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괴뢰정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1. 델시 로드리게스 괴뢰정권의 수립과 만행
2026년 1월, 미제국주의 침략군대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작전을 감행하여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납치했다. 의문의 여지 없이, 그것은 한 주권국가의 정치적 운명을 자신의 군사력으로 결정하려는 제국주의의 노골적인 침략행위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충격적인 일은 바로 그 이후에 일어났다.
마두로의 납치 이후 국가권력을 장악한 델시 로드리게스는 미 제국주의에 대한 항전을 선언하는 대신 미국과의 협조를 선택했다. 마두로 정권의 고위관료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가운데, 베네수엘라의 국가기구는 미국과의 관계를 재편하고 자국의 막대한 천연자원을 미국 자본에 개방하기 시작했다.
2026년 8월, 로드리게스 정권은 미국과 25년간 유효한 석유협정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이 협정은 17개 전략 유전의 개발을 포함했으며, 트럼프는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막대한 석유 매장량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했다고 자랑했다. 뒤이어 로드리게스는 미국 에너지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셰브런을 비롯한 외국 석유기업들과 새로운 협정을 체결했다. 이는 국가의 핵심자원을 미국의 기업에게 팔아넘기는 매국행위이자, 석유국유화라는 볼리바르 혁명의 핵심성과를 스스로 부정하는 처사이다.
참으로 기막힌 광경이다.제국주의자들이 주권국가의 대통령을 납치하자, 그 대통령에게 충성을 맹세하던 자들이 제국주의자들을 맞이하여 국가의 자원을 거래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까지 볼리바르 혁명과 민족자결권을 부르짖던 자들이 오늘은 미 제국주의의 충실한 협력자가 되었다. 그들은 이제 매국노이자 제국주의의 대리인이다. 로드리게스 괴뢰정권은 민족의 독립과 사회주의라는 명분을 팔아 자신들의 지배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문제는 다음과 같다 : 어째서 수십 년간 반제국주의를 표방했던 베네수엘라에서 이러한 반역이 가능했는가? 어째서 그토록 거대한 국가기구와 군대, 집권당과 민병대가 존재했음에도 제국주의의 침략 앞에서 지도부가 이토록 손쉽게 굴복할 수 있었는가?
이러한 사태를 단순히 로드리게스 개인의 배신으로 설명한다면 우리는 아무런 교훈도 얻을 수 없다. 문제는 몇몇 배신자의 존재가 아니라, 배신자들이 국가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계급적-정치적 조건에 있다. 현대수정주의의 두 기수인 흐루시초프와 등소평이 허공에서 나타나지 않았듯이, 볼리바르에서의 배신은 하루아침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볼리바르주의 혁명운동 자체에 내재한 모순의 운동이 배신의 가능성과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2. 무엇이 이를 가능케 했는가
물론, 볼리바르 혁명은 결코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 운동이 아니었다. 차베스의 집권 이후 베네수엘라에서는 대대적인 사회개혁이 이루어졌고, 서구제국주의의 대리인으로 활동하던 기존 지배계급의 정치적 독점에 타격을 가해졌으며, 수많은 노동자와 농민, 도시빈민이 정치적으로 각성했다. 볼리바르 혁명은 라틴아메리카의 반제국주의 투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그 성과가 사회주의 혁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국가권력을 장악했다는 사실만으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사멸하지 않듯이, 주요 산업을 국유화했다는 사실만으로 생산과 분배를 둘러싼 계급적 모순이 소멸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사회주의를 언어적으로 선언한다고 해서 부르주아지가 저절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마오쩌둥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아래에서도 부르주아적 권리는 잔존하며,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사상적 잔재는 계속해서 재생산될 수 있다고 논하였다. 더욱이 그는 부르주아적 요소들이 국가기구와 당 내부에 침투하여 새로운 부르주아적 이해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렇다면 하물며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수립된 적 조차 없는 베네수엘라에서는 어떠했겠는가.
