그리는 방식에 관심이 있습니다. 정치의 사고와 실천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말이죠.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저는 정치경제학이 혁명적 변혁을 요구하기 위해 분석 대상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추상 철학의 영역을 떠나 부르주아 경제 이론의 전쟁터에 뛰어든 이유입니다.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자는 자신의 작업에 무엇이 중요한지, 경제적 관점이 계급 투쟁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하며, 따라서 혁명적 관점을 확립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철학의 실천은 그러한 관점을 확립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비교하고 한 입장이 다른 입장보다 나은 이유를 명확히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합니다. 제가 사미르 아민과 같은 정치 경제학자들의 연구에 끌렸던 것처럼 파오위칭의 연구에 끌린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혁명을 만드는 실천에 대한 관여는 언제나 그것을 명확하게 하고, 따라서 철학적으로 중요합니다. 따라서 저의 서문은 마르크스주의 지형의 더 큰 관심사에 따라 칭의 새로운 작품에 대해 생각하고, 이 지형 내의 모든 지적 노동이 혁명, 사회주의적 변혁, 공산주의로 가는 길이라는 맥락에서 그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고안된 작은 철학적 개입이 될 것입니다.
현재까지의 파오위칭의 작업
파오위칭의 기여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고, 그녀의 과거 작품 때문에 [승리에서 패배로: 중국의 사회주의 노선과 자본주의 역전]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소개를 통해 제가 무엇을 쓰려고 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므로 건너뛰어도 됩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독자라면 처음 칭을 접하는 독자인 경우 그녀의 주요 관심사, 비판적 사고의 주요 대상을 소개하여 그녀의 전체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이 책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칭의 작업은 세계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혁명인 중국혁명에서 사회주의의 패배를 검토하고, 사회주의 변혁의 문제를 사유하기 위한 수정주의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중국혁명의 노선 투쟁과 류샤오치-덩샤오핑 라인의 궁극적인 승리를 살펴보면서, 칭은 공산주의를 만들어내는 과정으로서 사회주의가 어떠해야 하는지 뿐만 아니라 그러한 과정에서 겪은 수정주의가 어떤 식으로 나타났는지도 밝혀냈습니다. 즉, 그녀는 사회주의와 수정주의 정치경제적 의미를 엄격하게 드러냈으며, 후자는 붉은 깃발을 흔들며 자본주의 회복과 사회주의의 패배로 이어집니다.
[승리에서 패배로] 이전 칭의 저서는 영어로 쓰인 두 권의 책과 수많은 논문이 있으며, 이는 칭의 사상의 체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첫 번째 저서인 [사회주의의 재고](1998)는 덩위안쉬와 공저한 책으로, 중국의 대반전에 비추어 사회주의 전환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혁명과 반혁명](2012)으로 중국이 선택한 자본주의의 길과 그 길을 추구하기 위해 벌인 투쟁을 살펴본 책입니다. 마지막으로 칭은 [제국주의와 중국의 현재 국면](2017)이라는 에세이에서 중국의 제국주의적 야망을 사회주의 과거와 대조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이제 [승리에서 패배로: 중국 사회주의의 길과 자본주의 역전], 수정주의 류샤오치-덩샤오핑 노선이 사회주의 전환의 가장 높은 표현이었던 사회 구조에 끼친 영향에 대해 지금까지 가장 집중적으로 탐구한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폭로는 사회주의 전환의 경로가 어떻게 타협되고 역전될 수 있는지 보여줄 뿐만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지 드러내고 공산주의를 엄격하게 추구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또한, [승리에서 패배로]는 2017년 출간되었고, [사회주의의 재고]의 후속작입니다. 앞서 언급한 자본주의의 역전을 사회주의의 '실패'가 아닌 '패배'의 결과로 생각할 필요성, 엘렌 메익신스 우드[2]와 같은 저자들의 연구에서 제시된 사회주의 혁명의 '실패' (혁명이 제대로 된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 계급 구조를 가진 선진 자본주의에서 발전한 것이 아니라 '후진적인' 생산 방식에서 일어났다는 문제.)에 대한 유럽 중심의 마르크스주의 정통을 거부하는 것의 중요성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승리에서 패배로: 중국 사회주의의 길과 자본주의 역전
모든 텍스트와 마찬가지로 텍스트의 장점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먼저 텍스트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독자들에게 체스를 두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한 책이 그 의도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했다면 그 책은 그다지 좋은 책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고, 체스의 역사에 대한 적절한 장이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그 책이 훌륭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책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을 이루지 못했으므로 책의 전반적인 가치에 대해 높이 평가하기 위한 좋은 논거는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파오위칭의 [승리에서 패배로: 중국 사회주의 노선과 자본주의 역전]은 어떨까요? 첫째로, 이 책은 중국의 사회주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서술적 정치경제학 작품이 아닙니다. 즉, 단순히 정치 경제를 설명하는 책은 아니죠. 이 책은 마오 시대부터 현재까지 중국의 정치 경제 질서를 서술하고, 둘 사이의 수정주의적 거리를 분명히 증명하지만, 단지 그런 서술만이 목적인 책은 아닙니다. [승리에서 패배로]는 그런 작품으로만 읽히지 않습니다.
