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국제정세와 변혁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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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국제정세와 변혁의 전망

이 글은 국제 정세를 파악하고, 그 속에서 변혁의 기회를 파악하기 위해 쓰여진 글이다. 저자는 지금의 세계가 기존 미국 중심의 단일 질서에서 여러 국가들의 블록으로 쪼개지는 다극화 과정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다극화의 과정이 어느 정도 진보적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아류 제국주의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 과정에서 주변부의 혁명적 가능성을 바라본다.

개요

백년 전, 레닌은 독점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세계분할을 위한 열강들의 전쟁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고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두 세계대전은 수천만이 넘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으나, 동시에 기존 질서가 파괴되고 세계적인 혁명운동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의 국제정세는 레닌이 묘사했던 20세기 초의 정세와 유사하다.

  제국주의 열강 간의 분쟁은 첨예화 되고 있으며, 각국에서는 파쇼적 극우정치가들이 정권을 잡아 사회의 군국주의화와 노동계급에 대한 공세를 전두지휘 하고 있다. 이미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대만의 정세가 불안정해짐에 따라 미중 간의 전면전 가능성도 붉어지고 있다. 제국주의 열강 간의 세계대전은 더 이상 단순한 상상의 영역이 아닌, 언제 어디서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현실적 가능성이 되어 전세계 인민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런 시대에서, 좌파의 책무는 무겁다. 오직 전세계의 인민만이, 그리고 그 인민을 지도할 혁명적 좌파의 올바른 실천만이 제국주의 열강들의 세계쟁탈전을 가로막고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하여 인류 역사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낼 수 있다.

  과학적 정세 분석 없이 혁명적 실천은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 글에서는 전쟁의 위기가 점차 커져가고 있는 오늘날의 국제정세를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이 정세 속에서 혁명적 가능성을 찾아보고자 한다.

제국주의 열강 간 모순의 재격화

1991년 소련이 붕괴된 이래로 제국주의 열강들은 자신들만의 평화를 누려왔다. 미제국주의는 자신들의 가장 강력한 적대자였던 소련의 붕괴를 기회로 삼아 제국주의 세계질서의 보증인으로 우뚝 섰다. 미제국주의는 한 편으로는 걸프전을 통해 신질서를 보증할 수 있는 무력을 증명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우루과이 라운드를 기점으로 하는 세계화 작업을 통해 제국주의 열강들에게 번영을 약속했다. 그 후 약 20년 간 미국의 경쟁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일본 블록과  유로 블록은 제국주의 열강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군사적 층위에서는 미국에게 의존했고, 자본주의 중국과 신생 러시아는 제국주의 열강으로 성장하기엔 내부 역량이 부실했다.

  미국 중심의 세계화 및 자유무역질서는 여러 의미에서 제국주의 열강들에게 축복이었다. 이 새로운 질서는 3세계 국가들에 대한 착취와 경제 잠식을 더욱 용이하게 만들었고, 둘째로 제국주의 블록 간의 경쟁을 완화하여 제국주의 열강 간 모순의 가속을 방지했고, 셋째로 보호무역 정책을 취하던 기존 3세계 국가들의 문호를 열어 선진자본주의 국가 내의 자본과잉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투자처를 개척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이후로 세계경제는 다시금 장기 침체에 접어들었다. 한 편, 소련 해체 이래로 붕괴했던 러시아는 고유가를 틈 타 경제력을 회복하여 독자적 블록을 형성하기 위한 팽창정책에 시동을 걸었고, 개혁개방 이후로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던 중국은 서구의 부진을 틈 타 서구의 생산기지를 넘어서 제국주의 패권국으로의 도약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일대일로 정책이 발표된 2013년 이래로 중국은 해외 자본수출을 이례적으로 늘리며 기존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이 지배하고 있던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지의 시장을 장악해갔다.