그러므로 혁명의 수호와 발전은 국가기구의 안과 밖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부르주아적 경향과 투쟁하고, 대중들을 투쟁으로 이끄는 작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차비스모 체제는 이러한 투쟁을 일관되게 수행하지 않았다. 차비스모 체제는 민족자본가와의 타협에 의존했고, 기존 국가관료와 군부의 이해관계를 광범위하게 용인했으며, 사회주의적 생산관계의 건설보다 국가가 석유수입을 확보하고 이를 재분배하는 방식에 의존했다.그 결과, 볼리바르 혁명의 정치적 언어와 국가의 실질적인 계급관계 사이에는 점점 더 커다란 간극이 발생했다.
베네수엘라에서 석유는 국가재정의 핵심이었으며,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특권을 매개하는 가장 중요한 물질적 토대였다. 문제는 석유산업의 국유화 자체가 사회주의적 생산관계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석유산업이 국유화되었다 하더라도, 석유의 생산이 시장법칙에 따라 이루어지고, 그 운영과 지대의 배분을 소수의 관료와 기업가들이 좌우한다면 국유기업은 새로운 부르주아적 이해관계의 물질적 토대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볼리바르 혁명 이후 국유화된 석유들을 관리하게 된 PDVSA(베네수엘라국영석유회사)는 국가엘리트와 관료적 후견 네트워크망에 의해 고도로 폐쇄적으로 운영되었고, 방만한 경영과 부패 속에서 국가 내의 또다른 권력으로 기능하였다.
볼리바르 혁명은 전면적인 계급투쟁과 노동계급권력 수립을 목표로 하지 않았고, 관료자본을 일제히 몰수하거나 친제국주의 복고파들을 제대로 분쇄하지도 못하였다. 이러한 중간주의적 태도 속에서 정권의 후견을 받는 신흥 재벌들이 탄생했고, 신흥 재벌들은 국가와 결합하며 새로운 지배연합을 구축했다. PDVSA를 관리하는 관료, 국가의 발주와 계약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기업가, 수입과 유통에서 특권을 누리는 무역업자, 국가기구를 장악한 정치적 특권집단이 하나의 지배적 이해관계로 결합한 것이다. 결국 이러한 집단에게 중요한 것은 노동계급의 해방도, 생산관계의 혁명적 변혁도 아닌 자신들이 국가의 경제적 자원을 처분할 권력을 유지하는 일 뿐이었다.
차비스모 정권은 사회주의를 말하면서도 자본주의적 축적의 논리를 따랐며, 혁명을 찬양하면서도 혁명 내부의 계급투쟁을 두려워했다. 이것이 수정주의의 계급적 토대다. 그들은 겉으로는 혁명의 계승을 선언하면서, 실제로는 부르주아적 생산관계와 정치적 특권을 보호하는 것이다.오늘날 로드리게스 정권의 행보는 이러한 모순이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제국주의와의 협력은 오랫동안 형성되어 온 지배적 이해관계에 새로운 생존의 길을 제공했다. 혁명의 명분을 통해 성장한 자들이 혁명의 적과 결탁하여 자신의 지위를 보전하는 것이다.
문제는 경제적 영역에만 존재하지 않았다. 볼리바르 혁명은 국가와 사회의 변혁을 표방했지만, 그 혁명을 영도하는 정치조직 자체의 계급적 성격을 둘러싼 투쟁은 끝까지 수행되지 못했다. 차비스모는 서로 다른 계급적 이해관계가 혼재한 광범위한 지배연합을 유지하면서, 그 내부의 노선투쟁을 의식적으로 수행하지 못했고, 노동계급의 영도력을 확립하려는 일체의 시도도 하지 않았다. 당면 과업이 사회주의 혁명이 아닌 사회에서는 물론 계급연합정권이 수립될 수 있고, 민족자본가들과 협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는 언제나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인 공산당을 중심으로 연합 내에서 노동계급의 권력과 지도역량을 확보하고, 우파적이거나 복고적인 세력에 대한 계급투쟁을 대중을 동원해 지속적으로 실시해야만 한다. 중국의 삼반오반운동, 반우파운동이 가장 훌륭한 예시이다.