둘째, 이 책은 단순히 마오쩌둥 시대부터 시진핑에 이르는 중국의 역사서가 아닙니다. 즉, 이 책의 의도는 단순히 서구 부르주아 역사 서술과 중국 수정주의 역사 서술에 대응하는 역사 서술, 즉 중국 사회주의가 경험한 은총에서부터 수정주의적인 몰락을, 시진핑 정부의 수십 년에 걸친 자본주의의 길을 제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역사적 반박 서사를 구성해 대항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며, 칭이 이 책을 통해 이러한 역사적 반박에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승리에서 패배까지]를 단순히 현대 중국에 대한 혁명적 대항역사 작품으로만 취급한다면 이 책이 중국 역사에 대한 논의를 통해 의도한 바를 또다시 놓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칭의 [승리에서 패배로: 중국의 사회주의 길과 자본주의 역전]은 무엇일까요? 이 책은 정치경제학, 역사학의 도구를 사용하여 공산주의 혁명의 필요성을 제시하는 정치적 개입입니다. 중국 현대사의 맥락이 중요한 이유는 중국 혁명이 가장 최근의 세계사적 혁명이라는 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렇지 않은 척하지만 지금까지 그 그림자 속에 남아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 건설이 어떻게 역전되었는지 그 의미를 발굴하는 것은 잠재적 사회주의 국가가 직면할 장애물에 대한 경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칭에 따르면 중국 혁명이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 어떻게 그러한 사회주의를 확립할 수 있을지 알아내는 것이 시급한 과제입니다. 결국, 그녀는 자본주의의 악몽에 대한 설명으로 이 책을 시작하고 첫 문단에서 제가 주장한 '사회주의냐 야만주의냐'의 대립(엥겔스와 로자 룩셈부르크도 언급한)을 선언하며 공산주의의 필연성을 생각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통찰에는 저나 칭뿐만이 아니라 모든 공산주의자들과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공산주의적 실천들이 공유하는 생각입니다. 따라서 [승리에서 패배로]는 정치경제학과 역사서술을 도구로 사용하여 사회주의의 추구와 수정주의를 구분하고, 이 구분을 설명함으로써 유럽중심주의적 접근이나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를 합리화하려는 접근들과는 구별됩니다. 요점은 가장 최근의 세계사적 혁명과 그 역전 사이의 거리를 통해 현재 사회주의를 확립하는 방법을 이해하고 그 함정에 대비하는 것입니다. 실증적 정치경제학과 급진적 역사학은 이러한 개입을 달성하기 위해 매우 잘 쓰여지는 도구입니다. 중요한 것은 개입과 그에 따른 경계선입니다. 칭이 중국 혁명의 경험에서 얻은 많은 교훈이 있지만, 여기서는 사회주의의 길과 자본주의의 길을 구분하는 세 가지 포인트만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는 공산주의를 만드는 데 대한 반수정주의적 이해의 기초가 되는 포인트입니다.
첫 번째 요점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가져오는 혁명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건설은 저녁 파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중을 동원하여 사회의 모든 측면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과학적 수단 만이 아니라 엄청난 창의력과 선견지명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필요 기반 사회로 나아가는 경제, 국가, 문화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혁명은 사회 존재의 모든 수준에서 계속되어야 하며, 또한 공산주의 이념에 따라 진행되어야 합니다: 옛 슬로건처럼, 혁명은 붉은색이면서 동시에 전문가여야 합니다.
두 번째 요점은 사회주의 하에서 계급투쟁이 계속된다는 것인데, 이는 마오쩌둥이 원래 분명히 밝혔고 마오주의가 보편적 원칙으로 선언한 사실이지만 칭이 중국 혁명의 흥망성쇠를 조사하여 경험적으로 옳다는 것을 입증한 것입니다. 사회주의는 취약하고, 그 건설과 지속성은 언제나 타협될 수 있으며, 공산당 내부의 파벌은 혁명 노선을 무너뜨리고 사회를 자본주의의 길로 재조정시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패배는 종종 “붉은 깃발을 흔들어서 붉은 깃발을 무너뜨리는 것”, 즉 사회주의적으로 들리는 언어를 사용하여 반사회주의적 개혁을 시행함으로써 발생합니다. 이 책에는 그 투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이 투쟁을 통해 사회주의가 어떻게 건설되었는지, 사회주의 하에서 수정주의자들이 계급 투쟁에서 승리하기 시작했을 때 결국 어떻게 패배했는지에 대한 스냅 사진이 담겨 있습니다. (두 번째 요점의 결론은 사회주의가 단순한 단어나 모호한 관념이 아니라 유의미한 구상이라는 것입니다.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알면 그 반대의 의미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알면 어떤 사회 형태가 사회주의인지, 또는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사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주의의 구상은 [사회주의의 재고]에서도 철저하게 다루었지만 이 책에서도 다루며, 이는 중국의 마오 시대와 덩샤오핑 시대의 차이에서 잘 드러납니다).
