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전쟁과 혁명
편집부 profile image 편집부

인민전쟁과 혁명

저자: 브라질 공산당(적색파)

“혁명은 전쟁이다. 역사상 알려진 모든 전쟁 중에서 유일하게 합법적이고 정당하며 진정으로 위대한 전쟁이다. 이 전쟁은 모든 다른 전쟁과 달리 한줌의 지배자들과 착취자들에 의해 시작되지 않으며, 폭군에 저항하는 인민 대중의 이익, 압제와 폭력에 저항하고 수고하며 착취당하는 수백만의 이익에 의해 시작된다.”

레닌, 혁명적인 날들, “상트 페테르부르크 전투 계획”-1905

“우리의 표어는 이러해야 한다:부르주아 계급을 격퇴하고 몰수하고 무장해제하기 위한 프롤레타리아의 무장. 이는 혁명적 계급에게 있어 가능한 유일한 전술이며, 자본주의 군국주의의 객관적 발전 전체로부터 논리적으로 따르는 전술이다.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를 무장해제시킨 후에야 세계사적 사명을 배반하지 않고 모든 무기를 쓰레기 더미 속에 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는 의심의 여지 없이 이를 수행할 것이지만, 이 조건이 성취된 이후의 일이지 이전의 일이 아니다.”

레닌,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군사 프로그램

“제국주의 시대의 계급 투쟁의 경험은 총구의 힘에 의해서만 노동계급과 근로 대중이 무장한 부르주아와 지주계급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총구에 의해서만 세계가 변화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오 주석, 전쟁과 전술의 문제에 관하여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그 당의 전술의 핵심은 게릴라전을 통한 인민 전쟁의 발전이다.”

마누엘 리스보아[1] ,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에게 보내는 두 가지 요지의 편지”

1. 서문

혁명적 폭력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라는 명제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사상 처음으로 그들의 강령을 체계적인 형식으로 발표한 1848년 공산당 선언에서 이미 마르크스주의에서 제기되었다. 그 기초에서부터 마르크스주의는 프롤레타리아가 자신을 그 이전 역사에 나타났던 모든 정당과 구별되는 자신의 정당을 조직해야 한다는 것과 혁명적 폭력이 혁명의 방법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공산당 선언은 공산주의자들이 자신의 관점과 목표를 감추기를 경멸한다는 점과,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목표가 현존하는 사회적 조건들을 강제로 전복함으로서만 성취될 수 있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한다는 점을 명백히 강조한다. 프롤레타리아의 천당을 공격하기 위한 첫 시도인 1871년 파리 코뮌은 그 모든 영웅주의에도 불구하고 70일만에 실패했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혁명 정당과 그 절대적 지도력의 부재, 그리고 전복된 부르주아 계급과 다른 착취 계급에 대한 모든 영역에서 필요한 혁명적 독재에 대한 이해 부족이 패배의 주요 원인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이 사건의 교훈과 역사적 의의를 도출했다. 그는 또한 이 경험에서 다른 많은 교훈을 얻었는데, 그 속에서 엿본 새로운 종류의 국가, 역사에 걸쳐 착취 계급에 의해 이용된 국가와 구별되고 반대되는 국가를 보았고, 코뮌을 정복하기 위해 통일된 반동 세력이 벌인 유혈 사태는 그때까지 부르주아를 혁명세력으로만 알고 있던 프롤레타리아에게 반혁명에서 이 계급의 역할을 보여주었다.

자본주의가 최고단계이자 궁극적인 단계인 독점자본의 단계로 이행하고, 제국주의의 내제적인 정책으로 약탈전쟁이 시행되고,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 기회주의가 공공연히 드러나자 레닌은 사회주의자들 사이의 분열이 불가피하고 마르크스주의를 곡해로부터 방어하는 데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했다. 레닌은 마르크스주의를 새로운 단계로 상승시켰고, 그 결과 프롤레타리아의 전위대, 혁명 지도자들의 투쟁조직, 프롤레타리아 혁명 일반과 특히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이론과 전술로서 새로운 유형의 당이 탄생했다. 레닌주의는 공산주의자들이 기회주의에 대한 투쟁과 혁명적 폭력을 통해 자기자신을 단련해야한다고 선언했다. “혁명은 전쟁이다”라고 요약하고서 그는 처음으로 승리한 프롤레타리아 혁명, 1917년의 10월 사회주의 대혁명을 이끌었다. 레닌은 모든 혁명의 중심 문제는 권력이며, 국가 권력의 핵심은 무력이며 다른 무력으로 대항하지 않고서는 국가 권력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분석하자면, 프롤레타리아의 임무는 자신을 정당으로 조직하고 이 당이 이끄는 무장세력으로 조직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제국주의 2차세계대전 후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중국대혁명의 승리로 질적인 도약을 거쳐 세계 사회주의 진영으로 표현되었다. 이 거대한 성공은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사이의 힘의 평형상태를 가져왔다. 이로 인해 양키들이 지휘하는 더욱 절박하고 사나워진 제국주의가 핵 협박을 앞세운 ‘냉전’ 전략을 펼쳤고, 사회주의 국가(소련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계급 모순과 계급 투쟁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면서 새로운 수정주의가 수면위로 부상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스탈린 동지의 죽음 이후 흐루쇼프 일당들은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수정하고, 자본주의로 복귀하고 국제 공산주의 운동을 수정주의 평화전환의 신화로 파괴하기 위해 “두 개의 전체”와 “세 개의 평화”(영역자 주: “전인민국가론” “전인민의 당” “평화 공존론” “평화 경쟁” “사회주의로의 평화 전환”)로 항복과 배신을 설교함으로서 볼셰비키 당과 소비에트 국가를 전복할 기회를 잡았다. 

중국공산당 주석 마오 주석은 주자파 우익분자들에 대한 열렬한 당내 투쟁 중에서 혁명적 무장투쟁이 프롤레타리아 혁명, 억압받는 민족과 억압받는 인민들이 민족해방을 이룩하고 신민주주의 혁명과 이어지는 사회주의 혁명을 방해없이 수행할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재확인하며 현대의 수정주의로부터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방어하며 나섰다. , 마오에 따르면:

“제국주의 시대의 계급 투쟁의 경험은 총구의 힘에 의해서만 노동계급과 근로 대중이 무장한 부르주아와 지주계급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총구에 의해서만 세계가 변화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모든 혁명의 역사적 경험을 확인한 25년간의 무장 투쟁의 중국 혁명의 경험이었으며, 마르크스 레닌주의는 2개의 노선의 투쟁 방식을 통해 내부 모순을 처리하고 프롤레타리아 군사이론인 인민전쟁의 완전한 공식화를 통해 공산당 형성에서 큰 진전을 이루었다. 레닌이 했듯이, 마오 주석은 클라우제비츠로부터 전쟁은 다른 수단을 통한 정치의 연장이라는 것을 끌어냈고, 공산주의자들은 “혁명 전쟁 전능론”을 옹호한다는 것과 “정권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것을 확인했다.

마오 주석의 죽음 이후,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 기간동안 정치적으로 분쇄되었던 당내 우익 분자들이 다시 한번 그들의 역겨운 머리를 치켜들 기회를 찾았고 덩샤오핑 일당이 쿠데타를 일으켜 프롤레타리아 권력을 전복했다. 전세계의 일부 공산주의 정당과 조직들은 덩샤오핑의 수정주의와 자본주의로의 복귀를 비판하고 마르크스 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과 무장투쟁 혁명노선을 방어했다. 그러나 페루의 인민전쟁이 시작된 1980년대부터야 마오주석의 기여가 이제 그 새로운 단계 마오주의를 이루었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대한 가장 일관된 방어가 이루어졌고, 인민전쟁이 프롤레타리아의 군사이론이라는 것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념과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이해해 혁명적 폭력의 올바름을 충분히 표현했다.

그러나 수정주의의 승리와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정체의 전체 기간동안, 흐루쇼프주의 수정주의 출현 이후 축적된 수정주의 정당들, 엔베르 호자와 덩샤오핑의 수정주의, 라틴아메리카의 무장 수정주의 등 1980년대 말 반혁명 공세로 인한 수많은 어려움 가운데, 얼마 지나지 않아 수정주의의 새로운 표현이 마오주의 자체의 불길 속에서 나타났다. 가장 눈에 띄는 사례는 전 페루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이었고 현재MOVADEF(Movement for Amnesty and Fundamental Rights)로 활동중인 우익 기회주의 노선, 미국 혁명공산당(RCP-USA)에서 “새로운 종합”을 내놓은 밥 아바키안, 프라찬다/바라타이의 ‘21세기 사회주의’ 등이 대표적이다.

이 모든 수정주의 조류의 공통분모는 무엇보다도 인민전쟁이 마오주의의 근본적이고 분리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사실을 왜곡하고 부정하려는 시도였다. 1990년대에 RIM(Revolutionary Internationalist Movement, 혁명적 국제주의 운동)내에서 주로 RCP-USA 주석이 주도한 이런 경향에 대한 치열한 투쟁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페루공산당은 마오주의는 마르크스주의의 세번째이자 높은 단계를 이룬다는 것과, 마오주의의 근본적인 요소로 이해되는 인민전쟁이 각국과 각 혁명의 특수성에 적용되는 프롤레타리아의 보편적 군사이론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확인했다. 아바키안은 RIM에서 그의 수정주의 이론을 주입하는데 실패해 청산을 위해 수년간 음모를 꾸몄다.

따라서, 모든 수정주의의 표현과 영향에 맞서고 무찌르지 않고서는 제국주의의 일반적 위기와 지속되는 인민의 반란에 의해 제기되는 요구에 응할 수 없다. 수정주의와 기회주의에 응하지 않고서는 혁명은 발전할 수 없다. 마오주의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모든 논쟁을 심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혁명적 폭력의 가장 높은 적용 형태로서 인민전쟁과 그 보편적 타당성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있어 이 문제의 중요한 의미를 고려하고, 우리 나라에서 인민전쟁을 시작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과 도전에 근거하여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고자 한다.

2. 제국주의와 혁명

위대한 레닌은 그의 걸출한 저작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단계”와 그의 식민 및 민족 문제에 관한 논쟁 중에서 제국주의 시대의 구별되는 특징을 종합했는데, 이에 따르면, 세계는 둘로 나뉜다: 한 쪽에서는, 다수를 구성하는 후진적이고 억압받는 나라가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전자를 억압하는 소수의 선진국들이 있다. 이는 확인되어 온 상황이며, 한 세기동안 정확성이 입증되고 심화되고 있다.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와 해방 운동이 이 썩어가는 착취 체제에 큰 타격을 입혔고, 신민주주의와 사회주의 혁명으로 무덤 끝까지 밀어냈지만, 이 체제는 다시 그 자리를 되찾았다. 그리고 자본주의 복귀로 이어진 수정주의의 해로운 행동으로 제국주의는 국제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반격을 수행하여 전 세계를 지배했지만, 오늘날 제국주의는 그 어느때보다 부패했으며 범죄적이다.