하지만 차비스모 정권은 노동계급의 혁명적 중핵을 건설하기는 커녕 당내 좌파와 독립적인 공산주의 세력을 탄압하기로 선택했다. 2023년, 베네수엘라 대법원이 베네수엘라 공산당의 지도부를 교체한 사건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권이 공산주의자들의 독립적인 정치활동을 억압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정권의 정치적 안정이 노동계급의 혁명적 이해관계보다 우선시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혁명 내부에서 발생하는 부르주아적 경향과 투쟁해야 할 때, 정권은 오히려 그 경향에 반대하는 공산주의자들이 탄압하였다. 수정주의자와 복고파들에 맞서 싸워야 할 때, 정권은 국가기구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전체 과정은 프롤레타리아적 정치노선이 후퇴하고, 관료적-부르주아적 정치노선이 우위를 확보해 가는 단계들이었다. 그리하여 혁명을 수호해야 할 연합사회당 정권은 점차 혁명적 변혁보다 기존 국가기구의 유지에 자신의 운명을 결부시키게 되었다.
물론 차비스모 정권은 대중조직의 건설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수많은 주민평의회와 코뮌, 대중운동 조직이 건설되었으며, 대규모 민병대도 조직되었다. 그러나 바로 여기서 결정적인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이러한 조직들은 어떠한 정치노선 아래에서 활동했는가? 인민을 조직한다는 것은 단순히 많은 사람들을 집결시키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혁명적 정치노선으로 인민을 교양하고 조직하며, 군중노선을통해 그들이 계급투쟁의 능동적인 주체로 활동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공산당의 영도란 인민 위에 군림하는 관료들의 명령을 의미하지 않는다. 공산당의 영도력은 올바른 정치노선으로 군중을 결집시키고, 군중의 실천으로부터 배우며, 그 경험을 다시 혁명적 실천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을 통해 실현된다. 그러나 차비스모 정권의 대중조직들은 상당 부분 국가의 정책을 집행하고 정권에 대한 지지를 동원하는 기능에 종속되었다.
민병대의 경우에도 문제는 마찬가지였다. 민병대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 민병대가 혁명적인 정치노선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사실은 전혀 다르다. 인민에게 무기를 지급했다고 해서 저절로 혁명적 군대가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군사력의 계급적 성격을 결정하는 것은 단순히 그 구성원의 출신성분이나 무장의 보급량이 아니다. 그것을 지배하는 정치노선과 계급적 영도가 결정적이다.
그런데 베네수엘라의 민병대는 제국주의와의 장기항전을 수행할 혁명적 정치역량으로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다. 국가의 최고지도부가 기존 통치질서의 유지를 선택하고 제국주의와 협력하기 시작했을 때, 그 결정을 대신할 독립적인 혁명적 영도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중 속에서 혁명적 간부들을 길러내지 못하였고, 국가지도부부터가 항전의지로 뭉치지 못했기에 대중들에게 항전을 요구할 수도 없었다. 바로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인민대중을 혁명적 정치노선으로 조직하고 교양하는 사업이 부족했고, 혁명을 수호하는 군사력의 정치적 성격을 철저하게 확립하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 혁명의 운명이 국가기구 내부의 관료들과 장군들의 선택에 맡겨졌다.
마오쩌둥이 지적하였듯이 제국주의에 맞선 전쟁은 전투기와 포탄, 총과 드론으로 수행되는 전쟁이 아니다. 그것은 인민으로 수행되는 전쟁이며, 인민을 동원하는 작업의 핵심은 정치노선이다. 이 준엄한 사실은 알제리에서, 베트남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리고 오늘날의 예멘에서 증명되고 있다. 압도적인 적과 맞서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 지도부가 자신의 권력과 특권을 보전하는 것을 우선한다면, 아무리 거대한 군대와 무기고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그러한 군사력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베네수엘라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미 제국주의의 침략과 마두로의 납치라는 중대한 위기가 발생했을 때, 로드리게스 정권은 장기적인 반제국주의 항전을 결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인민대중에게 혁명을 사수하기 위한 정치적 투쟁을 호소하는 대신 제국주의와의 관계 정상화를 추구했다.
