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설명
이 글은 캐나다의 마오주의 철학자 조슈아 무파와드 폴이 쓴 글이다. 무파와드 폴은 이 글에서 트로츠키주의를 비판한다. 저자는 트로츠키주의의 이론이 현실과 괴리되어 있다고 비판하고, 트로츠키주의는 혁명의 성공은커녕 그 시도조차 못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현대적인 이론으로서 마오주의를 소개한다.
마오주의냐 트로츠키주의냐
"마오주의냐 트로츠키주의냐?"라는 질문은 언뜻 보기에 이러한 이념적 논쟁이 실제 사회주의가 붕괴하기 전의 시기에 귀속되는 논쟁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21세기가 시작된지 1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터무니없는 물음마냥 취급될지도 모른다. 결국 1960년대와 1970년대 '반수정주의적' 맑스-레닌주의의 귀결은 트로츠키주의에 맞선 지속적인 논쟁과 트로츠키주의 조직에 의한 반론으로 특징지어졌다. 맑스레닌주의자들과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수많은 소책자와 서적에서 "레닌주의인가 트로츠키주의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거나 트로츠키주의는 레닌주의이고 다른 모든 것은 단순히 '스탈린주의'의 변형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트로츠키주의와 소련의 수정주의에 맞서 이데올로기 투쟁을 벌이려 했던 공산주의 조직들은 '소련의 길'이 아닌 소위 '중국의 길'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마오주의자'로 지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날 우리는 오래 전에 소련이 붕괴하고 중국이 스스로 수정주의의 길을 걷기 시작한 시대, 즉 제국주의 냉전 당시 중국을 세계 혁명의 중심지로 기대했던 반수정주의적 맑스-레닌주의가 완전히 파멸해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반수정주의 운동은 두번째 세계사적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과 실패를 체계화하지 못해 실패할 운명이었다. 우리는 또한 자본주의가 승리를 선언하고 스스로 '역사의 종말'을 주장하며 수많은 공산주의 운동이 붕괴된 시기를 살고 있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는 맑스-레닌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확립하기 위해 조직된 '전위당'에 기반을 둔 모든 유형의 공산주의를 공개적으로 거부하는 아나키즘, 포스트 모더니즘, 좌파 공산주의 운동이 부상하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트로츠키주의와 마오주의는 여전히 존재하며, 때로는 번성하고 있고, 둘 다 서로 1980년대에 끝났다고 여겨졌던 맑스-레닌주의의 전통을 진정으로 계승하고 심지어 이를 대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작금의 시기는 또한 반레닌주의 좌파 이데올로기가 필연적인 교착 상태에 도달하기 시작하면서 자본주의의 승리 선언과 함께 도태된 것으로 여겨졌던 공산주의 전통의 재부상과 이에 대한 새로운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또한 트로츠키주의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으며, 수많은 종파적 분열들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중심부, 특히 북미와 영국에 거주하는 맑스주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심지어 "트로츠키주의자"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하지 않은 자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일관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 는 할 드레이퍼나 라야 두나예프스카야의 영향을 받은 그룹처럼 실제로는 아나키스트에 더 가깝지만 역사와 이론의 주요 순간에 대한 이해에서 여전히 트로츠키주의에 어느정도 충실한 것으로 보여지는 "포스트 트로츠키주의" 그룹들 또한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국제 마르크스주의 경향과 같은 고전적 트로트키주의자들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는데, 이들은 정치적 행동에 대한 접근 방식이 매우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혁명적 초점이 결여된 포스트 모던 '운동주의'에 염증을 느낀 젊은 좌파들을 여전히 끌어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트로츠키주의는 제국주의 중심부의 학계에서 어느 정도 성공적인 이데올로기 투쟁을 벌일 수 있었고, 그 결과 당국은 지식인들의 마르크스주의 담론을 상당 수준 통제할 수 있었다.
마오주의는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의 소멸을 선언했던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즉 페루 공산당(PCP)이 일으킨 인민 전쟁과 1993년 '맑스-레닌-마오주의 만세'를 외친 혁명적 국제주의 운동(RIM)의 등장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마오주의자들은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 혁명의 경험, 즉 성공과 실패를 체계적으로 검토하고 '마오주의'를 혁명 과학의 세 번째 단계로 선언했다. 이때 처음으로 '마오주의'는 ‘맑스주의와 레닌주의의 혼합자로서의 스탈린’의 사상을 대체하는 단순한 '사상'이 아니라 실존하는 이데올로기로서 이론화되었다. 페루공산당과 RIM은 마오쩌둥 사상으로서의 마오주의가 아닌 마오주의로서의 마오주의를 주장하면서, 그들이 '마오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과학적 공산주의의 이론적 발전이며, 맑스- 레닌주의와의 연속이자 단절이고,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혁명과학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마오주의는 맑스주의와 레닌주의를 가장 최신식으로 발전시킨 것으로서, 기존의 맑스-레닌주의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된다.
마오주의의 탄생은 세계 자본주의의 주변부(네팔, 인도, 아프가니스탄 등)-마오는 "폭풍의 중심지" 라고 불렀고 레닌은 "약한 고리"라고 불렀던-에서 혁명적 발전과 인민 전쟁이 폭발적으로 일어났음을 의미하며, 트로츠키주의는 해당 지역들에서 일반적으로 이질적인 이념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트로츠키주의가 명예로운 예외를 제외하고는 소위 '제3세계'에서 이질적인 이데올로기로 취급되어 왔다는 사실이 반드시 트로츠키주의가 이론적으로 파산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특정 지역에서 이론이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트로츠키를 "역사의 쓰레기"로 치부하는 것은 불충분한 비판이다. 마치 다양한 문화적 민족주의와 주변부의 반동적 부위들이 세계 주변부에서 종종 마오주의를 덮어 버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오주의가 실패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듯이 말이다.
또한 자본주의의 중심부 맑스주의자들 사이에서 마오주의가 이념적 헤게모니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몇 가지 중요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심지어 자신을 "마오주의자"라고 자랑하는 일부 사람들도!) 마오주의가 제 3세계에만 적용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마오주의인가 트로츠키주의인가?"라는 질문을 반수정주의자나 강경한 정통 스탈린주의자들이 던지는 "레닌주의인가 트로츠키주의인가?"라는 오래된 질문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후자의 질문은 정통 스탈린주의적 서술에 따른, 트로츠키는 철저한 반레닌주의자, '파괴자', 심지어 제국주의 반동 세력의 대리인이라는 전제에서 출발 하기 때문에 종종 악의적으로 제기되는 질문이었다.
진정 중요한 것은 트로츠키의 행적이 아닌,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레닌주의'를 올바르게 이론화했는지의 여부이다. 하지만 트로츠키주의가 맑스-레닌주의의 명백한 적이라는 비난은 대부분 수사적인 비판에 그치거나 말장난에 불과했다. 스탈린이 '레닌주의'를 이론화했으므로 트로츠키주의는 반레닌주의자이며, 즉 반스탈린주의자는 반레닌주의자라는 주장들은 별다른 의미값을 지니지 못한다.
따라서 마오주의자로서 "마오주의인가 트로츠키주의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경쟁하는 이념적 흐름으로서 트로츠키주의를 조사하려는 것이며, 이 조사를 수행하는 것은 '트로츠키주의자'라는 기표에 대한 어떤 종교적 고착 때문에 종파적 지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을 하려면 왜 트로츠키주의가 아니라 마오주의가 필요한 이론적 결집점인지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 트로츠키주의가 그러한 이념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었다면, 기존의 모든 트로츠키주의 조직들이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트로츠키주의 조직이라도 전 세계에서 볼셰비키적 봉기를 일으켜 자본주의에 대한 공산주의적 반란을 수행했다면, 우리는 마오주의의 타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은 가능하기 때문에 미래에는 상술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으며, 그렇게 된다면 우리 모두 트로츠키주의자가 되어 트로츠키주의만이 혁명의 올바른 길이라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운동주의적' 포스트모던 접근법이 성공할 수도 있고, 자본주의가 정말로 역사의 종말일 수도 있으므로 지금까지 혁명적 과학이 될 수 없음이 입증된 이론적 전통들의 이념적 참여를 막을 수는 없다. 우리가 역사의 가르침을 받는 공산주의자라면, 역사를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역사의 원동력인 계급 투쟁을 통해 얻은 교훈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이데올로기는 역사적으로 매개되어 있기 때문에 이데올로기는 언제나 계급투쟁에 적용될 수 있는가를 중심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우리는 과거의 반수정주의 맑스-레닌주의를 상징하는 반트로츠키주의라는 오래된 구호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 당시의 조직들에게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을 "수정주의자" 또는 "사회 파시스트", "파괴자"라고 부르며 무시하는 것으로 충분했지만, 단순히 남을 "가짜 공산주의자"라고 낙인찍는 것은 진흙탕 싸움에 불과하다. 따라서 트로츠키주의가 단순히 "악의적인 수정주의"가 아니며, 그로버 퍼 같은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마냥 트로츠키는 반공주의 변절자가 아니고, 트로츠키주의자들이 공산주의를 파괴하려는 의도를 지닌 사악한 "파괴자"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트로츠키가 러시아 혁명 당시 중요한 혁명가였으며 일부 트로츠키주의 이론가들이 마르크스주의 이론 발전에 기여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트로츠키주의 지식인들이 제 주의 학계에서 어느 정도 성공적인 이데올로기 투쟁을 벌일 수 있었다는 사실은 축하할 만한 일이다. 맑스주의가 여전히 유효한 학문으로 남아 있는 것은 상당 부분 그들의 노력 덕분이다.
