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이 글은 말 그대로 현대시대에 올바른 변혁전술이 무엇인지 고민하고자 하는 글이다. 글의 저자는 한국 사회에 퍼져있는 여러 변혁 전술들의 대한 비평으로 시작해서 각각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최종적으로는 현대시대에 유용한 새로운 변혁 전술을 제안한다. 독자 여러분도 같이 고민해보면 좋을 것이다.
목차
I. 개요
II. 스파크론
III. 구조개혁론
IV. 자주적 민주정부론
V. 대안
I. 개요
변혁 이론은 변혁 전략과 변혁 전술로 나뉜다. 변혁 전략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의 변혁의 성격과 그 주체, 우군들을 정의하는 문제이며 변혁의 전술이란 변혁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형태로 이루어져야 하느냐에 관한 문제이다. 비록 변혁 전략과 변혁 전술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나, 본문에서는 변혁이론 중 변혁 전술이라는 부분을 집중하여 다뤄보고자 한다. 먼저, 현재 남한 사회운동진영 내에 존재하는 변혁 전술 담론들을 톺아본 뒤 각각의 문제점을 살피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본문의 목적이다.
II. 스파크론
가장 먼저 살펴볼 스파크론의 경우, 남한 사회운동진영 내에서 명시적으로 사회주의 변혁을 주장하는 이들, 소위 운동 내 ‘좌파’들의 주된 전술이다. 이름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스파크론은 일정한 혁명적 정세가 조성되고 이에 걸맞는 선전과 선동이 이루어진다면 노동자 계급의 자발성을 통한 변혁이 이루어진다는 이론이다. 변혁을 영도할 당과 전위 또한 이러한 정세 속에서 계급의식을 자각한 노동자들이 사회주의자들의 선전에 영향을 받아 자생적으로 조직하게 된다. 그렇기에 스파크론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소는 노동자 계급의 자발성과, 이러한 자발성을 각성 시킬 혁명적 정세, 그리고 노동자 계급의 자기조직화를 촉발시킬 촉매인 선전 선동이다.
변혁의 순간에 대한 이들의 입장은 조르주 소렐과 로자 룩셈부르크의 주장을 담습한다. 즉, 총파업과 총봉기 등의 순간은 결코 의식적인 지도 하에 이루어질 수 없으며, 당은 결코 이러한 변혁적 순간을 계획하거나 지도하지 않고, 대중의 자발성에 철저히 기댄 채 대중의 참모부로서의 역할만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필연적 파국을 향해 나아가기에 노동자 계급은 어느 순간 혁명적 정세에 발맞춰 자신들의 당을 스스로 단조해내고, 미시적으로는 우연적이지만 거시적으로는 필연적인 특정한 시점에 총파업 혹은 총봉기를 일으켜 일순간에 노동자 권력을 수립한다는 것이 스파크론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이러한 ‘혁명적 순간’이 오기 전까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조합 내의 일부 섹트로, 혹은 계급운동의 소수파로 존재할 수 밖에 없지만 혁명적 정세와 노동자 계급의 자기 조직화, 그리고 올바른 선전과 선동이 삼위일체를 이르는 순간 ‘혁명적 스파크’가 튀어오 오르며 마치 소수파였던 볼셰비키가 10월 혁명 직전에 각 지방의 소비에트를 장악한 것처럼 노동계급 내의 다수파로 부상할 것이다.
스파크론의 핵심적인 문제 중 하나는 노동계급의 자생성을 물신화 한다는 점에 있다. 노동계급이 생활적으로 체화하는 의식, 즉 노동계급의 자생적 의식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지배계급의 사상에 의해 영향 받아 형성되며, 그렇기에 자생적 계급의식은 조합주의적 의식에 머물 수 밖에 없다. 이는 임금 인상이나 노동 조건 개선 같은 경제적 투쟁에 대한 지지를 보내는 정도에 국한된 의식 단계로, 체제 변혁을 추구하는 혁명적 계급의식과는 구별된다. 혁명적 계급의식은 결코 ‘자생적으로’ 나타날 수 없으며, 외부로부터의 주입을 통해서만 형성될 수 있다.