이는 개인적인 변덕이나 무능으로만은 설명될 수 없다. 자신들의 물질적 특권을 국가기구의 안정과 결부시키는 지배집단에게 제국주의와의 장기적인 대결은 감당하기 어려운 선택이 된다. 그들은 민족의 자결권보다 자신의 기득권을 우선하며, 혁명의 전진보다 지배질서의 안정을 우선한다. 그들에게는 전쟁에서 패배하는 것보다 기존 국가기구가 해체되고 인민대중의 혁명적 투쟁이 전면화되는 것이 더욱 두려울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계급적 조건에서 제국주의와의 타협은 지배집단 자신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정치적 선택이 된다. 결국 볼리바르 혁명의 지도부는 제국주의에 맞설 수 있는 수백만 인민의 잠재력을 자신의 정치노선으로 결집시키지 못했다. 제국주의의 침략이 혁명을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혁명 내부에서 축적된 모순이 제국주의의 침략 앞에서 자신의 파괴적인 결과를 드러낸 것이다.
3. 인민을 믿고 인민에게 의존하라
베네수엘라의 비극은 우리에게 명백한 교훈을 남긴다. 민족자본가에게 의존하지 말라. 관료집단에게 의존하지 말라. 기존 국가기구의 충성에 혁명의 운명을 맡기지 말라.
인민을 믿고, 인민에게 의존하라!
물론, 이는 인민의 자발성에 혁명의 모든 운명을 맡겨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혁명적 노동계급 전위당의 지도 없이, 올바른 정치노선 없이, 혁명의 조직적 영도 없이 인민대중의 저항은 장기적인 승리로 발전할 수 없다. 인민에게 의존한다는 것은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당이 군중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그들과 결합하며, 그들을 조직하고 교양하여 혁명적 계급투쟁을 수행한다는 뜻이다. 즉, 군중노선은 당의 영도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당의 영도를 실현하는 것이다.
당은 군중으로부터 배우고 군중을 영도해야 한다. 군중의 경험을 집약하여 올바른 정치노선을 수립하고, 그것을 다시 군중의 실천 속에서 검증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전제는 혁명적 정치노선의 확립이다. 정치가 군사를 지휘해야 한다. 혁명적 정치노선이 국가기구와 군대를 지휘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정치노선은 철저하게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적 이해관계에 복무해야 한다.
혁명적 전위당이 없는 대중운동은 정치적으로 분산될 위험에 처하고, 올바른 정치노선이 없는 전위당은 관료주의와 수정주의에 침식된다. 따라서 당의 건설과 군중의 조직화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과업이다. 이것은 국가권력을 장악한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전 사회 영역에서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적 지배를 확립하고, 부르주아지와 복고세력의 저항을 제압하며, 사회주의적 생산관계를 발전시키고, 계급의 소멸을 향해 전진하는 역사적 과도기의 국가권력이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강화는 국가관료들의 권력을 무제한으로 확대하는 것과 동일하지 않다. 오히려 노동계급의 혁명적 정치역량을 강화하고, 당과 국가 내부에서 성장하는 부르주아적 경향에 맞서 투쟁하며, 사회주의의 길과 자본주의 복귀의 길 사이에서 계속해서 투쟁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과도기 사회에서의 계급투쟁의 계속이라는 문제가 결정적으로 중요해진다.