어쨌든 현재 네팔 인민 전쟁의 종말은 마오주의자들도 수정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혁명적국제주의운동(RIM)에서의 타락한 RCP-USA의 최종적인 행동은 마오주의자들도 파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는 모든 맑스주의 전통에서 공산주의자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혐의이며, 트로츠키주의에만 해당되는 원죄가 아니다. "마오주의인가 트로츠키주의인가?"라는 질문을 제대로 던지려면 이 수사학적 늪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은 트로츠키주의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마오주의자로서 그들의 물음을 무시하지 않고, 이념 대 이념, 이데올로기 대 이데올로기로 "마오주의인가 트로츠키주의인가?"라고 정직하게 물어야 한다. 맑스-레닌-마오주의의 출현과 제국주의의 주변부에서 일어난 인민전쟁들 이후, 자 주의의 중심부에 있는 중요한 조직들이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이 일관된 형태의 마오주의로 끌리기 시작했으며, 트로츠키주의 전통의 영향을 받은 트로츠키주의 사상가들과 지식인들은 마오주의를 비판하기 위한 글들을 써왔다.
일반적으로 트로츠키주의자들의 마오주의에 대한 이론적 바판은 상당히 빈약했다. 로렌 골드너의 '마오주의 비판을 위한 메모'는 공산주의 전통에서 마오주의를 추방하려는 시도의 최근 사례로, 어떤 면에서는 트로츠키주의에 어느 정도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인도 마오주의에 대한 자이러스 바나지의 비판이나 크리스 커트론의 마오주의에 대한 일축도 눈에 띄는 예다. 이러한 비판은 대부분 마오보다 트로츠키를 숭배하고 마오주의를 '스탈린주의'로 폄하한다. 이러한 시선들은 실제로 스파르타쿠스주의 연맹이나 국제 볼셰비키 경향과 같은 가장 정통적인 트로츠키주의 그룹이 가진 마오주의에 대한 이해와 동일하다. 마오주의가 단순히 "붉은 깃발을 든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주장은 마오의 신민주주의 이론(모든 트로츠키 주의자들이 RIM 성명이나 맑스-레닌-마오주의의 이론적 표현을 읽지 않은 채 마오주의의 주요 정의라고 가정하는)이 "계급 협동"으 로 잘못 이해되기 때문이다. 이 비판들 중 어디에도 마오주의로서의 마오주의가 1993년에야 비로소 혁명 이론으로 구체화되었다는 인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극도로 결함이 있는 이론적 비판은 마오주의 관점에서 "마오주의인가 트로츠키주 의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필요성을 보여준다. 이는 한편으로는 일부 트로츠키주의자 및 포스트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마오주의를 진지한 적대 대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실제로 그들은 마오주의가 현재 제국주의의 약한 고리에서 대중을 성공적으로 동원한 유일한 공산주의 전통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반면에 정통 트로츠키주의자들(모든 정통 공산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자신의 공산주의가 아닌 다른 공산주의를 선택하는 것에 분노하고 있는)과 언뜻 보기에 그들이 믿고 있는 ‘공산주의’와 전혀 다른 형태의 공산주의에 혼란스러워하는 비 정통 트로츠키주의자 및 포스트 트로츠키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의 공황 상태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마오주의에 대한 상술한 이론적 비판들이 어느정도 트로츠키주의의 영향을 받은 공산주의자들의 이념적 투쟁을 시작시켰다는 것이다. 그들은 젊은 공산주의자들이 마오주의의 유혹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맑스주의 전통을 고수하기를 원하며, 자신들의 전통만이 공산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전통이라고 믿기 때문에 마오주의를 공산주의 전통에서 추방하길 원한다. 우리 마오주의자들도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이러한 호전적 태도가 칭찬할 만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요점은 트로츠키주의와 트로츠키주의에서 영감을 얻은 공산주의를 '수정주의'로 치부할 수 없으며 오히려 이론의 막다른 골목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역사에는 막다른 골목이 많으며, 트로츠키주의는 궁극적으로 혁명의 길을 개척할 수 없는 또 다른 이론적 시대착오이고, 혁명 운동에 이념적, 실천적 통일성을 제공하기 위해 요구되는 이론적 도구가 부족하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트로츠키주의를 정의하는 이론인 '영구 혁명' 이론, 그들의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과 현실사회주의의 실패, 그리고 실제로 혁명을 이루는 데 있어서 막다른 골목에 불과한 트로츠키주의의 무능력을 살펴봄으로써 트로츠키주의의 최종적 실패를 입증할 것이다.
영구 혁명
트로츠키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주장은 '영구 혁명' 이론으로, 이는 『영구 혁명』(1931)에서 가장 잘 드러나지만 『평가와 전망』(1906)과 같은 초기 문서에서도 맹아적 형태로 표현된다. 이 이론은 트로츠키주의와 마오주의의 이론적 경합을 규정하고 있으며, 트로츠키주의가 마오주의를 부정하기로 선택한 이유를 설명한다. 모든 트로츠키주의 조직은 이 이론의 의미에 대해 많은 시간 동안 논쟁했으며, 또한 영구혁명의 이론적 지형을 현대화하려는 시도(예: 사회주의 노동자당의 토니 클리프가 이를 시도했다가 정통 트로츠키주의자들로부터 '수정주의자'로 불림) 속에서도 여전히 해당 이론에 대한 충실성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영구혁명 이론은 그들의 이론적 린치 핀(linch-pin)이다.
영구 혁명 이론은 사실 트로츠키가 부르주아 혁명을 경험하지 못한 나라에서 어떻게 혁명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가, 즉 부르주아 혁명이 만들어내는 정치적 맥락과 생산력이 부재한 세계 주변부에서 어떻게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는가라는 올바른 질문을 던진 결과물이다. 분명히 트로츠키는 러시아 혁명에서의 경험과 볼셰비키의 권력 장악 직후 러시아의 특수한 요소들, 즉 스스로 계층화되어 노동자계급보다 더 많은 수의 농민 대중, '자본주의의 무덤 파는 자'로 여겨지는 노동자계급의 우위를 가능하게 했을 생산력과 사회화의 토대가 부재한 것처럼 보인다는 피할 수 없는 사실 때문에 이 질문을 던진 것이다.
영구혁명 이론의 형성에는 레닌과 볼셰비키 지도부의 수많은 경제 계획,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회주의가 경제적으로 더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들로부터 항상 공격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러시아에서는 사회주의가 퇴보하는 것을 막는 데 필요한 인프라가 부족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또한 트로츠키는 러시아 혁명에 중요한 참여자였기 때문에 당시 매우 강력했던 수정주의적 맑스주의 경향에 반대하여 러시아와 같은 저개발국의 혁명가들은 이들 국가에서 명료한 부르주아 계급이 나타나 혁명을 먼저 일으킬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올바르게 주장하고 싶어했다.
트로츠키는 맑스와 엥겔스의 '영구 혁명'이라는 용어를 빌려 러시아 혁명이 직면한 문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이해를 요약했다:
"영구 혁명의 관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러시아에서 민주주의 혁명의 완전한 승리는 농민에 의존하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형태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필연적으로 민주적 과제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적 과제를 신체제에 부여할 것이며 동시에 국제 사회주의 혁명에 강력한 자극을 줄 것이다. 서방 국가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만이 러시아를 부르주아 복고로부터 보호하고 사회주의 건설을 완성시킬 수 있다."
일부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마오주의자들이 이 진술의 대부분에 동의한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차이점은 트로츠키가 영구 혁명에 대한 그의 관점을 이론화하는 방식에 있는데, 이 인용의 마지막 문장에서 트로츠키가 사회주의 승리의 최종 책임을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부(트로츠키 시대에는 '러시아의 서쪽’을 의미하는 '서방', 즉 주로 영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한 중부 유럽)에 있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부여하는 부분이 우리에게 문제가 된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추가적으로 설명하도록 하겠다.
