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페루 인민운동의 기관지인 <Sol Rojo>에 게재된 <ON FASCISM – REACTION ALL ALONG THE LINE>을 번역한 것이다. 본문은 코민테른과 레닌주의자들의 파시즘 분석을 더욱 발전시켜, 파시즘의 본질과 그 계급적 특성을 구체적으로 해명하고 파시즘에 맞선 올바른 투쟁전략을 규명하려 하고 있다.
파시즘에 관하여
모든 전선에 걸친 반동
Sol Rojo 제36호 게재 예정 원고의 영어판
이 글의 목적은 파시즘과 그 역사를 완전하게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파시즘이 무엇이며 그것이 출현한 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 어떻게 표현되어 왔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에 기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주제에 관해 반동세력이 퍼뜨린 연막을 걷어내고, 파시즘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파시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이해로 우리 자신을 무장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우리는 파시즘 체제의 모든 사례를 검토하지는 않을 것이며, 주요 논점들을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 사례로 한정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파시즘에 반대하는 투쟁은 결코 과거의 일이 아니다. 제국주의자들과 그 앞잡이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필요할 때 파시즘을 적용한다. 그러므로 공산주의자들과 혁명가들은 노동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적용하여 파시즘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부르주아지의 거짓말과 왜곡에 속지 않아야 한다. 우선 우리는 파시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정의에서 출발해야 한다. 반동적이고 '반민주적'인 모든 것에 파시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불충분할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오도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권위주의'와 '전체주의' 같은 개념에서 출발하는 부르주아적 정의도 받아들일 수 없다(아래에서 살펴볼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마르크스주의 고전들과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파시즘을 정의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실천적 경험과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과제는 이러한 지식을 죽은 교조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다.
제3인터내셔널과 그 해산, 파시즘에 반대하는 투쟁과 통일전선의 적용에 관한 경험들, 그리고 주로 마오쩌둥 주석과 중국혁명으로부터 배운 바에 따르면, 게오르기 디미트로프가 내린 파시즘에 대한 '고전적' 정의는 불충분하다. 그는 파시즘을 **"금융자본의 가장 반동적이고, 가장 배외주의적이며, 가장 제국주의적인 분자들의 공공연한 테러 독재"**라고 정의했다. 이는 불충분한 정의인데, 파시즘의 일부로서의 조합주의, 즉 권력과 경제의 조합주의적 조직화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곤살로 주석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의회에 대한 부정은 파시즘의 기본 입장이다. 그것은 18세기에 확립된 원칙과 자유와 권리의 부정에 기초하여 국가의 전통적인 민주부르주아적 구조에 반대하고, 조합주의적 조직화를 제창하며, 반동적 폭력을 최대한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모든 것은 부르주아지(우리의 경우에는 대부르주아지)의 가장 무제한적인 계급독재에 부합하며 제국주의에 복무한다."
(페루공산당, 《전략적 균형이 나라를 더욱 뒤흔들게 하자!》, 1991)
여기에서 우리는 탁월한 종합이자 파시즘에 대한 보다 완전한 정의를 발견한다. 그러나 어떤 간결한 정의도 하나의 현상을 이해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깊은 이해와 각각의 구체적인 경우에 우리 이데올로기를 실천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파시즘의 서로 다른 요소들을 더욱 상세하게 살펴볼 것이다.
"그 후 파시즘의 출현과 승리, 그리고 전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함께 상황은 첨예해졌다. 질서를 타도하는 것이 아니라 유지하고자 했으며, 오직 파시즘에 반대하는 투쟁에만 초점을 맞추었던 톨리아티와 토레즈의 수정주의적 기준이 존재했다. 공산주의자들과 우리 당에게는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특히 그 제7차 대회를 세계대전 및 스탈린 동지의 역할과 연관 지어 평가하는 것이 긴급한 과제이다. 1943년 인터내셔널은 해산되었고 남은 것은 정보위원회였다."
— 페루공산당, 《국제노선》
계급독재와 민주주의
파시즘에 관해 이야기할 때 우리의 출발점은 국가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이해, 즉 계급독재여야 한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가는 한 계급의 다른 계급에 대한 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기계이다." 다시 말해, 계급이 존재하는 모든 사회는 예외 없이 독재이다. 나아가 레닌은 국가의 존재가 계급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 계급들 사이에 화해 불가능한 모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가르친다. 즉, 적대적인 계급들 사이의 화해를 통해서는 해결할 수 없고 오직 혁명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는 모순이다.
