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혁명적 이론 없이 혁명적 실천은 있을 수 없다던 레닌의 금언이 오늘날까지 실효성을 지니는 이유는 과학적이고 당파적인 이론을 통해서 올바르게 정세를 파악했을 때, 비로소 세계를 개조하기 위한 투쟁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오늘날의 맑스주의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당파적 과학으로서 정세분석의 도구로 작동하고 있는지의 여부는 의심스럽다. 대다수의 급진좌익 정파들은 국제적, 혹은 국내적인 사건 한두가지를 제시하고서 맑스와 레닌의 인용구 몇 개를 후첨한 다음에 혁명의 때가 점점 다가온다는 상투적 구호로 글을 끝내는 원시적 수준의 문건을 끊임없이 반복 재생산 할 뿐이다.
역사적 혁명가들의 인용구를 첨부하는 것으로 과학적 권위를 획득하려는 양태는 단지 그 문건들을 생산하는 자들의 이론적 수준의 저열함이나 교조성에 의해서만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맑스주의는 사적 유물론이라는 과학적 방법론을 지니고 있으나, 현재의 정세를 구체적으로 어떤 전제에 입각하여 어떤 과정을 통해 분석해낼 것인지에 대한 상세한 매뉴얼을 지니고 있지 않다. 이러한 매뉴얼의 부재는 사적 유물론이라는 방법론을 현실에 적용하는 과정에 있어서 이론적 공백을 낳았고, 일련의 좌익들은 이론적 공백을 인용구들에 대한 신앙적 태도로 메꾸기 시작했다.
우리에게는 현 시대의 혁명과학인 맑스레닌마오주의의 관점에서 국제정세를 분석하기 위한 체계, 즉 노동계급의 국제정치학이 필요하다. 하지만 학문체계는 맑스주의의 “불멸하는 과학”에 의해 선험적으로 획득될 수 없으며, 몇 가지 연역적 추론에 의해 선언될 수도 없다. 노동계급의 국제정치학은 다른 모든 과학의 영역이 그렇듯이 부르주아 계급의 과학을 비판하고, 전유하며, 재구성하는 작업에 의해 초석이 다져져야 한다.
이 글에서는 부르주아들의 정세분석도구인 제도권 국제정치학 이론과, 국제정치학 이론의 좌익적 형태인 세계체제론, 그리고 급진좌익들의 정세분석 관행을 비판적으로 검토 및 비교한 후, 노동계급의 국제정치학이 어떠한 전제 위에서 어떠한 방향성으로 구성되어야 할지에 대한 일종의 로드맵을 초기적 형태로 제시하고자 한다.
기존 정세관의 종류와 비판
- 현실주의 국제정치학
제도권 국제정치학 이론의 양대산맥 중 하나인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기본 전제는 국제사회를 무정부 상태로 간주하는 것이다. 현실주의자들에 따르면 국가의 내부에는 초당파적 권력과 합의기구가 존재하기에 내부의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소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국가의 외부에는 초당파적 권력이 존재하지 않기에 항구적인 전쟁상태에 놓여있다. 국가들 간의 갈등은 힘의 대립에 의해 “유예”될 수는 있지만 한 쪽의 멸망이나 복속을 통하지 않고서는 해소될 수 없다. 즉, 국가들 간의 모순은 필연적으로 적대적 모순인 것이다.
