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존 제국주의 열강들이 약화되면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등지로부터 대규모 민족해방운동과 반식민운동이 발생함에 따라 식민지 및 반식민지 국가에서의 혁명의 문제는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주된 논점 중 하나가 되었다. 식민지 및 반식민지에서의 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어떤 형식을 지녀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은 민족민주혁명론이라는 혁명이론으로 이어졌다.
민족민주혁명의 핵심은 두 단계의 혁명을 걸쳐 사회주의로 진입하는 것으로, 노동자와 농민, 민족부르주아, 소부르주아가 연합하여 제국주의와 봉건제로부터 자유로운 ‘민족민족정권’을 설립한 후 이후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실행한다는 것이다. 허나, 민족민주혁명론을 발전시키고 구체화 하는 과정에서 소련의 해석과 중국의 해석은 서로 엇갈리게 되었고 바로 이 지점, 민족민주혁명론에 대한 해석이라는 측면은 국제공산주의운동 내의 주요한 아포리아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식민지 남한에서의 변혁 또한 그 성격과 형식을 규명함에 있어 민족민주혁명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할 것이냐의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기에, 이러한 아포리아를 해명하고 민족민주혁명을 남한 사회변혁의 문제에 어떻게 적용하고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해소하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로 될 것이다.
- 소련과 중국의 민족민주혁명론 이해
소련의 경우, 민족민주혁명이 노동계급이 아닌 타 계급에 의해서도 영도될 수 있다고 보았다. 노동계급이 아닌 민족부르주아, 농민, 지식인 등이 혁명을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소련은 노동계급이 지도력을 행사하지 않고 있던 이집트의 나세르 정권, 이라크와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 인도의 네루 정권,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정권, 버마의 네윈 정권 등을 민족민주정권으로 보았다. 이러한 정권들은 대중적 기반이 부족했을만 아니라, 민족부르주아의 후원을 받는 군부나 명망가 집단이 정권의 핵심을 차지했다.
소련은 이러한 민족민주정권들이 매판자본의 국유화와 토지 분배, 국가 주도의 경제정책을 통해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비자본주의적 경로’를 거쳐 평화롭게 사회주의 단계에 접어들 수 있다고 보았으며, 그렇기에 민족민주혁명과 사회주의 이행에 있어서 노동계급의 혁명적 정당인 공산당의 필요성은 부인되거나 간과되었다.
반면 중국의 경우 민족민주혁명을 레닌의 ‘노동자 농민의 혁명적 민주독재’의 연장선에서 사고했으며, 민족민주혁명론을 중국 혁명의 경험을 바탕으로 신민주주의 혁명론으로 발전시켰다. 신민주주의 혁명론은 민족부르주아, 소부르주아, 농민, 지식인들과의 통일전선을 강조하고 제국주의와 봉건제에 맞선 민주주의 혁명 단계의 중요성을 강변했으나 그와 동시에 식민지 및 반식민지 국가에서의 민주주의 혁명이 결코 부르주아 계급에 의해 주도되거나 평화적으로 진행될 수 없고, 노동계급이 폭력혁명을 지도해야 한다는 절대적 원칙을 주장했다. 마오는 민족부르주아의 역량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중국 민족자산계급은 혁명을 진행할 때에도 제국주의와 완전히 손을 끊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또한 농촌 토지지주의 착취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그들은 제국주의와 봉건세력이 철저히 붕괴하는 것을 바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철저히 붕괴시킬 능력도 없는 것이다 ….. 한편으로는 혁명에 참가할 수 있는 혁명성, 다른 한편으로는 혁명의 적에 대한 타협성, 이것이 중국의 자산계급이 갖는 ‘하나의 몸에 두 임무를 띈’ 양면성이다.”