또한 주변부의 맥락에서, 트로츠키주의 혁명 전략의 핵심적 부분은 마오주의의 이해와 차별화되는 농민에 대한 구체적 분석에 기반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트로츠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농민에 의존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가 진정 의미하는 바는 주변국의 농민은 혁명적 계급이 아니며, 더욱 발전된 소수인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규율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트로츠키는 『영구혁명』에서 레닌이 "농민의 독립적 역할을 과대평가” 했다고 비난한다. 따라서 그의 입장에서 농민은 혁명적 의식을 갖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반혁명적이다(『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프랑스 농민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에 따라). 또한 그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강화할 때 프롤레타리아트가 농민과 필연적으로 '충돌'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농민에 의존해야 한다는 트로츠키의 주장은 수사학적 진술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며, 그는 반봉건적 배경에서 일어난 혁명에서 농민과 그 지위에 대해 매우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한편으로 그는 부르주아 혁명이 먼저 일어난다는 데 일관되게 초점을 맞춘 수정주의 맑스주의에 내재한 조잡한 "단계주의"(나중에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영구혁명 이론이 아닌 모든 혁명 이론에 적용하는 혐의이기도 한)를 넘어서 생각하기를 원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여전히 맑스를 매우 교조적으로 독해했으며,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트를 서유럽의 프롤레타리아트와 동일시하고, 러시아의 농민은 18세기 프랑스의 농민과 완전히 동일시하는 실증주의적 계급 범주에 갇혀 있었다. 여기에는 역사적 유물론의 교조적 적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과 '순수 맑스주의'라는 안전한 영역에 머물고자 하는 본능적 반응 사이의 긴장이 존재한다.
결국 트로츠키의 맑스주의 정통성에 대한 헌신은 맑스주의 방법론적 본질을 압도하는 맑스주의적 창의성에 대한 그의 열망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즉, 트로츠키는 주어진 사회적 맥락에서 맑스주의의 보편성적 방법론을 적용하는 대신, 맑스주의의 지엽적 내용을 더 중시했다. 그는 반봉건 국가에서의 농민의 중요성을 이해했지만, 최종적으로는 농민을 반혁명 세력으로 간주함으로써, 아래에서 더 자세히 다룰 것처럼 이들 국가의 초기 노동자계급이 혁명을 영구적으로 유지하고 반동적인 농민을 규율할 필요가 있다고 믿었다.
일반적으로 트로츠키는 농민들이 프롤레타리아가 주도하는 민주주의 혁명을 지지하지만, 봉건적 의식 때문에 사회주의 건설 단계에서는 이 혁명에 대한 지지를 중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영구 혁명』에서 농민과 산업 노동자 계급 사이의 '내전' 가능성을 가정했는데, 이 내전은 세계 자본주의의 선진 지역에서 노동자 계급이 주도하는 국제 혁명이 있을 때만 피할 수 있는 것이다. 트로츠키가 부르주아 복원을 막기 위해 필요한 메커니즘으로서 '서구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를 강조하게 된 배경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영구혁명의 국제적 차원을 살펴보기 전에 마오주의를 낳은 반봉건적 맥락, 즉 중국 혁명에서 농민에 대한 트로츠키의 견해가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25년 천두슈(陈德秀)로 대표되는 초기 중국공산당 내 트로츠키주의 흐름은 엄격한 사회 조사를 거쳐 당이 이미 혁명적 행동을 하고 있는 농민대중 속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마오쩌둥의 주장에 반대했다. 천두슈는 트로츠키의 노선을 따라 농민은 사회주의 투쟁에서 궁극적으로 반동 세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이 농민 속에 편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대신 국민당 대열에 남아 노동자 계급을 설득하여 당이 이미 반란을 일으킨 농민을 지휘하는데 필요한 계급적 힘을 갖도록 노력할 것을 주장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초기 중국 공산당 대표인 리리싼이 스탈린을 옹호하면서도 같은 주장을 담습했다는 것이다.
동일한 실천이지만 다른 이유(국민당이 부르주아 혁명 세력이라는 것은 리의 잘못된 주장이었다) 로 인해 결국 트로츠키주의와 스탈린주의 이념 노선 모두 동일한 막다른 골목의 실천을 초래했다: 마오쩌둥이 이러한 중국공산당 중앙에서 분리되어 혁명적 농민 속에서 당을 재건한 반면, 천과 리 의 정치 노선에 충성하는 사람들은 1927년 장제스의 국민당에 의해 청산당했다.
더욱이, 영구혁명 이론에 대한 거의 종교적인 고수가 농민에 대한 이해에 어떤 방해를 초래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선진 제국주의 중심지 밖의 혁명에 대해 정통 트로츠키주의자와 대화를 나누기 만하면 된다. 그들은 농민은 봉건주의에 완전히 매몰되어 있기 때문에 반동적이거나 "소부르주아"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농민에 기반을 둔 혁명은 비록 그들이 잃을 것이 없는 가장 많은 계급이라 할지라도 결코 "맑스주의적"이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이는 곧 산업노동자계급만이 혁명의 중추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이며, 이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제국주의의 억압 아래 저개발 상태로 남을 자본주의 형성에서 노동계급이 혁명적 계급으로 존재할 수 없다면, 혁명을 영구히 보류하고 자본주의의 중심에 있는 더 발전된 노동자계급이 세계혁명을 주도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트로츠키는 레닌과 어떤 면에서는 교차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세계 제국주의의 가장 약한 고 리에서 혁명 운동이 일어났지만,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은 여전히 이러한 주변 혁명을 분쇄할 수 있는 경제적 힘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안타깝게도 트로츠키는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의 변증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부에 있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어깨에 혁명적 책임의 짐을 지웠다. 결국 그는 『결과와 전망』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유럽 프롤레타리아트의 직접적인 지원 없이는 러시아 노동계급은 권력을 유지할 수 없으며 일시적인 지배를 지속적인 사회주의 독재로 전환할 수 없다. 이것은 한 순간도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서구의 사회주의 혁명이 노동자계급의 일시적 지배를 사회주의 독재로 직접 전환할 수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실제로 트로츠키는 "[사회 전체가] 발전의 어떤 단계도 인위적으로 건너뛸 수는 없지만, 사회의 구성 부분이 선진국을 모방함으로써 지체된 발전을 앞당길 수 있고, 그 덕분에 발전의 선두에 설 수도 있다"는 카우츠키의 주장을 긍정적으로 인용한다. 트로츠키는 '단계주의'를 피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대신에
주변국에는 기껏해야 '인위적인' 사회주의 제도만이 존재할 수 있으며, 이 제도는 선진국들이 진정 한 국제 사회주의를 주도하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허나 레닌에 따르면 사회주의는 부르주아지가 프롤레타리아의 독재 아래 놓이는 과도기적 단계인 과정이며, 따라서 자본주의가 출현하기 전 귀족을 부르주아 독재 아래 놓으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던 중상주의 자본주의 시대만큼이나 이질적인데 무엇이 ‘정통적’ 사회주의와 ‘인공적’ 사회주의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일까? 사회주의에 대한 트로츠키주의적 이해에 대해서는 다음 섹션에서 다시 설명하겠다.
트로츠키의 ‘불균등결합발전' 이론은 영구 혁명 이론의 국제적 의미에 대한 그의 이해의 기초이다. 여기서 트로츠키는 자본주의를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중심부를 형성하고 제국주의를 통해 세계 자본주의를 부과/통제하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로 이해하는 이론(마오주의 전통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주장한 것처럼)이 아니라, 결합되고 불균등하게 발전하는 전지구적 생산양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세계가 단일한 생산양식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제국주의의 중심에 있는 산업 프롤레타리아트 등 올바른 국제적 생산지점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최종적으로 결정되는 단일한 세계 사회주의 혁명이 존재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다양하다. 자본주의가 전지구적 생산양식이라면 그 생산지점도 전지구적이어야 하며, 이념적으로는 국가를 갖지 않지만 물질적으로는 국가 경제 틀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회적 맥락의 다양한 프롤레타리아 계급보다는 전지구적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말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경제적으로 '후진적인' 지역의 초기 산업노동계급은 가장 반혁명적일 가능성이 높은 농민을 자신들의 선진적 규율 아래 두어야 할 뿐만 아니라, 세계혁명 없이는 특정 지역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없기 때문에 혁명을 영구히 유보하고 세계 생산양식 중 경제적으로 '선진적인' 부분에서 더 선진적인 동료들의 지도를 기다려야 한다. 마치 작은 마을의 작은 공장 노동자들이 대도시의 거대한 공장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하고 봉기를 일으 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자본주의 생산방식의 국제화는 여러 갈래의 트로츠키주의가 혁명당마저 국제화하도록 만 든다. 우리 마오주의자들은 국제주의의 필요성에 대해 동의하지만, 단일한 국제 공산당을 설립하는 것은 잘못된 국제주의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우리 마오주의자들은 모든 국가는 고유한 계급 구성과 보편적 생산양식의 고유한 버전을 지니고 있으며, 서유럽이나 미국에서 발전된 계급과 계급투쟁에 대한 분석을 파키스탄, 베트남 등 다양한 지역에 단순히 강요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유형의 '국제주의'는 결국 제국주의적 쇼비니즘의 재구성에 불과하며, 이러한 국제당의 '더 진보된' 요소들(즉, 미국이나 영국의 당원들) 이 제3세계 국가의 당원들에게 이론적 분석과 행동을 지시하고, 서구적 맥락에서 형성된 이론을 주변부의 노동계급들에게 강요한다.