마오주석은 흐루쇼프주의 수정주의의 투항주의를 퍼뜨리려는 모든 시도를 거부하면서, 제국주의가 종이호랑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카우츠키의 ‘초제국주의’ 이론의 부활의 폭풍의 가면을 벗겼으며, 제국주의 시대에는 “3개의 세계가 생긴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즉, 제국주의 진영은 담합과 투쟁을 거치면서 서로 모순된 상태를 유지하는데, 자본 자체의 본성 때문에 투쟁이 담합을 추월하고, 필요적으로 일반적 위기의 특정 시기에는 세계의 재분할과 재분배, 패권을 위한 투쟁이 더욱 첨예해진다. 따라서 초강대국의 “세계”인 “제1세계”, 제국주의 권력(제2의 질서의 권력)의 제2세계, 후진적이고 제국주의에 의해 억압받는 민족으로 구성된 제3세계가 형성된다. 당시에는 인민민주주의 국가와 사회주의 국가(독립된 국가지만 아직 덜 발전한 국가)도 존재했지만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이후 제3세계는 제국주의에 의해 억압받는 반식민 반봉건 국가들이 대다수이다.

덩샤오핑의 수정주의 헛소리인 “3세계론”은 마오주석에 공헌하고자 했지만 위대한 주석 마오주석의 마르크스 레닌주의 분석과 조금의 공통점도 없다. 그리고 이것은 덩샤오핑 파벌이 수정주의적 배신과 제국주의 판놀음에의 참여를 정당화하기 위해 제1세계는 강대국과 제국주의 열강의 세계, 제2세계는 사회주의 국가, 제3세계는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세계라고 주장사는 속임수에 의존한 이유를 밝히는 핵심적인 열쇠이다.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로 남아있는 동안 소련이 사회제국주의 초강대국으로 변모한 소련의 자본주의 복귀 당시와 직후에 마오 주석이 내린 평가는 세계의 기초 모순을 규정하고 그 가운데 주요 모순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제국주의와 프롤레타리아 혁명 사이의 힘의 상관관계를 측정하여 흐루쇼프주의 수정주의에 대항하고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혁명을 옹호했다. 이는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올바른 일반 정치노선을 종합하고, 모든 유형의 국가에서 혁명을 만들기 위한 형태와 방법을 확립하고,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한 일반적인 방법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가와 인민해방군 지도부에 자리잡은 수정주의자들과의 치열한 투쟁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따라서 1963년 6월의 유명한 중국 서한인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일반 노선에 관한 제안”에서 다른 정의들 중에서 시대의 모순을 네 가지, 즉 피억압 민족과 제국주의 사이의 모순,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사이의 모순, 독점기업과 제국주의 국가 사이의 모순, 사회주의와 제국주의 사이의 모순(그 시대에 사회주의 진영이 존재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네 가지로 정확하게 제시했다. 그러나 맑스주의, 프롤레타리아 혁명, 흐루쇼프주의 수정주의에 대한 투쟁에 매우 중요한 이 문헌에서는 이 네가지 중 어느 것이 주요 모순인지 명시되지 않았는데, 마오주석은 무엇보다도 피억압 민족과 제국주의 사이의 모순이라고 했다. 흐루쇼프 수정주의자들의 답변에 대한 “중국공산당 서한”과 “9개 논평”을 관통하는 이 중요한 간극과 그 밖의 여러가지 차이는 이것이 무산계급문화대혁명으로 폭발할 치열한 내부 투쟁의 한가운데 있던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입장이기에 나타났다.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의 패배 이후, 곤살로 주석은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제국주의 개념과 마오 주석의 이해에 대한 견실한 방어를 구축했는데, 그에 따르면 세계는 제국주의의 일반적 위기의 악화로 제국주의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시대에 접어들었고, 이것이 50년에서 100년 안에 일어날 것을 강조했다.

곤살로 주석은 마오 주석이 주도한 중국 혁명의 모든 경험을 종합하고 이를 인민전쟁을 통해 페루 혁명의 혀실에 적용함으로서 마오주의를 마르크스주의의 세 번째, 최신, 최고 단계로서 분리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해하고 확립했다. 그는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의 사건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그 특징을 매우 정밀하게 규정하면서 수정주의와 제국주의의 결속된 반혁명적 공세, 즉 고르바초프, 레이건-부시,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연합한 반혁명적 총공세가 시작되었고, 유엔의 깃발 아래 이라크 침략 전쟁부터 오늘날 미국이 세계 유일의 패권적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사건이 일어났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혁명과 반혁명 사이의 갈등, 즉 이전의 모든 인민민주주의 국가와 사회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 복귀가 이루어진 상황, 공산주의자들이 수정주의의 검은 깃발 아래에서 가장 혹독한 시련과 뻔뻔스러운 배신에 직면하게 될 새로운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다.

이 시기를 다룰 때 수정주의 소련(1956),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 이후의 중국(1976), 다른 인민민주주의 국가(1960)에서 일어난 자본주의 복귀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의 일시적인 패퇴가 소련의 사회 제국주의와의 공모와 투쟁 속에서 양키 제국주의 초강대국의 패권 아래 자본주의 지배의 새로운 단계로 세계를 이끌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1990년대에 유일한 패권적 제국주의 초강대국으로서 침략과 약탈전쟁을 통해 단일 자본주의 세계 시장을 복원했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총공세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분쇄하고 마르크스주의를 표적으로 삼아 그 진부함을 선포하기 위한것이었다. 페루 혁명에 큰 타격을 입히고도 전세게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소련은 민족해방투쟁을 분쇄하기 위한 구실로 ‘이슬람 근본주의’를 겨냥한 ‘테러와의 전쟁’ 전략을 시작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와 피억압 민족들은 페루, 필리핀, 튀르키예, 인도, 네팔에서 인민전쟁을 추구하고 제국주의에 점령당한 국가들이 벌인 무장투쟁으로 새로운 정점을 달했고 단 하루도 전투와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이러한 새로운 제국주의 지배의 조건과 프롤레타리아, 대중, 피억압 민족들이 벌인 저항 운동 속에서 제국주의는 전례없는 수준의 붕괴에 이르렀다. 이것의 한가지 징후는 오늘날 사회-경제-금융-정치적 위기의 비율, 심각성 및 지속기간과 침략 전쟁의 증가로, 민족들과 제국주의 사이의 모순 뿐 아니라 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의 모순, 혁명적 지도력을 요구하는 전세계를 횡단한 대중 봉기의 연속적인 공격에서 예시된 것처럼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사이의 모순의 심화를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곤살로 주석이 지적하고 정립했듯이, 제국주의의 일반적 위기의 현재 발전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해 완전히 쓸려나가는 역사적 단계에 진입했으며, 이는 반드시 전진해야 하는 세계 혁명의 두번째 물결속에서 민족 해방을 위한 무장 투쟁과 주로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영광스러운 깃발을 결코 떨어뜨리지 않은 인민전쟁에 의해 예측된 상황이고, 프롤레타리아 지도력의 발전, 군사화된 마오주의 공산당, 마지막으로 마오주의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발전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오늘날 제국주의의 발전과 붕괴를 대표하는 이러한 구체적 조건에서 레닌이 당대에 이미 설명한 것이 심화되어 사회 전체가 극도로 군사화되었고, 모든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 군중, 피억압 민족의 해방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즉 프롤레타리아적 접근과 지도력에 의한 혁명적 무장투쟁의 길인 인민전쟁 뿐이다.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레닌이 잘 표현했듯이, 우리는 모든 형태의 기회주의에 맞서 투쟁하고, 개량주의와 모든 종류의 의회 중심주의(parliamentary cretinism)를 거부하며, 군중 앞에서 기회주의 당파들과 경계선을 긋고 가면을 벗겨 군중이 이해하고 적과 아를 구별하며 혁명적 무장투쟁에 강력한 힘을 방출하도록 돕지 않고는 제국주의와 반동에 맞서 진정으로 투쟁할 수 없다.

3. 마르크스주의와 인민전쟁

인민전쟁은 마오 주석이 공식화한 중국 혁명의 경험과 마찬가지로 절대적으로 공산당에 의해 지휘되는 군중의 전쟁이며, 이는 20세기 말과 현세기 초에 이를 승리로 이끌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통해 확인되었다. 군중이 역사를 만든다는 원칙에 기초하여 대중이 일반적으로 상대적으로 비조직화되어있는 구체적인 현실에서 출발하지만 장기적으로는잘 정의된 무장투쟁의 발전 단계를 통해 전략적 차원에서 상대적 힘의 우위와 전술에서 절대적 우위를 적용하여 강력한 비조직화된 세력에서 강력한 조직된 세력으로 조직화되는 전쟁이다. 전략적 방어, 전략적 균형 및 전략적 공세의 세 단계의 과정에서 힘의 상관관계를 엄격하게 준수하면서 약한 힘에서 강한 힘으로 나아가는 힘의 축적, 인민 전쟁은 프롤레타리아와 인민 군중의 혁명적 정치권력인 신권력을 세우는 혁명 지원 기지를 건설하고 이에 의존해 스스로를 지탱하며 전국적으로, 일반적으로 나아가서는 국가에서 국가로, 전세계에 걸쳐 권력을 정복할 때까지 조금씩 확장하는 것을 당면한 목표로 삼아 지연 없이 시작된다.

게릴라 전쟁은 게릴라 군대를 조직하는 것을 즉각적인 목표로 하는 소규모 조직을 통해 무장 선전 활동으로 시작하여 곧 게릴라전으로 전개되며, 광대한 영역을 포위하고 군중을 동원하고 정치화하고 조직하고 점차 무장시켜 혁명 지원 기지와 신권력을 창출하기 위해 게릴라 구역과 작전구역을 창출한다. 게릴라 구역은 전술적 목표이며, 게릴라 전쟁과 지원기지들은 인민전쟁의 초기 수립과 개시부터 전국에 걸친 권력 정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관통하는 전략적 요소이다.

“지원 기지는 게릴라 세력이 전략적 임무를 수행하고 병력을 보존하고 증강하며 적을 섬멸하고 격퇴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의존하는 전략적 거점이다. 이러한 전략적 거점이 없다면 우리의 전략적 임무를 수행하고 전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반도 없을 것이다.” “곤살로 주석은 정치적 및 사회적 조건, 투쟁의 전통, 지리적 특성, 당과 군대, 군중의 발전을 고려하여 게릴라 구역, 작전 구역, 행동 지점으로 둘러싸인 지원기지 체계를 구축했다.”

