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계엄의 배경, 87년 체제
3. 남한 민중의 당면한 과업
1. 개요

지난 12월 3일, 우리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윤석열은 대국민담화 중 기습적으로 계엄을 선포한 후 불법적으로 의회와 정당의 활동을 금지하고, 포고문에 따르지 않는 자들에 대한 “처단”을 천명했다. 그날 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완전히 붕괴될 위기에 처했으며 남한에는 87년 이전의 노골적인 파쇼독재 체제가 들어설 뻔 했다.
혹자는 윤석열 내란사태를 선진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수 없는 일로, 즉 성공할 수 없는 계획이 윤석열의 광증에 의해 추진된 일종의 해프닝으로 평한다. 또한 누군가는 윤석열의 오판을 비웃으며 21세기 민주국가에서 군부를 동원한 내란은 애초에 성공할 수 없었다며 촌평한다.
하지만, 이번 내란사태는 과연 윤석열 개인의 독단이나 광증에 의해 일어난 것일까? 남한은 정말로 이번 내란사태와 같은 파쇼 쿠데타가 성공할 수 없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인 것일까?
모든 사회적 현상의 배후에는 계급적 역학이 존재한다. 남한 전체를 뒤흔든 친위 쿠데타 미수 사태를 두고 단순히 윤석열이라는 개인의 판단력을 문제시하는 것은 과학적이지 못한 사고이다. 윤석열의 내란이 단순히 윤석열의 오판과 판단미숙으로 의해 벌어진 사태라면, 또한 남한의 민주주의가 파쇼 쿠데타 따위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을 정도로 “선진적”이라면 윤석열 일당은 이미 체포되어 법의 심판을 받고 있었을 것이다.
현실은 다르다. 그 어떤 국가기관도 반역자 윤석열에 대한 체포를 시도하지 않고 있으며, 국민의 힘의 정치인들은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윤석열의 내란을 옹호하며 계엄의 정당성을 설파하고 있다. 군부의 일체의 항명도 없이 친위 쿠데타를 추진할 수 있으며, 친위 쿠데타가 실패하더라도 체포나 특검을 비롯한 조치의 대상이 되지 않고, 언론과 정계로부터 대대적인 옹호를 받을 수 있는 이 일련의 현상은 체제 자체에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서는 결코 설명될 수 없다.
그렇기에 본고에서는 윤석열의 내란이 시도될 수 있었던, 그리고 실패 이후에도 일체의 청산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는 사회적 배경을 87년 체제 자체로부터 밝히고, 대통령의 내란미수라는 초유의 사태에 있어서 민중의 당면한 과업이 무엇인가를 제시하고자 한다.
2. 계엄의 배경, 87년 체제

윤석열은 홀로 내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윤석열에게는 자신의 명령에 따라 국회를 봉쇄하고 헌법기관을 침탈할 군부가 있었으며,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호소하고 윤석열의 행위를 비호해줄 거대 언론이 있었고, 계엄해제 표결에 불참하고 내란 실패 후에도 탄핵안에 적극 반대해준 국회의원들이 있었다. 이들은 노골적으로 군부파시즘 체제로의 회귀를 지지하는 파시스트 집단이며, 실질적으로도 87년 체제 이전의 군부파쇼들의 명백한 계승세력이다.
“선진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과연 어떻게 이런 세력들이 정계의 가장 거대한 축 중 하나로 자리잡은 채 전사회적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단 말인가? 그 이유는 87년 체제, 즉 제6공화국의 시작점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전두환 신군부 정권 말기, 6월 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이 벌어지며 신군부에 대한 전민중적 분노가 치솟아 올라오자 더 이상 군부 파시즘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군부 세력은 민주 진영 내의 우익이었던 김영삼, 김대중 등과의 정치적 타협을 시도했다. 군부 세력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6공화국 체제에서도 자신들을 청산하지 않고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시켜줄 것을 요구했다.
민주진영 내의 우익과 군부 파쇼세력은 노동자대투쟁이 더욱 커지기 전에 빠르게 정국을 안정화 시키고 노동계급의 투쟁을 억제해야 한다는 동일한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타협에 이르렀다. 그렇게, 파쇼 세력과 민주진영 내 우익 간의 불완전한 타협에 근거한 87년 헌법이 탄생하였다. 파쇼 세력의 대민탄압을 위한 핵심적 법제도 기반인 국가보안법은 87년 체제에도 잔존하였고, 새롭게 제정된 집시법은 일체의 집회와 시위를 경찰 측에 신고해야만 개최할 수 있게 하는 강력한 대민통제 기조를 이어갔다.
군부 파시즘 체제의 법제도와 군부, 언론, 정치세력과 이들을 비호하던 독점자본은 6공화국 체제에 그대로 계승되었다. 87년 체제의 첫 대통령 노태우 정권은 수많은 노동자와 학생들을 불법적으로 살해하며 공안 정국을 이어갔으며 민주정부를 자칭한 김영삼 정권은 정리해고제를 도입하고 노동법을 개악하여 노동자민중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진행했다.