자본주의하에서 부르주아지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을 때, 국가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다른 계급들, 주로 프롤레타리아트를 억압하기 위한 부르주아지의 도구이다. 프롤레타리아혁명에서 노동계급은 부르주아국가를 분쇄하고 프롤레타리아국가를 건설한다. 이 국가는 부르주아계급과 자본주의를 복구하려는 모든 자들을 억압하는 것을 그 목적 가운데 하나로 삼는다. 우리가 계급 없는 사회인 공산주의에 도달했을 때에야-그리고 그 이전에는 결코 아니며-국가는 소멸할 수 있고 또 소멸해야 한다.
우리는 국가체제와 정부체제를 구별한다. 국가체제는 어떤 계급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지를 나타낸다(따라서 자본주의에서 부르주아독재는 국가체제이다). 반면 정부체제는 이 계급이 자신의 독재를 행사하기 위해 어떤 체제를 사용하는지를 나타낸다(부르주아민주주의는 하나의 정부체제이며, 파시즘은 또 다른 정부체제이다).
국가는 법률, 교육과 언론매체를 통한 여론 통제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에서 국가는 언제나 무장력, 즉 폭력에 기초한다. 이러한 독재의 일부로서 서로 다른 정도의 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부르주아독재하에서는 부르주아계급과 그 권력에 복무하는 모든 자들에게는 여러 형태의 민주주의가 존재하지만, 노동계급과 인민에게는 그렇지 않다. 프롤레타리아독재하에서는 노동계급과 인민에게 민주주의가 존재하지만, 부르주아지와 반동분자들의 도당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모든 국가가 자신의 권력을 폭력에 기초한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파시즘에 대한 정의를 폭력과 테러의 문제로 환원할 수 없다.
"파시즘을 테러, 억압과 동일시하는 것과 관련하여, 우리는 이것이 오류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마르크스주의를 상기한다면, 국가는 조직된 폭력이다. 이것이 고전들이 우리에게 제시한 정의이다. 모든 국가는 독재이기 때문에 폭력을 사용한다. 그들이 인민을 억압하고 착취하기 위해 억눌러 놓는 데 달리 어떤 방법을 사용하겠는가?"
(페루공산당, 《곤살로 주석과의 인터뷰》, 1988)
부르주아지가 원하는 대로 작동할 때, 제국주의자들이 이상으로 격상시킨 부르주아의회민주주의는 인민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환상을 제공하고 피억압자들의 혁명적 의지를 억누른다. 문제는 이러한 민주주의가 제국주의 체제 자체와 모순된다는 데 있다. 제국주의 체제에서는 이러한 의회적 소극조차 유지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파시즘의 기원: 사멸해가는 제국주의와 모든 전선에 걸친 반동
"제국주의가 기생적이거나 부패해 가는 자본주의라는 사실은 무엇보다도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체제하에서 모든 독점의 특징인 부패 경향에서 나타난다. (…) 넷째, '금융자본은 자유가 아니라 지배를 추구한다.' 전면적인 정치적 반동은 제국주의의 특징적인 속성이다."
(V. I. 레닌, 《제국주의와 사회주의의 분열》, 1916)
부르주아지가 낡은 지배계급인 봉건계급에 맞서 투쟁하는 혁명적 계급이었을 때, 부르주아지는 부르주아적 자유와 권리를 옹호했다. 그들은 민주주의의 확립을 위해, 그리고 '모든 인간의 동등한 가치'에 관한 당시의 진보적 사상을 위해 투쟁했다.
일반적으로 부르주아지는 봉건계급을 타도하고 스스로 권력, 즉 부르주아국가를 확립하는 과업에서 성공했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새로운 지배자들이 '모든 인민의 복리'를 목표로 삼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그들이 선언했던 자유와 권리는 그들 자신에게만 유효했으며, 새롭게 출현한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게는 실제로 결코 유효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부르주아계급과 자본주의의 존재 자체가 이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착취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민주주의와 그 의회주의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함께 부르주아독재에 적합한 형태로 등장했다.