통일적 인민전쟁은 농촌과 도시에 적용되며, 피억압 국가의 경우 농촌은 주된 전선, 도시는 미래의 총력 봉기를 준비하기 위한 필수적인 보완물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및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우, 이는 혁명적 권력의 발전과 총력 봉기의 준비를 위해 대도시, 중소도시 및 소도시에 적용된다. 인민군과 통일전선의 축적과 발전에 따라 인민전쟁은 게릴라전을 유지하는 한편 다른 형태, 주로 기동전, 특히 마지막 단계인 전략적 공세에서는 적의 마지막 요새인 주요 도시 중심지에서 봉기(예: 총력 봉기)와 결합하여 다른 형태와 더불어 진지전을 동시에 그리고 복합적으로 적용할 것이다. 전체 인민 전쟁의 과정은 전쟁의 일반법칙, 혁명 전쟁의 일반법칙, 특히 특정 국가의 혁명 전쟁의 법칙을 따른다. 이 법칙에 따르면, 인민전쟁은 본질적으로 그 발전 과정에서 전략적 중앙화와 전술적 탈중앙화의 역학을 범주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유의해야 한다. 인민전쟁에 군중을 통합하는 것 역시 이러한 법칙을 따른다.

이 개념을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때 마오 주석이 설명했듯이 전쟁에서 중요한것은 무기가 아니라 사람이고, 사람이 행하는 역동적인 역할로 인해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는 것을 강조해야한다. 인민군은 군중의 짐이 아닌데, 왜냐하면 인민군이 군중의 이익에 봉사하여 싸울 뿐 아니라 군중을 동원하고, 정치화하고 조직하며 생산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인민군 무장의 주된 형태는 전투를 통해 패배한 적군으로부터 무기, 탄약 및 기타 전쟁 수단을 회수하고 이차적으로 이를 생산 및 구매하는 것이다. 또한 전쟁은 ‘아군을 보존하고 적을 섬멸한다’는 기본 원칙, 즉 적을 섬멸하고 혁명군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서는 피로써 빚을 지고 전투에 임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피로써 빚을 갚아야 한다. “적을 아군 전선 깊숙이 침투하도록 유인하여 적을 부분적으로 포위하고 적군을 하나씩 섬멸’하고, “준비 없이 싸우지 않고 확실히 이길 수 없는 전투에 임하지 않고” “전술로는 하나에 대항하여 열로, 전략상에서는 열애 대항하여 하나로” 싸우는 원칙을 적용하기 위해 “적이 진격하면 후퇴하고, 적이 진을 치면 침공히고, 적이 지치면 공격하고, 적이 후퇴하면 추격한다”는 지침에 따라 항상 “이성적이고 유리하며 자신을 과도하게 확장하지 않고” 싸워야 한다.

즉, 전략에서는 상대적 우위를, 전술에서는 절대적 우위를 적용한다. 일반적으로 전쟁을 전체적으로 볼 때 게릴라전을 수행하기 위해 병력을 분산시키고 기동전을 수행하기 위해 병력을 집중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어느 경우나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적보다 몇 배나 큰 병력을 집중시켜 적의 병력을 하나씩 파괴한다’는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되, 항상 적의 전략적 단계에 따라 적용한다. 인민전쟁의 전략적 방어의 초기 단계에서 군중과 함께하는 혁명적 정치 사업과, 주로 게릴라 활동에서 우리 군대의 분산은 적으로 하여금 그들의 군대를 분산시켜 여러 지점에서 우리를 공격하여 그들을 전멸시키고 쓸어버리고 정치적 진공을 생성하여 우리가 지원기지와 신권력을 구축하는 조건이 만들어진다. 전략적 균형과 공세 단계에서 우리는 주로 게릴라의 지원을 받는 기동전을 통해 적을 하나씩 공격하고 섬멸하기 위해 전력을 집중한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적의 현역 세력을 전멸시키고, 낡은 사회 생산 관계를 파괴하고 쓸어버리고, 단계적으로 신권력을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싸운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러한 원칙과 생각들을 각각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계획에 따라 확고하게 지도되는 활동에서 적용하는 방법을 아는 문제와 도전이 항상 제기된다. 일반적으로 핵심 문제는 항상 주도권을 유지하고 전술 및 전략 계획에서 각 교전에 전력을 집중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적은 적의 방식으로 싸우고 우리는 우리의 방식으로 싸운다”는 것이다. 전쟁의 본질적인 문제는 “학습에 능숙해지는 것”이다.

 

인민전쟁의 장기적인 특성

인민전쟁의 정기적인 특성은 각국과 전세계에 지배적인 독점 및 제국주의의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의한 모순에 의해 결정된다. 이 모순의 발전을 지배하는 법칙과 혁명과 반혁명 사이의 힘의 균형은 일반적으로 혁명을 통한 모순의 해결을 장기화시킨다. 물론,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특정 수준의 발전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를 전체적으로 볼 때 혁명이 크게 승리한 경우 나머지 지역에서는 다소 단기간에 승리할 가능성이 존재할 것이다.

후진적이고 억압받는 국가의 경우, 이러한 모순과 그 발전은 인민 전쟁의 장기적인 특성을 결정하는 네 가지 일반적인 특성에서 파생된다:

1)관료자본주의가 반봉건적 관계를 기초로 발전하는 반봉건적 상태

2)적군은 규모가 크고 강하며 전복과 혁명에 맞선 투쟁에서 많은 경험을 쌓음

3)혁명 세력은 초기에는 낮은 발전 수준과 후진성을 고려할 때 약세이고, 아직 게릴라 군대가 없다.

4)인민전쟁은 공산당의 최소한의 존재가 확립되어야만 절대적인 지휘를 행사할 수 있다.

곤살로 주석이 적절히 공식화했듯이, 인민전쟁을 수립할 때, 첫번째와 네번째 특성은 인민 게릴라군이 성장하고 적을 격파할 수 있게 해주고, 두번째와 세번째 조건은 인민의 게릴라군이 급속히 성장할 수 없으며, 성장하고 군중을 전쟁에 통합할 시간이 필요하고, 혁명에 유리한 힘의 관계를 점차 변화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제국주의인)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경우, 첫번째 특성만이 후진국의 경우와 다른데, 독점자본주의, 제국주의에 존재하는 두 가지 유형의 국가 성격의 매우 구별되는 요소, 즉 소수의 지배 세력 및 초강대국, 선진자본주의 국가와 대다수 후진 및 피억압 국가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그 붕괴가 진전됨에 따라, 생산관계 및 그것에 기반한 상부구조 전반에서 모순이 점점 더 격화되고, 사회 전체에 위기가 점점 더 자주 발생하며, 내부적 혼란과 대중투쟁에 대한 탄압이 점점 더 강력해진다. 이로 인해 투쟁은 점차 급진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즉, 착취의 강화, 권리의 축소, 파시즘 경향의 증가, 민주적 자유에 대한 반동적 폭력, 집회 탄압, 파업 및 시위 억압, 인종주의·국수주의 및 모든 형태의 반동적 편견의 확산 등은 모두 대중 투쟁의 폭발적 물결을 유도한다. 이는 혁명 투쟁 전반과 프롤레타리아의 혁명 정당 및 그 군대의 발전에 유리한 조건을 형성한다.

혁명에 유리한 요인과 불리한 요인의 상관관계는 현실에 대한 과학적 분석—즉, 객관적 모순, 대중의 의식 및 조직 수준—을 통해 결정된다. 인민전쟁은 다음과 같이 명확히 정의된 전략적 단계를 통해 발전한다:

●   전략적 방어

●   전략적 균형

●   전략적 공세

전략적 방어 단계는, 혁명과 반혁명 사이의 힘의 관계를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 단계에서 프롤레타리아, 빈농 및 기타 인민대중은 일반적으로 조직화 수준이 매우 낮으며, 혁명의 기본적 도구들(정당, 군대, 전선)은 약하거나 초기 상태, 혹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혁명 세력의 전략적 괴멸 위험이 존재하므로, 지도력은 전략적 공격을 피하고 전술적 수준에서의 공격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전투마다 절대적 우세 개념을 적용해 적을 각개격파할 수 있다.

전략적 방어 단계는 일반적으로 가장 긴 단계가 되며, 이는 대중조직과 공산당이 전쟁을 수행함에 있어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이 경험은 전쟁을 수행하면서 쌓아야 한다. 나머지 두 단계의 지속 시간은 주로 국내외 체계적 위기의 심화 정도, 그리고 전쟁 지도부가 올바른 노선을 고수하는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적의 강점은 그들의 병력 규모, 무기의 양 및 파괴력에 있으며, 적들의 약점은 착취와 억압을 옹호한다는 점에 있다. 우리의 강점은 정의로운 목적을 위해 싸운다는 점이다. 우리는 대중을 억압하는 낡은 기계를 파괴하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사회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싸운다.

우리의 약점은 분산되고 미조직된 대중의 현재 상태에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게릴라전은 초기 단계에서 주요하고 지배적인 전투 형태이며, 기동전은 보조 형태로 시작된다. 이는 무장 선전, 사보타주, 선별적 제거, 공격 등의 형태로 시작된다. 전략적 방어 단계가 더 발전함에 따라 기동전이 점점 중요해지고 전쟁을 더욱 발전시키는 핵심 요소가 된다. 이때 게릴라전은 보조적이며 지속적으로 결합되어 적용된다.

전략적 균형 단계에서는, 적이 이미 잃은 영토와 권력을 되찾기 위해 싸우며, 혁명은 이미 획득한 권력을 방어하고 전략적 공세로의 이행을 준비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는 도시 중심지에서의 활동이 강화되어야 하며, 기동전이 주로 적용되고, 특정 조건 하에서는 위치전 및 게릴라전이 보조적으로 결합되어 수행된다.

마지막 단계인 전략적 공세는 농촌이 도시를 포위하고, 적이 전략적 방어에 들어가며, 우리는 전략적 공세로 전환하는 상황에서 전개된다. 이 단계는 농촌의 포위와 도시의 총기봉기로 완결된다. 인민전쟁은 전 과정에서 전진과 후퇴, 우회, 상승과 하강을 겪게 되며, 인민전쟁의 성패는 공산당과 그 지도부가 모순을 올바르게 관리하고, 해당 단계에 맞는 혁명 프로그램을 수립·실행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곤살로 의장은 인민전쟁이 장기적이며, 길고도 무자비하지만 승리로 귀결된다고 가르쳤다. 그는 그 장기적 성격 안에서 그 지속 기간이 길어지거나 짧아지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군사 노선에 따라 싸우느냐에 달려 있으며, 우경주의는 전쟁에 심각한 후퇴를 야기할 수 있는 주요 위험이라고 강조하였다.

 

공산당의 지도 없는 인민전쟁은 불가능하다.