따라서 트로츠키주의 정당은 어느 곳에서도, 특히 세계 자본주의의 주변부에서 혁명의 초기 단계조차 시작하지 못했고, 심지어 상당한 당원을 보유한 드문 경우(예: 호치민 당이 등장하기 전 베트남)에서도 혁명적 과정을 시작하지 못했으며, 이러한 특정 맥락에서 이론에 결함이 있더라도 유기적으로 발전한 운동들에 의해 빠르게 가려졌다. 공산주의의 핵심이 어떻게든 ‘혁명’을 생산해내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디에서도 혁명적 투쟁을 시작하는 데 실패한 이론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다른 혁명투쟁들이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 패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궁극적으로 실패한 혁명들이 트로츠키주의가 지도한 어떤 혁명운동보다 더 성공적이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영구혁명론은 원천적인 실패이며, 그 자체로 혁명을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 논쟁의 마지막 부분에서 더 이야기할 것이다.
우리가 영구 혁명 이론의 내용을 설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는 이유는 트로츠키주의의 핵심 이론에 대한 마오주의의 비판을 위해서는 기존 주장이 적절히 요약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위에서 언급했듯이 마오주의에 대한 트로츠키주의적 비판은 영구 혁명 이론에 기초해 있으며, 우리의 비판 또한 영구 혁명 이론에 초점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여기서 우리는 같은 질문에 답하는 또 다른 방법인 신민주주의 이론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중국혁명이 반봉건적/반식민지적 맥락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마오쩌둥의 중국공산당도 반봉건 사회에서의 사회주의 건설 방법을 이론화하는 데 관심을 가졌고, 이러한 관심 때문에 적어도 어떤 지점에서는 신민주주의 이론과 영구혁명 이론이 교차하는 순간들이 존재했다. 허나 신민주주의 이론과 영구 혁명 이론 간에는 중대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신민주주의 이론이 중요한 이유는 중국공산당이 다른 트로츠키주의 조직과 달리 실제로 반봉건 사회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을 어떻게 추진할 것이냐는 질문에 답하고 중국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신민주주의 이론은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생산에 필요한 생산력(즉, 자본주의 하에서는 일반 적으로 등장하지만 반봉건적 사회 형성에서는 거의 부재한 산업 인프라)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 가에 관한 이론이다. 사회주의의 특징인 생산력의 집중화는 애초에 이러한 생산력이 존재할 때만 가능하다. 하지만 신민주주의 이론은 사회주의의 자본주의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부르주아 혁명을 기다리지 않고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a)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국가에서는 일반적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 불가능하며,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모든 국가가 어떤 의미에서 자본주의에 편입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b) 사회주의에 필요한 경제적 인프라는 공산당의 지휘하에 구축될 것이며, 따라서 생산력은 사회주의 생산 관계에 복종하고 정치가 지휘하게 될 것이다. c) 해당 기간 동안 공산당의 지도를 받는 "혁명적 계급"간의 동맹이있을 수 있으며, (b)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동맹의 형성은 당의 지도하에 남아있을 민족 부르주아지의 참여와 함께 노동자-농민 동맹을 통해 달성될 것이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이 (c)에 집착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신민주주의론 전체를 "단계주의적"이라고 일축하는 것은(아이러니하게도 영구혁명론에도 "단계"가 존재한다. 주변부에서는 인위적인 사회주 의 제도가 먼저, 중심부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주도하는 진정한 사회주의 혁명이 나중에) 그들이 신민주주의 자체를 "계급 협동"으로 치부하며, 그들이 마오주의를 "적기를 든 부르주아 혁명"의 이론임을 증명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종종 신민주주의 이론의 계급 협동적 측면을 증명하기 위해 중국에서 실행된, 그리고 현재 마오주의자들이 이해하는 신민주주의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례를 사용한다. 실제로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수카르노의 '지도민주주의' 이론이 마오의 '신민주주의' 이론과 동일하지 않았고, 마오주의 이론의 이론적 핵심인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이 1957년 수카르노가 혁명적 민족주의에 대한 접근법을 제안했을 때는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 초 인도네시아 공산주의의 실패를 신민주주의, 그리고 더 나아가 '마오주의'의 실패 사례로 종종 인용하고는 한다. 또한 인도네시아 공산당은 신민주주의 이론에 따라 행동하지 않았으며, 위에서 언급한 마오의 이론과는 달리 민족 부르주아 헤게모니의 틀 안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민족 부르주아지를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의 상황이었다. 따라서 새로운 민주주의는 공산당이 혁명을 주도하고 완성할 때만 가능하다. 즉, 공산주의 정치가 주도권을 잡아야 하며, 사회주의에 필요한 생산력은 공산주의 정치의 주도 하에 발전되어야 한다.
더욱이 신민주주의 이론이 반봉건적-반식민지적 맥락에서 민족 부르주아지가 '혁명적 계급'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 이유는(그러나 어느 정도까지만, 그리고 항상 당의 지시에 따라), 이 계급은 제국주의적 이익을 대변하는 부르주아와는 달리 제국주의 간섭과 반봉건적 부위를 제거하는데서 오는 계급적 이익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봉건/반식민지 사회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한다는 틀에서 보면 이러한 의식은 객관적으로 혁명적이었다다. 마오쩌둥은 『신민주주의론』에서 "식민지 및 반식민지 국가의 부르주아지이자 제국주의의 억압을 받는 중국 민족 부르주아지는 외국 제국주의자들과 관료와 군벌로 구성된 국내 정부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특정 시기에는 어느 정도 혁명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썼다." 마오쩌둥은 이러한 '혁명적 자질' 이 "특정 기간과 어느 정도"에만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는 불과 몇 단락 후에 이러한 자질의 한계를 규정함으로써 신민주주의 이론이 계급 협력 및 민족부르주아 추종과 관련이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러나 동시에 민족 부르주아는 식민지 및 반식민지 국가의 부르주아 계급이기 때문에 경제적, 정치적으로 취약하므로 중국 민족 부르주아지는 또 다른 특성, 즉 혁명의 적과 화해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특성도 가지고 있다. 이들은 혁명에 참여하더라도 제국주의와 완전히 단절할 의지가 없고, 더욱이 토지지대를 통한 농촌 착취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제국주의는 물론 봉건 세력을 철저하게 타도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이것은 계급 협력처럼 들리지 않는다. 사실 마오쩌둥이 반봉건/반식민지적 맥락에서 민족 부르 주아지를 이해하는 방식(그는 자본주의 중심부의 부르주아지와는 다른 부르주아지라고 주장한다)은 트로츠키가 농민을 이해하는 방식, 즉 혁명의 특정 단계에서는 유용하지만 이후에는 혁 명의 걸림돌이 되는 세력으로 이해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따라서 민족 부르주아지를 노동계급 영도 하에 배치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신민주주의 기간에 대한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반동 역사가들의 불만은 이 불쌍한 부르주아들이 공산주의에 협력하도록 속아서 부르주아적 '권리'를 빼앗긴 것에 대한 한탄이다.
실제로 이것은 "마오주의냐 트로츠키주의냐"의 문제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하며, 대약진이 끝날 무렵 신민주주의 시대는 끝났고(부르주아 반동 역사가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다르게 그리 비극적이지만은 않은 대약진운동의 중대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결론은 마오쩌둥 아래 통합된 당파에 의해 공개적으로 선언되었고 마침내 사회주의가 등장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제는 더 이상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필요한 맥락을 구축하는 방법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유지하고 공산주의에 필요한 사회적 관계를 생산하는 방법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에 신 민주주의를 넘어서고 싶지 않아하며 신민주주의를 사회주의와 혼동하고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강화하기 위한 투쟁을 수행하기를 원하지 않는 정치적 노선이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다. 따라서 해당 시기에는 대 프롤레타리아 문화혁명 기간 동안 생산 관계의 정치적 문제를 다루지 않고 사회주의에 필요한 생산력 건설에만 집중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이론인 "생산력 이론”이 등장하여 신민주주의만을 계속 이어가야 하며 신민주주의가 곧 사회주의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등장했다.
최근 네팔에서 발생한 사건은 이 문제의 좋은 예다. 네팔공산당(마오주의자)[CPN(마오주의자)]은 성공적인 인민 전쟁을 일으켰고, 네팔공산당(마오주의자)[UCPN(마오주의자)]이 되어 신민 주주의 시대와 비슷한 상황을 구축할 수 있었다. 네팔도 반봉건/반식민지 국가였기 때문에 사회주의에 필요한 맥락을 만들기 위해 신민주주의를 확립해야 했지만, 당내 부르주아 노선이 중국보다 일찍 승리했고 혁명이 "붉은 깃발을 든 부르주아 혁명"이라고 정확히 부를 수 있는 것으로 변질되면서 신민주주의조차 포기되었다.