1900년경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단계, 즉 그 최고이자 최후의 사멸해 가는 단계에 진입했을 때, 자본주의는 부르주아혁명의 낡은 사상들과 더욱 첨예한 모순에 빠져들었다. '자유경쟁'이 일소되고 소유권이 소수의 독점체들에 점점 더 집중될 때, 착취 자체가 의식적이고 혁명적인 프롤레타리아계급을 성장시켰을 때, 그리고 제국주의적 팽창과 분할의 일부로서 정복된 나라들에서 대규모 집단학살이 자행될 때, 제한적인 민주주의조차 유지하고 '모든 인간의 평등'이나 '자유, 평등, 박애'에 관한 문구로 자신의 권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마리아테기에게 중요한 과학적 사회주의의 또 다른 논점은 부르주아민주주의의 위기이다. 그 징후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감지될 수 있었으며, 마리아테기는 그 원인을 '자본주의와 프롤레타리아트의 병행적인 성장과 집중'에서 찾는다. 이처럼 제국주의의 특징인 독점의 발전과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부르주아질서에 대한 문제 제기가 부르주아민주주의 위기를 야기한다.
이 문제를 더욱 심화하면서 그는 부르주아체제하에서 기계의 힘을 통해 산업이 엄청나게 발전했고 '거대한 산업기업들'이 출현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정치적·사회적 형태는 그것을 지탱하는 토대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이러한 새로운 생산력의 팽창은 낡은 정치적 양식들의 존속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국민들의 구조를 변형시켰으며 체제 구조의 변형을 요구한다. 부르주아민주주의는 엄청나게 변형되고 확대된 경제적 힘들의 조직에 더 이상 부합하지 않게 되었다. 이것이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이유이다. 민주주의의 전형적인 제도는 의회이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의회의 위기이다.'"
(페루공산당, 《마리아테기를 다시 받아들이고 그의 당을 재건하자》, 1975)
요컨대 제국주의는 썩어 가는 자본주의이며, 이는 그 경제와 이데올로기와 정치에서 표현된다. 점점 더 집중되는 독점체들에게 부르주아민주주의는 자신들의 독재를 유지하고 정책을 실행하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는 점점 더 장애물이 된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적·정치적으로 제국주의에서는 정치, 철학, 문화, 과학에서 진보적이었던 모든 것이 폐기된다.
경제적·이데올로기적·정치적 위기에 직면하여, 그리고 주로 프롤레타리아혁명에 대항하기 위하여, 제국주의는 썩어 가는 착취와 억압의 체제를 구원하려는 시도로서 파시즘을 출현시킨다.
이데올로기적 기원
이데올로기적으로 파시즘은 부르주아혁명의 사상을 대체할 신화를 창조하려는 시도를 나타낸다. 이데올로기적으로 그것은 절충주의적이다. 파시즘은 자신을 기초 짓는 확고한 원칙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제국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혼합하고 이용한다.
그러나 파시즘의 구체적인 이데올로기적·정치적 필요의 결과로서, 대부분의 파시스트 운동에서 몇 가지 반복되는 특징들이 발견된다. 또한 제국주의의 부패의 결과이자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출현한 사상들에서 공통의 이데올로기적 기원이 발견된다.
비합리주의 — 이미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부르주아 지식인들은 이후 제국주의하에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특징이 될 사상들을 발전시켰다. 니체, 쇼펜하우어 등이 대표하는 '비합리주의' 경향은 과학적 이해에 관한 계몽주의의 사상들을 거부하고, 그 대신 '직관'과 '본능'을 찬미한다.
물론 이 지식인들에게 주된 적은 마르크스주의였다. 마르크스주의가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과학적으로 분석했다면, 부르주아 사상가들의 과업은 현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이러한 분석을 방해하고 부정하는 것이었다. 이전에 부르주아 사상가들이 명료성과 객관성을 옹호하고 심지어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에 본질적인 기여까지 했던 반면, 이제 그들은 이성을 거부하고 주관성과 '감정'을 옹호하기 시작했다.