“현재의 국제적 환경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투쟁하는 가운데 자본주의는 몰락하여 가고 사회주의가 상승/성장하고 있다. 중국에 자산계급독재의 자본주의 사회를 건설하려고 한다면 먼저 국제자본주의, 즉 제국주의가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근대사는 바로 제국주의가 중국을 침략하면서 중국의 독립을 반대하고 중국자본주의의 발전을 반대해온 역사였다 ….. 제국주의는 사멸해가는 자본주의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곧 숨을 거둘 지경이기 때문에 제국주의는 더욱 식민지/반식민지에 의존해 생존하고자 하면서 어떠한 식민지/반식민지 사회에서도 자산계급독재의 자본주의사회의 설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일본제국주의는 ….. 중국을 공격하여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려 했고, 중국에서 자산계급독재의 건립과 민족자본주의 발전의 길을 끊어버리려 하는 것이다.”
또한 마오는 다음과 같이 말 했다.
“이러한 식민지/반식민지혁명의 제1단계, 제1보는 그 사회적 성격에 있어서는 아직 자산계급 민주주의혁명이며 그의 객관적인 요구도 자본주의 발전과정의 장애를 제거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혁명은 이미 옛날의, 자산계급 영도 하 자본주의 사회와 자산계급 독재국가 건설을 목표로 삼는 혁명이 아니라 새로운, 무산계급 영도 아래 제1단계에서 신민주주의 사회와 각 혁명계급이 연합한 독재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삼는 혁명이다.”
즉, 신민주주의 혁명은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인 것이다.
또한 중국은 민족민주정권, 즉 신민주주의 권력 하에서의 경제 제도를 비자본주의적인 것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며, 신민주주의 체제 하에서의 주된 생산양식이 자본주의라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마오는 신민주주의 경제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무산계급 영도 하의 신민주주의 공화국에서 국영경제는 사회주의적 성격을 띄며, 이는 국민경제를 지도하는 역량을 갖는다. 그렇지만 신민주주의 공화국은 자본주의적 사유재산을 몰수하지 않으며, ‘국민생계를 마음대로 뒤흔들 수 없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은 금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국 경제가 아직 충분히 발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은 신경제정책이 국가자본주의 정책임을 담담하게 시인한 레닌의 서술과 맞아 떨어진다. 마오의 신민주주의 경제에 대한 서술과 레닌의 신경제정책에 대한 서술의 공통점은, 결국 그것들을 비자본주의적이거나 사회주의적인 경로로 낭만화 하지 않고, 언젠가는 폐절되어야 할 자본주의 생산양식임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본주의 생산양식 하에서는 민족부르주아지에 의한 끊임없는 복고 및 권력찬탈 시도가 이루어질 수 밖에 없으며, 그렇기에 신민주주의 혁명론에 있어서 신민주주의 사회로부터 사회주의로의 전환은 평화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중국의 시각에서 민족민주주의-신민주주의 체제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통일전선 내에서의 끊임없는 투쟁과 계속혁명, 노동계급 정치세력, 즉 공산당의 확고한 지도력 확보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즉 소련과 중국의 민족민주혁명에 대한 이해는 혁명의 주도세력 문제, 혁명 이후 사회의 생산양식 문제, 혁명 이후 사회주의로의 이행 문제, 공산당의 필수성 문제에 있어서 철저히 대립되는 것이다.
- 소련 민족민주혁명 노선의 문제점
결과적으로, 소련이 후원한 민족민주세력 중 대다수는 결과적으로 사회주의 이행에 실패했으며,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고 제국주의 자본의 재침투를 수용했다. 혹은 내재적 불안정성으로 인해 자멸하여 친서방 세력에게 권력을 내주었다. 이러한 복고 혹은 반혁명의 원인은 흐루쇼프 소련의 민족민주혁명론 이해 자체로부터 찾을 수 있다.
민족민주혁명에 있어 노동계급 영도의 필수불가결성을 부정한 결과 대다수의 민족민주정권은 민족자본가가 지도력을 지니게 되었으며, 제국주의와 반제국주의 사이에서 동요할 수 밖에 없는 계급인 민족자본가들은 겉으로는 사회주의적 외피를 사용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매우 비일관적이고 때로는 제국주의 세력에게 투항하는 것에 가까운 정책을 펼쳤다. 이들은 반봉건 사회개혁에 소극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노동계급과 농민을 견제하기 위해 매판자본이나 잔존 봉건세력의 손을 잡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결국 국가의 재식민화 내지 반동적 복고로 직결되었다.