그러나 마오주의자들은 노선 투쟁이 항상 혁명적 맥락, 즉 사회주의의 길로 더 이상 나아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혁명을 완성하려는 사람들 사이의 투쟁 속에서 나타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신민주주의 혁명이 있든 없든 이러한 노선 투쟁은 일어날 것이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신민주주의 시기 이전, 도중, 이후에도 노선 투쟁이 존재했고,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덩샤오핑을 중심으로 결집한 세력이 승리하고 원래 신민주주의 시대로의 회귀를 구상했던 자본주의 복원이 시작될 때까지 부르주아 노선은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따라서 자본주의 복원의 문제는 신민주주의 이론과는 특별히 관련이 없으며, 사회주의 역시 계급 투쟁의 시기이기 때문에 마오주의자들에게는 복고란 사회주의 하에서 항상 가능한 일이고, 이는 맑스-레닌-마오주의의 핵심 이론적 요소이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이론이다.
따라서 마오주의에 따르면 신민주주의 이론은 아무리 제대로 이해하더라도 세계 자본주의의 주변부에서 발생하는 혁명에 적용될 수 있는 이론에 불과하다는 점에 유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로벌 자 본주의의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혁명 운동은, 즉, 완성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안에서 나타나는 운동은 신민주주의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사회주의 건설에 필요한 경제적 인프라가 이미 존재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에 신민주주의를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공산주의는 모든 특수한 상황에 적용 가능한 보편적 측면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혁명적 공산주의의 새로운 이론적 단계로 추진되어 온 마오주의가 신민주주의 이론에 의해 일차적으로 정의되지 않는 이유이다. 맑스-레닌-마오주의 이론의 핵심은 위에서 언급한 내용이며, 이 점은 당이 어떻게 기능 해야하는지, 주어진 역사적 발전의 순간에 상부 구조가 어떻게 기반을 방해하는지, 당이 대중에게 책임을 질 수있는 방법, 인민에 대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추가 요점과 연결된다. 또한 마오주의는 제3세계 혁명의 중요성을 더욱 고려할 뿐만 아니라, 제3세계 혁명이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약한 고리'이기 때문에 더 자주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는 레닌의 주장에 동의할 뿐만 아니라, 제1세계에서 혁명을 만드는 것과 우리가 필연적으로 직면하게 될 문제들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사실, 자본주의의 중심에 일종의 "혁명적 특성"을 가진 중요한 농민이나 민족 부르주아지가 없다는 사실은 이 지역에서 신민주주의의 성립 가능성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중심부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은 동원된 대중과 공산주의자, 프롤레타리아트의 다양한 부문, 소부르주아 중 일부 의식 있는 요소(예: 학생과 지식인), (미국과 캐나다의 맥락에서) 피억압 민족, 심지어 특권적 정규직 노조에 속한 노동자보다 혁명에 더 기울어질 수 있는 일부 소상공인들 사이의 통일전선에 기초할 가능성이 더 크다. 또한 사회주의의 성립 가능성은 사회주의를 추진하 려는 사람들과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고수하려는 사람들 사이의 계급 투쟁을 의미한다는 사실,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에서 계급 투쟁이 계속된다는 사실은 여러 지역에서 마오주의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다. 이 점은 다음 섹션에서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마오주의는 스탈린주의인가?
우리가 트로츠키주의를 접할 때 직면하는 중요한 문제는 그들이 레닌주의의 기본을 수용함에도 불구하고, 트로츠키주의가 아닌 모든 형태의 공산주의는 사실상 '스탈린주의'라고 낙인을 찍는다는 지점에 있다. 따라서 레닌 이후에는 트로츠키주의 또는 스탈린주의만 존재할 수 있고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오주의는 스탈린주의의 변형으로 취급되며, 트로츠키주의자들에게 있어 마오주의가 스탈린주의인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일반적으로 트로츠키주의자들에 따르면 마오주의는 스탈린의 "일국 사회주의" 이론과 일치하기 때문에 스탈린주의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레닌주의 지형에서 트로츠키주의와 경쟁하는 유일한 이념적 옵션으로 간주하는 "스탈린주의"를 정의하는데 주로 책임이 있다는 점이다. 스탈린이 한 국가가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이 가능하다 고 주장했다는 사실(그러나 반드시 그 자체로 공산주의는 아니며, 이 점이 중요하다)은 트로츠키주의의 영구 혁명 이론[위 참조]과 충돌할 뿐만 아니라, 가장 극단적인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스탈린이 러시아의 혁명에만 관심을 가졌고 그것이 유일하게 가능한 사회주의 혁명, 즉 한 국가에서만 일어날 수 있고 나머지 세계에서는 사회주의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경우가 종종 존재한다.
마오쩌둥의 중국 혁명이 세계 혁명 없이 중국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려고 시도한 것은 사실이며, 따라서 이것이 '스탈린주의'라는 증거가 된다면 마오주의는 스탈린주의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 혁명에 대한 마오주의적 이해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의 매우 중요한 이론적 구분, 즉 레닌이 『국가와 혁명』에서 주장했지만 트로츠키의 『영구 혁명』저서에는 없는 구분과 일치한다. 레닌이 국가와 혁명에서 주장한 바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단계의 사회주의는 한 국가에서도 가능하며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이지만, 완전한 공산주의는 반드시 국가의 부재를 수반하기 때문에 전 세계가 사회주의가 되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 대부분이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해서 한 국가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수립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며, 무엇보다도 이 과도기에 진입하는 폭풍의 중심지가 많을수록 세계 공산주의가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세계를 단일하고 "불균등"한 생산 방식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전 세계가 사회주의 혁명을 동시에 일으켜야 하며 그렇지 않은 사회주의 혁명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사회주의 혁명을 시작하는 주변부 국가들은 '인위적인 사회주의 제도'를 갖춘 민주주의 혁명만을 기대할 수 있으며,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부에서 더 발전된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혁명이 주도되지 않는 한 결국 농민 과의 내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주변부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은 영구적이어야 하며, 부르주아 혁명을 기다리는 함정에 빠져 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이 혁명은 불가능하며, 경제적으로 더 발전된 국가들의 혁명 적 개입 없이는 민주주의 혁명(부르주아 혁명? - 트로츠키주의의 범주는 여기서 더욱 혼란스러워진다)이 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주장이다.
따라서 트로츠키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과 자본주의적 세계 체제의 범주를 혼동하는 것처럼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범주도 혼동한다. 트로츠키가 세계 사회주의 혁명만이 가능하며 사회주의는 특정 국가에서만 출현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맑스와 엥겔스가 세계 사회주의 혁명만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구절에서 찾을 수 있으며,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이 사실을 상기시키 고 싶어 한다. 하지만 문제는 맑스와 엥겔스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동의어로 자주 사용했고, 레닌이 『국가와 혁명』을 저술한 후에야 이 범주에 의미적 명확성이 추가되었다는점이다. 즉, 레닌은 맑스와 엥겔스의 저작에서 사회주의(즉, 부르주아가 프롤레타리아의 독재 아래 놓인 중앙집권적 국가)의 개념이 공산주의(즉, 계급 없는 사회)의 전 단계적 범주로 취급된 순간을 찾아내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러한 개념에 대한 레닌주의의 설명과 구체화에 따르면, 특정 국가에서 사회주의 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존재하는 동안 다른 국가에서는 자본주의가 유지될 수 있지만, 물론 그러한 사회주의의 존재는 외부 제국주의 압력의 영향을 받으리라는 것이다. 동시에 레닌은 맑스와 엥겔스에 이어 공산주의는 전세계적으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매우 실용적인 의미에서, 공산주의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사멸해야만 하며, 자본주의 세계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가 사멸하면 제국주의 국가들이 이 신흥 공산주의를 즉시 분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로츠키는 여기서 레닌의 개념적 범주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아마도 그가 세계 자본주의를 이해한 방식에 따라 사회주의 혁명은 세계 혁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하게 된 것 같다.
따라서 트로츠키주의에 따르면 사회주의는 여태껏 존재한 적 없으며, 단지 타락하고 변형된 노동자 국가와 보나파르트주의(즉, "스탈린주의") 정권이 존재했을 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본주의 복고에 대한 트로츠키주의의 대응은 단순히 처음부터 사회주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선언하거나 때로는 기꺼이 기뻐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오주의자들은 다른 태도를 취한다. 마오주의자들은 자본주의 복고가 이루어진 국가들이 사회주의적이었지만 사회주의 투쟁을 공산주의로 이어가지 못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위에서 언급한 맑스-레닌-마오주의의 핵심 통찰력 중 하나인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에서도 계급투쟁이 지속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즉, 사회주의도 계급 사회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복원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결국 부르주아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하에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이 독재를 물리치고 다시 권력을 잡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상부 구조에 남아 사회주의 사회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점인데, 이는 우리 대부분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헤게모니를 쥔 상태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 혁명 이후에도 과거 생산 방식의 오물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쉽게 이로부터 벗어나기 어렵고 - 공산당원들에게도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강력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로츠키주의자들은 과거 사회주의(그들에 따르면 '기형적 노동자 국가')에서의 자본주의 복고에 대해 전혀 다른 주장을 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다소 단순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이들의 주장은 스탈린과 그가 만든 관료제가 러시아 혁명을 망쳤다는 것인데, 이는 놀랍게도 스탈린과 그의 관료제가 천재 혁명가 트로츠키의 영구혁명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한 트로츠키주의자들의 해결책은 스탈린 대신 트로츠키가 레닌 이후 러시아 혁명을 이끌었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영웅숭배로 귀결된다.