현존하는 계급모순에 대한 이해를 방해하기 위해, 그들은 '민족적인 것'(카를 융의 이론들과 '민족정신'이라는 관념을 보라), '권력에의 의지' 등에 관한 일련의 형이상학적 관념들을 도입했다. 이것들은 명백히 히틀러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파시즘 이데올로기의 일부가 되었다.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두드러지게 냉소적이고 실용주의적인 태도 역시 파시즘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예를 들어 히틀러 자신은 '유대인-볼셰비키 음모'라는 관념이 거짓말이며, 실제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고안된 신화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동일한 비합리주의, 관념론, 상대주의는 오늘날 학계에서 마르크스주의에 대항하는 무기로 유행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도 발견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특히 사회의 과학적 분석에 반대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모든 의도에 반대하며, 진보라는 관념에 반대하는 니체의 사상들을 받아들인다.
니체에 따르면 자연에도 인간사회에도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물들'은 규칙에 따라 규칙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사물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그것들은 우리가 만들어낸 허구이다). 사물들은 필연성의 강제 아래서도 행동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어떠한 '복종'도 없다. 어떤 것이 있는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 강하거나 약하다는 것은 '복종'이나 '규칙'이나 강제의 결과가 아니다."
(《권력에의 의지》)
이처럼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은 '역사의 종말'이라는 관념을 유지하고자 하며, 니체의 '영원회귀' 관념을 반복한다.
"세계는 이미 무한히 많은 횟수에 걸쳐 자신을 반복해 온 원이며, 앞으로도 무한히 반복할 것이다."
반동적 계급으로서 부르주아지는 인간사회의 발전에서 질적 변화나 비약의 필연성뿐만 아니라 그 가능성까지도 거부해야 한다.
니체가 말하듯이,
"인류는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더 나은 것으로의 발전을 나타내지 않으며, 더 강하거나 더 높은 어떤 것을 나타내지도 않는다. '진보'란 단지 근대적인 관념, 다시 말해 거짓된 관념에 불과하다."
이것은 단순히 반동적이고 퇴폐적인 계급의 사고일 뿐이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초인'에 대한 갈망과 대중에 대한 경멸 — 니체의 '초인' 관념은 오늘날 모든 부르주아 사상과 문화에 만연해 있는 냉소적이고 극단적인 개인주의의 표현이다. 그에게 이러한 개인적 자유가 소수에게만 허용될 수 있다는 사실은 비밀이 아니었다. 따라서 대중은 그러한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는 '열등인간'이었으며, 이렇게 니체와 다른 지식인들은 이미 그때부터 부르주아적 자유와 권리에 대한 문제 제기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했다.
히틀러는 '자연의 귀족주의적 원리'를 말하며 대중은 '일반적인 정치적 판단'을 형성할 능력이 없다고 주장한다(《나의 투쟁》).
인종주의 — 부르주아 역사서술에서 독일 파시즘의 가장 특징적인 속성이 된 인종주의는 파시스트 운동들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구성요소였다. 그러나 여러 파시스트 체제에서 인종주의가 더욱 공공연한 형태를 부여받고 더욱 체계적으로 적용되었다고 하더라도, 인종주의는 파시즘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파시즘의 필수적인 부분도 아니다.
요컨대 이는 새로운 영토를 정복하고, 그 과정의 일부로서 그 영토의 주민들을 노예화하고 살해해야 하는 제국주의의 불가피한 필요성에 관한 문제이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인종생물학의 사상들이 발전했으며, 따라서 제국주의가 계속 존재하는 한 인종주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정치의 일부로 계속 남는다. 인종주의는 대중의 '무지'나 '외국인 혐오'의 결과가 아니라 제국주의의 구체적인 필요의 결과이다.
심리적·사회적 현상들을 생물학으로 설명하려는 것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특징이다. 이러한 생물학주의는 여전히 부르주아 과학과 문화에 만연해 있다. 여성 억압에서 빈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유전자와 염색체로 설명된다. 이는 현존 질서가 '자연스러운' 것이며, 다른 사회를 위한 모든 투쟁은 무용하고 '자연에 반한다'는 생각을 우리의 머릿속에 주입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인종주의는 파시스트 운동에만 특유한 것이 아니다. 19세기 후반 인종주의 이론과 실천에서 길을 제시한 것은 영국의 반동세력이었다. 세실 로즈와 휴스턴 스튜어트 체임벌린 같은 인물들이 백인종의 패권에 관한 이론들로 선두에 섰으며, 아프리카에서 영국이 자행한 집단학살과 강제수용소는 독일 파시스트들에게 모델이 되었다.