현실주의의 관점에서 국가의 최우선 목표는 생존이며, 특히 공세적 현실주의의 관점에서는 생존을 위해서는 위협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국가의 궁극적 목표는 완전한 패권의 확립인 것으로 된다. 국제사회에는 제도적 권력이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 없으므로 국가는 생존과 패권을 추구함에 있어 특정한 조약이나 집단안보에 의존할 수 없으며, 오직 자신의 힘에만 의존할 수 있는 상황에서 경쟁국의 힘마저 정확하게 인지할 수 없기에 끊임없이 안보 역량을 증대시킬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군사적 대립에 대한 현실주의의 분석이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은 국가들 간의 필연적 대립 및 평화로운 대립해소의 불가능이라는 테제를 통해 제국주의 열강 간의 모순이라는 실존하는 현실에 대한 부분적 설명력을 지닌다. 하지만 동시에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은 무질서한 국제사회와 질서잡힌 국내사회를 기계적으로 대립시키며 국가 내부의 모순을 은폐한다. 국내사회를 질서잡힌 것으로 간주하고 모든 시선을 국제사회에서의 대립과 힘의 균형으로 돌리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태도는, 국제정치의 영역으로부터 경제와 이데올로기, 시민사회의 문제를 완전히 분리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론적으로,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은 국제정치를 분석함에 있어서 제국주의와 식민지 간의 모순, 노동계급과 자본계급 간의 모순을 배제하고 모든 것을 열강 간의 모순으로 환원하고 있다. 이러한 환원은 본질적으로 계급투쟁을 은폐하고 상부구조에 대한 하부구조의 영향 및 압력을 부정하는 관념론적 세계관으로 귀결된다. 맑스주의자들은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이 열강 간의 대립과 패권의 역학에 대해 제공하고 있는 일정한 통찰을 수용할 수 있으나, 정세분석의 틀로 수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자유주의 국제정치학
제도권 국제정치학 이론의 양대산맥 중 하나이자 90년대 이후 급속하게 학계에서의 영향력이 확대된 자유주의 국제정치학의 기본적인 전제는 비록 국제사회가 무정부 상태더라도 무정부 상태가 곧 전쟁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은 국제사회의 무법성이 국제기구와 조약, 집단안보 등의 수단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극복은 어째서 가능한가?
자유주의자들의 입장에서 국가들의 목적은 번영이며, 번영은 자유무역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국가들에게는 평화를 유지하고 국제사회를 일정한 제도에 따라 안정화 하여 항구적인 자유무역을 이루어내려는 의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현실주의자들과는 다르게 자유주의자들은 국제사회에 있어 시민사회의 영향을 인정하는데,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시민사회의 영향이란 국가로 하여금 자유무역과 번영, 그리고 평화의 길로 나아가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국가가 본질적으로 평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지니고 있고, 시민사회가 이러한 의지를 항구적으로 유지하도록 압박한다면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유주의자들은 그 답을 권위주의 정권의 존재에서 찾는다. 자유주의자들의 시각에서 권위주의 정권 하의 국가지도자들은 대중의 견제를 받지 않기에 국가 전체의 번영과 자유무역을 추구하지 않으며, 이로 인해 국가 간의 상호의존과 상호의득이 크게 감퇴되므로 권위주의 정권들은 자유주의 정권과는 다르게 전쟁을 추진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유주의 정권 또한 권위주의 정권의 위협에 맞서 예방적 군사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증대된다.
그렇기에 자유주의자들은 전쟁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 전면적 자유무역정책을 통한 국가들 간의 경제적 상호의존 고도화, 그리고 권위주의 정권의 민주화를 제시한다. 민주적인 정권을 지녔으며 자유무역으로 인해 경제적 상호의존도가 높아진 국가들은 쌍방의 이득을 토대로 국제법과 집단안보, 국제적 레짐을 형성해 국제사회의 무정부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다.
자유무역이 모두의 번영으로 이어진다는 선험적 전제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자유주의 국제정치학의 주장들은 현실과 유리된 것처럼 보이며, 실제로도 그렇다. 하지만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번영”을 “제국주의 독점자본의 이득”으로 치환한다면 자유주의 국제정치학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자유무역은 실질적으로 제국주의 독점자본에게 이득이 되며, 소련 붕괴 이후 미국 주도의 자유무역질서는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제국주의 열강들에게 안정적인 제3세계 착취를 보장하며 인류 역사 상 보기 드문 평화를 이루었다.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대립이 심화된 현 시대에도 각 열강블록들 간의 경제적 상호의존성 증대는 일정한 전쟁억지력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모든 것을 제국주의 열강 간의 모순으로 환원하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과 다르게, 자유주의 국제정치학은 모든 것을 제국주의 독점자본의 이득이라는 문제로, 블록을 초월한 독점자본계급의 공통이득이라는 문제로 환원한다. 자유주의 국제정치학에 있어서 진정한 “적”은 경쟁 열강이 아닌, 자유무역질서를 파괴하려는 계급적 적대세력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환원은 본질적인 심급에서 노동계급과 자본계급 간 모순으로의 환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자유주의 국제정치학은 제국주의 열강 간의 모순이 필연적으로 적대적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며, 국제질서의 구축을 통해 제국주의 열강 간의 항구적 평화공존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자유주의 국제정치학은 노골적으로 자본가 계급의 당파성을 대변하고 있으며, 오히려 그렇기에 일정한 현실설명력을 지닌다. 맑스주의자들은 자유주의 국제정치학의 자유무역에 대한 당파적인 신봉과 제국주의 열강 간의 무제한적 공존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수용할 수 없으나, 자유주의 국제정치학의 낙관적 전망들 속에서 제국주의자들의 상호공존 및 레짐구축 시도의 내적 논리를 읽어낼 수는 있을 것이다.