즉, 혁명적 당 또한 자생적으로 형성될 수 없다. 지속적인 사회주의 선전이 곧 노동자의 계급의식을 발전시키고 혁명적 노동계급정당의 건설을 촉발할 것이라는 전망은 망상에 가깝다. 오직 사회주의자와 노동계급 내의 선진분자의 의식적이고 계획적인 결합을 통해 건설된 건설된 전위만이 노동계급의 계급의식을 일깨울 수 있으며, 이러한 전위는 노동계급의 ‘참모부’가 아닌 ‘사령부’가 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이어가야만 한다. 노동계급의 산발적이고 부분적인 투쟁은 당의 의식적 영도에 따라 계획적이고 정치적인 투쟁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결코 체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파크론의 또다른 문제는, 이러한 이론이 겉보기에는 볼셰비키의 10월 혁명에 충실한듯 보이지만 이들 이론에 의해 실질적으로 주장되는 바는 현실에서 존재했던 10월 혁명과 완전히 다르다는 점에 있다. 1917년 10월의 노동계급 대혁명은 ‘스파크’처럼 우연히 튀어나온 사건이 아니었다. 볼셰비키는 수년간의 준비와 조직을 통해 계급투쟁의 선봉에 서 있었고, 레닌의 4월 테제부터 10월 봉기 결정에 이르기까지 치밀한 전략과 계획 하에 진행되었다. 볼셰비키는 단순히 대중의 자발성을 믿고 따르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투쟁을 지휘하고, 노동자들을 조직했으며, 임시정부의 정치적 위기를 혁명의 기회로 전환했다.
볼셰비키가 소비에트를 장악한 것은 노동계급의 '자생적' 행동의 결과도, 혁명적 정세에 의한 필연도 아닌, 이미 강력한 조직력을 갖춘 볼셰비키 당이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 결과였다. 그들은 노동자, 병사, 농민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평화와 빵이라는 구호 하에 대중을 혁명운동의 한복판으로 던져넣었다. 이는 당이 혁명적 사령부의 역할에 충실하고 대중을 지도하는데 성공한 전형적인 사례이지, 스파크론이 주장하는 '참모부'의 역할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결론적으로, 스파크론은 현실에서 실현될 수 없는 이론일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주된 논거로 삼는 10월 혁명의 경험과도 모순되는 이론이다. 스파크론은 혁명의 주체인 전위당의 역할을 사실상 부정하고, 노동계급의 자생적 의식과 자발성을 과신함으로써 노동계급의 의식화와 조직화라는 사회주의자들의 과제를 선전과 선동의 영역으로 축소시킨다. 이는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의 파국을 기다리기만 하는 대기론적 태도로 이어질 수 밖에 없으며, 결국 그 어떤 변혁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없게 된다.