반면 마오주의자들은 트로츠키가 러시아 혁명을 이끌었더라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선, 그는 사회주의 하에서 계급투쟁이 당 내부에서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고(이러한 통찰은 중국 혁명 기간에 일어난 러시아 혁명의 총화 속에서만 가능했으며, 대중이 당중앙을 포격하는 문화혁명 이론으로 구체화되었다), 그의 영구 혁명 이론은 그의 실패를 예견한다. 반동 세력의 공격을 받고 있던 러시아에서 과연 그가 어떻게 세계 사회주의 혁명을 지휘할 수 있었을지 추측하기는 다소 어렵다. 따라서 트로츠키주의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자면 러시아 혁명은 트로츠키가 있든 없든 실패할 운명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마오주의자들은 사회주의는 과도기적 단계이며 따라서 사회주의란 곧 혁명 계급이 헤게모니를 완성하려고 시도하는 계급 투쟁의 시기이기 때문에 사회주의 혁명의 실패는 항상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사회주의 이전에도 혁명이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은 혁명가들이 맑스주의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얻지 못했거나 진정한 민주집중제의 마법을 가진 당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주의 혁명 중에는 자본주의적 복원이 항상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해한다. 당 내부에는 언제나 부르주아 노선과 프롤레타리아 노선 간의 투쟁이 존재하며 때로는 부르주아 노선이 승리할 수도 있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주요한 관심사인 스탈린과 스탈린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서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스탈린주의자가 아닌 유일한 레닌주의자들로 정의하기 때문에), 우리는 적어도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스탈린주의"라고 부르는 현상을 올바르게 비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동의해야 한다. 레닌의 후계자로서 스탈린에 대한 완전한 충성을 선언하고 스탈린을 조금이라도 비판하는 혁명 운동은 제대로된 "맑스-레닌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일부 맑스-레닌주의자들과 달리, 우리 마오주의자들은 공산주의 운동 내의 모든 입장(심지어 마오까지)은 구체적이고 철저한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스탈린이 비판될 수 없는 존재라거나, 소수의 남은 호자주의자들이 믿는 것처럼 스탈린 비판이 곧 반혁명적 행동과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느다.
그러나 스탈린을 단순히 볼셰비키 혁명을 망친 사악한 독재자로만 보는 것은 부르주아 도덕 주의의 냄새를 풍기며 러시아 혁명에 관한 반동적 선전의 최악의 요소를 그대로 담고 있다. 다가 이러한 관점은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을 비난한 이후 소련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할 수 없다. 실제로 당시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소련에 관한 트로츠키 이론의 정확성을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흐루쇼프를 칭찬했다. 그러나 흐루쇼프의 스탈린 비난이 옳다면, 흐루쇼프가 스탈린 시대를 비난한 진정한 목표였던 흐루쇼프의 수정주의 수용(자본주의와의 평화공존) 또한 옳다고 봐야 할 것이다.
흐루시초프가 수정주의를 분명히 수용했고 스탈린이 아니었으며, '스탈린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것을 분명히 거부했다면, 흐루시초프의 이 시기 단절이 수정주의의 특징(즉, 평화 공존론은 더 큰 맥락에서 베른슈타인이 주장한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이라는 점에서 스탈린 시대에게 단순히 '기형적이고 타락한 노동자 국가'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흐루시초프에 대한 트로츠키주의 비판자들조차도 소련의 흐루시초프 이후 시기와 스탈린 시기를 정확히 구분하지 못했으며, 사실상 동일시했기에(관료주의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소련의 이론과 실천에 심각한 인식론적 단절을 불러 일으켰고 실제로 전 세계를 뒤흔들었으며 전 세계의 수많은 공산주의 운동에 불만을 품고 반둥 프로젝트의 실패로 이어진 흐루쇼프 수정주의를 제대로 인식할 수 없었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흐루시초프의 수정주의를 단순히 '스탈린주의'의 또 다른 변형으로 취급할 뿐이다. 그들은 기껏해야 고르바초프와 옐친이 그랬던 것처럼 흐루시초프도 또 다른 '스탈린주의자'였을 뿐이라고 주장하고는 한다.
마오주의자들은 소련의 실패를 사악한 개인이 자신의 사악한 계획에 헌신하는 관료조직을 만들 수 있는 권력을 소유한 결과(동화나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처럼!)로 보는 대신, 사적 유물론의 방식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스탈린을 전지전능하고 사악한 인물로 취급하는 대신, 어느 시점에 어떤 이유에서든 혁명 국가를 이끌었던 사람(역사가 달라져 트로츠 키가 러시아 혁명을 이어받고 스탈린이 망명 중이었다면 우리는 트로츠키에 대해서도 똑같 이 말했을 것이다)으로 보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오류를 범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스탈린의 사회주의 건설 방식이 수정주의와 러시아 혁명 또는 모든 혁명의 실패를 낳은 오류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에서 계급투쟁이 계속된다는 이론은 스탈린주의 시대의 실 패와 흐루쇼프 시대의 수정주의를 모두 설명한다. 스탈린은 사회주의의 자연스러운 부분인 자본주의 복원의 가능성, 즉 사회주의가 여전히 계급 사회라는 점과 반혁명적 정치 노선이 상층 구조에 보존된 부르주아적인(혹은 심지어 반봉건적인) 이데올로기의 계승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이해 하지 못했다. 따라서 우리는 부르주아 정치 노선을 채택했을 수도 있고 채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개별적 인물’들에게 찬양 혹은 비난을 돌리기 보다는 흐루쇼프의 수정주의에 맞서 소련의 스탈린 시대를 옹호하면서도 동시에 스탈린이 실제로 저지른 원칙적 오류들을 지적하고자 한다.
중국공산당과 마오쩌둥은 스탈린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형이상학적이고 주관주의적인 사고를 했으며, 대중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인민 사이의 모순을 공산주의와 적 사이의 모순으로 취급하고, 사람들을 반혁명가로 잘못 단죄하고, 탄압의 범위를 잘못 설정하고, 국제 공산주의 운동 내에서 쇼비니즘을 보여줬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흐루쇼프의 스탈린 비난과 수정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국제 공산주의 운동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말하는 소위 '스탈린주의 관료'들은 사회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수정주의적 개인과 집단, 그리고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마치 외국의 간섭이나 의도적인 반역의 결과인 것처럼 간주했다. 게다가 그들은 당 자체가 사회주의 하에서 계급 투쟁의 우위를 반영하는 유기적 노선 투쟁의 주최자라는 사실, 당의 지도부가 종종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보존하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이론은 스탈린 시대에 청산 정책과 정치적 치안 유지에 매우 충실했던 스탈린의 후계자 흐루시초프가 수정주의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다. 흐루시초프가 수정주의자가 된 것은 그가 외국 요원('스탈린주의' 가 가정하는 것처럼)이었기 때문도 아니고 관료 출신(트로츠키주의가 가정하는 것처럼)이었기 때문도 아니며,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즉 수정주의는 특히 당 지도부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 에게 항상 설득력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탈린주의"에 대한 트로츠키주의적 분석은 "사회주의는 처음부터 사회주의가 아니 었다", "단지 어떤 나쁜 사람이 사회주의를 이끌었기 때문", "냉혹한 관료주의만 없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것 외에는 사회주의가 어떻게 그리고 왜 실패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한다. 그리고 이러한 설명은 혁명을 영구적으로 유지하고 전 세계 모든 사람이 함께 사회주의를 건설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는 사회주의를 제대로 건설하는 방법을 설명할 수 없다. 과연 이런 주장들이 '나쁜 사람'이 권력을 잡고 모든 것을 망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혹은 그런 악한 사람들이 전체주의 권력을 영원히 얻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마법적인 민주집중제 매커니즘이 요구되는 것일까? 결국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주장은 스탈린을 대신하여 위대하고 천재적인 혁명가인 트로츠키가 소련을 대신 이끌어야 했다는 것이다.