다른 제국주의 열강들도 동일한 길을 따랐으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이들 국가의 대다수는 인종생물학이나 그 '과학'의 변형들에 대규모로 몰두했다(사회민주주의 체제하의 스웨덴을 포함하여). 전쟁 이후 이러한 활동을 수행하는 것이 더욱 논쟁적이고 민감한 문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자들은 그러한 '과학'을 이용하는 것을 중단하지 않았다.
한 가지 사례는 찰스 머리와 리처드 헌스타인이 1994년에 출간한 유명한 책 《벨 커브》이다(머리는 레이건 이래 미국의 정책 수립에 참여해 온 '싱크탱크'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책은 숫자와 도표를 사용하여 서로 다른 '인종들' 사이의 지능 차이를 입증하고, 이를 통해 미국의 빈곤과 다른 문제들을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파시스트들이 당면한 필요에 따라 인종주의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보라. 유대인/볼셰비키 음모론은 특정한 시점에 유용했다. 반면 오늘날 '네오나치' 유형의 파시스트 집단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며 '무슬림의 침공'이라는 이론을 만들어냈다. 그 목적은 동일하다. 노동계급과 제3세계 인민들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것이다. 유럽의 새로운 '반이민' 정당들은 자신들의 인종주의를 '문화들 사이의 투쟁'이라는 형태로 제시하는 반면, 다른 부르주아 정당들은 소위 '다문화'라는 것으로 자신들의 인종주의를 은폐한다. 그러나 목표는 여전히 동일하다.
민족쇼비니즘은 주로 두 가지 목적에 복무한다.
- 제국주의적 침략, 정복전쟁과 분할전쟁을 영웅적이고 정당한 것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이는 이러한 전쟁에 대한 노동계급과 인민들의 증오에 대한 대응이다.
- 계급투쟁을 은폐하기 위해 제국주의적 '조국'을 위한 계급을 초월한 거짓된 통일을 창조하려는 것이다.
이것들은 파시즘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들 가운데 일부이다. 우리가 보았듯이 이것들은 일반적으로 파시즘에만 특유한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시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일반의 일부이다. 그러나 파시즘을 통해 더욱 공공연하고 체계적인 형태로 표현된다.
파시즘은 자신의 정치적 목표에 복무하는 방식과 정도에 따라 이러한 특징들을 이용한다.
조합주의
파시즘은 한편으로 노동계급과 인민을 억압하기 위한 반혁명적 억압과 테러에 대한 대부르주아지의 필요를 표현하며, 다른 한편으로 혁명에 반대하고 부르주아독재를 지지하도록 대중 사이에 계급을 초월한 거짓된 통일을 창조하려는 대부르주아지의 필요를 표현한다.
파시스트 운동들은 인민 내부의 여러 계급들이 가진 혁명적 의지를 이용하기 위해 자신들을 '혁명가'로 위장한다. 또한 프롤레타리아운동이나 다른 인민운동에서 가져온 상징과 구호들을 사용한다(독일 파시스트들의 '국가사회주의', 페루에서 벨라스코의 소위 '혁명',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의 '볼리바르혁명', 또는 오늘날 유럽에서 소위 '자율적 민족주의자들'이 '좌파'의 양식과 구호를 차용하는 방식을 보라).
' 반자본주의', '우파도 좌파도 아니다',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니다'에 관한 장황한 언사는 파시즘의 특징이다. 이는 파시즘이 대부르주아지의 절대적 권력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은폐하려는 선동이다. 이러한 종류의 정치를 매우 잘 보여주는 사례는 '전인민국가'와 '전인민당'에 관한 흐루쇼프의 테제이다. 그리고 마오 주석이 사회제국주의 소련을 '히틀러식 독재'라고 규정했을 때,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는 점에 주목하라.
"조합주의는 조합체들에 기초한 국가의 수립이며, 이는 의회주의의 부정을 함축한다"(곤살로 주석).
