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우리 사회가 무언가 변화해야 한다는 감각을 지니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더 나아가, 사회주의나 체제전환, 사회대개혁 등 특정한 구호를 바탕으로 사회개조를 추구하는 활동가와 조직들도 아주 찾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이러한 구호를 외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내란세력을 옹호하는 극우집단마저 ‘리셋 코리아’라는 구호를 통해 자신들의 이상향을 제시하지 않는가? 하지만 진정 중요한 것은 사회를 과연 어떻게, 또한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이다.
이 시대의 많은 진보적 활동가들은 각자의 현장에서 분투하고 있으나, 대다수 운동집단의 청사진은 매우 모호하다. 그들이 주장하는 ‘변화된 사회’, 즉 사회주의 혁명이나 혹은 체제전환, 사회대개혁 등이 완수된 사회는 그저 ‘자본주의를 넘어선 무언가’ 정도로만 제시되고 있으며, 그러한 사회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론은 단순히 작금의 운동을 더욱 발전시키고 고도화 시킨다 정도의 소위 노력론에 그친다.
이러한 경향은 ‘목적은 아무것도 아니며, 운동이 전부이다.’ 라는 베른슈타인의 어구로 대표되는 운동주의로 귀결된다. 개별 운동들은 사회의 변화라는 최종적 목적을 위해 봉사하지 않으며, 특정한 과업 없이 운동을 위한 운동으로 전락한다. 활동가들은 당면과제에 몰입하며, 후일 건설해나갈 사회에 대한 논의는 비운동적 몽상 정도로 취급하는 풍토가 생겨난다. 이러한 문제들은 궁극적으로 운동 자체를 파괴한다. 사회의 변혁이라는 단일한 목표를 상실한 개별 운동들은 총체적 연대의 기제를 잃게 되고 단기적 연대연합만을 반복하다가 결국은 파편화 되어 자집단의 이해만을 우선시 하는 조합주의적 운동으로 퇴화하고 만다.
이러한 운동은 사회 전반에 걸친 총체적 투쟁이 불가하기에 총체적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데 실패하고 지배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진다. 이는 결국 제도권 내로의 투항으로 이어지며 그 결과는 사회운동 전반의 몰락과 투쟁역량의 파멸이다. 해당 현상은 이미 사회운동진영 전체에서 관측되고 있다. 정규직 대공장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노동조합과 성소수자를 배척하는 여성운동, 제도권에 대한 청원에 머무르는 인권운동을 비난하는 것은 너무나도 쉽다. 하지만 해당 운동들이 처한 본질적 문제점을 외면한 채 그 운동의 지도자와 활동가들에 대한 개인적 비판에 매몰되는 것은 전혀 건설적인 태도가 아니다. 결국 작금의 현상을 지양하고 운동주의를 격퇴하는 방법은 전 사회의 모순에 전일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하나의 목표, 하나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 즉 변혁운동의 방향성을 확고히 하는 것 뿐이다. 또한, 변혁운동의 방향성을 확고히 제시하는 작업에는 현 사회에 대한 면밀한 분석에 기초하여야 한다.
이 글의 목적은 남한의 사회적 성격을 분석하고, 변혁운동의 방향성을 기초적 수준에서 제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번 글에서의 작업을 기반으로, 이후 변혁운동의 구체적 방법론과 방향성의 고도화를 위한 작업에 순차적으로 착수하고자 한다. 본문은 남한 사회성격의 분석을 위해 사회 성격의 분석을 위해 남한의 역사적 요소와 경제적 요소를 살펴본 후 결론으로 이행할 예정이다. 우리의 작업이 사회운동이 당면한 문제들을 단숨에 해소하는 알렉산더의 칼이 될 수는 없겠지만, 변혁운동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시작되는 촉매로서 기능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역사적 요소
남한은 역사적으로 미국에 의해 수립된 인공 국가이다. 해방 직후 대중의 대다수가 인민위원회 체제와 사회주의를 지지할 때, 미군은 한반도의 적화를 막기 위해 인민대중의 민주적 자치기관이었던 인민위원회를 강제로 해산하고 사회주의 세력을 무력으로 탄압했다. 이북에서 인민위원회에 기반한 정권이 탄생하고 민주개혁을 단행하자 미국은 남한을 소련과 이북에 맞서는 군사적 보루로 사용하기 위해 이승만을 통해 남한 단정 수립을 선언했다.