이렇듯 군부 파쇼 세력은 87년 체제 이래로 단 한번도 청산된 적 없으며, 남한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마저 완성되지 못한, 파시즘과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적대적 균형을 이루고 있는 기형적 체제이다. 87년 체제라는 대립물 내의 파쇼적 부위는 제6공화국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끊임없이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이북과의 군사적 분쟁을 유도하여 권력을 찬탈하고자 하는 시도를 이어왔으며 작금의 내란은 상술한 시도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가장 노골적이고 반민중적인 파쇼집단의 권력장악 시도이다.
이번 내란사태는 윤석열 개인의 판단오류로 인해 일어난 해프닝이 아니다. 계엄선포와 국회봉쇄, 친위쿠데타 계획 등 이 일련의 모든 사태는 87년 체제 내에 잔존하고 있던 파시스트적 부위가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고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부위를 파괴하기 위해 벌인 조직적, 계획적 반역이다. 윤석열 뿐만이 아니라 제6공화국의 군부, 거대언론, 파쇼여당의 정치인들 전체가 이번 반역의 핵심적 주체이다. 6월 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이 파쇼세력 청산과 완전한 민주주의 체제의 건설이라는 과업을 이룩하지 못하고 미완의 혁명으로 종결되었을 때부터, 이 모든 사태는 예견되었다.
3. 남한 민중의 당면한 과업
윤석열의 탄핵이 인용되더라도 윤석열의 내란이 가능할 수 있었던 사회적 배경, 즉 파쇼 군부와 파쇼 언론, 파쇼 법제도, 파쇼 정치세력의 완전한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파쇼 세력은 자신들의 권력찬탈 시도가 성공할 때까지 끊임없이 반역을 획책할 것이다. 내란을 진정으로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윤석열이라는 개인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하고 처벌하는 것을 넘어 이 사회에 잔존해있는 파쇼 세력 전체에 대한 청산을 요구해야 한다. 즉, 당면한 투쟁의 과제는 반윤석열 투쟁을 넘어 반파쇼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김영삼 정권 때는 청명계획을 통해 군부정권의 복귀를 획책했으며 노무현 정권 당시에는 전작권 회수 반대를 명분으로 민간정권에 대한 대대적 항명을 꾀하고, 박근혜 정권 당시에는 계엄계획을 작성하더니 작금에 와서는 불법계엄과 친위쿠데타에 적극 획책한 파시스트 군부를 완전히 청산해야 한다. 군부정권의 유산이자 민중에 대한 파쇼적 탄압을 위한 도구인 집시법과 국가보안법을 철폐해야 한다. 군부와 친일파의 후예들이자 오늘날의 가장 거대한 파쇼 정치세력인 국민의 힘을 강제해산하고 국민의 힘 관련자들의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해야 한다. 파쇼세력을 언제나 비호해온 조중동을 비롯한 거대언론을 폐간하고, 이들을 물리적으로 옹위해온 주한미군을 철거해야 한다.
군부 청산, 집시법 및 국보법 철폐, 국민의 힘 해산, 조중동 폐간, 주한미군 철수는 반파쇼투쟁의 시급한 과업이다. 민주노총이 탄핵집회에서 헤게모니를 주도하고 있으며 대중이 민주노총의 영도를 받아들이고 있는 작금의 정세는 이 사회의 파쇼세력을 완전히 뿌리 뽑을 절호의 기회이다. 민주노총은 내란세력의 배후가 이 사회에 잔존해있는 파쇼적 부위라는 사실을 대중에게 폭로하고, 탄핵 구호를 확대 및 발전시켜 반파쇼투쟁의 시급한 과제들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좌파들의 구호 또한 단순한 헌정수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내란은 6공화국 헌정질서에 대한 도전이 아닌, 6공화국 헌정질서 자체로부터 기인한 사태라는 것을 대중에게 폭로해야 한다. 출석을 거부한 내란수괴 하나 체포하지 못하는 무능하고 무력한 87년 체제의 민낯을 까발려야 한다. 윤석열 일당의 타도 자체에만 집중하고 있는 우익야당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내란 정국의 헤게모니를 탈취하고, 대중들의 자발적인 투쟁을 전면적이고 전국적인 반파쇼투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힘을 기울여야 한다.
헌정수호를 외치며 우익야당의 헤게모니에 흡수 당하는 무력한 태도와, 작금의 사태를 단순한 부르주아 정치세력 간의 아귀다툼으로 규정하고 사회주의 변혁과 같은 과잉된 구호를 내거는 태도 모두 지양되어야 한다. 대중의 투쟁은 단계적으로 발전한다. 좌파는 반정부투쟁을 반파쇼투쟁으로, 반파쇼투쟁을 반제투쟁으로, 반제투쟁을 반자본주의 변혁운동으로 단계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대중의 의식이 반파쇼투쟁 수준으로도 끌어올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주의 변혁을 외치는 것은 결코 대중에게 호소력을 지닐 수 없다.
성급하지도, 냉소적이지도 않은 태도로 반파쇼투쟁의 물결을 전면적으로 일으키자. 87년 6월에 달성하지 못한 파쇼 청산의 과업을 이번 기회에 반드시 완수하자. 반파쇼투쟁은 남한 민중의 당면한 과업이며, 변혁을 위한 첫 번째 걸음이다. 윤석열 개인의 퇴진을 넘어, 이 사회에 곳곳에 뿌리박혀 있는 악성 종양인 파시스트 세력을 모조리 쓸어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