미국에 투항한 이집트 사다트 정권, 토지개혁을 포기하고 봉건지주와 타협한 네루정권, 초기의 국가지도경제를 포기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친 시리아 정권 등, 이러한 사례는 수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소련은 이러한 국가들에서 공산당의 건설을 촉진하지 않았고, 이미 존재하는 공산당에게는 통일전선 내에서의 권력투쟁과 헤게모니 장악이 아닌 ‘민족민주정권’에의 철저한 협조를 주문했다. 그렇기에 노동계급은 민족자본가의 복고 시도에 대해 유의미한 저항이나 투쟁을 벌일 수 없었다.
또한 민족민주정권 하의 생산양식이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비자본주의적 경로’에 바탕한다는 분석, 그리고 ‘비자본주의 경로’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평화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주장은 노동계급에게 현존 체제에 대한 환상을 심어줄 뿐이었다. 더욱이,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비자본주의적 경로, 즉 제 3의 경제체제가 현대 사회에 존재할 수 있다는 주장은 사적 유물론적으로 바라볼 때 도무지 성립될 수 없는 의견이며, 역사적으로 히틀러나 무솔리니 같은 파시스트들이 노동계급을 혼란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써온 허구적 레토릭에 불과하다.
민족민주혁명론에 대한 이러한 잘못된 이해는 무엇에 근거하는가?
왜곡의 근원은 흐루쇼프가 내건 3평화 원칙, 즉 평화공존론과 평화이행론, 평화혁명론에 근거한다. 평화공존론은 무력에 의한 제국주의의 타도를 부정하며, 평화이행론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서로 적대적인 대립물임을 부정하고, 평화혁명론은 국가에 대항해 인민이 직접 폭력혁명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고, 기존 국가기구의 파괴 후 새 국가기구를 건설할 필요성을 부정한다. 이러한 인식은 민족민주혁명이라는 문제에 있어서도 민족민주정권 내에서의 내부적 투쟁의 필요성을 간과하고 모든 것이 평화적 연합정치를 통해 달성될 수 있다는 환상을 지니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결국 흐루쇼프의 3평화 원칙은 식민지 해방, 식민지 국가에서의 혁명의 문제에 있어서 철저한 타협과 투항의 논리로 직결되었고,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계급투쟁을 부정한 흐루쇼프의 전인민국가론 또한 민족민주정권 하에서의 노동계급의 지도력 장악과 반-복고 투쟁을 경시하는 경향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일부 반수정주의자들의 경우 흐루쇼프 수정주의가 국제공산주의운동에 끼친 중대한 영향을 간과하고 오직 흐루쇼프의 스탈린 비판과 국내정책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이를 비판하는 것이 곧 수정주의에 대한 반대라고 착각하고는 하는데, 수정주의의 논리를 체화하고 그 노선과 강령을 흡수하면서 외견적으로 수정주의에 대한 반대를 외치는 것은 그저 공허한 수사에 불과하며 궁극적으로는 수정주의에 대한 투항에 불과하다.
- 남한에서의 민족민주혁명
우리는 남한이 반식민지 국가임을 이전 글에서 증명한 바 있으며, 식민지 남한에서의 변혁 또한 민족민주혁명론에 근거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남한에서의 민족민주혁명, 신민주주의혁명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를 띄어야 할까?
가장 먼저, 단호하게 논할 수 있는 바는 소련 수정주의의 영향을 단호하게 배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제국주의와의 평화공존, 사회주의로의 평화이행, 인민전쟁을 거치지 않은 평화혁명이 가능하지 않음을 확고히 자각해야 한다. 민족민주혁명의 성공에 있어서 노동계급과 노동계급의 당인 공산당의 지도력 건설이 선행되어야 함을 올바르게 인지하고, 비자본주의적 경로라는 관념론적 환상을 거부해야 한다. 노동계급의 당을 건설하고, 당의 간부를 양성하며, 사회의 모든 영역에 당의 세포를 심어 제국주의와 관료자본주의에 맞서는 모든 피억압 근로대중에게 노동계급의 지도력을 행사해야 한다.