기실, 정의상 조직화된 행정 구조인 관료제가 아무리 단일한 세계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사멸하리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환상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사회주의가 어떻게 자발적으로, 그리고 행정부에 대한 투쟁 없이 발전하고 공고화될 수 있을까? 관료주의는 혁명가들의 반관료주의적 시도에도 불구하고 나타날 수 있고 또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순수한 혁명가들의 초자연적인 반관료적 힘을 통해 관료제의 등장을 가로막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사회주의 자체를 계급투쟁의 공간으로, 즉 대중에게 개방되고 대중의 통제하에 놓여야 하는 구조로 인식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에서 계급투쟁이 계속된다는 마오주의 이론은 사회주의 건설과 이 시기에 필연적으로 일어날 투쟁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며, 이것이 바로 마오주의가 모든 상황에 적용 가능한 혁명과학이며 맑스-레닌주의에 이은 발전이고, 단순히 제3세계 농민만을 위한 공산주의로 환원될 수 없는 보편적 이론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주요한 사례이다.
결국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스탈린주의'는 기실 존재하지 않으며, 그들이 말하는 '스탈린주의'는 트로츠키주의자들만이 집착하는 이론인 '일국 사회주의' 이상의 의미값을 지니지 않는다. 우리 마오주의자들은 "스탈린주의"라고 부를 만한 가치가 있는 별개의 이론체계란 존재하지 않으며, "스탈린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도 트로츠키주의보다 더 과학적인 사유를 하고 있지 않음을 알고 있다.
혁명 만들기
영구 혁명에 관한 섹션에서 언급했듯이 트로츠키주의는 혁명의 길에 착수조차 할 수 없는 무능한 이론이다. 이 문제는 일반적으로 이 이론의 혁명 전략이 정치적, 군사적으로 실패한 결과이다. 트로츠키주의의 정치 전략은 위에서 영구 혁명 이론과 세계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논의로 충분히 살펴보았다. 또한 트로츠키주의의 군사 전략은 기본적으로 볼셰비키의 봉기 전략, 소위 "10월의 길"로, 장기간의 합법적 투쟁 후 뒤따르는 대중 파업과 무장 봉기가로 구성 된다.
10월 혁명 이후 봉기주의 전략에 따라 혁명을 이루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했으며, 이것이 일부 마오주의자들이 혁명을 이루기위한 군사 전략으로서 인민 전쟁의 보편성에 대해 말하는 이유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그러나 해당 이론은 국제 마오주의 운동에서 여전히 논쟁의 주제이기 때문에 이 지점에서 마오주의가 트로츠키주의보다 우월한 이유를 말하기 위해 봉기 전략과 인민전쟁 전략을 비교하는 데 시간을 소비하지 않겠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반란을 통해 혁명을 이루려는 이러한 실패한 시도들 중 어느 것도 트로츠키주의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트로츠키주의는 봉기의 순간을 촉발하는 것에 있어서조차 스스로 무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볼셰비키 반란이 모두 트로츠키의 업적 때문이며 그가 10월 혁명에서 볼셰비키를 이끌었다고 주장하거나(1905년에 시작된 게릴라 전쟁 기간이나 혁 명에 대한 트로츠키의 기여가 전략적이라기보다는 전술적이었다는 사실, 소위 '10월의 길'을 낳은 혁명 전략이 레닌 때문이라는 사실을 무시하는 주장) 다른 봉기의 순간들을 모두 트로츠키 덕택이라고 주장하기를 좋아하지만 말이다. 20세기의 실패한 모든 봉기 시도는 a) 룩셈부르크주의자, b) 스탈린 치하에서 소련에 대한 충성을 선언한 맑스-레닌주의자, c) 심지어 무정부주의자들에 의해서도 주도되었지만, 트로츠키주의자들에 의해 시도된 적은 없다.
따라서 트로츠키주의자가 실제로 혁명을 시도한 예는 단 한 건도 없으며, 이는 주로 트로츠키주의 의 일반적인 정치 전략인 영구 혁명 이론 때문이다. 실제로 사회주의 혁명이 자본주의의 중심부에 있는 진보적 노동자 계급에 의해 주도되지 않는 한 성공을 기대할 수 없고, 이 혁명이 제대로 '사회주의'라고 불리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전 세계적인 혁명이어야 한다면, 트로츠키 주의자들이 진정으로 주장하는 바는 모든 사람이 함께 혁명에 나설 준비가 될 때까지 혁명을 영구적으로 연기하자는 것 뿐이다. 그들은 언젠가 재구성될 제4인터내셔널과, 제4인터내셔널이 주도할 전세계 동시 혁명을 메시아적으로 기다리고 있다.
때때로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진정한' 마르크스주의를 수호하고 있으며, 노동계급이 언젠가는 이런저런 트로츠키 주의 분파의 접근법이 옳다는 것을 깨닫고 갑자기 불꽃이 타오르는 것처럼 올바른 트로츠키주의 혁명에 동참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실천을 옹호하고는 한다. 여기서 우리는 트로츠키주의자뿐만 아니라 일부 맑스주의자들이 무한 반복하기를 좋아하는 지겨운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는 또 다른 버전의 대기주의를 찾아볼 수 있다. "때가 적절하지 않다"는 접근 방식은 트로츠키주의 혁명 전략에 내재되어 있다. 왜냐하면 전 세계에서 동시에 때가 적절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트로츠키주의의 가정과는 달리, 혁명은 ‘모든 국가’에서 ‘모든 노동계급’이 ‘때가 적절하다’고 판단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으로만은 달성될 수 없다. 따라서 트로츠키주의는 영구 혁명을 이론화함으로써 자신들이 경제적 결정론을 피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의 실제 전략은 결국 생산력 접근법을 재차 주장하면서 전 세계의 '불균등결합'적인 생산 양식이 모두가 함께 혁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균형점에 도달할 때까지 혁명을 유보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고전적 맑스주의"를 수호하는 종파적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정통성 때문에 트로츠키주의 이론의 가장 좋은 예로 꼽힐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종파주의, 교조주의, 그리고 선교사적 태도가 성가시고 불쾌하며 일반적으로 컬트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들에 끌리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트로츠키주의 전통의 영향을 받았지만 생산력 접근법에 대해 올바르게 경계하는 사람들(우리가 일반적으로 '비판적 트로츠키주의자' 또는 '포스트 트로츠키 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여전히 혁명을 일으킬 수 없는 전략을 생산하는 이론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룹은 종종 할 드레이퍼의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실제로는 대중운동의 후미를 뒤쫓는 작풍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그룹은 대학생, 지식인, 노동조합 관료들의 클럽에 불과하다(트로츠키주의의 관료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트로츠키주의 그룹들은 자신들이 사회민주주의 부르주아 정당에 들어가서 개혁주의 프로젝트에 착수하면, 자신들이 그 안에서 주도권을 잡아 혁명적 공산주의 정당으로 기존 당을 변모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경우에서 트로츠키주의와 트로츠키주의에 영향받는 맑스주의는 실제 현실에서 혁명에 진지하게 접근한 적이 없다.
공산주의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혁명과 자본주의 전복이므로, 트로츠키주의 전통에 혁명적 경험이 없다는 것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트로츠키가 혁명가로 참여한 볼셰비키 혁명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 트로츠키주의" 혁명이 아니었다. 결국 스탈린도 볼셰비키 혁명에 참여했지만 (그리고 그를 둘러싼 볼셰비키 조직이 있었기 때문에 트로츠키를 코민테른에서 몰아낼 수 있었다) 볼셰비키 혁명을 "스탈린주의" 혁명이라고 부를 수는 없듯이 말이다.
따라서 완전히 이론화되기 전에도 전 세계에서 중요한 인민 전쟁에 영감을 주었던 마오주의와는 달리, 트로츠키주의는 자신들의 온전한 전통으로 선언할 수 있는 혁명적 경험이 부재하며, 자신들이 혁명적 경험을 생산할 수 없음을 스스로 입증했고, 따라서 혁명 전략에 관한 성공과 실패로부터 배울 수 없다. 실제로 트로츠키주의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볼셰비키 혁명에 대한 자기들 식의 편협한 이해와 수동적인 반추뿐이다. 기실 그들은 세계가 1917년의 러시아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동일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당대의 볼셰비키로, 타 그룹들을 당대의 멘셰비키나 나로드니키로 규정하면서 굉장히 비생산적인 태도로 다른 혁명 운동을 비판하는 것에 심취해있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광산 파업이나 공장 점거와 같은 반란의 순간에 참여했지만, 이 모든 경우에서 그들은 이러한 투쟁을 조 직하고 혁명의 순간으로 이끌기보다는 더 큰 대중 운동의 후미를 추종하는데 그쳤다.
물론 영구 혁명에 관한 섹션에서 언급했듯이 트로츠키주의가 전통적으로 이러한 비판에 대응하는 방식은 다른 모든 혁명 운동이 실패했으며 영구 혁명 이론을 따랐다면 실패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순수한 맑스주의'를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이론이 혁명을 주도할 기회를 애초에 갖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혁명이 초래하는 모든 혼란을 겪을 기회가 없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어떤 혁명에서든 마오주의자들이 (역사적 경험에 근거해) 말하는 이중 노선 투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 트로츠키주의는 실패하거나 성공할 수 있는 어떤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수를 저질러본 적 조차 없다는 사실에서 기원한다. 이는 마치 학교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자신은 시험에 떨어져본 적 없다고 주장 하는 것과 같이 터무니없고 잘못된 입장이다. 또한 이는 ‘진정한 공산주의’는 마치 플라톤적의 이데아와 같아서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하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본질을 정확하게 성찰하는 것 뿐이고, 그러기만 하면 진정한 혁명을 이룰 수 있다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의 관념론적 맑스주의 해석을 보여준다.