프롤레타리아의 이데올로기를 구현하는 공산당 없이는, 인민전쟁은 결코 시작될 수도 없고, 끝까지 수행될 수도 없다. 우리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프롤레타리아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산당으로 조직되어야 하며, 이 정당이 혁명 전 과정, 권력 쟁취, 계급 독재, 사회주의, 그리고 공산주의로의 전환의 모든 경로를 절대적으로 지도해야 함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마오 주석의 지도 하에 진행된 중국 혁명의 경험—이 과정에서 인민전쟁 이론이 창안되고 정식화되었으며, 1949년 혁명의 승리에 이르기까지 20년이 넘는 무장 투쟁이 지속되었고, 이후 혁명과 사회주의 개조의 단계에 이르렀다—는 공산당의 절대적 지도력이 혁명 과정에서 얼마나 결정적인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또한 이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혁명의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는, 정당 내부에서 올바른 이데올로기-정치 노선이 지배적인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 프롤레타리아와 인민대중의 투쟁,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역사 전체에서 모든 승리와 패배의 결정적 요인은 공산당에 존재하며, 공산당 내의 요인 중에서도 핵심은 당내에 올바른 이데올로기-정치 노선이 확립되고 있는지의 여부이다.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전제는 인민전쟁이 과학적이며 마르크스주의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사실이다. 인민전쟁은 프롤레타리아 군사 이론으로서 통합적이며 조화로운 체계를 이루고 있다.

인민전쟁은 마르크스주의의 세 가지 근본 기둥을 본질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1. 계급투쟁 – 역사의 원동력
  2. 프롤레타리아 독재 – 혁명의 각 단계에 따른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권력 형태
  3. 혁명적 폭력 – 그 최고 형태로서 인민전쟁이 구체화된다
  4. 프롤레타리아의 혁명 정당 – 절대적 지도자로서 기능
  5. 과학적 사회주의(공산주의) – 최종 목표

이 모든 것에 더하여, 인민전쟁은 제국주의 및 모든 반동과의 투쟁과 분리할 수 없는, 수정주의 및 모든 기회주의와의 투쟁도 필수적으로 포함한다.

4. 농촌에서 도시를 포위하는 길

“마르크스주의는 프롤레타리아에게 농민을 지도하도록 가르쳤다.”
 — 레닌

피억압-반봉건 국가들에서 인민전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도시를 농촌에서부터 포위하는 길이라는 사실은 역사적 경험을 통해 입증되어왔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기계적으로 해석하여, 이것만이 인민전쟁의 본질이라고 간주해서는 안 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민전쟁의 본질은 공산당이 지도하는 대중의 전쟁이며, 이 전쟁에서 권력의 문제는 중심 목표다. 이는 처음부터 추구되는 목표이며, 대중이 무장투쟁을 통해 점차적으로 무장되어 조직화되고 정치화되어가며, 낡은 국가가 존재하는 기반을 파괴하고, 그 틈에 인민의 새로운 권력(Popular New Power)을 수립하는 것이다. 즉, 공산당이 지도하는 무장 세력에 의해 쟁취되고 방어되는 권력이다.

과학적 개념으로서 인민전쟁은 현실, 국가, 그리고 사회의 사회경제적 발전 법칙을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피억압 국가들—특히 주로 반식민지적 지배를 통해 제국주의에 의해 지배당하는 후진국들—의 경우, 제국주의는 반(半)봉건적 기반 위에 관료 자본주의를 발생시킨다. 이는 종종 실제 발전이나 진보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낡은 관계는 다양한 형식을 통해 계속 유지된다.

이 반(半)봉건적 기반과 사회관계는, 일부 소수의 **대지주(라티푼디오)**에게 집중된 토지 소유관계의 유지에 기반하며, 이는 대부분의 가난한 농민들에게 토지가 없거나 아주 적은 땅만을 갖도록 강요한다. 대지주와 소작농, 빈농 외에는 중농 및 부농 계층이 소수 존재하며, 이러한 경제적 기반과 사회적 관계는 상부구조 전체—법률, 정치, 문화, 이데올로기—에 걸쳐 반영되고 정당화되며 재생산된다.

따라서, 반봉건-반식민지 국가의 농촌 지역은 여전히 도시의 착취를 받고 있으며, 현지 지배 계급은 제국주의에 종속되어 있고, 이러한 구조는 도시와 제국주의의 경제적·정치적 저장소로서 농촌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즉, 대지주 지배가 중심인 농촌이 도시 및 제국주의 지배의 근거지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공산당은 농촌을 부르주아지의 저장소 상태에서 해방시키고, 노동자-농민 동맹을 수립하는 전략을 관철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농민을 조직하여 토지 쟁취와 대지주 파괴를 위한 농민전쟁을 전개해야 하며, 이것이 프롤레타리아가 무장력을 조직하고 헤게모니를 수립하는 길이다. 이러한 현실은 군사적으로 농촌이 혁명에 유리하고 반혁명에 불리한 전장을 형성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혁명 운동이 농촌에만 고립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반봉건 국가의 프롤레타리아 또한 도시에서도 인민전쟁을 전개해야 하며, 이는 미래의 총기봉기를 준비하기 위한 보조 작전으로서 수행된다.

이러한 이유로, 피억압-반봉건 국가들에서 인민전쟁은 반드시 ‘농촌에서 도시를 포위하는 길’을 따라야 하며, 이는 해당 국가의 경제적·사회적 관계의 본질이 여전히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그 형식은 변화되었을지라도, 본질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페루공산당은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마오 주석은 도시를 농촌에서 포위하는 노선을 수립했으며, 해당 노선의 핵심은 근거지 형성에 있었다. 그는 강력한 제국주의자들과 그들의 중국 내 반동 동맹 세력들이 도시를 장악하고 있음을 인식했으며, 혁명세력이 항복을 거부하고 투쟁을 지속하고자 한다면, 낙후된 농촌 지역을 혁명의 군사적·정치적·경제적·문화적 견고한 보루인 근거지로 전환시켜야 함을, 이러한 근거지를 통해 점차 도시를 향해 전쟁을 진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이러한 마오주의 노선에 기초하여, 곤살로 주석은 통일적 인민전쟁을 수립하였다. 농촌은 무장 투쟁의 주요 무대로, 도시에서는 국제적 경험과 우리의 경험이 증명하듯, 보조적 무장 행동이 수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피억압 후진국들의 혁명을 다룸에 있어 새로운 현상에 주의해야 한다. 이는 제국주의 붕괴의 가속과 그에 따른 반동의 고양이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는가의 문제이다. 레닌이 말한 바와 같이, 제국주의는 “반동과 폭력의 경향”을 갖고 있으며, 이는 모든 수단과 방식으로 관철된다. 제국주의 자본은 관료자본주의 경제를 통해 농촌 인구를 대거 도시로 이주시킴으로써 초거대도시(megalopolis)를 형성하는 중이며, 바로 여기서 일촉즉발의 폭탄과도 같은 반(半)프롤레타리아 대중이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잠재적인 도시 봉기의 조건을 조성한다. 우리는 이에 주목해야 하며, 도시 대중투쟁에서의 전술을 발전시키고, 그 과정에서 수정주의 및 기회주의가 도시 대중의 분노를 탈취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이 도시 포위 전략을 해체하거나 도시 중심 전략으로 전환하려는 오류로 전락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는 인민전쟁의 전략을 부정하고, 단지 도시에서의 봉기가 주력이라는 환상을 유포하려는 또 다른 함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의 포기와 도시 중심의 노선으로의 전환은 본질적으로 경제,사회적 구조가 여전히 봉건적 본질을 유지하고 있다는 현실을 은폐하는 것이다.

오늘날 관료자본주의가 농촌으로 확장되고 있는 가장 최근의 형태 중 하나는 국내외 자본에 의한 토지와 영토의 대규모 수탈이다. 광산 기업, 단일 작물 농업(사탕수수, 콩, 야자 등), 바이오연료 산업 등이 그 예다. 이는 자연환경을 파괴할 뿐 아니라, 농민에 대한 착취와 계급투쟁을 더욱 격화시키며, 가난한 농민뿐만 아니라 소수민족(토착민 포함)과 전통적 공동체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환경 보호”를 결코 무시하지 않지만 이 문제를 프롤레타리아와 인민대중의 계급적 이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며, 이 기회를 통해 농민 대중의 토지 방어 투쟁을 조직하고, 도시 대중의 지지를 결집하여 노동자-농민 동맹과 광범위한 통일전선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통일전선 내에서 인민전쟁만이 제국주의 독점 세력을 농촌에서 완전히 쓸어낼 수 있는 방법론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또한, 도시로 쫓겨간 농민 대중에게 다시 농촌으로 돌아가 토지와 혁명을 위해 싸우자고 호소해야 하며, 대중이 체제 내의 “생태 투쟁”이라는 제국주의의 조작된 전술에 혼란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페루공산당은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우리는 도시 포위 노선의 유효성과 그 중심 요소인 근거지 건설의 중요성을 확고히 주장해야 한다. 왜냐하면 단순히 유랑 게릴라 전술이나 봉기로는 인민 유격군을 지탱할 수 없으며 새로운 권력(New Power) 또한 세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포코주의(focoism, '소수 무장집단의 자생적 봉기론')에 단호히 반대한다.”

5. 인민전쟁의 보편성과 총봉기 전술

맑스는 혁명을 내전으로 정의하며, 그의 시대적 관점에서 혁명의 방법론을 적어도 초기에는 총봉기의 형태로 제시하였다. 그는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으로서 봉기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법칙들을 연구하려 했다. 맑스는 총봉기의 필요성을 명확히 주장했으며, 봉기를 혁명적 목적으로 발발시키기 위해서는 객관적 조건, 즉 혁명적 상황이 존재해야 하며, 그것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주관적 요소, 특히 조직된 계급의 힘으로 표현된 의식의 발전, 강고한 강령과 목표를 가진 전위의 지도력이 요구된다고 강조하였다. 맑스는 총봉기는 장난이 아니며, 혁명적 목적을 위해 발발했을 경우에는 하루에 몇 미터씩이라도 전진하며 완전한 승리를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았다. 총봉기는 끊임없는 주도권을 요구하며, 항상 공세적이어야 한다. 방어에 머무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맑스는 “대담성, 대담성, 언제나 대담성”이라는 당통의 어구를 인용하며, 그를 당시까지 최고의 혁명 전술가라 평가하고는 했다. 그러나 맑스와 엥겔스는 도시계획의 변화와 전쟁 수단의 발달과 같은 변화로부터 총봉기의 한계를 관측하였고, 그 후로 맑스는 프롤레타리아 봉기를 다른 형태의 전쟁과 결합해야 한다고 설파하기 시작했다. 독일에서의 혁명 가능성을 논하는 엥겔스에게 보낸 한 서한에서, 그는 모든 것이 “두번째 농민전쟁”과의 결합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엥겔스는 이 문제에 대해서 이미 1895년 판본의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서문에서 상세히 논하였다. 그는 19세기 중반 유럽의 다양한 총봉기 경험을 검토하면서, 도시계획의 변화, 더욱 강력해진 무기, 철도 교통으로 인한 병력의 신속한 이동 가능성과 같은 다양한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요인들을 고려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이곳에서도 투쟁의 조건은 본질적으로 변하였다. 예전 방식의 봉기, 즉 바리케이드를 쌓고 싸우는 거리 전투는 1848년까지는 어디서나 결정적인 수단이었지만, 이후로는 상당 부분 낡은 방식이 되었다.”