단정 수립은 통일국가를 염원하던 당대 인민의 의지와 완전히 반대되는 정책이었고, 당연히 전국적인 반대운동이 벌어졌다. 미군과 이승만 정권은 반대운동을 대규모 학살과 무력진압을 통해 무마 시켰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남한 내의 좌익 세력과 통일 세력은 물리적으로 절멸 당하였다. 이러한 절멸 작업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더욱 고도화 되었고, 보도연맹 사건으로 대표되는 적극적 제노사이드의 형태를 띄었다.
그 후, 미국 정부는 남한을 동북아 지역에서 사회주의 세력을 견제할 군사국가로 자리잡게 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반공 파시스트 정권을 후원했다. 이승만에서 박정희,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남한 파시스트 정권의 특징은 미시적인 차원에서는 미국과 정책 차원에서의 갈등이 존재했을지언정 거시적인 차원에서는 언제나 미국의 이익에 봉사했다는 점이다. 미국은 주한 미대사관과 CIA, 한미연합사령부를 통해 지속적으로 남한의 정치에 개입하고 파시스트 정권을 조종해왔다.
87년 이래로 미국의 묵인 하에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가 자리잡았으나 군부 파시스트들에 대한 청산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군부 파시즘 정권의 후계 세력이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는 도구를 통해 지속적으로 체제 내에서 우위를 점하는 구조가 이어져왔다. 자유주의 세력의 집권은 그들이 미국의 또다른 충견으로 역할할 수 있음이 충분히 검증된 후에만 이루어졌으며, 그들 또한 파시스트 세력의 척결 작업을 성공시킨 바가 없다.
미국을 종주로 두고 있는 군부 파시즘 세력은 관료집단, 사법부, 언론에 강력한 진지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들의 강력한 비선출 권력은 자유주의 세력이 집권하더라도 자신들에 대한 공세를 무마할 수 있을 수준으로 거대하다.
남한 파시스트 세력의 호전성은 이번 윤석열 내란사태를 통해 증명 되었으며, 인민대중의 격렬한 저항으로 인해 계획이 좌초 되었을 뿐 군부, 사법부, 언론계에 이러한 내란에 협조할 파시스트 세포세력이 극도로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 파악 되었다. 이들은 미제국주의의 이익을 철저히 대변하고 있으며, 남한의 관료독점자본과 유기적 연계를 맺고 있다.
경제적 요소
해방 직후, 남한의 지배계급은 지주, 매판부르주아, 그리고 관료부르주아로 나뉘었다. 지주는 봉건적 소작제도 하에서 지대를 통해 이윤을 수취하는 전통적 지배계급이며, 매판부르주아는 외세자본에 완전히 종속된 상태로 외세자본의 이익을 위해 외세의 물산 등을 중개하는 상업자본가들이다. 관료부르주아는 외세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은 매판자본과 동일하지만 그 종속의 형태가 금융이나 식민정부를 통한 간접적인 성격을 띄며, 제국주의의 지배 하에서 하청생산이나 라이선스 생산을 담당하는 산업자본가들을 의미한다. 식민지 국가에서는 자생적 산업자본이 발생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이러한 관료부르주아들은 국가독점정책 하에서 국가기관과의 유착을 통해 성장할 수 밖에 없다.
당시 지주계급은 지주의 상당수를 차지하던 일본 지주들이 인민위원회에 의해 축출 되고 잔존 지주들 또한 농민운동에게 크게 위협을 받아 영향력이 크게 감퇴한 상황이었다. 또한 관료부르주아들은 축적된 자본이 매우 적고 산업적 역량이 얕아 지배계급 내에서 지도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미국의 원조물자를 중개하는 것으로 큰 부를 확보하고 있던 매판부르주아들이 정치경제적 주도권을 쥐었다. 이승만 정권 또한 남한의 매판 부르주아를 대변하는 정권이었다. 매판부르주아는 본질적으로 제국주의 식민모국의 상품을 국내에 중개하면서 이윤을 얻는 집단이기 때문에 산업개발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이러한 이해관계는 이승만 정권의 자유방임정책으로 반영되었다.