세 번째 요점은 사회주의 혁명이 패배하더라도 수정주의 우회로 이전에 충분히 공산주의로 나아갔다면(그리고 칭이 여기서 보여주는 것처럼 중국 혁명은 지금까지의 다른 어떤 사회주의 혁명보다 더 멀리 나아갔다) 이 사회주의의 유산은 남아 있고 소멸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사회주의 건설에 동원된 대중은 여전히 동원된 상태이며, 이러한 동원의 기억은 지속되어 후대에 전승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 자본주의 개혁의 모든 단계는 대중의 이익에 반하여 진행될 수밖에 없었고, 자본주의 노선을 확립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오늘날 중국의 반수정주의 좌파를 살펴보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중국혁명과 문의화대혁명의 유산이 노동자, 농민, 급진적 학생들에게 살아있는 기억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패배한 혁명도 쉽게 죽지 않으며, 대중이 동원되면 배신당했을 때를 이해합니다. 이 세 번째 요점은 사회주의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패배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줍니다. 만약 사회주의가 완전히 실패한 것이었다면, 과거 사회주의 국가에서 실패한 이념을 따르려는 중요한 세력이나 투쟁들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가 “실패한 신”의 깃발을 들겠습니까? 실패는 실패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중국에 대해 호들갑을 떠는 자유주의 전문가들의 말처럼, 이러한 투쟁은 오히려 천안문 광장에서 마오쩌둥의 깃발을 들고 문화대혁명으로 돌아가자고 요구하던 노동자, 농민보다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옹호하던 학생 세력과 비슷할 것입니다. 실제로 서구의 전문가들과 중국 정부는 천안문의 대규모 반란을 무시하고 신자유주의 학생 단체의 소행이라는 프레임을 씌웠습니다. 서방 언론이나 중국 정부 모두 대비되는 이유로 반란에 사회주의적 요소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회주의가 단순히 실패한 것이 아니라 패배한 것이라면 사회주의는 여전히 살아 있는 선택지이자 중요한 유산이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 경계 짓기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저는 때때로 비유적인 영감을 주고 때로는 공동 작업자인 친구 벤자눈 스리당케우[3]의 곧 출간될 공상과학 소설 『그리고 기계는 항복할 것인가』의 원고를 막 다 읽었을 때였습니다. 그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에서는, 아주 먼 미래의 다이슨 구 형태 유토피아가 ‘선전 구’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칭이 중국의 자본주의적 개혁의 전형으로 분석한 특별경제구역 선전시를 본떠 지은 이름입니다. 인상 깊었던 점은, 스리당케우의 소설 속 가상의 선전 구와 실제 선전 사이의 거리감이 곧 '시장 사회주의'라는 수정주의적 ‘마르크스-레닌주의’ 망상과 그 실체 사이의 거리감과도 비슷했습니다. 그 공상과학 속의 은하계적 선전 구는 실제 선전시가 갖지 못한 안정성과 빈곤의 부재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실제 선전은 사회주의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빈곤을 발생시키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라고 주장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치 미래의 다이슨 구를 상상하듯, 마오 이후 개혁에 대해 완전히 환상적이고 허구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 중 일부라도 칭의 책을 읽고 관점을 바꾸기를 바랍니다—그들이 과거 자신들의 관념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환상에 가까운 것인지 깨닫기를 바라는 것이죠. 하지만 동시에 저는 수정주의 이데올로기의 강력함도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드리운 긴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국 혁명의 실제 교훈에서 배우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사회주의와 그 공산주의적 목적지가 실제로 살아있는 선택지이자 중요한 유산이라는 것입니다. 칭은 우리에게 사회주의의 의미에 대한 선택지를 제시합니다. 사회주의를 단순히 실제로 존재하는 여러 체제에 붙는 한 의미 있는 이름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이러한 단순한 명명 행위를 넘어서는 개념으로 이해할 것인가, 사회주의는 단지 형식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실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인가? 이러한 반론은 칭이 많은 학계 마르크스주의자들처럼 위대한 사회주의 실험이 마르크스주의 순수주의자들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이상적인 사회주의 개념과 닮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해야 하는 딜레마에 갇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녀는 이러한 해석도 거부하며 사회주의 전환에 대한 그녀의 이해는 사회주의 혁명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녀의 이름과 개념, 형식과 내용을 구분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 순수주의의 막연한 개념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이유로 사회주의를 선험적 영역으로 만들려는 현실 세계의 모든 시도를 금지하는 이상주의적 운동이 아닙니다. 그녀는 이미 사회주의 조직이 존재했고, 그런 자격을 갖출 수 있는 이유가 있지만, 그들이 지속되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패배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파오위칭이 사회주의의 이름/개념과 형식/내용 사이에 그은 선은 수정주의/반수정주의와 반혁명/혁명 사이에 그은 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공산주의를 생각하기 시작하려면 바로 이 선이 경계가 되어야 합니다.
- 캐나다의 마르크스-레닌-마오주의 철학자. 요크대학의 교수
- 1942~2016. 미국-캐나다 국적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 2012년에 등단한 태국의 공상과학, 판타지 소설가, 이 이름은 가명으로 실제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