 “이는 미래에 거리투쟁이 더 이상 아무 역할도 하지 않을 것이란 의미는 아니다. 단지 1848년 이후의 봉기의 조건들은봉기세력에게는 훨씬 불리해지고 정규군에게 훨씬 유리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래의 시가전은 위대한 혁명의 초기보다는 후반부에서 더욱 자주 발생할 것이며, 더 큰 병력으로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 병력들은, 예를 들어 프랑스 대혁명 당시처럼, 1870년 9월 4일과 10월 31일 파리에서처럼, 바리케이드라는 수동적 전술보다는 오히려 공개적 공격을 택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그 어떤 역사적 경험에서도, 그리고 몇 안 되는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서의 사례에서도 단순한 총봉기는 성공한 적 없었다. 2월 혁명을 심화시킨 10월 혁명조차도 3년에 걸친 격렬한 내전을 거쳐서야 자신을 유지하고 공고히 할 수 있었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되풀이해 주장해온 “총파업을 통한 정치적 봉기”는 수세기 동안 실천적 개량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다.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혁명의 방법으로서 총봉기만을 주장하는 다른 접근들은 실제로는 의회주의적 기회주의에 대한 편승을 정당화하는 핑계에 불과했으며, 그 실현을 입증할 수 있는 어떤 구체적 사례도 존재하지 않는다. 제국주의가 출현함에 따라,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한 객관적 조건이 이론과 실천에서 성숙함과 동시에, 전 사회와 모든 나라들이 군사화되는 변화가 동반되었다. 레닌의 말처럼 제국주의는 곧 전쟁이며, 10월 혁명의 승리와 반혁명을 진압한 내전 이후,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점점 더 다양한 형태의 전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레닌은 이 문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특히 10월 혁명 이후에는 혁명으로부터 교훈을 도출해냈다. 그는 러시아에서의 경험처럼,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점점 더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며, 이는 점점 더 확실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멘셰비키 수하노프가 볼셰비키가 마르크스주의를 위반했다며, 러시아는 아직 사회주의를 건설할 만한 생산력이나 “문화”를 갖추지 못했다고 비판했을 때, 레닌은 해당 비판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기계적이고 교조적인 이해일 뿐이며, 소비에트 권력에 대한 우익적 적대감을 감추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고 반비판을 수행했다. 그는 어떤 마르크스주의 책에서도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장악해 “문화”를 창조할 기회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수하노프가 이미 깜짝 놀랐겠지만, 그와 같은 이들이 앞으로는 더욱 많은 “이단적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사례를 보게 될 것이며, 그것은 특히 동방에서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론, 여기서 레닌은 단지 러시아처럼 제국주의 지배망의 약한 고리를 끊는 혁명 경로, 즉 동방의 후진국들에서 먼저 혁명이 발발하는 경향에 대해서만 언급한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의 변증법적 성격, 즉 구체적 현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접근하는 데 있어서의 마르크스주의적 방법론 전체에 대한 이해를 환기시키려는 의도였다. 레닌은 후진국들, 즉 제국주의 반동의 예비군으로 기능하는 국가들에서의 혁명 돌파가, 제국주의 국가들 내에서의 계급 모순과 계급투쟁을 격화시킬 것이며, 이로 인해 결국 제국주의 국가들, 혹은 그 중 일부에서도 혁명이 일어나는 방향으로 연결될 것이라 보았다.

총봉기는 일반적으로 역사 속 민중 투쟁의 한 형태로서 여전히 남아 있으며, 그 발생과 성공을 위해서는 객관적 조건뿐 아니라 더 높은 수준의 주관적 준비가 요구된다. 총봉기를 단순히 자본주의(제국주의) 국가들에서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경로로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총봉기는 인민전쟁의 일부, 특히 이미 인민무장세력이 도시를 포위한 상태에서의 최종 거점 탈환을 수행할 때만 성립된다. 이는 또한 인민전쟁 자체의 전 과정에서도 부분적인 봉기의 형태로 존재한다. 이는 피지배국들에서의 혁명 사례를 통해 입증되었다. 마오 주석이 정식화한 인민전쟁 개념은, 그가 반세기 이상 직접 지도한 중국 혁명의 구체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오 주석은, 인류의 해방을 위한 투쟁, 특히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시대의 투쟁 전체를 연구하며 그것을 높은 수준으로 이해하고 체계화했다. 그리고 곤살로 주석은, 페루 혁명과 인민전쟁의 실천 속에서 이러한 중국 혁명의 모든 교훈을 종합하여, 그것이 마르크스주의의 새로운 발전단계, 즉 세 번째이자 가장 높은 단계라는 것을 입증하였으며, 이와 함께 인민전쟁이 완전한 프롤레타리아 군사 이론임을 밝혔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그리고 과거에도 인민전쟁을 왜곡하거나 부정하려는 시도들이 아바키안과 프라찬다 같은 현대 수정주의자들의 이론적 틀에 기반하고 있는 이유이다. 아바키안은 인민전쟁 이론을 “후진국에 한정된 전략”으로 축소하면서, 그것이 오직 피억압 국가들에만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 동시에 그는 총봉기 중심 노선을 고수하지만, 결국에는 의회주의와 타협으로 귀결되는 정치 방침을 따르고 있다. 반면 프라찬다는 “전략적 융합”을 주장하면서 의회투쟁과 인민전쟁을 인위적으로 혼합하려고 했으며, 이를 21세기 사회주의의 보편적인 길로 선언했다. 그의 노선은 결국 실천적으로는 투항주의로 귀결되는 전략적 혼란을 초래하였다. 아바키안의 노선은 아무런 물리적 근거를 지니지 않으며, 프라찬다의 노선은 실질적으로 네팔 인민과 세계 혁명을 배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반면, 곤살로 주석은 마오주의가 맑스주의의 세 번째이자 가장 높은 단계임을 정식화하면서, 인민전쟁이 모든 형태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보편적인 군사적 전략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인민전쟁이 억압받는 국가에서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국가와 자본주의 발전 국가들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확립하였고, 실천적으로 그것을 페루에서 체현하였다. 곤살로 주석에 따르면, 인민전쟁은 사회주의 혁명의 전략이며, 그것은 새로운 유형의 전쟁이며, 오직 프롤레타리아의 군사 이론을 통해서만 혁명적 폭력이 조직되고 수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민전쟁은 단순히 하나의 전술이나 특정 조건에 국한된 수단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혁명 그 자체의 방법이다. 그것은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최종적으로 공산주의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전 과정을 관통하는 전략적 길이다.

궁극적으로, 인민전쟁의 보편성의 기초는 그것이 정식화되고 입증된 토대, 즉 중국혁명의 경험과 그 이후의 발전 과정 속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곤살로 주석이 그것을 페루 혁명에 적용하여 종합해냄으로써 명확히 드러나게 되었다. 그는 마르크스-레닌주의가 마오주의가 되었으며, 새로운 세 번째이자 더 높은 단계로 고양되었음을 확립하였다. 마오 주석이 정식화한 일반적 토대와 원칙들, 즉 레닌이 “권력 외에는 모두 환상이다”라고 규정한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것과 “당이 총을 지휘한다”는 점, 그리고 그 반대는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인민전쟁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과학적 개념은 여기서 비롯되며, 그 보편성의 기초 또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는 인민전쟁이 당의 지도 하에, 과학적 이데올로기인 마르크스-레닌-마오주의를 구현하는 무장력에 의해 쟁취되고 지지되는 권력의 표현이자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는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구성 요소인 다양한 유형의 혁명들—신민주주의 혁명, 사회주의 혁명, 그리고 연속적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에서 모두 적용된다.

이 기반 위에서, 마오주의는 또한 역사 속 다른 계급들의 개념과는 달리, 전쟁에 있어 인민이 결정적 요소라는 프롤레타리아의 개념을 주장한다. 인민군은 대중에게 부담이 되지 않으며, 단지 싸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중을 동원하고, 정치화하며, 조직하고, 생산에 참여한다. 인민군은 불변하고도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의 역량에 의존해야 한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는 모든 것이 그것을 준비하는 데 복무해야 하며, 일단 개시되면 모든 것은 그것의 발전과 승리를 위해 복무해야 한다.

또한 곤살로 주석은, 마오주의를 혁명의 세 가지 마법 무기—공산당, 인민군, 혁명적 통일전선—으로 정의하며, 이들의 건설은 동심원적(同心圓的, concentrically)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공산당이, 특정 국가와 그 혁명의 구체적 조건에 적용된 프롤레타리아 과학 이데올로기의 구현체로서 모든 것을 지도해야 하며, 이는 혁명적 지도력의 중앙집중을 통해 구체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당과 혁명의 위대한 지도부를 통해, 계급투쟁과 노선투쟁 속에서 좌익을 단련하고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를 전 과정에 걸쳐 강화해 나간다는 것이다.

마오주의는 전체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를 전쟁의 문제에까지 관철시키는 것이며, 이를 통해 마르크스주의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의 과학적 이데올로기가 가진 통일성과 전체성의 가장 높은 표현이며, 무장력에 의거한 권력 문제를 이론적·정치적·군사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한다. 그것은 세 가지 유형의 혁명—신민주주의,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뿐만 아니라 세 가지 혁명의 도구의 건설(당, 군대, 통일전선), 그들의 동심원적 건설 방식, 인민전쟁의 전략과 전술, 새로운 권력의 수립과 유지, 그리고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전체 과정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즉, 마르크스주의의 모든 핵심 요소들과 전투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것을 무장한 프롤레타리아의 혁명 전략으로 실천하는 수단이 바로 인민전쟁이다.

따라서 인민전쟁의 보편성은, 단지 중국 혁명이라는 한 역사적 사례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그것은 마르크스주의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시대, 즉 오늘날의 역사적 시대에서 혁명을 수행하는 데 요구하는 본질적이고 필연적인 군사 전략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모든 혁명이 일국적이면서도 동시에 국제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변증법적 진리와 결합되며, 각국 혁명의 구체적 조건에 맞춰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는 유연성과 적응력을 가진다. 그러나 그것의 핵심 원리와 구조는 보편적으로 유지된다.