  서구의 거대한 시장이자 생산기지였던 중국이 독자블록화의 길을 걸으며 산업고도화/첨단화 정책을 통해 기존 고도산업에서의 서구의 지배적 위치를 위협하자, 미국은 대중제재와 사드배치를 통해 중국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중러 신흥 제국주의 열강의 탄생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제국주의 열강의 압박은 소련 붕괴 이래로 일시적으로 완화되었던 제국주의 열강 간의 모순의 재격화를 불러왔다. 또한, 제국주의 열강 간 모순의 격화는 열강 간 경쟁 상의 필요로 인해 피착취 국가에 대한 착취 수준 가속화, 그리고 노동계급에 대한 전면적 공세를 불러옴에 따라 제국주의 국가와 식민지 국가 간의 모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간의 모순도 함께 격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 코로나19의 전세계적 유행으로 인해 국제 공급망에 타격이 발생하자 세계경제의 블록화 경향은 더욱 강화되었다. 중국과 러시아는 국제 공급망 위기를 틈 타 독자적 공급 및 결제망을 형성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고, 유럽과 미국, 일본 또한 기존의 자유무역 기조에서 벗어나 개별 열강들의 독자블록 강화 경향에 편승했다.

  또한 코로나19 당시 미국이 10조 달러에 달하는 통화를 새로 발행함에 따라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가 NATO 및 유럽으로부터 자유로운 독자 블록의 건설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자 공급망 위기가 가속되어 인플레이션의 영향은 더욱 지대해졌다. 미국발 인플레이션은 각 제국주의 국가들 내부의 경제상황을 크게 악화시켰다. 대우조선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수많은 기업이 인플레이션을 버티지 못하고 파산했으며, 파산한 기업체는 금융독점자본에 흡수되어 각 국의 독점화 경향을 심화시켰고, 각국의 부르주아 정부기관은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노동권 탄압과 임금 절하, 비정규노동의 보편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미국으로서는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중러의 독자 제국주의 블록 건설을 가로막고, 이들을 세계의 시장이자 생산기지로 주저 앉히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중러의 독자블록화를 좌절시켜야만 국제공급망과 서방주도 무역질서를 회복할 수 있고, 중국의 산업고도화 및 반도체굴기를 실패시켜야만 미국의 기술적 우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미국은 NATO의 동진을 추진하고 젤렌스키 정권을 부추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유도하고, 디리스킹 및 디커플링으로 대표되는 대중제재를 도입하여 중국경제에 대한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

  허나 미국의 전략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발목을 잡는데 성공했지만 전쟁 이후 이루어진 대러시아 제재는 오히려 러시아의 세계시장 이탈과 중국에의 경제의존화를 불러와 중러 블록 간의 결합을 더욱 촉진시켰고, 미국이 중국에서 수입하던 물품들을 아세안 국가에서 대체수입하기 시작하자 아세안 국가들의 중국산 중간재 수입이 폭증했다. 완성품을 타국의 것으로 대체해도 그 완성품은 중국산 중간재를 통해 생산된 것이기에 현재의 국제무역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정리하자면, 현재의 국제정세는 독자적 제국주의 블록을 형성하려는 중러 중심의 신흥 제국주의 세력과, 미국 중심 서방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대립에 의해 규정된다. 이러한 대립은 제국주의 열강 간의 모순을 재격화 시켜 세계대전의 위협을 배가하고 있으며, 제국주의-식민지 간 모순과 자본가계급-노동자계급 간 모순의 격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허나, 러우전 발발 이후 러시아 경제의 대중 종속성이 심화되고, 유럽블록 내에서도 에너지산업의 패권을 두고 독일과 프랑스 간의 경제갈등이 표면화 되어가는 경향을 볼 때, 제국주의 열강 간의 모순은 블록 간의 대립 뿐만 아니라 블록 내의 대립이라는 형태로도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다극화와 블록의 분화

 

브릭스를 처음 구성한 5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중국은 본격적인 제국주의 팽창에 나선 이래로 기존 미 제국주의 경제질서에 반발하고 독자적 블록을 건설하려 하는 여러 세력들과의 연합을 주된 전략으로 삼고 있다. 중국의 전략은 하나의 통합된 경제-군사적 대항블록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각 권역의 아제국주의 국가들과 공조하여 기존에 서방 열강이 차지하고 있던 세계적 패권에 맞서는 것이다. 이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주도로 대안적 기축통화체계 확보와 신흥국가들의 독자적 블록화를 추구하는 국제기구인 브릭스(BRICS)의 설립을 통해 구체화 되었다.