즉, 부르주아의회주의에서처럼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표자들이 아니라, 서로 다른 계층과 직능단체 또는 다른 집단들의 대표자들로 구성된 기관들을 통해 조직되는 대부르주아지의 권력이다. 이 대표자들은 자신들의 '전문성'을 가지고 '합의'를 통해 정치적 결정을 내린다(두 형태 모두 부르주아독재를 유지하는 데 복무한다는 점에 주목하라).
이러한 조합주의적 기관들의 사례로는 히틀러 치하 독일과 무솔리니 치하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노동조합들뿐만 아니라, 페루의 '자위위원회', '발전위원회', COFOPRI, FONCODES, INADE 등이 있다. 독일이나 스웨덴 같은 나라들의 사회민주주의(레닌의 표현으로 사회파시즘) 역시,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명백하고 뚜렷한 조합주의를 발전시켰다.
소위 '스웨덴 모델', '살트셰바덴 정신'은 계급들 사이의 이러한 '합의'를 매우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실제로 그것은 국가의 감독 아래 대부르주아지에 유리하도록 이루어지는 부르주아지의 여러 분파들과 그 앞잡이들 사이의 합의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의회주의의 부정'이 반드시 의회나 선거의 폐지를 함축하는 것은 아니며, 이러한 부정이 행정부의 권력, 의회민주주의라는 환상의 완전한 파산 등을 통해서도 표현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파시스트들 자신을 포함한 반동세력은 종종 조합주의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혼합물, 또는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체제로 제시하려고 한다. 심지어 그들은 이를 사회주의의 한 형태로 제시하기도 한다. 이는 파시스트들이 인민을 기만하기 위해 사용하는 선동의 일부이며, 오늘날의 다른 반동분자들이 '사회주의와 파시즘은 동일하다'고 말하기 위해 이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두 경우 모두 반동분자들 자신조차 믿지 않는 저속한 선전에 불과하다. 어떤 파시스트 체제든 피상적으로만 살펴보아도 파시즘이 더 많은 집단학살과 프롤레타리아트 및 인민에 대한 더 많은 억압, 특히 혁명가들과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더 많은 억압, 그리고 대부르주아지의 더 많은 이윤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조합주의는 혁명에 대항하고 다른 나라 대부르주아지와의 투쟁 속에서 하나의 계급으로서 대부르주아지 전체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대부르주아지의 필요를 표현한다.
그것은 대부르주아지 전체의 권력을 보호하기 위해 국내 대부르주아지 내부의 개인, 집단 또는 분파들 사이의 투쟁을 관리할 필요를 표현한다. 따라서 파시스트 체제는 어느 정도 국가를 이용하여 계획을 강제하고 대부르주아지의 기업들에 지침을 내린다. 그러나 그들은 레닌이 말한 '자본주의의 무정부성'을 피할 수 없으며, 자본주의에서 불가피한 생산위기를 피할 수도 없다.
실제로 파시스트 체제는 대부르주아지 기업들의 도구이며, 따라서 반동세력이 사용하는 '계획경제'라는 용어는 파시즘에 적용되지 않는다.
'전체주의' 이론
'권위주의'와 마찬가지로 '전체주의'라는 개념은 파시즘과 사회주의가 동일하다고 주장하면서 사회주의를 공격하기 위해 반동세력이 만들어낸 것이다. 본래 이 용어는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이 자신들의 체제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했던 용어였다. 그 후 보르케나우(독일공산당의 변절자), 카를 포퍼, 한나 아렌트와 같은 여러 반동적 이론가들이 이를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항하는 제국주의 선전의 일부로 이용하기 위해 체계화했다.
그 이후 이 개념은 학계뿐만 아니라 문화 영역에서도 대중화되고 확산되었으며, 가장 유명한 사례는 트로츠키주의자 오웰의 소설 《1984》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미국과 다른 제국주의 열강의 부르주아지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체제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들이 세계의 '공산주의 위협'을 종식시킬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세계지배를 둘러싸고 독일 및 이탈리아 제국주의와 공개적인 충돌과 전쟁에 돌입하게 되었을 때, '전체주의'라는 개념을 만들어내는 것은 매우 유용한 일이 되었다.