그와 동시에 이승만 매판부르주아 정권은 지배계급 내에서의 정치경제적 지배력을 확대하기 위해 지주를 약화 시키는 한 편 농민들의 정치적 압력을 해소하기 위해 농지개혁을 단행했다. 농지개혁은 매우 온건한 성격을 띌 뿐만이 아니라 각종의 변종소작제를 허용하는 형태로 이루어졌기에 남한의 봉건적 농업 생산관계를 파괴할 수 없었지만 지주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축소시키기 위한 본래의 의도는 달성할 수 있었다. 농지개혁을 통해 약화된 지주계급은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에 의해 이루어진 급진적 토지개혁과 지주들에 대한 인민재판을 통해 완전히 몰락하게 되었다. 비록 인민군은 결과적으로 패퇴했지만 매판부르주아 정권은 전후 인민군에 의한 토지개혁을 뒤로 되돌릴 역량이 없었다.
한 편, 적산불하로 인해 몸집을 불리고 있던 관료부르주아들은 지주계급의 몰락으로 인해 농촌 자본이 도시 산업으로 유입되면서 크게 성장했으며 곧 자신들을 대변할 새로운 정권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승만의 몰락 후 매판부르주아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일정하게 줄어듬에 따라 관료부르주아들은 지배계급 내에서의 지배력을 확립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박정희 정권이 탄생했다. 박정희 정권은 철저히 관료부르주아를 대변하는 정권이었다.
박정희 관료부르주아 정권은 집권 직후 자유당계 인사들을 대거 숙청하며 매판부르주아의 정치적 영향력을 거세했으며, 새로운 하청기지를 바라고 있던 미국과 일본의 묵인과 지지 하에 적극적인 산업화 정책을 개시하였다. 이러한 산업화는 자주적 국민경제의 건설과는 동떨어져 있었으며 어디까지나 미국과 일본의 산업고도화에 발맞춰 해당 국가들에 납품할 저부가가치 상품을 생산하는 수준에 그쳤다. 물론 박정희 정권은 이후 중화학 산업과 중공업을 발전시키지만, 이 또한 본질적으로는 일본자본이 기술집약산업에 집중함에 따라 자신들이 생산하던 비-기술집약적 산업부문을 남한에 이전시킨 것에 불과했다. 이 시기 박정희 정권의 산업개발자금의 대부분은 제국주의 열강이자 식민모국인 미국과, 미국의 동아시아 지역 파트너인 일본의 차관과 대출금에 기반했으며 해당 자금을 받아 급속도로 성장한 재벌집단 또한 직간접적으로 미-일 금융에 종속되어 있었다. 즉, 관료부르주아의 성장과 급속한 산업화는 오히려 남한의 경제적 종속수준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불러왔다.
한 편, 박정희 정권은 노동자들의 생활비용을 줄여 임금을 억제하기 위해 대대적인 저곡가 정책을 펼쳤는데, 이러한 저곡가 정책은 단순히 이촌향도를 촉진시키는 것을 넘어 농장경영의 이윤을 극도로 줄여 이 때까지 남아있던 봉건 지주계급의 잔당을 사실상 소멸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재벌집단으로 대표되는, 독점자본주의 정책 하에 성장한 관료부르주아들은 무역 및 통상 분야의 계열사를 세워 허약해진 매판부르주아들을 흡수했으며, 이에 따라 사실상 남한 사회의 유일한 지배계급으로 올라섰다. 물론 매판부르주아는 소멸하지 않았지만 이 시점부터 남한의 매판자본은 관료부르주아들에게 의존하는 형태로만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전두환 정권 이후 국가와 자본의 유기적 결합과 상호침투가 활성화 되면서 남한의 관료자본주의는 국가독점자본주의 수준으로 성장했지만, 남한의 국가독점자본주의는 제국주의 열강의 국가독점자본주의와는 다르게 독점자본들이 자신들과 대부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은행자본과 완전한 결합을 이루지 못했다. 왜냐하면 남한 관료독점자본들은 식민모국의 은행과 수직적인 관계로 종속되어 있을 뿐, 상호침투를 통한 결합을 수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남한 관료독점자본은 제국주의 열강들의 은행의 대리점에 불과한 남한 은행자본과만 이러한 결합을 이뤄낼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남한의 관료독점자본은 완전한 금융과두를 형성하지 못한 채 불완전한 금융과두로 자리잡을 수 밖에 없었다. 즉 남한의 국가독점자본주의는 철저히 제국주의 자본의 묵인과 허용 하에서만 유지될 수 있으며, 남한의 금융자본 또한 제국주의 자본에 의해 강력한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기실 이는 남한의 특수성이 아닌, 지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식민지 국가에서 발전하는 자본주의 부문의 보편적 특성이다.