  초기에는 느슨한 경제협력기구에 불과했던 브릭스는 제국주의 열강 간 모순이 격화될수록 점차 강력한 경제동맹으로 진화했다. 코로나19 이후 미국이 전세계에 달러를 살포해 국제 인플레이션 사태를 발생시키자 브릭스 국가들은 달러의 대체를 시급한 사안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인도와 브라질, 아르헨티나는 무역대금 위안화 직접결제에 합의했으며, 원유 또한 위안화를 통해 결제한다는 방침을 결의했다.

지난 8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아르헨티나, 이집트, UAE, 에티오피아의 6개국이 신규 가입했는데, 이는 브릭스가 추구하는 탈 달러화와 대안 경제블록 건설의 흐름에 편승하려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한 편, 미국의 셰일유 생산으로 인해 기존의 산유국들이 중러 측에 기울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렇듯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전후로, 적지 않은 국가들은 기존의 서방 블록에서 이탈하여 대안적 블록에 합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중국은 이 움직임을 명백하게 주도하고 있다.

  물론, 브릭스 내에서도 끊임없는 상호견제와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아루나찰프라데시 지역을 두고 수십년 넘게 국경분쟁 및 국지전을 벌여온 중국과 인도는 60년 넘게 국경분쟁과 전쟁위기를 겪다가 60년 만에 겨우 합의에 도달했고 2023년 8월에는 몇몇 회원국의 의견에 따라 브릭스 내에서의 달러 대체에 더 속력을 내면서도 과도한 위안화 결제 비중 또한 낮추어야 한다는 합의가 도출되었다. 서방 세력이 군사적으로는 미국에 의지하고 있을지언정 유럽, 일본, 미국이 각기 다른 경제블록을 구축하고 있듯이 브릭스 필두의 신흥 제국주의 세력 또한 하나의 블록이 아닌 여러 블록들의 연합체, 일종의 느슨한 경제진영에 가깝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적지 않은 좌파들은 이러한 ‘다극화’를 반제국주의 운동의 일환이자 제국주의 세계질서의 해체과정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이는 브릭스를 주도하고 있는 국가들의 성격을 간과하고 있는 발상이다. 중국은 이미 수많은 제3세계 국가들에 자본과 완성품을 수출하고 원자재를 수입하는 명백한 제국주의 국가이며, 러시아 또한 아직 국가독점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지는 못했을지언정 독자적 제국주의 블록을 건설하기 위한 욕망으로 인접 지역에서 서방의 영향력을 제거하려는 제국주의적 목적을 지니고 있는 국가이다. 브라질과 인도, 남아공은 각각 남미와 남아시아, 남아프리카 지역에서 주변 군소국의 경제를 잠식하고 역내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아류 제국주의 국가이다.

브릭스 주도국의 성격을 볼 때, 그리고 브릭스에서 추진 중인 대안 기축통화 프로젝트가 자주적 국가들의 공정한 무역을 촉진하는 것 보다는 신흥 제국주의 국가들의 통화를 국제화하는 것에 치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때, 중국 주도의 다극화는 제국주의의 타도와 무관하며 기존 서방의 제국주의 질서에 대항하기 위한 신흥 열강 국가들의 제국주의 전술임을 알 수 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다극화는 일정한 역사적 진보성을 지닌다. 신흥 제국주의 국가들의 당면한 목적은 서방 제국주의 블록들의 세력권 약화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신흥 제국주의 국가들은 서방 제국주의에 맞서는 각국의 반제국주의 세력을 후원해왔다. 러시아는 2011년 당시 서방이 주도했던 아랍권 레짐체인지에서 카다피 정권과 아사드 정권을 비롯한 반미세속주의 정권을 지원했으며, 중국은 북조선의 주권유지를 담보하고 있다.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정권을 비롯한 남미의 반미좌파 정권들은 브릭스 국가들과의 경제협조를 통해 미국의 경제잠식으로부터 벗어나려 시도하고 있으며, 이번 팔레스타인 민족해방전쟁에서도 중국과 러시아는 이스라엘을 규탄하고 팔레스타인 국가를 지지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서방에 의해 포위된 반제국주의 세력은 정세 상 신흥 제국주의 국가들의 일정한 지원을 받아들이고, 경제적 고립을 피하기 위해 이들과의 경제적 협력을 맺는 것이 어쩔 수 없이 강제된다. 허나, 동시에 신흥 제국주의 국가들은 제국주의적 팽창의 동인을 지니고 있으며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유지를 지향하기에 신흥 제국주의 국가들과의 협력에 얽매여 독자성을 상실할 경우 반제국주의 세력은 변혁성을 잃거나, 혹은 신흥 제국주의 국가들의 영향력 안으로 편입되어 또다른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을 뿐인 처지에 놓일 것이 명백하다.