- 세계체제론
세계체제론은 미국의 맑스주의자 이매뉴엘 월러스틴이 종속이론의 영향을 받아 주창한 국제정치학 이론이다. 세계체제론은 세계를 중심부와 주변부, 그리고 반주변부로 분할한다. 중심부는 민주적 체제와 발전된 산업기반을 지니고 있으며 공산품을 수출하고 원자재를 수입하는 제국주의 국가들로 구성된다. 반면 주변부는 비민주적 체제와 후진적 산업기반을 지니고 있으며 원자재를 수출하고 공산품을 수입하며 중심부에 의해 착취 받는다. 반주변부는 중심부와 주변부의 성격을 모두 지니며 둘 사이를 매개하고, 중심부에서 더 이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는 산업을 흡수하는 역할을 맡는다. 세계를 분할하고 위계화하는 세계체제는 특정한 열강이나 권력에 의해 보증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자원이 전이되는 생산체제 자체에 의해 유지된다.
모든 것을 제국주의 열강 간의 모순으로 환원하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 노동계급과 자본계급의 모순으로 환원하는 자유주의 국제정치학과 다르게 세계체제론은 모든 것을 제국주의와 식민지 간의 모순으로 환원한다. 이것이 바로 세계체제론의 문제이다. 세계체제론은 중심부를 상호경쟁적인 제국주의 열강들의 난립된 블록이 아니라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로 바라본다. 그렇기에 세계체제론의 도식에서 “모순”은 세계체제 자체의 차원에서만 존재할 뿐 중심부나 주변부, 준주변부의 내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체제론은 착취가 오직 중심부와 주변부 간에서, 그리고 주변부 내부에서만 이루어지며, 중심부의 노동계급은 착취의 대상이 아닌 착취의 이윤을 나눠받는 공범이므로 중심부와 주변부의 노동계급 간에는 공통이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세계체제론의 관점에서 노동계급과 자본계급 간의 모순이 보편적이라는 사실은 부정되며, 오직 제국주의와 식민지 간의 모순만이 핵심모순의 자리를 지키게 된다.
국가들 간에 일종의 계급적 서열이 존재하며, 세계체제가 중심부 국가들의 주변부 착취를 보장하고 있다는 세계체제론의 통찰은 분명히 유의미하다. 하지만 세계체제론은 제국주의 질서를 지나치게 단순화 및 추상화 시킨 나머지 제국주의 열강 간의 모순을, 그리고 노동계급과 자본계급 간의 모순을 간과한다. 이러한 관점은 제국주의 열강 간의 대립과 충돌에서 빚어지는 제국주의 체제의 균열점을 면밀히 바라볼 수 없게 만들며,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노동계급이 완전히 타락했기에 조직화의 대상이 될 수 없다 MTW(마오주의-제3세계주의)류의 퇴행적 노선의 기반이 된다.
맑스주의자들은 제국주의 세계질서를 분석함에 있어 세계체제론이 제시하고 있는 국가들 간의 위계배열도식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세계체제론의 독선적인 착취관과 추상적 정세관은 반드시 지양되어야 한다.
- 기계론적 정세관
기계론적 정세관은 특정한 이론체계가 아닌, 급진좌익들이 관행적으로 반복재생산하고 있는 정세분석 양상에 대한 임의적 명칭이다. 이러한 관행의 가장 큰 특징은 특정한 사건이 벌어질 때에 눈 앞의 사건에서 어떤 경제적 집단이 직접적으로 이익을 보는가의 여부로 해당 사건을 계획한 집단을 추려낸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너무나 단순하여 오류라고 할 수 조차 없는 일련의 추론에 따라서 해답을 내린다ㅡ이 사건을 획책한 것은 부르주아 계급이다!
당연하게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변혁적 추동세력에 의해 계획되지 않은 사건은 일정하게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관계로 회수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종류의 무오류성이란 매우 값싼 것이다. 이런 류의 논평들은 이론적으로도 아무런 중요성이 없을 뿐 아니라 정치적인 함의나 실제적인 효용도 거의 없다. 이 일련의 좌익들은 현상의 배후에 있는 계급적 당파의 존재를 규명해내는 것으로 만족해버린다.