요컨대 그것은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부정하고, 인민이나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한 권력은 불가능하며, 그것은 신화이고 이를 실현하려고 시도할 때 오직 테러와 억압으로 이어질 뿐인 정치라는 관념에 기초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전체주의'는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인민들이 이룩한 거대한 진보를 대중으로부터 은폐하고, 파시즘의 진정한 성격을 은폐하며, 그럼으로써 착취계급과 제국주의의 영원한 독재를 촉진하기 위한 속임수이다.
오늘날의 파시즘
앞서 제시한 사례들에서 보았듯이 파시즘은 제국주의 국가들뿐만 아니라 제3세계에서도 오늘날 세계의 다양한 형태로 계속 존재하고 있다. 제국주의는 피억압민족들에 대한 자신의 지배를 보장하기 위해 그 나라들의 파시스트 체제에 의존한다. 페루의 파시즘은 인민전쟁에 맞서 싸우도록 적응된 파시즘의 명백한 사례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차베스 정부와 같은 '혁명정부'의 이용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들은 자신을 '반제국주의적', 심지어 '좌파적'이라고 제시하지만, 실제로는 제국주의, 주로 양키 제국주의에 종속되어 있으며 파시스트 체제의 임무인 모든 인민운동이나 혁명운동에 대한 억압을 수행한다.
유럽에서 제국주의는 여전히 조합주의적 형태들을 이용하고 있으며, 부르주아적 자유와 권리에 대한 부정은 날마다 더욱 뚜렷하게 표현되고 있다. 오늘날 그들은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사회민주주의를 이용하지는 않지만, 의회주의의 위기는 억압과 마찬가지로 명백하게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인민에 대한 억압과 테러의 오랜 역사를 가진 사회민주당들은 많은 경우 스웨덴에서처럼 강화된 억압과 주민 통제의 주창자이자 주요 옹호자이다.
동시에 '구식'의 새로운 파시스트 정당들이 유럽 전역의 의회에 진입했다(네덜란드의 PVV, 독일의 NPD와 DVU, 덴마크의 DF 등등). 그들은 다른 정당들의 가장 인종주의적인 분파들과 '네오나치' 집단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들 모두는 지배계급을 위해 특정한 역할을 수행한다.
부르주아지에게 '네오나치'와 '극우 극단주의자들'은 혁명가들과 공산주의자들, 그리고 인민의 항의운동에 대항하는 돌격대로 복무한다. 앞서 언급한 정당들은 더욱 인종주의적인 정책을 도입하는 더러운 일을 수행하기 위해 의회에 존재한다. 그 결과 다른 정당들의 인종주의적 정책은 조금 더 '온건하게' 보이게 된다.
"사법권력에 대한 파시스트적 재편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벨라스코의 경호를 담당했던 음험한 해병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벨라스코의 파시스트 체제의 다른 하수인들이 현 정부의 배후에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조작되고 사기적인 선거는 정부를 영속화하기 위한 도구이며, 소위 '야당'은 이러한 '직접민주주의'라는 괴물을 '정당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합창단이다.
우리는 조합주의가 군사화된 조합주의화로 조직되고, 총검과 집단학살의 비호 아래 불과 칼로 수행되는 '저강도 전쟁'과 결합되어 있음을 본다. 소위 '자위위원회', 농민 및 농촌 론다스를 통해 대중을 압박하고 내몰고 있다. 이러한 조합주의는 대통령부를 통해 COFOPRI, FONCODES, INADE, 발전위원회 등에 의해 추진된다.
그 이데올로기적 토대는 조잡한 실용주의와 타락한 절충주의이며, 그들은 체계적으로 '거대한 거짓말'(히틀러)을 적용한다.
그것은 주로 집단학살을 자행하고 나라를 팔아먹는 파시스트 군대에 의해 추진되는 파시즘이다. 이 군대는 낡은 국가의 척추를 구성한다. 오늘날 그들은 군사화된 정당처럼 행동하며, 국가정보국(SIN), 메스나다스, 농민 론다스가 이를 보완한다. 이 군대는 에르모사 리오스와 몬테시노스가 이끄는 도당에 의해 지휘된다. 몬테시노스는 조국에 대한 반역으로 반동적 군대에서 추방되었던 천박한 CIA(미국 중앙정보국) 요원이다.