앞서 언급된 혁명의 세 가지 도구 중 첫 번째는 프롤레타리아의 정당, 즉 공산당이다. 그것은 가장 앞선 이데올로기를 갖춘 선봉대이며, 혁명적 세계관으로 무장하고 프롤레타리아의 계급 이익을 일관되게 대변하는 조직이다. 공산당은 혁명 이론과 실천의 통일 속에서 자신의 노선을 정립하고, 혁명의 전체 과정을 계획하며 지도한다. 공산당이 없이는 혁명은 시작될 수도 없고, 승리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오직 공산당만이 계급투쟁의 복잡한 흐름을 지도할 수 있으며, 혁명의 모든 단계를 조직적으로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공산당은 세 도구 전체의 형성과 발전을 지도하며, 혁명의 전략적 과업을 수행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두 번째 도구는 인민군, 즉 프롤레타리아의 군대이다. 그것은 계급투쟁의 최고 형태인 무장투쟁을 수행하는 조직으로서, 권력 쟁취와 수호의 도구이며,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고 방어하는 수단이다. 인민군은 공산당의 절대적인 지도 하에 있어야 하며, 오직 당에 복무하며 당의 노선을 무장으로 실현하는 도구이다. 그것은 대중 속에 뿌리내린 정치적 군대이며, 전투뿐만 아니라 정치 활동, 조직화, 선전과 생산에도 참여한다. 프롤레타리아 군대는 새로운 사회의 씨앗이며, 전쟁의 모든 단계에서 인민과 밀접히 결합된 조직으로서 기능해야 한다.

세 번째 도구는 통일전선이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를 중심으로 하여, 농민, 소자산계급, 중간계급 등 광범위한 반제·반봉건·반독점적 계급 세력들을 단결시키는 정치 조직이다. 통일전선은 혁명의 대중적 기반을 확대하고, 공산당과 군대가 수행하는 전쟁을 지지하며 참여하는 힘을 형성한다. 그것은 각 계급의 요구를 반영하면서도 프롤레타리아의 지도 하에 전체 혁명의 방향을 통일시키는 역할을 한다. 통일전선은 당과 군대가 인민 속으로 들어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며, 대중과의 유기적 관계를 가능케 하는 도구이다. 통일전선은 전쟁의 조건과 단계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으며, 혁명의 발전과 함께 점차 새로운 권력의 제도적 형태로 전화되어 간다.

이 세 도구는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어느 하나가 결여되면 혁명은 올바르게 수행될 수 없다. 공산당은 전체 혁명의 두뇌이자 중심이며, 군대는 혁명의 주력부대이고, 전선은 대중의 조직된 힘이다. 이들은 상호작용을 통해 혁명의 각 단계를 발전시키며, 낡은 사회의 파괴와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혁명은 결코 자생적인 과정이 아니며, 오직 이 세 가지 도구의 통일적 작용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공산당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획득하고 공산주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존 사회의 모든 정당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정당으로 조직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산당은 다른 모든 계급 정당들과 달리 모든 혁명적 계급의 이해를 표현하며, 오직 과학적 이데올로기인 마르크스주의에 의해서만 무장된다. 공산당은 프롤레타리아의 선봉대이며,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공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전 과정의 지도 중심체이다.

레닌은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제국주의 시대의 조건에 맞는 새로운 유형의 프롤레타리아 정당을 창출했다. 그는 제국주의와 기회주의의 결합으로 인해,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에서는 공산당이 더욱 공고하고 중앙집중적인 조직으로 존재해야 하며, 혁명의 전략과 전술을 지도하고 계급투쟁 전체를 통일된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 새로운 유형의 당은 민주집중제를 원칙으로 하며, 철저한 조직 규율과 사상의 통일을 통해 당 내의 분열주의와 기회주의를 배격한다. 이 당은 또한 대중과의 유기적 결합을 통해 계급의 이해를 실현하는 전위조직이다.

마오 주석은 레닌이 수립한 새로운 유형의 당 개념을 더욱 발전시켜, 사회주의 하에서도 당이 계급투쟁을 지도해야 하며 자본주의 복귀를 막기 위해 끊임없이 계급투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이론을 세웠다. 그는 당 내부에서의 노선 투쟁, 즉 두 노선 간의 투쟁이 불가피하다고 보았으며, 올바른 노선을 수립하고 유지하는 것이 공산당의 존재 이유이자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마오 주석에 따르면, 혁명을 승리로 이끄는 핵심은 바로 올바른 정치노선이며, 당은 대중 속에 뿌리내리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을 지도하는 전위여야 한다.

공산당은 프롤레타리아의 지도 핵심이며 공산당의 존재는 혁명의 시작과 끝을 결정짓는다. 당의 지도 없이는 혁명은 방향을 상실하고 오류에 빠지며 결국 패배할 수밖에 없다. 공산당은 자신만의 이데올로기, 즉 마르크스주의-레닌주의-마오주의로 무장하고 있어야 하며 대중과 결합하여 그들을 정치화하고 조직화하며, 투쟁의 길로 이끄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당은 혁명의 도구들과 인민전쟁 전체를 지도하며, 낡은 권력을 타도하고 새로운 권력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중심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공산당의 개념은 단순히 이론적 선언이 아니라, 실천 속에서 입증되어야 한다. 당은 혁명적 실천을 통해 자신의 노선을 검증하고, 오류를 수정하며, 투쟁 속에서 단련되어야 한다. 그것은 폐쇄된 조직이 아니라, 대중 속에서 성장하고, 그들의 요구와 이해를 대변하며, 끊임없는 자기정화 과정을 통해 더욱 단단해지는 살아 있는 조직이다.

오늘날, 공산당은 단지 혁명의 시작을 위한 조건일 뿐 아니라, 혁명 전 과정을 관통하며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데까지의 모든 단계에서 결정적인 지도력을 행사해야 하는 조직이다. 그것은 세 도구를 창출하고, 그 전체를 하나의 전략적 방향으로 통일시키며, 혁명이라는 거대한 전쟁을 지휘하는 중심 사령부이다. 공산당은 계급투쟁과 생산투쟁, 과학적 이론과 실천의 일치, 군사 전략과 정치 전략의 유기적 통합 속에서, 오직 프롤레타리아의 이해를 위해 존재한다.

 

인민군

군대는 계급과 국가의 성격을 가장 명확히 드러내는 표현이며, 본질적으로 특정 계급의 정치 권력을 수호하고 그것을 강제로 실현하는 도구이다. 낡은 국가의 무장력은 그 국가를 지탱하는 착취계급, 특히 지배계급의 이익을 보장하고 그들의 통치를 지속하기 위한 수단이다. 군대는 정치의 연장선이며, 특정 계급의 정치적 목적을 무장으로 실현하는 수단이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그 자체의 무장력을 가져야 하며, 그것은 낡은 국가의 군대를 대체하고, 새로운 권력을 방어하며 혁명적 폭력의 최고 형태로서 혁명을 수행하기 위한 인민의 도구이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군대는 단순한 무장 집단이 아니라 공산당이 절대적으로 지도하고, 계급투쟁, 생산투쟁, 과학의 발전, 대중의 정치화와 무장화를 통합적으로 수행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군대는 혁명과 함께 탄생하며, 오직 공산당의 지도 하에서민 존재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의 군대는 군사적 기능에만 머무르지 않으며, 정치, 조직, 교육, 생산 등 모든 측면에서 혁명의 과제를 수행한다. 인민군은 당과 대중을 연결하는 다리이며, 혁명 전쟁의 전 과정에서 전투를 수행하면서 동시에 대중의 정치화, 조직화, 선전과 생산 활동을 수행한다. 그것은 군사와 정치의 일치를 실현하며, 모든 행동을 당의 지시에 따라 수행하는 철저한 정치군대이다.

프롤레타리아 군대는 다음의 기본 원칙에 따라 조직되고 행동해야 한다:

  1. 당의 절대적이고 전면적인 지도.
  2. 대중과의 긴밀한 결합.
  3. 정치가 군을 지휘하며, 이념이 행동을 이끈다.
  4. 철저한 민주집중제의 적용.
  5. 생산에 참여하고 대중 속에서 교육받으며, 대중을 교육한다.
  6. 병력 구성에 있어 자원입대와 자발성을 기본으로 하되, 계급적 기준을 엄격히 적용한다.

마오 주석은 인민군을 세 가지 기본 임무를 수행하는 조직으로 규정했다. 세 가지 기본 임무란 싸우는 것, 대중을 동원·조직하고 정치화하는 것, 그리고 생산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는 인민군이 단순한 전투조직이 아니라, 혁명 전쟁의 모든 측면에 관여하는 전면적인 조직임을 보여준다. 군대는 인민과의 긴밀한 결합을 통해 그들의 이해를 대표하며, 혁명 전쟁을 통해 낡은 국가기계를 파괴하고 새로운 권력을 수립하는 중심적 역할을 한다.

곤살로 주석은 인민군의 세 가지 기본 임무를 재확인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인민전쟁 전체의 수행 주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는 인민군이 혁명 전략을 수행하고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며, 통일전선의 형성과 강화를 위한 실천의 주체라고 보았다. 인민군은 단지 총을 드는 집단이 아니라, 혁명 이데올로기와 정치 노선을 무장으로 체현하고, 당의 지도 아래 대중을 조직하며, 혁명 권력을 수립하고 방어하는 다기능 조직이다.

프롤레타리아 군대는 조직형태, 계급구성, 지도원칙에 있어서 낡은 군대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프롤레타리아 군대는 절대적으로 정치가 군을 지휘하며, 모든 수준에서 당의 노선과 방침이 관철되어야 한다. 군대 내부의 조직과 교육은 정치 중심이며, 각급 지휘관은 군사적 역량뿐 아니라 정치적 품성과 계급적 입장을 갖추어야 한다. 계급 출신의 투사들이 중심이 되어야 하며, 정치와 군사의 통일을 실현해야 한다.

인민군은 전쟁의 전략적 단계에 따라 그 형태와 임무가 변화할 수 있으며, 전면전, 게릴라전, 기동전, 위치전 등 다양한 전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항상 대중과의 결합, 계급적 방향, 당의 지도라는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인민군은 전쟁의 발전에 따라 혁명 권력의 뼈대가 되며, 새로운 권력의 가장 강력한 보루로 기능한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제국주의와 반동에 맞서 인민전쟁을 수행하는 조직들은 이와 같은 인민군의 원칙과 형식을 따라야 하며, 계급 출신의 병력, 당의 절대적 지도, 정치 중심의 훈련, 대중과의 일체화, 그리고 생산과 정치사업을 병행하는 통합적 기능을 갖춘 군대를 건설해야 한다. 오직 이러한 군대만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수행할 수 있는 무장력이며, 낡은 질서를 타도하고 새로운 사회를 창조할 수 있는 힘이다.

