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과 노동계급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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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과 노동계급 운동

노동계급 운동에 존재하는 이주노동에 대한 두 가지 잘못된 접근이 있다. 하나는 이주노동 문제를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정주노동자를 먼저 신경 쓰고 나서 여유가 생긴 뒤에야 접근할 수 있는, ‘부문’ 운동으로 여기는, 조합주의적, 개량주의적 입장이고(”우리 일도 바쁜데!“) 또 하나는 이주노동 문제를 노동계급은 하나이므로 국적이나 인종을 ’신경쓰지만 않으면‘ 해결되는 문제로 여기는, 초좌익적, 주의주의적 입장이다.(“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첫 번째 접근은 이주노동을 표면적으로 파악할 뿐 전체 사회의 일부로, 다른 모든 사회 문제와 같은 법칙의 지배하에 있는 현상으로 파악하지 못한다. 두번째 접근은 추상적 목표를 제시할 뿐 그 추상적 목표에 어떻게 도달할 것인지에 대해서 현실적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변증법은 구체에서 추상으로 나아가고 추상에서 다시 구체로 나아가야 완결되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단결만이 해답이라는 추상으로 나아가는 것이 구체적 현실에 바탕을 두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추상이 다시 우리의 구체적인 상황과 조건에서 어떻게 국적, 피부색, 언어를 넘어선 노동계급의 단결을 이룰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구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해답이 될 수 없다.

무엇이 이주노동자를 이주노동자로 만드는가? 이주노동자는 어떤 부분에서 다른 노동계급의 구성원과 다른가? 외모인가? 비행기를 타고 왔다는 사실인가? 그 차이는 어떻게 이주노동자와 전체 노동계급의 상태에 영향을 끼치는가? ‘흑인은 흑인이다. 특정한 관계에서만 그는 비로소 노예가 된다.’(마르크스)

이주노동자는 국적이나 피부색, 언어 때문에 이주노동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이주노동자의 무권리 상태가 이주노동자를 이주노동자로 만든다. 이는 이주노동의 역사와 다른 노동과의 차이점에 주목해야 알 수 있다.

현대 한국에서 본격적인 이주노동은 1993년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산업연수생 제도의 도입으로 시작되었다. 이는 2004년 사업장별로 이주노동자의 고용을 허가하는 고용허가제로 변경되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산업연수생제도와 달리 고용허가제에서는 이주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만 자유로운 구직활동은 허가되지 않고 정부의 주선으로 취업한 사업장에서만 3년, 최대 4년 10개월까지 근로를 허용하고 있다. 전체 이주노동자의 대다수가 고용허가제를 통해 취업하고 있으며 그 중 대부분의 저숙련 업종에 해당되는 E-9 고용허가제 비자, 20톤 미만의 어선, 양식장, 소금채취업에 한정된 외국인선원제의 적용을 받는 E-10 비자가 존재한다.

고용허가제 제도에서 노동권의 가장 큰 제약은 사업장 변경 제한이다. '고용허가제'라는 이름처럼 노동자가 노동할 권리를 가지는 것이 아닌 사용자가 고용할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E-9, E-10 비자로 노동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사용자가 허가하거나 고용허가가 취소되었을 경우에만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며 그 횟수도 3년간 3회로 제한되어 있다. 또한 재취업은 고용노동부의 고용센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또 다른 이주노동 제도인 방문취업제와 비교해보면 이 차이는 곧바로 드러난다.

방문취업제는 재외동포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재외동포들은 전산추첨으로 H-2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으며 고용허가제와 같이 3년, 최대 4년 10개월의 취업활동기간 제한이 주어지나 정해진 업종 내에서는 자유롭게 구직활동이 가능하다. H-2 비자에도 체류기간 제한은 있으나 2년의 체류 기간 후에는 취업 업종, 유효기간 제한이 없는 F-4 비자로 변경이 가능하다.

반면 고용허가제 하에서는 고용주가 이주노동자를 실제로 감금하거나 여권을 압수하지 않더라도(자주 일어나는 일이긴 하지만) 고용주는 사실상 이주노동자의 인신에 대한 지배를 행사한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할 자유가 없기 때문에 임금체불, 폭언, 폭행, 성폭력 등은 그 빈도가 폭증한다. 또한 이주노동자가 더 임금수준이 높은 직장으로 변경할 수 없기 때문에 이주노동자에 대한 임금저하압박이 커지며 이는 더 나아가 내국인을 포함한 전체 노동자에 대한 임금압박 수단이 된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무단으로 벗어나 불법 체류 상태, 미등록 상태가 되면 단속이라는 위험요소가 있음에도 곧바로 임금이 상승하는 것이 사업장에 대한 구속이 얼마나 임금을 저하하는 압력으로 작용하는지 증명한다.

2012년 고용허가제 하에서의 성실근로자 재입국 제도가 시행되어 이주노동자는 총합 최장 10년까지 근로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성실근로자 재입국은 동일 사업장에서 3년의 기본 취업기간에 더해 최장 연장기간인 4년 10개월을 더 근무해야 가능하므로 이는 첫 사업장 고용주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지배력을 상승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E-9과 E-10비자는 입국에 신원보증서를 요구한다. 다른 비자와 달리 E-9과 E-10 비자는 체류, 보호 및 출국비용에 대한 보증을 서 줄 국내 거주인이 없으면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없다. 보통 사용자가 맡는 이 보증인 제도도 인신지배의 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고용허가제는 사용자에게 고용할 권리를 주는 제도이다. 반면 노동허가제는 노동자에게 노동할 권리를 주어 자유로운 구직활동과 이직을 보장하는 제도이다. 이는 국제적 표준일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재외동포들에게는 방문취업제로 이미 실현된 제도이다. 현재 한국의 이주노동의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그리고 전체 노동계급에 대한 임금압박과 노동조건 하락 압력은 고용허가제, 그 중에서도 특히 사업장 변경 제한에서 나온다.

자본론에서 말하는 '이중으로 자유로운', 즉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는 노동자는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국의 구체적 현실에서 이주노동자라는 존재의 본질은 '낯선', '다른 언어를 쓰는', '피부색이 다른' 노동자가 아닌, 바로 사업장 변경이 제한된 노동자이다.

독일에서는 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 간접고용 노동자와 직접고용 노동자를 제반 동등대우를 하지 않고 고용하는 행위는 임금덤핑 내지 부정경쟁행위로 보고 불법적 간접고용과 함께 지하노동(Schwarzabreit)로 보아 고용 보호를 위해 강력히 처벌하고 있다. 한국의 구체적 상황에서 이주노동 문제의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약한 고리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이주노동자의 무권리 상태를 만드는 사업장 변경 제한이며 이를 타격하는 것이 노동계급 운동의 임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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