반면 우리 마오주의자들은 맑스와 마찬가지로 실천을 통해서만 무언가를 알 수 있으며, 따라서 혁명적 실천을 통해서만, 혁명을 시도하고 때로는 실패하는 것을 통해서만 혁명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뿐 가정과 상상 속에서는 가르침을 받을 수 없으며, 맑스 독자들에게 상기시키고자 했던 것처럼 역사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질문들에 올바르게 답할 때만, 즉 우리가 그 질문들에 답할 수 있을 때만 우리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혁명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 으며, 이 문제를 관념적으로 이론화할 뿐 혁명을 먼 미래에 투영하고 무기한적으로 연기하는 이론에 의존함으로써 실제 혁명 운동을 건설하는 고된 작업에 제대로 착수하지 못하였다.
사실 마오주의가 사이비 공산주의라고 강박적으로 주장하려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의 강박관념은 고전적 맑스주의(즉, 맑스, 엥겔스, 레닌, 트로츠키의 신성한 잠언들을 종교적으로 탐구해야만 깨우칠 수 있는 맑스주의)에 집착하는 트로츠키주의와는 달리 마오주의는 실제로 혁명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트로츠키주의는 다른 공산주의가 성공한 이유와 그들의 이론이 실제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조사하기보다는-즉 자신들의 혁명적 실천의 부재에 의문을 제기하기보다는-자신들을 제외한 모든 혁명운동들이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을 가짜 혁명이라고 비난할 뿐이다. 또한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이러한 혁명이 실패했을 때 (성공하기로 예정된 혁명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매우 기쁘게 웃으며 자신의 이론이 이러한 실패를 설명 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이전 섹션에서 언급했듯이 실패한 사람들의 이론이 실제로 혁명적 실패를 더 잘 설명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정통 트로츠키주의 그룹 중 일부는 이러한 혁명사의 부재가 미덕이라고 주장한다: "50여 년 전 트로츠키의 제4인터내셔널이 출범한 이래 벌어진 파벌 싸움은 레닌의 볼셰비키당이 옛 짜르 제국의 고단한 대중을 승리로 이끈 원칙과 혁명적 전통을 국제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 대의를 위해 보존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따라서 이들에게 있어 혁명가의 원칙적 의무는 매우 특수한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통해 수집된 과거의 전통을 보존하는 것 뿐이다.
다행히도 이러한 정통 트로츠키주의 변종들은 대다수의 다른 트로츠키주의자들과 트로츠키주 의의 영향을 받은 좌파들을 포함한 대다수의 좌파들에게 마르크스주의의 우스꽝스러운 풍자 극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그들이 지속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그들이 사이비종교와 장점을 공유한다는 점에 있다. 혁명적 행동을 희생하면서까지 역사를 보존해야 한다는 정통 트로츠키주 의자들의 주장을 언급하는 것은 일부 트로츠키주의자들이 트로츠키주의가 혁명적 운동을 일 으키거나 이끌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다른 운동조직의 이론에 대한 비판이 종파적 욕망이 아닌, 혁명을 이루는 데 필요한 이론적 근거를 명확히 하기 위한 동기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인지해야 한다. 이러한 이론적 근거를 혁명적 실천에 구현하지 않고 문헌적 근거에만 집착하는 것, 즉 주어진 사회-역사적 맥락에서 이를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 현실로부터 숨어 맑스와 레닌, 트로츠키의 원전 속으로 도피하는 것은 공산주의의 목표와 정반대되는 행위이다.
이론과 실제
따라서 이 논쟁의 서두에서 논의했듯이 "마오주의인가 트로츠키주의인가?"라는 질문은 추상적인 종파 논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구체적인 상황과 혁명을 이루는 데 필요한 이론적 근거에 관한 질문이다. 또한, 이는 매우 중요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난 페루 인민전쟁 이후 실제로 혁명을 시도하고 페루 인민전쟁의 경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려는 공산주의의 전통에서 나온 질문이다. 페루 이후에는 네팔이 있었지만 마오주의가 예견한 당내 노선 투쟁을 통해 등장한 수정주의 문제에 부딪혔다. 네팔 이후에는 인도에서 인민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고, 이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으며 인도를 내전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리고 몇 년 안에 아프가니스탄의 마오주 의자들이 인민 전쟁을 일으켜 21세기는 혁명의 시대가 될 것임을 증명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맑스-레닌주의 운동이 트로츠키주의에 대해 노래했던 진부한 후렴구를 반복하는 데 관심이 없다. 우리는 트로츠키주의를 맑스-레닌주의 전통의 한 해석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이론에 유용한 공헌을 하고 대중의 편에 서서 지 칠 줄 모르고 투쟁하는 트로츠키주의 개인과 그룹이 많다는 점을 인정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저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이론과 실천이 혁명에 유효하지 않다고 분석할 뿐이다.
우리는 또한 트로츠키주의자뿐만 아니라 트로츠키주의적 서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들(예: 트로츠키주의자가 아닌 '좌파 공산주의자'인 골드너가 이 문제의 좋은 예일 것이다)이 마오주의의 이론적 궤적을 이해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중국 혁명에서 그 어떤 것도 유효하지 않다고 보고 이 혁명에서 영감을 받은 전 세계 주변부의 위대한 혁명 운동을 모두 무시하는 소위 '비판적 트로츠키주의자'의 마오주의에 관한 글을 접할 때, 즉 마오주의를 1960년대와 1970 년대에만 일어난 현상으로 취급하고 마오주의가 기실 1980년대 말까지 구체화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이론적 비판을 접할 때, 우리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이러한 비판들이 우리보다는 그들의 이론적 엄밀성 부족을 더 많이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맑스-레닌-마오주의의 출현 이후 발생한 위대한 인민 전쟁이 대중을 성공적으로 동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하찮은 것으로 취급되거나 "가짜 공산주의"로 취급 되는 것을 볼 때, 그리고 이러한 혁명의 실패를 통한 교훈조차 얻으려 하지 않는 이들의 태도를 마주할 때, 우리는 과연 저들이 혁명을 시도하는 것조차 신경 쓰는지 의심하게 된다. 한 마오주의 동지가 말했듯이 "이 사람들은 우리가 감히 투쟁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과감히 투쟁해야 하며, 러시아와 중국의 성공과 실패를 통해 그랬던 것처럼 투쟁의 성공과 실패를 통해 이론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또다시 실패한다면 그것은 우리 가 시도조차 잘못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맑스-레닌-마오주의가 당면한 문제 를 극복하지 못했거나 새로이 체계적으로 이론화해야 할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우리는 성공에서 배우는 것만큼이나 실패와 좌절에서 배우며, 과거의 혁명 운동(특히 러시아와 중국의 세계사적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철저한 역사적 유물론적 체계화를 통해 배운다. 실제로 혁명을 시도하지 못했던 혁명 이론으로부터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레닌은 혁명적 이론 없이는 혁명적 운동도 있을 수 없다는 유명한 주장을 한 적이 있으며, 이는 옳다. 그러나 동시에 혁명적 운동과 혁명의 경험을 통해 배우지 않는다면, 혁명적 이론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념적 선택을 위한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하기 위해 "마오주의인가 트로츠키주의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이론적 순수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며, 전세계에서 동시에 혁명이 일어나지 않으면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기에 영원토록 혁명을 연기해야 한다고 바라본다면 트로츠키주의는 분명히 유일한 선택일 것이다. 왜냐하면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실패한 적 없다고 자랑할 수 있으며, 국제사회주의운동의 모든 실패와 오류를 ‘스탈린주의’의 탓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허나 이는 그들이 실패가 가능할 만큼의 혁명적 동력의 지점에 도달하는 데 성공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당신이 독자가 혁명을 만드는 것이 어려운 사업이라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성공보다 실패가 더 자주 발생한다는 것을 기꺼이 인정하며, 이러한 실패와 성공을 어떻게 이론화할 수 있는지 이해하고, 혁명을 만드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다음 세계사적 혁명을 향해 천천히, 그러나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기를 택하며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이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마오주의는 그 모든 "불결한" 혼란과 혁명적 실패의 경험을 지닌 유일한 적절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참으로 지저분하고, 우리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오물 과 "악몽처럼 우리를 짓누르는" 모든 실수에 흠뻑 젖어 있다. 지금까지의 혁명은 모두 패배했으며, 앞으로의 혁명 또한 패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무기한적으로 혁명을 연기하며 순수하고 고전적인 맑스주의를 영구히 보존하려고 한다면 사회주의 혁명은 자본주의가 불러올 인류의 종말에 추월당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