 

통일전선

통일전선은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을 수행함에 있어 필연적으로 필요한 정치적 도구이며, 공산당의 지도 아래 대중을 조직하고 결집시키는 방식을 의미한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적 헤게모니를 실현하는 수단이자, 동맹세력을 규합하여 혁명의 정치적 기반을 확대하고 심화시키는 방법이다. 통일전선은 혁명의 단계, 성격, 목표에 따라 형성되며, 전체 투쟁 과정에서 혁명의 주도세력인 프롤레타리아의 역할을 중심으로 조직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주의자들이 프롤레타리아만이 아니라 다른 피착취 대중과도 연대해야 하며, 특히 소농민과 소부르주아 계층과의 동맹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레닌은 제국주의 시대, 특히 러시아에서의 경험을 통해, 노동자계급이 농민과 동맹하지 않고서는 혁명을 성공시킬 수 없음을 입증하였다. 그는 프롤레타리아의 지도 하에 광범위한 인민 대중을 결집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통일전선을 발전시켰으며, 혁명적 원칙과 계급적 입장을 결코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계급·계층과의 전술적 연합을 통해 투쟁을 확대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마오 주석은 통일전선을 혁명의 세 가지 법보 중 하나로 규정하였으며, 그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였다. 그는 “통일전선, 무장투쟁, 당의 건설”을 혁명의 세 기둥으로 제시하고, 이들 사이의 관계를 통일적으로 파악할 것을 요구했다. 마오 주석은 통일전선이 혁명 승리의 열쇠이며, 특히 농민과의 동맹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는 당이 다양한 계급세력과 동맹을 맺을 수 있어야 하며, 이때 프롤레타리아의 지도적 위치를 견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곤살로 의장은 이러한 이론과 실천을 계승하여, 통일전선을 전략적 측면에서 이해하고 실천에 옮겼다. 그는 통일전선은 단지 동맹정책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의 헤게모니를 실현하는 수단이며, 공산당의 노선을 사회 전체에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이라고 보았다. 페루에서 인민전쟁은 공산당의 지도 하에 인민 전선(Frente Popular)을 구성하였고, 그것을 통해 대중을 조직하고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였다. 이 전선은 군사, 정치, 조직적 측면에서 인민전쟁과 통합되어 있었으며, 공산당의 노선과 전략을 반영하는 구조였다.

통일전선은 혁명의 전 단계에 걸쳐 존재하며, 단지 투쟁의 초기에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을 장악한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며, 새로운 국가의 기초를 형성하는 조직이 된다. 따라서 통일전선은 일시적인 연합체가 아니라, 혁명 전략의 중심 구성 요소이다. 이는 또한 통일전선이 단순한 정치연합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전술과 전략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임을 보여준다.

통일전선의 실천은 각국의 조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으며, 역사적·사회적 구체성에 따라 다양한 형식과 범위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공통되는 원칙은, 그것이 공산당의 지도 하에 존재해야 하며, 프롤레타리아의 계급 이익을 중심으로 조직되어야 하며, 반제·반봉건·반독점적 성격을 지녀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통일전선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기초를 형성하고, 대중이 새로운 권력에 참여하고 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한다.

오늘날 통일전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제국주의의 위기가 심화되고, 반동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다양한 계급·계층의 불만과 저항은 확대되고 있다. 공산당은 이러한 대중의 투쟁을 조직하고 정치화하며, 통일전선을 통해 그들을 혁명에 결집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올바른 노선을 유지하고, 프롤레타리아의 지도성을 확립하며, 정치·군사·조직적 실천을 통일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제국주의 국가들에서의 인민전쟁의 문제와 그 특수성

인민전쟁의 보편적 타당성은 이미 앞에서 다루었듯이,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 혁명 경험을 기계적이고 밀폐된 방식으로 평가하는 관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전체적으로 무산계급문화대혁명(GPCR)의 경험, 특히 그것의 패배 원인을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하며, 부차적인 요소들의 피상적 요인을 회피하고, 인민전쟁이 혁명의 여러 단계와 시기, 공산주의로의 이행 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개념으로서 가지는 범위와 잠재력을 바라보아야 한다. 여기서 이론적으로 이미 주장한 것 외에도, 제국주의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그것을 실현하는 데 따르는 실천적 요소들은, 후진국 및 억압받는 나라들에서 마주하는 어려움들과 유사한 문제를 보여주며, 양쪽 모두 세계적으로 불균등하게 전개되는 혁명적 상황의 운동, 특히 각국 공산당의 이데올로기적·정치적·조직적·군사적 준비 상태에 의해 규정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평화적 이행"이나 의회주의적 백치주의를 통한 "민주적 전환" 같은 모든 수정주의적·개량주의적 쓰레기 이론들은 후진국과 억압받는 나라들에서 프롤레타리아의 민주주의적 노선에 반대하는 관료 대부르주아지 및 대지주 계급이 택한 관료적 경로이다. 그것은 단지 부르주아 제도성을 강화하기 위한 장기적 투쟁일 뿐이며, 이 점은 후진국과 제국주의 자본주의 국가들 모두에서 똑같이 나타나는 반동적 특성이다. 다만 제국주의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사회 전체의 주관적 수준에서 일정한 "문명적" 성과들을 수용했다는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반면, 피억압 국가들에서의 민주주의는 그저 허상의 시뮬라크르에 불과하다. 그러나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그 모든 가능성을 발휘한 제국주의 국가들에서도, 이제 그것은 노쇠하였으며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으며, 제국주의의 등장과 함께 민주주의와 민족 주권은 독점 자본의 이익에 굴복하였고, 그들의 법적 틀 내에서 파시즘적 요소들의 채택이 점점 더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직면한 거대한 도전은 대중 노선을 고수하며, 가장 작고 기초적인 것부터 가장 크고 복잡한 행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행동에서 대중을 동원하고, 정치화하며, 조직화하고, 점진적으로 무장시키는 데 있다. 민중의 저항과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경험은 혁명 조직의 가능성을 입증하는 수많은 사례들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이러한 경험들을 연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특히 제국주의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인민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20세기 전반에 걸쳐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벌어진 무장 투쟁들을 고려해야 하고, 또 오늘날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인민이 제국주의와 그 시오니스트 군홧발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저항투쟁도 고려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대중이 과학적 이데올로기 없이, 오히려 프롤레타리아적이지 않고, 소부르주아적이거나 부르주아적인 이데올로기 하에서도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계에서 불가능한 것은 없다. 단지 고봉(高峯)을 오르려는 용기를 가진 자만이 그것을 성취할 수 있다. 마오 주석이 무산계급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소련의 사회제국주의와 양키 제국주의의 연합 침략 가능성에 직면했을 때 내세운 구호, 즉 “터널을 깊이 파고, 식량과 자원을 곳곳에 저장하라…”는 구호는, 혁명이 어떠한 정신으로 싸워야 하는지를 보여주며, 특히 도시에서 투쟁이 요구하는 기술적 수준의 노력과 해법이 무엇인지도 시사하고 있다​.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인민전쟁을 수행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사상적 문제이다. 수정주의와 경제주의는 이러한 조건에서 대중 속으로 깊이 침투하여, 정치적 노동자 운동을 무력화하고, 스스로를 당의 지도적 역할에 반대하는 기회주의적 정파로 형성해왔다. 따라서, 계급투쟁이 그 모든 형태와 공간에서 회복되기 위해서는 당이 전체 대중운동을 지도해야 하며, 이를 위해 먼저 사상적 수준에서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의 지도력을 확립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운동은 항상 자생적 한계를 넘지 못하며, 다시금 부르주아지의 제도 안으로 포섭될 것이다.

노동자 운동을 포함하여 대중투쟁의 모든 형태는, 그것이 자생적으로 얼마나 폭력적이고 급진적이든 간에, 오직 공산당이 이데올로기적 지도력을 행사할 때만 혁명적 성격을 갖게 된다. 따라서, 당은 스스로를 재건하거나 창당하는 과정에서부터 이러한 과제를 분명히 인식하고, 그것을 자신의 정치적·이론적 활동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 당의 창당은 단순한 선언이나 조직의 출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와 노선의 확립, 대중과의 결합, 혁명 전략의 실천을 통해 점진적으로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인민전쟁은 단순한 무장 반란이나 자생적 게릴라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공산당의 전략적 계획 아래, 당의 이데올로기·정치·조직 노선의 통일 속에서 전개될 때만이 진정한 의미의 인민전쟁이다. 제국주의 국가들에서의 인민전쟁은, 억압받는 국가들과는 그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전략과 전술의 구체적 적용에서도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본질, 즉 프롤레타리아가 당의 지도 아래 무장투쟁을 통해 국가 권력을 쟁취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제국주의 국가의 인민전쟁에 있어서, 중심적 공간은 도시이다. 따라서, 제국주의 국가에서의 인민전쟁은 농촌에서 도시를 포위하는 전형적인 형태를 취하지는 않는다. 대신, 도시 내에서 혁명적 거점을 형성하고, 불균등발전 법칙에 따라 지역별·도시별로 역량을 집중하며, 다양한 형태의 정치·군사 활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권력 창출은 항상 당의 지도와 군사적 조직, 대중의 참여를 통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무장 행동은 언제나 정치 목적과 전략적 계획에 복무해야 한다.

제국주의 국가에서 인민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이 핵심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 당의 건설 또는 재건은 단순한 조직적 문제로 축소될 수 없으며, 이데올로기·정치·조직의 통일된 노선 아래 수행되어야 한다. 둘째, 군대의 형성과 무장투쟁의 시작은 사상과 노선의 준비가 갖춰진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셋째, 통일전선은 새로운 조건에 맞게 구성되어야 하며, 도시 대중의 조직과 참여를 중심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넷째, 전체 전략은 권력 장악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중심으로 짜여져야 하며, 이 과정에서의 모든 전술은 전략에 복무해야 한다.

이러한 과제를 수행해 나가는 데 있어, 인민전쟁은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인 제국주의에 대응하는 프롤레타리아의 유일한 군사 전략이며, 그 보편성은 오늘날 더욱 명확해지고 있다. 각국 공산당은 이 전략을 자국의 구체적 조건에 맞게 적용하고 발전시켜야 하며, 오직 이를 통해서만 세계혁명의 총전략 속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다할 수 있다.

6. 개시와 근거지의 문제

6. 개시와 근거지의 문제

개시와 근거지의 문제는 그 외 여러 문제들과 함께 반드시 강조되어야 하며, 연구, 분석, 조사 및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인민전쟁이 아직 개시되지 않았거나, 이미 개시되었지만 발전에 어려움을 겪는 곳에서 혁명 과정을 지체시키거나, 나아가 인민전쟁 자체로부터의 이탈과 일탈로 이어지고, 결국 마오주의의 포기로 귀결될 수 있는 두 가지 구체적인 실천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는 중요한 도전들이며, 진정한 공산당이 마오주의를 점점 더 올바르고 구체적으로 실천할수록 대중이 이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무기는 인간보다 우월하지 않으며, 부정의한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보다 우월하지 않다. 무기와 부정의한 전쟁은 혁명을 일시적으로 패배시킬 수 있을 뿐이며, 프롤레타리아는 영원히 패배할 수 없다​.