혁명은 국가권력의 장악으로 종결되지 않는다. 국유화와 계획경제만으로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회주의 사회 내부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계급적 모순을 해결하며 전진하는 장기적인 역사적 과정이다. 이 투쟁을 중단하는 순간, 부르주아적 요소는 다시 성장한다. 혁명의 성과 위에서 성장한 새로운 특권집단이 당과 국가기구를 장악할 수 있다. 그들은 혁명의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자본주의적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다. 그들은 사회주의의 간판을 유지하면서도 제국주의와 타협하고 자본주의 복귀의 길을 열 수 있다. 바로 이것이 현대수정주의가 소련과 중국의 프롤레타리아 권력을 파괴한 방법이다.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난 사태는 우리에게 이러한 위험을 다시 한번 상기 시켜주었다.
제국주의에 맞선 저항은 그 정치적 성격에 상응하는 장기적인 준비를 요구한다. 제국주의 국가가 군사적 우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 발견이 아니다. 제국주의는 오랫동안 막대한 산업생산력과 군사력을 동원하여 약소민족의 독립을 유린해 왔다. 그렇다면 피억압민족의 혁명운동은 무엇에 의존해야 하는가? 제국주의 군대보다 많은 무기를 보유하기를 기대할 것인가? 제국주의 국가들의 양심과 국제법에 호소할 것인가? 유약하고 양면적인 민족부르주아지의 애국심에 기대를 걸 것인가? 그 모든 것은 혁명의 운명을 타인의 손에 맡기는 일이다.
세계피억압민족해방운동의 유구한 역사는 압도적인 군사적 열세 속에서도 인민대중을 혁명적 정치노선으로 조직한 인민의 전쟁들이 장기간의 저항을 통해 승리해왔음을 수도 없이 증명해왔다. 바로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서 우리는 인민에 의한 전쟁의 몇가지 보편성을 정리해볼 수 있다. 그들은 정치가 군사를 지휘한다는 원칙, 혁명적 정치조직의 영도, 인민대중과의 긴밀한 결합이라는 확고한 원칙들을 통해서 승리하였다. 인민대중이 혁명의 사회적 토대가 될 때, 그들의 정치적 각성과 조직적 역량이 혁명의 지속성을 뒷받침할 때 비로소 무장한 인민의 바다는 그 어떤 제국주의 군대도 꺾지 못할 불멸의 요새가 된다.
제국주의와의 항전은 영웅주의적 선언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진정한 장기항전은 어떠한 군사적 위협 앞에서도 혁명의 정치노선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계급적 토대를 구할 때 가능하다.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지배집단은 이러한 토대를 건설하지 못했으며, 건설하려 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혁명을 수행하고 발전시키는 대신 혁명의 성과를 관리하려 했다. 과도기 사회 내부에서의 계급투쟁을 전진시키는 대신 기존 지배연합을 안정시키려 했다. 인민을 혁명의 주체로 조직하는 대신 자신들의 통치에 대한 지지자로 동원했다.
그리고 마침내 제국주의의 침략이 닥쳤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지켜야 할 혁명보다 자신들이 보전해야 할 국가기구를 선택했다. 이것이 그들의 역사적 파산이다.
우리는 여기서 어떠한 결론을 내려야 하는가? 혁명을 끝까지 수행해야 한다. 국가권력을 장악한 이후에도 계급투쟁을 계속해야 한다. 당과 국가기구 내부의 부르주아적 경향을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일시적인 타협을 혁명의 영구적인 정치노선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혁명적 전위당을 건설하고 당과 인민대중을 결합시켜 광범위한 근로인민을 혁명의 결정적인 역량이자 무장력으로 조직해야 한다.
인민에게 의존하지 않는 혁명은 자신을 수호할 힘을 잃는다. 올바른 정치노선을 상실한 당은 자신의 계급적 성격을 잃는다. 계속혁명을 포기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복귀의 위험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혁명을 끝까지 수행하지 않는 자들은 결국 자신들이 중단시킨 혁명의 성과마저 상실하고 만다. 볼리바르 혁명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내려야 할 결론은 오직 하나다.
인민을 믿고, 인민에게 의존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