  이러한 정세에서 신흥 제국주의 국가들에 대한 반제국주의 세력의 올바른 대응은 전술적 협력, 전략적 적대이다. 브릭스를 위시로 하는 신흥 제국주의 블록들의 당면 목적이 서방 제국주의의 영향력 약화인 이상, 현 세계질서에서 지배적 위치를 지니고 있는 미제국주의를 타도하는 과업에 있어서는 반제국주의 세력은 이들과 충분히 전술적 협력을 실행할 수 있다.

  하지만 협력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이고 국지적인 층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세계 자본주의 질서 자체가 심대히 위협받는 상황이 찾아온다면 신흥 제국주의 국가들은 언제든 서방 제국주의와 연합하여 당면 목표를 반제/반자본주의 세력에 대한 공세와 압박으로 수정할 것이 분명하며, 신흥 제국주의 국가들도 블록 내에서 피억압민족에 대한 착취와 지배를 일삼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신흥 제국주의 국가들 또한 제국주의와 세계자본주의를 분쇄하기 위해서는 결국 타도해야 하는 세력이며, 전략적 층위에서 반제국주의 세력과 신흥 제국주의 세력은 적대적 모순을 지니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반제국주의 세력은 신흥 제국주의 국가들과의 전술적 협력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원칙을 확고히 지켜야만 한다. 첫째, 독자적 발언권과 주체성을 확보할 것. 둘째, 신흥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침탈 당하고 있는 피억압민족과의 연대를 등한시 하지 않을 것. 셋째, 신흥 제국주의 세력과의 동맹은 일시적이며, 본질적으로는 적대관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것. 넷째, 언제든 협력을 중단하고 신흥 제국주의 국가들에 대한 전면적 투쟁으로 전술을 선회할 준비를 갖출 것. 다섯째, 전술적 협력의 이유는 여전히 세계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제국주의에 대한 공투에 있기에 미제국주의가 더 이상 지배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지역/상황에서는 협력을 지속할 이유가 없음을 인식할 것.

  다극화는 기존의 국제질서에 심대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확고한 원칙에 기초한, ‘다극화 세력’과의 일시적이고 전술적인 협력은 세계피억압민중에게 큰 전진의 가능성을 제공할 것이지만, 이들에 대한 우경적 투항과 좌경적 동맹거부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반제 세력이 도태되는 결과만을 초래할 것이다.

블록 분화는 무엇을 불러올까?

앞서 살펴보았듯이 블록의 분화는 세계적 흐름이며 제국주의 열강 간의 모순 격화와 연장선상에 있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블록의 분화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불러올까?