또한, 오늘날의 민족민주혁명은 신민주주의혁명의 이론과 경험에 바탕해야만 한다. 신민주주의혁명의 경험은 우리에게 변혁 이후의 경제 제도를 어떻게 수립할 것이고, 어떻게 계속혁명을 통해 신민주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할 것인가의 노하우를 제공한다. 중국공산당은 삼반오반 운동, 반우파 운동, 삼면홍기 총노선 정책, 문화대혁명 등을 통해 신민주주의 사회를 사회주의로 이행시키기 위한 투쟁을 1978년까지 이어갔으며, 신민주주의 혁명의 이론은 페루와 필리핀, 터키, 인도의 경험을 통해 현실과의 교차검증 속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지적해야 하는 사실은 소련이 민족민주혁명을 세계혁명의 조력군으로 간주한 반면, 중국은 민족민주혁명-신민주주의혁명을 세계혁명의 핵심 축으로 사고했다는 것이다. 현대의 세계제국주의는 식민지에 대한 착취에 기생하여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죽어가는 단계의 자본주의이며, 식민지 및 반식민지 국가에서 신민주주의혁명이 일어나 제국주의 자본이 몰수되고 더이상 식민지에 대한 착취를 통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연명이 불가하게 된다면, 제국주의에 기초한 세계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붕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신민주주의혁명론은 일국에서의 혁명전략에 국한되지 않으며, 세계혁명의 핵심전략인 것이다. 세계혁명에 있어 식민지 및 반식민지 국가에서의 신민주주의혁명의 중요성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탈산업화와 외주화로 인해 대다수의 위탁생산이 식민지 및 반식민지 국가들에서 이루어지고, 이러한 국가들에서 거대한 규모의 산업프롤레타리아가 형성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 앞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남한에서의 신민주주의혁명의 일차적 목표는 제국주의와 예속적 관료자본주의를 타도하고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농민, 지식인, 소부르주아, 민족부르주아가 참여하는 혁명적 계급들의 연합통치를 수립하는 것이다. 이차적 목표는 신민주주의혁명 이후 계급투쟁과 혁명을 일시도 중단하지 않고 계속혁명을 통해 신민주주의 체제를 사회주의 체제로 이행시키는 것이다.
단, 현대 사회의 경우 민족부르주아가 매판부르주아 및 관료부르주아에 의해 한 편으로는 포섭되고 다른 한 편으로는 분쇄되는 수순에 있기에 혁명에 있어서 민족부르주아의 역량이 비교적 축소되는 특수성이 존재한다. 또한 남한의 경우 식민지 국가 치고 이례적으로 농민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으며 반(半)노동자와 산업예비군, 룸펜 프롤레타리아의 비중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계급적 역관계, 현대 자본주의의 동향, 수정주의의 해독성을 올바르게 인지하고 이에 바탕한 실천과 투쟁을 전개할 때, 비로소 우리는 남한사회 변혁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의 페루공산당 인용문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신민주주의는 마오 주석이 발전시킨 가장 중요한 명제 중 하나로, 프롤레타리아만이 이끌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부르주아 혁명-민주주의 혁명, 즉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새로운 국면을 훌륭하게 정의하고 있다. 신민주주의 혁명은 새로운 경제, 새로운 정책, 새로운 문화를 의미한다. 신민주주의 혁명은 총을 들어 낡은 질서를 전복하고 새로운 질서를 건설하는 것으로, 세계를 개조할 유일한 방법이다 ….. 신민주주의 혁명은 민주혁명 단계가 완수되는 즉시 조금의 지체도 없이 사회주의를 향해 전진할 것을 보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