90년대 이후 외국인의 남한 기업 지분소유가 허용됨에 따라 제국주의 자본은 더 이상 남한 정부가 운영하는 투자 펀드나 합작투자, 제국주의 자본에 종속되어 있는 남한 은행을 통한 간접지배, 차관 제공을 통한 이윤 수취 등의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도 더욱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방식으로 남한 독점자본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남한의 주요한 관료자본, 즉 재벌의 지배를 받는 대기업은 제국주의 자본에 의해 지분의 상당수를 장악 당했다. 즉, 소위 국민기업이라 불리는 관료독점자본들은 사실 남한의 기업이 아니라 제국주의 자본의 지배를 받는, 제국주의 자본의 실질적 계열사에 불과한 것이다. 21세기 이후로 남한의 대기업들이 겉보기에 식민모국인 미국의 기업들과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제국주의 금융자본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지배 중인 기업 중 어느 기업이 경쟁에서 이기던 간에 자신들의 이윤은 언제나 보장되기 때문이다.
또한, 남한의 관료독점자본 중 대다수는 아직도 핵심부품을 독일과 미국으로부터 공급받는 경우가 많으며 매년 막대한 기술 로열티 비용과 대부이자, 투자 배당금을 제국주의 자본에 지불한다. 이로 인해 남한의 관료독점자본은 아무리 영업에 있어서 거대한 이윤을 확보하더라도 이러한 종속구조로 인해 영업이익의 대부분을 제국주의 자본에 상납해야 하기에 국내에서의 착취수준을 최대한 높일 수 밖에 없다. 관료독점자본의 고도착취는 구체적으로 하청업체에 대한 대금 후려치기, 임금의 철저한 억제, 파견 및 플랫폼화를 통한 고용의 유연화와 소위 ‘무노조 경영’이라는 이름 하에 자행되는 노조파괴와 살인적 탄압 등의 형태를 띈다.
남한의 자생적 민족자본의 대다수는 관료독점자본에게 납품하는 하청업체인데, 이들은 관료독점자본이 조성한 극도로 낮은 대금 환경과 다단계식의 지배구조를 통해 철저히 착취 당하고 있기에 실질적인 성장을 거두지 못하고 있으며, 노동자들에게도 필연적으로 생활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임금만을 지급한다. 제국주의 자본-관료독점자본-하청자본-노동자로 이어지는 피라미드식 착취 구조는 노동계급의 궁핍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일각에서는 남한이 제국주의 국가이며, 남한 자본은 미국 자본과 동등한 지위에 있는 협상 당사자이고, 그러므로 이번의 트럼프의 산업약탈 또한 남한에 대한 약탈이 아닌, 남한 자본과 미국 자본 간의 공정한 공모 하에 이루어진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트럼프의 산업약탈은 남한 노동계급의 일자리를 줄이고 관료독점자본의 착취수준을 필연적으로 고도화 하여 임금을 억제하는 결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노동계급에 대한 타격이요 공격이지만 이번 약탈이 남한 자본과 미국 자본 간의 동등한 공모라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남한 관료독점자본은 소유구조상으로나 로열티와 대부, 라이선스 등의 거래관계로나 철저히 제국주의 자본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제국주의 자본에 종속되어 있다. 그렇기에 남한 관료독점자본의 또다른 피식민 국가에 대한 자본수출은 독자적 제국주의의 성격을 띈다기 보다는 미제국주의 금융자본을 다른 피식민 국가에 중개하는 행위에 가깝다. 남한은 그 어떤 국가에 대해서도 독점적으로 정치경제적 지배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저 미제국주의의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지배 하에 있는 국가들에게, 자신들이 수입한 미국 자본을 재수출할 뿐이다.
결론
남한은 미국 제국주의 자본에 종속된 관료독점자본의 대리 통치를 받는, 미제국주의 식민지 국가이며, 남한에서 발전한 자본주의는 제국주의 자본에 의해 고도로 종속된 형태의 관료자본주의이다.