인민전쟁을 개시는 두 가지 문제를 지닌다.. 하나는 비무장 형태의 투쟁에서 주로 무장된 형태의 투쟁으로의 전환에 있어서의 관성(inertia)을 극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 속에서 전쟁을 배우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관성의 극복은 준비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우리는  준비 단계의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준비를 절대화하여 불가능한 장애물로 만들거나 인민전쟁의 개시를 도달 불가능한 것으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 동시에 곤살로 의장이 경고하듯이, 실천적으로 결코 덜 중요하지 않은 또 하나의 요소에 주목해야 한다. 즉, 개시 시점을 올바르게 선택하는 문제이다. 가장 현명하고 유리한 시점은 일정 수준의 위기와 불안정, 정부의 약화로 특징지어지며, 이는 전 세계적으로 불균등하게 전개되는 특정한 혁명적 상황 속에서 나타난다​.

현 조건에서의 근거지 문제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지역에 대한 접근성과 이동성이 가능한 조건, 그리고 가장 현대적인 통신 및 전쟁 수단의 존재와 사용(이들은 토지, 물, 공기에 대해 매우 파괴적이다) 속에서 더욱더 인민전쟁이 대중과 인민에게 의존하여 그들 속에 자신을 더욱 숨겨야 함을 요구하고 강제한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기술적 도전들은 오직 시간의 문제일 뿐이며, 이는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정당, 즉 마르크스-레닌-마오주의, 그중에서도 특히 마오주의를 지도 이데올로기로 삼는 과학적 탐구에 의해 지도받고 실천되는 대중의 창조적 변혁 능력에 의해 극복될 수 있다​.

마오 주석은 인민전쟁 이론을 정식화하던 당시 이미 근거지를 형성하기 위한 조건들을 정의하였다. 근거지 형성의 조건은 기본적으로 공산당의 존재와 그 조직이 특정 지역에서 대중을 동원하고, 정치화하며, 조직하고 무장시킬 수 있을 것과, 일정 수준의 전투 경험을 갖춘 조직화된 무장세력이 존재하며, 그 지역에서 적의 군대를 전멸시키고 쓸어낸다는 조건의 결합이다. 첫 번째 조건은 사상적-정치적 조직 활동, 선전, 교육을 포함하는데, 이는 최초의 근거지를 형성하는 데 있어 비교적 장기적인 시간 동안 공산당에 의해 수행되어야 한다. 두 번째 조건은 유격전을 통해 탄생한다. 계획된 방식으로 특정 영토 내 하나 혹은 여러 구역에서 통제권을 확립하고, 점진적으로 새로운 유격부대를 건설하며, 다양한 전투 형태를 경험하면서 필요한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때 민병대는 대중을 정치적·군사적으로 준비시키며, 지역군과 주력군의 예비대로 기능하고 다양한 지원 임무를 수행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그 지역의 사회생활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지는 않는다​.

마오 주석은 근거지 형성의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하였다. 그 세 가지 이유란 무장세력을 가지기 위해, 적을 격파하기 위해, 대중을 동원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1982년 당시, 페루 인민전쟁 속에서 ‘적을 타격하라’는 유격전 배치 계획을 통해 구체화되었으며, 해당 작전은 낡은 봉건 생산관계를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경찰 초소가 습격되고, 봉건 지주 권력에 대한 선별적 절멸이 실행되었으며, 경찰 세력은 농촌을 포기하고 수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낡은 권력의 관리들은 대거 사임하여 권력 공백이 발생했고, 수만 명이 동원되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비밀 인민위원회를 통해 근거지가 등장하고 구체화되었다. 따라서 중국 경험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잘못이다. 만약 조건이 주어지고 원칙이 작동하고 있었다면, 우리는 근거지를 건설할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에 동의하는 것은, 우리가 대규모 적 부대를 격파하지 못했다는 우익주의적 주장과 싸우는 것을 수반하였다. 그러나 실제 문제는, 그들의 정치적·군사적 계획이 붕괴한 결과로서 적 부대가 농촌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점이다​. 곤살로 의장은 당, 군대, 대중의 발전 수준, 투쟁의 전통, 지리적 특성, 정치적·사회적 조건들을 고려하여 유격구, 작전구역, 행동거점을 둘러싼 근거지 체계를 구축하였다​.

7. 인민전쟁의 근본문제는 권력이다

여전히 강조되어야 할 점은, 인민전쟁의 핵심 문제는 프롤레타리아와 인민대중의 권력 문제라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전개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혁명들 속에서, 공산당이 이끄는 무장세력에 의해 정복되고 유지되는 권력, 즉 신민주주의 혁명—이는 중단 없이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혁명으로, 오늘날의 제3세계, 즉 세계 인민대중의 대다수가 거주하는 대다수 국가들을 포괄하는 형태이다—, 제국주의 자본주의 발달 국가들에서의 사회주의 혁명, 그리고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유지하며 자본주의 복귀의 위험을 방지하고 전 세계를 찬란한 공산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연속적인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 권력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는 인민전쟁을 사유하거나 논할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와 인민대중의 권력은 즉각적인 목표이며, 그것을 점진적으로 정복해나가는 것이 목적이다.

농촌 지역에서의 혁명적 근거지들은 그 첫 번째 단계로서, 인민위원회들(공개적이든 비밀이든), 인민권력회의가 이끄는 구조, 그리고 당이 지도하고 인민군이 골간이 되는 인민공화국의 전선/새로운 국가 건설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신권력의 표현이다. 이는 오랜 투쟁, 곡절과 도약을 거쳐 결국 전체 국가에서의 권력 정복으로 이어지며, 제국주의에 의해 억압된 국가들의 경우, 적의 거점인 도시에서의 총봉기를 준비하고, 농촌이 도시를 포위하는 전략과 총봉기로 절정에 이른다.

제국주의 발달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우에도, 권력은 인민전쟁이 무장 투쟁으로 시작될 때부터 추구되는 즉각적 목표이며, 프롤레타리아와 인민대중이 조직되고 동원되는 지역들에서 권력을 정복하고 건설해야 한다. 이는 무장 게릴라 부대(분견대 혹은 민병대)를 통해, 그리고 특히 프롤레타리아 위원회라는 비밀 형식을 통해, 즉 신권력의 표현으로서, 당이 이끄는 새로운 국가이며 인민군이 그 골간을 이루는 권력을 수립하고, 사회주의 공화국 건설을 위한 총봉기를 단계별로 준비해나가는 것이다.

인민전쟁의 목표는 프롤레타리아와 인민대중에 의한 전국적인 권력 정복이다. 신민주주의 혁명, 사회주의 혁명, 연속적인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 속에서의 목표 또한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수립이다. 따라서 마오주의의 근본적 문제는 프롤레타리아의 권력이며, 인민전쟁은 그것을 정복하고 방어하는 수단이고, 공산주의로의 이행 경로이다. 인민전쟁은 단지 프롤레타리아의 총체적인 군사 이론일 뿐 아니라, 권력에 대한 인식과 정치 그 자체이다. 당이 지도하는 무장세력에 의해 정복되고 방어되는 권력. 따라서 마오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 권력과 인민전쟁은 분리될 수 없는 요소이며, 그것들의 본질 그 자체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마오주의는 “공산주의까지 인민전쟁!”이라는 구호로 응축되어야 한다​.

8. 종합

제국주의의 시대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승리는 단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실현 가능한 것이 되었으며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승리는 곧 모든 국가들, 예외 없는 모든 나라들의 구체적 현실에 적용된 인민전쟁의 형태를 취한다. 이는 엄밀하게 맑스주의 과학의 결론이며,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역사적 경험에 의해 입증된 사실이다. 그러므로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일반적으로 공산당이 이끄는 대중의 전쟁이며, 인민군에 의해 수행되고, 혁명적 통일전선에 의해 지지되는 전쟁이다. 인민전쟁은 권력을 쟁취하고 방어하기 위한 프롤레타리아의 전쟁이며, 중단 없이 사회주의로 이어지는 신민주주의 혁명(민족해방 전쟁 포함), 사회주의 혁명, 그리고 공산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연속적 무산계급문화대혁명 속에서 수행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제국주의자들이 세계를 분할하고 억압받는 민족과 인민을 약탈하기 위해 벌이는 약탈적 전쟁 한가운데서, 그리고 그것에 맞서 수행되는 장기적인 인민전쟁이다. 이를 통해 제국주의 국가들의 프롤레타리아는 무장 투쟁 속에서 식민지/반(半)식민지 반(半)봉건 국가들의 민족해방운동 및 혁명전쟁과 결합하게 된다. 이는 불균등한 발전의 과정이지만,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는 물결처럼 하나의 운동 속에서 이루어지며, 제국주의 세계대전에 맞선 세계 인민전쟁을 통해 모든 제국주의 체계와 모든 반동을 완전히 파괴하고,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수립으로 나아간다. 이는 계급 없는 사회를 위한 계급투쟁의 계속이자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데 있어 필연적인 단계이며, 우리의 최종 목표이다. 공산주의까지 인민전쟁!

따라서 인민전쟁은 단지 프롤레타리아의 통합되고 조화로운 군사 이론이나 교리일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이다. 그것은 제국주의와 모든 반동을 파괴하고, 계급과 그 모든 잔재들을 완전히 제거하여 전 세계를 찬란한 공산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지속적 혁명의 과정, 연속적 무산계급 문화대혁명 속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프롤레타리아 권력에 대한 구상과 정치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곤살로 사상이 가르치듯 마오주의는 “맑스-레닌주의를 새로운, 세 번째, 더 높은 단계로 끌어올려 민주주의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의 지도권 투쟁, 사회주의 건설의 발전,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의 혁명의 지속—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으로 전개하는 것”이며, “제국주의가 가장 깊은 부패에 이르고, 혁명이 역사의 주요 경향이 된 현재, 지금까지 본 가장 복잡하고 거대한 전쟁 속에서, 그리고 현대 수정주의와의 가차 없는 투쟁 속에서” 발전한 것이다. 권력이 마오주의의 근본 문제이기에, 신민주주의 혁명에서 사회주의로 이어지는 프롤레타리아 권력, 사회주의 혁명에서의 프롤레타리아 권력, 연속적인 무산계급 문화대혁명 속의 프롤레타리아 권력은 모두, 공산당이 지휘하는 무장세력에 의해 쟁취되고 방어되며, 인민전쟁은 마오주의의 필수적이고 분리할 수 없는 일부이다. 이것은 부패하고 쇠퇴하는 제국주의의 시대,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의 시대, 인류 역사상 가장 치열한 계급투쟁의 시기 속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세 번째이자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한 것임을 의미한다. 인민전쟁은 제국주의와 반동을 지구상에서 완전히 쓸어내고 전 세계를 공산주의로 통일하기 위한 단일하고도 필연적이며 불가피한 조건이다​.

  1. Manoel Lisboa, 1923~1944 브라질의 공산주의자
편집부 profile image 편집부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