  첫째로, 블록 분화는 일부 지역에서의 권력공백 현상을 불러온다. 신흥 제국주의 열강의 팽창으로 인해 기존의 서방 제국주의의 세력권 하에 있었던 피억압 국가들 중 일부는 서방 제국주의와 신흥 제국주의 중 어느 세력도 정치경제적 지배력을 독점하지 못한 상황에 놓이게 되며, 이는 해당 국가들의 일정한 선택권 확대를 불러온다. 아랍의 봄 이래로 미국의 신식민지적 상황에 놓이게 된 이집트, 달러패권 하에서 미국 중동정책의 선봉장 역할을 맡고 있던 사우디 아라비아 등이 브릭스에 가입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멕시코 등의 중남미 국가들이 미국과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으면서도 중러와의 협력을 증대시키고 있는 것도 권력공백에 의한 현상이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블록 분화는 세계대전의 위기를 불러온다. 상술한 세계적 경제위기라는 정세 속에서 서방 제국주의는 신흥 제국주의를 주저 앉혀야만, 그리고 신흥 제국주의 국가들은 기존 질서로부터 독립적인 대안 패권블록을 형성해야만 경제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적대 상황에 놓여있다. 양 세력 간의 적대가 단순히 무역전쟁이나 경제적 압박의 수위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증명되었다. 우크라이나 외에도 발칸 반도와 남중국해, 캅카스 지역에서는 언제든 대리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그리고 대리전이 열강 간의 직접충돌로 발전할 가능성이 내재해있다. 또한, 러시아와 중국을 비롯한 신흥 제국주의 열강들은 미제국주의가 주도하는 나토와 쿼드에 비해 재래전 역량이 부족하기에 만약 열강 간의 전쟁이 벌어진다면 신흥 제국주의 열강은 핵무기 사용을 강제받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열강 간의 핵전쟁은 인류에게 매우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혁명적 좌파는 제국주의 전쟁을 가로막기 위해, 그리고 제국주의 전쟁이 벌어진다면 조국방위를 거부하고 이를 내전으로 전환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미래

 중국은 국제적 생산기지라는 지위에서 벗어나 첨단산업의 주도국으로 자리잡기 위해 반도체 산업에 대한 대대적 투자를 감행해왔다. 그 결과,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미국의 기술패권을 위협할 수준까지 크게 성장했으며 이에 위협을 느낀 미국은 중국 반도체 산업의 싹을 자르기 위해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제재를 비롯한 전방위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허나, 미국의 대중 반도체 공세는 경제제재의 수준에서 머무르지 않았다. 미국은 기술유출을 우려해 대만 내 반도체 시설을 일본 및 미본토로 이전하는 계획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 자체가 대만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기에 대만 내 반도체 시설의 이전은 중국의 반도체 산업에는 매우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밖에 없기에 국민당, 민중당 등 대만의 대중 온건파 정당들은 반도체 시설 이전에 회의적인 상황이지만, 현 집권여당인 민주진보당은 미국의 계획에 협조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만약 2024년 대만총통선거에서 민주진보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되어 반도체 시설 이전을 감행한다면 중국은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미국 또한 이를 인지하고 있기에 대중국 전쟁수행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미국의 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한미일 군사동맹 계획 또한 대만에서 전쟁이 발생할 시 남한과 일본의 군대를 대만에 파견하기 위한 밑작업이다.

  대만에서 미중 간의 전쟁이 발생한다면 중국은 미사일 중심의 비대칭전을 치룰 수 밖에 없다. 중국의 해군력과 상륙역량은 미군에 비해 극히 저조한 상황이기에 미 태평양 함대가 대만에 도달하기 전에 단기결전을 치루기 위해서는 개전과 동시에 동북아 및 남태평양 지역의 미군시설 전체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해서 시간을 버는 방법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남한 곳곳에는 대규모 미군 시설이 자리잡고 있기에, 미중전쟁의 발발과 즉시 남한은 중국으로부터 대규모 미사일 공격을 받게 될 것이다. 남한 정권은 즉각적으로 보복을 천명하며 대만에 대한 파병을 결의할 것이고, 결국 수많은 청년들이 전장에 끌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이를 막는 유일한 방법은 미중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미군기지의 철거와 미군의 전면철수를 이뤄내고, 북조선과의 평화를 이루어 제국주의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북과의 일정한 군사적 공조체계를 구축하여 한반도의 무장중립태세를 갖추는 것 뿐이다. 남한 좌파의 당면 과제는 남한 인민 전체의 생존권이 제국주의 전쟁에 의해 위협받고 있으며, 무고한 인민들이 미중전쟁에 희생되지 않기 위해서는 미군철수를 이뤄내야 한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설득하는 것이다.

  남한 사회 내에는 미국을 무조건적으로 추종하는 친서방 이데올로기가 퍼져 있으나, 친서방 이데올로기는 지금껏 미국이 남한을 군사적으로 보호하고, 자본주의적 번영을 가져다주었다는 인식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것이다. 허나, 미중 냉전체제 이래로 미국은 결코 남한의 ‘자본주의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최근 남한 내의 반도체 기업들로 하여금 미 본토로 생산시설을 옮길 것을 강제하여 남한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았고, 수년 전부터 대중제재를 강제하여 경제적 리스크를 안겨주고 있다. 친서방 이데올로기에는 필연적으로 균열이 생겨날 수 밖에 없다.