미제국주의와 관료독점자본의 지배를 받는 남한 정부는 제국주의 자본의 안정적인 이윤 수취를 위해 온갖 노동악법과 폭력적 경찰집단을 통해 노동계급의 자기조직화와 투쟁을 물적으로 억제하는 한 편, 정신적 차원에서는 파시즘적 제도인 국가보안법을 통해 대항 이데올로기의 형성을 억제하고, 관료독점자본과 제국주의를 미화 및 정당화 하는 각종의 미디어를 통해 노동계급의 의식이 발전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관료독점자본의 필연적 고도착취는 정리해고제와 쉬운 해고의 도입으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노동시장에서 퇴출된 노동자들은 21세기 이래로 국가의 적극적인 권장 정책을 통해 소위 자영업자라 불리는 소부르주아 계급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렇게 관료독점자본과 국가의 유도로 인해 대량으로 양상된 거대한 소부르주아 집단은 프랜차이즈에 의해 종속되어 실질적으로 준 프롤레타리아에 가까운 사회경제적 지위로 전락했으며 비정상적인 과잉경쟁 하에서 속속들이 파산하고 있다. 국가의 이데올로기 작업은 이들이 프랜차이즈와 임대자본에 의한 착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궁핍의 이유를 최저임금이나 주휴수당 등에서 찾아 노동계급을 적대하게 하도록 하는 허위의식을 심어주었다. 이러한 허위의식은 민족자본가들 또한 공유하고 있다.
남한 민주주의의 성장을 철저히 가로막고 있는 파시스트적 정치세력, 관료집단, 사법부, 언론은 미제국주의의 후원 하에 유지되고 있다. 국가는 관료독점자본의 고도착취를 보장하기 위해 가부장주의 이데올로기 하에서 여성에게 무상 가사노동을 시켜 노동재생산 비용을 낮추고 임금을 억제해야 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억압정책으로 귀결된다.
인류가 스스로를 보전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인 탄소중립은 제국주의의 지배 하에서 결코 실질적인 효력을 지닌 정책의 형태로 추진될 수 없다. 탄소세를 비롯한 적극적 규제정책은 관료독점자본의 이윤을 하락시키며, 제국주의 자본은 결코 관료독점자본의 이윤 하락으로 인해 자신들이 약탈해갈 몫이 줄어드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자본은 탄소절감도, 생태보전도, 기후정의도 신경 쓰지 않는다. 오직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무제한적으로 이윤을 추구하기를 바랄 뿐이다.
제국주의 자본은 한국 정부에 대한 지배적 영향력을 통해 끊임없이 시장개방을 추동하고 있으며, 이러한 시장개방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농민들이다. 농민들은 제국주의 자본이 플랜테이션과 약탈적 기업농을 통해 생산한 농축산물과 가격경쟁을 시도할 수 없으며, 시장개방의 수준이 강화되고 고도화될수록 파산하는 농민들의 수는 늘어날 것이다.
이러한 모든 사실에 비추어볼 때, 남한 사회의 총체적 억압은 제국주의와 식민지 간의 모순에 기초한다. 노동자, 농민, 민족자본가, 소자본가, 지식인 모두가 미제국주의의 억압과 착취를 받고 있으며, 노동계급에게 제국주의라는 단일한 모순과 억압 앞에 놓인 이 사회의 모든 계급계층을 통일전선을 통해 묶어낼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이다.
통일전선의 공통적 목표는 제국주의 지배와 그 부산물인 관료독점자본주의의 철폐를 통한 사회 주요 모순의 해소이며, 구체적으로는 관료독점자본의 몰수와 한미동맹 해체, 그리고 미국의 남한 지배에 있어 물적 근원으로 자리잡고 있는 주한미군 철수, 미제국주의에 기생하고 있는 남한 내의 파쇼집단과 그 동맹세력의 완전한 분쇄를 통한 민주주의의 달성이다. 허나, 남한의 극도록 허약한 민족자본가들은 이러한 민주 혁명을 영도할 역량이 없기에 민주 혁명의 성격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 아닌,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신민주주의 혁명이 되어야 한다.
즉, 남한사회변혁의 성격은 제국주의와 관료자본주의를 분쇄하기 위한 신민주주의 혁명이며, 노동운동을 비롯한 모든 의제운동은 신민주주의 혁명을 위한 준비과정으로 개조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신민주주의 혁명은 노동계급의 당을 건설하고, 당의 주도 하에 의제운동의 성격을 개조하며, 동맹 계급계층과의 통일전선을 구축하고, 통일전선 내에 노동계급의 지배력을 확립하는 일련의 장기적 과정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