III. 구조개혁론
구조개혁론은 50년대 후반 이후 유럽권을 중심으로 시작된 변혁 이론으로, 의회민주주의 국가 하에서 사회운동세력이 국가 기구 내부로 침투하여 국가의 근본적 요소들을 개혁 함을 통해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론이다. 구조개혁론은 서유럽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유로코뮤니즘과 흐루쇼프 및 소련공산당이 소련에서의 반혁명 이후 내세운 반독점정부론의 영향을 받아 정립 되었는데, 구조개혁론에는 수많은 조류들이 존재하지만 국가를 특정한 계급에 의해 직접적으로 지배 받지 않는 중립적 기관으로 바라본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구조개혁론은 남한 사회운동 내에서 ‘명시적으로’ 수용된 적은 거의 없지만, 최근 ‘체제 전환’이라는 구호를 전면화 하고 있는 운동 세력들의 논조가 대다수 구조개혁론에 기반하고 있기에 남한 사회운동진영 내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부정하며, 민주적 절차를 통해 현행 법제도와 국가기관을 노동계급의 역량으로 ‘점거’하여 국가의 사회주의적 개조가 가능함을 긍정한다. 이러한 입장의 가장 큰 문제는 국가에 대한 관점에 있다. 국가를 특정 계급에 의해 직접적으로 지배받지 않는 중립적 기관으로 인식하는 것은 치명적인 오류이다. 맑스주의 전통은 국가를 어떤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계급 지배의 도구로 정의한다. 엥겔스가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밝혔듯이, 국가는 계급 간의 화해 불가능한 모순으로부터 발생했으며, 지배계급의 이익을 보호하고 피지배계급을 억압하는 폭력 기구이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이 민주적 절차를 통해 국가 기구 내부로 '침투'하여 국가를 개혁하려는 시도는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다. 자본가 계급은 국가의 핵심 부문인 군대, 경찰, 사법부, 관료제를 통해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유지한다. 따라서 노동계급이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더라도, 자본가 계급은 국가의 폭력 기구를 동원하여 사회주의적 개혁 시도를 무력화하거나, 제국주의 세력과의 내통, 파시즘과의 결탁 등을 통해 저항할 것이다. 이는 이미 칠레 혁명의 분쇄와 아옌데의 실패라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증명 되었으며, 이미 한 차례 실패한 실험을 다시금 같은 방식으로 시도하려는 것은 매우 허망하면서도 무의미한 행동이다. 기실, 동일한 시도라고 보는 것조차 어려운 것이, 역사적 구조개혁론은 노동계급의 영도성과 당의 역할을 부정하지 않고 구체적인 사회주의 사회의 상을 구상하는 데 성공했다면 오늘날의 ‘체제전환론자’들은 ‘체제전환’에 있어 노동계급과 당의 영도적 역할마저 부인하기에 구조개혁론의 더더욱 퇴보한 형태를 자신들의 노선으로 채택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구조개혁론은 마치 계급투쟁이 의회 내의 논쟁이나 법률 제정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 것처럼 착각한다. 그러나 혁명은 단순히 법률을 바꾸거나 제도를 개선하는 문제가 아니라,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을 재정립하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는 결코 기존 국가권력의 전복이나 정복이 아니며, 부르주아 국가권력을 파괴하고 새로운 국가권력을 수립하는 일련의 파괴와 창조의 과정이다. 해당 과정은 결코 혁명적 폭력, 즉 인민군대에 의한 내전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IV. 자주적 민주정부론
자주적 민주정부론은 자유주의자를 포함한 제반 민주주의 세력과의 광범위한 대연합을 통해 미제국주의에 맞선 통일전선을 형성하여 선거를 통해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한 후, 북한과의 연방제 통일을 통해 사회주의로 이행한다는 변혁전술이다. 이러한 변혁전술에 있어서 전위당은 오직 북에 있는 조선로동당 뿐이며, 남한에는 선거전술을 추진하기 위한 대중정당이나 이러한 대중정당을 지도하기 위한 전략당만이 필요하다고 바라본다.
자주적 민주정부론의 관점에서 변혁은 총 두 단계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첫 번째 단계는 자주적 민주정부의 수권을 통한 반제민주주의 변혁이며, 두 번째 단계는 북한과의 통일을 통한 사회주의 변혁이다.