  남한 좌파는 친서방 이데올로기의 균열을 파고 들어야 한다. 지배계급의 미국맹종이 남한 인민의 ‘먹고 사는 문제’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이 남한 인민들의 삶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선전하여 미국의 반도체 본토화 정책 및 대중제재 강제에 반대하는 낮은 수준의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 첫 걸음이다. 이후 점차 대중의 의식을 끌어올려 민중의 생존투쟁을 반전투쟁으로, 반전투쟁을 반제국주의 투쟁으로, 반제국주의 투쟁을 반자본주의 투쟁으로, 반자본주의 투쟁을 혁명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인민에게 사태의 본질을 선전하고, 인민들의 의식을 단계적으로 발전시켜 투쟁의 강도를 강화해나가는 작업은 반드시 혁명적 전위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남한에서 혁명적 전위를 건설해내고, 전위를 중심으로 미제국주의와 전쟁에 반대하는 대중운동을 일으키는 것은 남한 인민의 생존권을 수호하기 위한, 그리고 동북아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가장 당면하고도 시급한 과업이다.

세계 혁명의 전망

제국주의 열강 간 모순의 격화는 한 편으로는 민중의 삶을 위협하는 전쟁위기를 불러오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혁명적 가능성을 불러오고 있다.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충돌은 앞서 언급했듯이 권력의 공백지대를 만들어 제3세계 국가들의 정치외교적 자율성을 강화했으며,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거나 혹은 벌어지려 하는 제국주의 열강 간의 전쟁은 역설적으로 열강들이 신식민지에 직접적으로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는 역량을 감퇴시켰다. 이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에 역량을 집중하던 프랑스가 니제르의 반프랑스 쿠데타 이후 프랑스군을 속수무책으로 철수시킨 사건으로 증명되었다. 또한 세계화 이래로 선진자본주의 국가 내부에서 이루어진 탈산업화는 신식민지로의 생산시설 이전을 초래하여 제3세계에 막대한 규모의 산업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등장시켰다.

  정치외교적 자율성의 강화와 경제적 착취의 고도화라는 이 이중적인 상황, 제3세계 국가에서의 산업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성장과 열강들의 신식민지에 대한 군사적 개입역량 감퇴는 주변부에서의 혁명적 조건을 고조시키고 있다. 현재의 제국주의 국제질서는 제3세계에 대한 극단적인 착취와 억압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신식민지들이 착취질서에서 이탈한다면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국 노동계급을 매수하기 위한 이윤을 확보할 수 없게 되며, 내부의 자본과잉공황을 더 이상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제3세계 혁명은 곧 세계혁명의 신호탄이며, 제국주의의 심장부를 노릴 세계인민의 비수이다.

  세계적 경제위기와 제국주의 열강 간 모순의 격화, 그리고 블록의 분화는 제3세계 혁명의 객관적 조건들을 충족시켰다. 주관적 조건은 각 신식민지 국가들의 반제혁명세력이 면밀하고 과학적인 이데올로기로 무장하여 강고한 전위를 구축할 때 충족될 것이다. 허나, 제3세계 혁명이라는 세계적 과업은 오직 제3세계 인민들의 어깨에만 올려져 있지 않다.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프롤레타리아는 제3세계의 투쟁을 지지하고 방어하기 위한 혁명적 국제연대에, 그리고 자국의 제국주의 정책 중단을 요구하는 반전평화투쟁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세계 혁명은 신식민지의 프롤레타리아와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프롤레타리아가 각기 자신들의 당면과업을 확고하게 인식하고, 당면과업을 추진하기 위한 전위조직을 구축하며, 혁명적 이데올로기로 무장하여, 각자 짊어진 책무를 철저하게 관철시킬 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완비 되었을 때, 무장한 인민의 파도는 전세계에 몰아쳐 끝내 제국주의자들의 마수를 좌절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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