해당 사건이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관계를 위해 획책되었다는 논평 뒤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몰락은 필연이며 국제적으로 노동계급의 투쟁이 성숙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의 모순이 드러나고 있으니 부르주아의 알량한 음모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격퇴될 것이고 혁명의 때가 머지 않았다는 상투어를 덧붙인다. 결국 이들에게 있어서 모든 현상은 부르주아 계급의 음모이거나, 혹은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견하는 징표이거나 둘 중 하나인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제반 급진좌익들의 정치적 무기력성을 증거할 뿐이다. 특정한 현상을 부르주아 계급의 음모, 혹은 자본주의 종말의 근거라고 규정할 때 좌익들에게는 그 어떠한 행동 목표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부르주아 계급의 교활함에 분개하며 자본주의가 끝장나는 메시아적 순간을 기다리면 될 뿐이다. 기계론적 정세관의 근간에는 역사발전에는 매우 구체적이고 이미 정해져 있는 경로가 선험적으로 존재한다는 목적론적인 신념, 그리고 혁명의 순간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며 역사의 합법칙성이 일종의 예수재림에 준하는 혁명적 사건을 생산할 것이므로 혁명의 제반조건을 만들기 위한 조장/계획 등의 인위적 노력은 필요없다는 믿음이 존재한다.
진정으로 정세분석이 유의미한 정보값을 지니기 위해서는 현상에 대한 분석이 배후의 지배계급을 규명하는 것을 넘어 무엇이 지배계급에게 해당 조치를 필요로 하게 했는지, 해당 현상으로 인해 계급 간의 역관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특정한 국내적 사건은 어떠한 국제적 맥락과 연결되며 지배계급 내부의 권력배열과 균열은 어떻게 약동하고 있는지의 여부로 나아가야 한다. 즉, 현상분석의 대상은 헤게모니와 정치관계의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결론
앞서 살펴본 국제정치학 이론체계의 세 가지 조류는 모두 부분적으로 현실을 설명하고 있으나 각각 제국주의 열강 간의 모순, 노동계급과 자본계급 간의 모순, 제국주의와 식민지 간의 모순으로 모든 것을 환원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은 모두 실존하는 모순이며 적대적인 모순이지만 그 무엇도 다른 것으로 단순히 환원될 수 없다.
과학적인 정세관은 제국주의 4대 모순ㅡ제국주의 열강 간의 모순, 노동계급과 자본계급 간의 모순, 제국주의와 식민지 간의 모순, 자본 간의 모순, 생산양식과 생산관계 간의 모순이 각기 개별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계되며, 생산양식과 생산관계 간의 모순이라는 근본모순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적대적 모순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때 비로소 갖춰질 수 있다.
맑스주의자는 하나의 국제적 현상을 분석함에 있어서 먼저 그 현상이 제국주의 시대의 4대 모순과 각각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모순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이 현상에 있어서 어떠한 모순이 주요한 측면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분석은 수동적 규정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현상의 성격에 대한 규정은 해당 현상이 어떠한 정치적 개입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으며, 정치적 개입이 다시금 어떤 전망을 산출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고려로 나아가야 한다. 또한 해당 현상의 배후에는 어떠한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요인이 존재하며, 어떤 대항문화와 대항이데올로기를 통해 이를 타격할 수 있을지를 논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해당 현상에서 가장 억압받는 것이 누구이며, 그들의 의식적 수준은 어떻고, 어떤 이데올로기에 경도되어 있으며, 어떤 경제적 상황에 놓여있고, 어떻게 조직화하여 동원할 수 있느냐의 여부를 밝히는 것이다. 그들이 만약 분석주체와 공간적으로 과하게 떨어져 있다면, 그들에 대한 연대에 있어 누구를 동원할 수 있고, 그들의 억압과 세계피억압대중의 억압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동원의 주된 구호와 논리는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고, 어떠한 연대가 실질적인 효력을 지닐 수 있는가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론은 주체의 질료를 모색하기 위해 존재하며, 주체를 생산할 수 없는 이론은 죽은 이론과 다름 없다. 결국 모든 종류의 정치적 분석은 이 상황에서 누구를 동원할 것이며, 어떻게 동원할 것이고, 동원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될 수 밖에 없으며 이 세가지 문제로부터 이탈한 모든 종류의 고담준론은 정치적 효용성을 지닐 수 없다. 모든 정세분석의 목적은 언제나 이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