바로 이러한 파시스트 군대가 그들의 꼭두각시의 재선 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 페루공산당 중앙위원회, 《파시스트적이고 집단학살을 자행하며 나라를 팔아먹는 독재에 맞서 인민을 단결시키고, 인민전쟁을 더욱 발전시키자》, 1998
파시즘에 맞서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
우리 혁명가들과 공산주의자들은 억압, 반혁명적 폭력, 민주적 권리의 부정이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에서 불가피하고 내재적인 것임을 알고, 파시즘에 허를 찔려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파시즘하에서는 혁명사업을 수행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청산주의적 입장에 맞서 싸워야 한다.
또한 우리는 파시즘을 구실로 소위 계급을 초월한 ‘민주적 단결'을 내세우는 입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는 혁명적 계급들의 전선, 인민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전선으로서의 통일전선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의 테제를 왜곡하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민전쟁을 투쟁의 주요 형태로 삼아 착취계급의 계급독재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세계 프롤레타리아혁명의 모든 경험은 적이 파시즘을 적용하기 시작할 때까지, 즉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는 순간까지 오직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방법만을 사용한다'는 관념을 거부하고 분쇄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노동계급과 그 공산당들, 사회주의 국가들은 언제나 파시즘에 반대하는 투쟁의 전위이자 가장 일관되고 비타협적인 투사들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파시즘뿐만 아니라 모든 제국주의, 반동, 수정주의에 맞서 그러한 정신으로 계속 투쟁할 책임이 있다.
부록: 인용문
"그 조합주의와 관련하여. 우리는 조합주의를 의회주의의 부정을 함축하는, 조합체들에 기초한 국가의 수립으로 이해한다. 이것은 마리아테기가 《세계위기의 역사》(Historia de la crisis mundial)에서 강조한 본질적인 논점이다.
그는 부르주아민주주의의 위기가 의회주의의 위기에서 명백하게 표현된다고 말했다. 여기의 의회를 살펴보자면,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법률들을 만들어 온 것이 행정부였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행정부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모든 기본법의 제정을 독점한 것은 바로 이 APRA 정부하에서였다.
어떠한 중요한 법률도 의회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것은 사실이며, 모든 것은 행정부가 마음대로 무엇이든 행하고 취소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데 맞추어져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의회주의의 부정이다."
(《곤살로 주석과의 인터뷰》)
"마리아테기에게 중요한 과학적 사회주의의 또 다른 논점은 부르주아민주주의의 위기이다. 그 징후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감지될 수 있었으며, 마리아테기는 그 원인을 '자본주의와 프롤레타리아트의 병행적인 성장과 집중'에서 찾는다. 이처럼 제국주의의 특징인 독점의 발전과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부르주아질서에 대한 문제 제기가 부르주아민주주의 위기를 야기한다.
이 문제를 더욱 심화하면서 그는 부르주아체제하에서 기계의 힘을 통해 산업이 엄청나게 발전했고 '거대한 산업기업들'이 출현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정치적·사회적 형태는 그것을 지탱하는 토대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이러한 새로운 생산력의 팽창은 낡은 정치적 양식들의 존속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국민들의 구조를 변형시켰으며 체제 구조의 변형을 요구한다. 부르주아민주주의는 엄청나게 변형되고 확대된 경제적 힘들의 조직에 더 이상 부합하지 않게 되었다. 이것이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이유이다. 민주주의의 전형적인 제도는 의회이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의회의 위기이다.'"
(페루공산당 중앙위원회, 《마리아테기를 다시 받아들이고 그의 당을 재건하자》, 1975)
"역사적으로 소멸의 문턱에 선 모든 반동세력은 예외 없이 혁명세력에 대항하여 최후의 필사적인 투쟁을 벌인다. 그리고 일부 혁명가들은 외면적인 강함과 내면적인 약함이라는 이러한 현상에 한동안 현혹되어, 적은 소멸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자신들은 승리에 다가가고 있다는 본질적인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기 쉽다. 파시즘 세력의 대두와 그들이 지난 몇 년 동안 수행해 온 침략전쟁은 바로 그러한 최후의 필사적인 투쟁의 표현이다."
(마오쩌둥 주석, 《제2차 세계대전의 전환점》, 1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