해당 노선의 문제는 반제민주주의 변혁이 선거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망상적 정세관에 있다. 한반도 남반부는 미군에 의해 강제 점령 중인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거를 통해 미군을 몰아내고 북과의 통일을 도모할 수 있다는 발상은 현실성을 갖추기 어렵다. 만일 자주적 민주정부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자유주의자를 포함한 다양한 계급들과의 연합을 통해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더라도, 이 정부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와 제국주의적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진정 남한이 미제국주의의 통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미제국주의에 종속된 남한 국가와 군대를 파괴하고 미제국주의의 조종을 받는 파쇼세력들을 분쇄해야만 한다. 미제국주의와 그 하수인들은 결코 투표를 통해 남한에서의 정치적 경제적 지배력을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모든 변혁의 단계에서 변혁의 주체는 노동자, 농민이 중심되는 혁명군중이다. 마오 주석은 군중노선을 통해 혁명군중의 창조적 역량과 주도적인 역할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자주적 민주정부론은 남한 대중의 혁명적 주체성을 부정하고, 남한의 혁명군중들에게 전위의 역할을 부여하지 않는다. 조선로동당만이 한반도의 유일한 전위당이라는 자주적 민주정부론의 규정은, 남한의 혁명 투쟁을 북한의 대외전략에 종속시킬 뿐이다. 사회주의 건설은 오직 한 국가의 프롤레타리아와 인민이 스스로의 힘으로 혁명을 완수하고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적 소유를 확립할 때에만 가능하다. 만약 북한의 지원을 통해 사회주의 변혁을 이루어낸다 하더라도 남한의 프롤레타리아가 스스로의 힘으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경험을 올바르게 획득하지 못한다면 필연적으로 남한의 프롤레타리아는 사회주의 사회 내에서의 계급투쟁을 올바르게 수행하지 못할 것이며, 이로 인해 필연적인 구체제 복고의 위협에 대처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주적 민주정부론은 선거주의적 환상에 빠져 계급투쟁의 본질을 외면하고, 변혁에 있어 남한인민의 주체성을 부정하며, 사회주의 변혁이라는 과제를 외부 세력에 의존하고자 하는 사이비 이론에 불과하다.
V. 대안
우리는 위의 변혁 전술들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오늘날 남한의 사회운동진영이 극복해야 할 이론적 경향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자생성에 대한 물신화, 당의 영도 부정, 국가에 대한 잘못된 관점, 선거주의, 대중의 주체성 부정이 그것이다.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것은 자생성에 대한 물신화와 당의 영도 부정이다. 노동계급의 자생성은 조합주의적 의식을 넘어설 수 없다. 이러한 의식의 한계를 분쇄하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 이념을 주입할 정치적 주체, 즉 전위당이 필요하다. 당은 노동계급에게 선진적 과학과 선진적 이념을 제공하고, 투쟁을 올바르게 지도하며, 사회 곳곳에 계획적으로 이중권력을 뿌리내리고 미조직된 대중에게 규율과 무장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스파크론이나 자주적 민주정부론처럼 당의 역할을 축소하거나 외부 세력에게 의존하는 것은 당의 영도라는, 변혁의 일반적 총론을 부정하는 일탈에 불과하다.
다음으로, 국가에 대한 잘못된 관점과 선거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국가는 중립적인 기관이 아니라, 독점자본의 집행위원회이자 지배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억압의 도구다. 의회와 선거는 체제 내에서의 권력적 균형과 보완을 위한 기관이지, 체제를 해체하고 파괴하기 위한 도구가 될 수 없다. 따라서, 노동계급은 기존의 국가 기구를 점거하거나 개조하려 해서는 안 된다. 노동계급의 권력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혁명적 폭력을 통해 기존의 부르주아 국가와 군대, 관련 기관을 완전히 분쇄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입각한 신국가를 건설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대중의 주체성을 부정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변혁은 소수의 선동이나 ‘자본주의의 일시적 파국’, 혹은 외부 세력의 도움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변혁은 전위당의 지도 하에 노동자, 농민을 포함한 광범위한 인민 대중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총체적인 계급투쟁의 결과물이다. 인민대중의 주체성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변혁도 불가능하며, 설사 외부로부터 변혁이 이식된다 하더라도 결코 복고의 위협으로부터 노동계급 권력을 옹위해낼 수 없다.
결론적으로, 남한 사회운동진영은 개량주의적 환상과 종속적 사고를 버리고, 혁명적 전위당의 영도, 혁명적 폭력을 통한 남한 국가 파괴, 그리고 인민 대중의 주체성에 기초한 계급투쟁을 전면화함으로써 진정한 변혁의 길을 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