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수 하사가 2021년 2월 27일 사망하였다. 어제는 변희수 하사의 5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그날 변희수재단은 대전현충원 충혼당에서 변희수 하사의 5주기 추모행사를 진행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나라와 국민을 수호하는 군인이 되는 것이 소원”이었다는 변희수 하사는 분명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용사”여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왜 국방부는 변희수 하사를 강제 전역 시키고, 그녀가 자살에 이를 때까지 방치했으며, 인권위가 나서기 전까지 순직 결정을 거부하였는가? 또 왜 이 사회의 일부는 국방부의 그러한 결정을 두둔하며, 문제의 책임을 변희수 하사에게 돌리는가?
변희수 하사는 트랜지션을 위하여 국군수도병원에서 호르몬을 처방받고, 수술을 위한 상담을 지속하였다. 2019년에는 트랜지션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지휘관들의 허가를 받았으며 의료 목적의 휴가로 출국 후 수술을 받았다. 부대 일선의 지휘관들이 직접 면담하고 허가한 사항이라면, 우리는 트랜지션이 군인 변희수에게 문제가 되지 않으며 이후의 복무에도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판단 한 것이라고 봄이 옳을 것이다. 육군본부와 국방부가 그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직무복귀를 불허하고 강제로 전역시켰다는 것은, 그녀에게 가해진 탄압이 단순히 혐오 세력의 준동과 군사조직의 보수성에서만 기인한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남한 국적을 가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정체화하고 트랜지션을 고민한 트랜스여성, 혹은 지정 성별이 남성인 젠더퀴어라면, 트랜지션에 있어 “신체검사”라고 하는 요소를 필수적으로 고려해야만 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신체검사, 즉 병역판정검사는 주민등록상 성별이 남성으로 지정되어있는 모든 인민을 징집하여 그들의 신체에 급수를 매기고 병역 자원으로서 분류하는 제도로서, 그 자체로 트랜스젠더에게 억압적일 수 밖에 없다. 뒷자리가 1 혹은 3으로 시작하는 트랜스 젠더들은 병무청에 의해 호출되는 그 순간부터 남성으로 철저히 미스젠더링되며, 그들이 남성이 아니라는 사실은 트랜스젠더들 스스로가 자신의 금전적·시간적 비용을 투입하여 입증할 의무를 가지게 된다.
그마저도 전시근로역 처분은 최소 6개월 이상의 호르몬 투여 등을 요하는 등 그 기준조차도 까다롭게 되어있으며, 더욱이 호르몬 투여를 진행하다 중단한 사례 일부를 병무청이 병역면탈로 고발 하는 일로 인하여 (그들이 진정으로 고작 군대를 빼기 위하여 영구적 성기능 손실을 감수하였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트랜스젠더는 자신의 트랜지션이 일종의 국가적 범죄, 혹은 그에 준하는 불온한 일로 여겨질까 두려워 위축되게 된다. 결국 트랜스젠더들은 “신검 받기 이전에 호르몬 맞으면 행운”이라는 말을 하고, 혹은 퀴어 억압적 공간인 군대를 억지로 버텨가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공민권과 트랜지션의 정당성을 획득한다.
이 내용을 읽은 여러분 중에서 이렇게 되묻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변희수 하사와 신검의 사례를 들어 성소수자 억압의 원인을 군대에서 찾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 아닌가? 서구 선진국 중에도 남성, 혹은 전체 인민을 군대로 징집하는 사례는 많다. 그리고 이들 국가에서 트랜스젠더의 인권은 남한에 비할 수도 없을 만큼 훌륭하다!”
그러나 반대로 묻자면, 이들 국가에서 병역을 기피하거나 거부한 자에게 법에 정해진 형을 선고하는 것을 넘어, 전사회적으로 그를 천인공노할 범죄자로 규탄을 하고, 사법부도 아닌 일개 정부 부처인 외교부가 귀화 시 영구적으로 입국을 금지하는가? 혹은 검사에 따라 정당하게 보충역 내지 면제 처분받은 이들을 군대 밖 민간 사회에서도 하자가 있는 사람으로 분류하고 직간접적으로 차별을 가하는가? 그런 국가에서 “남자는 당연히 군대에 가야”하고 “군대에 가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며 이에 따라 군대에 가지 않는 여성은 당연히 가산점 등에서 차별받아야한다는 주장이 아무런 규탄을 받지 않는가?
즉 군대에 기인한 차별이 군대 그 자체에서 기인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는 오히려 군사적 목적에 따라 모든 국민을 관리하고 통제하며 사회 전반을 강한 규율에 따라 군사적으로 조직하는 남한 사회의 병영국가적 특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징병제는 여성을 무력한 존재로 격하시킴으로써 남성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존재로 재사회화하여 전 사회를 병영국가 이데올로기로 재조직하는 관문 역할을 한다. 즉 국방부와 육군이 직접 변희수 하사를 강제로 전역시킨 사례는 단순한 성소수자 혐오가 아니라, 성소수자와 여성을 억압하는 그 자체가 국가적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남한 사회는 이러한 구조가 되었는가? 해방 후 38선 이남을 점령한 미군은 건국준비위원회가 수립한 조선인민공화국을 분쇄하고 한반도의 남반부를 자신들의 병참기지이자 식민지로 이용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남한은 북한, 중국, 러시아 등 북방 침략을 위한 전초기지로 사용되는 동시에, 반식민지로서 미제에 종속적인 산업 구조 하에 자립경제를 수립하지 못하 고 초기에는 밀가루, 설탕, 방직의 삼백산업 등 경공업을 중심으로, 이후에는 미국 산업에 필요한 중간재를 생산하거나 기술과 부품을 받아 제품을 조립하는 산업으로 이른 바 수출주도 산업화의 길을 걸었다.
또한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박정희와 전두환의 쿠데타를 비호하였으며, 이들로 대표되는 매판자본과 관료자본 세력은 지금까지도 남한의 민중을 억압하는 제도와 문화를 다수 정착시켰다. 일례로 군대에서의 병역 수행을 어른이 되기 위해 통과해야 할 필수 의례로 보는 문화, 주민등록을 통해 국민 개개인에게 식별번호를 부여하여 생년월일, 성별, 출신 지역을 알아보기 쉽게 하는 제도 등이 있다. 특히 주민등록번호는 뒷자리 대부분을 난수화하면서도 성별 정보만큼은 끝끝내 남겨두어 성 역할을 고정·강화하고, 트랜스젠더들이 자신의 성별 정체성이 아닌 지정 성별로 인식되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러한 성 역할을 강화하는 제도는, 남한의 관료자본주의적 체제에 기인한 생산성이 낮은 장시간 저임금 노동 하에서 노동력의 재생산을 유지하기 위하여, 즉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고 출생률을 유지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남한의 여성 억압과 성소수자 억압은 식민국에 상납하는 이익을 유지하고 남한 민중을 더 효율적으로 착취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았을 때, 물론 남한에서 성소수자 해방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소수자들이 조직화되고 세력화되어 스스로의 해방을 위해 투쟁해야한다. 그러나 이 해방의 임무가 완수되기 위해서는 성소수자의 이익은 남한 민중 전체의 이익과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궁극적으로 남한의 반제·반미·신민주주의혁명을 위하여 함께 투쟁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