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지뢰 폭발 사건과 군사분계선 문제
서문
지난 9월 21일, 파주의 비무장지대(DMZ) 내에서 지뢰가 폭발해 세 명의 병사가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이후 합참과 유엔사는 합동조사를 거쳐 해당 지뢰가 북에 의해 의도적으로, 대남도발의 목적으로 군사분계선(MDL) 이남에 설치된 것이라 결론짓고, 북의 정전협정 위반을 비판하고 사과와 책임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무작정 부정할 생각은 없다. 부상을 입은 장병들의 피해 역시 결코 가볍게 취급해선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북조선이 지뢰를 매설했다는 사실과, 북조선이 남측 병사들을 살상할 의도로 그리했다는 주장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 전자는 지뢰의 설치 주체와 행위에 관한 문제이지만, 후자는 행위자의 구체적인 의도와 작전 목적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남북 사이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사실로 간주하고 군사적 대응을 정당화하는 것은 한반도의 평화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호전광적 태도에 불과하다. 북에 대한 불필요한 자극을 중단하고, 남북 간의 평화적인 소통창구를 재건하여 이번과 같은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하는 일이다. 이 글은 DMZ 지뢰 사건에 관한 사실관계들을 밝히고, 근시안적 호전주의가 아닌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의도적 대남도발인가?
북측의 고의성을 주장하는 쪽이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사실은, 사고 지점이 국군이 그동안 발을 디딘 적이 없는 불모지라는 점이다.
사고를 당한 병사들은 새로운 순찰로를 개척하는 작전을 진행중이었으며, 해당 지점 또한 당연히 국군의 통상 순찰로가 아니었다. 해당 장소가 불모지라는 것은 북측에게도 마찬가지다. 사고 지점에서 인민군의 동향이 관찰됐다는 보도나 발표는 존재하지 않는다. 북측도 이곳에서 불모지 개척 작전을 수행하지 않았다면, 남측 순찰로도 아닌 곳에 위험을 감수하고 지뢰를 새로 매설할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북측이 사상자를 낼 목적으로 그곳에 의도적으로 지뢰를 매설했다는 주장이 참이 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단 두 가지 뿐이다. 작전을 지휘한 25보병사단의 보안수준이 북이 마음대로 작전정보를 열람할 수 있을 정도로 형편없거나, 인민군이 초능력을 가지고 있어 남측의 작전경로를 예언으로 알아냈다는 것이다.
합참은 자체조사 이후 해당 지뢰가 고의적으로 해당 지점에 매설된 것이 맞다고 결론내렸다. 그러나 본래 매설지뢰란 땅 깊은 곳에 묻고 풀이나 이끼 등의 자연물로 위장하여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이 보통이다. 사고 직후 대피하던 인원들이 발견한 지뢰나 이후 합참 조사 도중 발견한 지뢰들은 대부분 윗면이 드러날 정도로 얕은 곳에 묻힌 상태였다. 북이 모종의 수단으로 남측의 순찰로 개척작전을 파악하여, 병사들의 지나갈 정확한 지점에 눈에 훤히 드러나는 지뢰들을 설치했다는 주장에 과연 설득력이 있는가?
지뢰의 유실가능성을 부정하는 근거로 그것이 부분적으로나마 흙에 덮여있었음을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비와 바람의 영향을 받는 것이 지뢰뿐이겠는가? 진창이 된 토양이 흘러내리며 지뢰를 운반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그렇다면 지뢰는 당연히 흙에 반쯤 파묻힌 형태로 발견될 것이다. 합참은 최근에 그만한 수준의 비가 내린 적이 없었기 때문에 유실일 수 없다고 주장하나, 지뢰유실이라는 것이 기간을 정하고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오래전에 유실된 지뢰가 나중에서야, 한참이나 떨어진 장소에서 발견되는 경우는 결코 드물지 않다.
물론 해당 지뢰가 매설지뢰일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의도적인 도발, 국군 장병에 대한 살상을 목적으로 한 배치라는 주장은 말이 되지 않는다. 국군 합동참모본부는 고의성을 지니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도발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고의가 아닌 도발이라는 것이 어떻게 성립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남측이 지금껏 이용한 적 없는 경로에, 합참의 추정대로라면 1년도 더 전에 순찰대가 올 것을 예측하고 지뢰를 매설하였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소리다.
군 관계자들과 국민의힘에선 ‘고의성 없는 도발’같은 궤변까지 늘어놓으면서 이번 사건을 도발로 몰아가려 하고 있다. 군은 또한 북의 도발행위에 대한 대응이라는 명분으로 대북방송을 실시하고, 대규모 야외기동훈련을 진행했으며, 군사분계선 인근에서 대대적인 지뢰제거작업을 진행할 것임을 발표했다. 이들 종미 파시스트 세력은 자신들의 활동을 ‘북의 도발에 맞선 강경한 대응’으로 포장하려 하나, 이들의 진정한 의도가 남북 대립을 고조시켜 안보불안과 반공주의를 강화하고, 무력충돌을 유발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윤석열이 시도한 것이 바로 그것 아니었던가.
국경선화와 국경요새화
이번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북조선이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국경선화 작업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23년 11월에 9.19 남북군사합의가 사실상 파기된 이후, 북조선은 김정은 총비서의 적대적 두 국가론 선언을 계기로 2024년 4월부터 군사분계선 인근에서 지뢰지대 구축, 남북 연결도로 폭파, 철책 설치 등 국경요새화 작업에 착수했다. 이는 선제타격론과 대규모 한미군사훈련, 무인기 도발을 비롯한 윤석열 정권의 노골적 대북적대에 의한 결과였다.
일각에서는 북의 국경선화를 그 자체로 대남적대행위, 전쟁준비로 취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의 목적이 전쟁준비라면 어째서 자신들이 진격할 방향에 지뢰를 대량으로 깔아놓겠는가? 진공을 위해 지뢰를 제거하기 시작하는 순간 즉시 남측에 파악될 것이 분명할텐데 말이다. 이는 전쟁에 대한 준비가 아니라, 역으로 북에게 전쟁의도가 없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호전주의자들은 국경선화를 저지하기 위해 북에게 ‘맞대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구체적 방법에 대해 그들은 말하기를 꺼린다. 대북확성기니 유감표명이니 하는 것들로 북의 마음을 돌리고 요새화를 멈출 수는 없다. 이들이 말하는 맞대응이란 결국 국경선화를 물리적으로 가로막는 것, 즉 북과의 군사적 충돌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국민의 삶을 위협하는 전쟁광적 음모가 아닐 수 없다. 북과의 전면전을 벌이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당장에 무슨 수로 국경선화를 막아보겠다는 공상적인 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
군사분계선의 불확실성
이번 사태에서 북의 고의성을 주장하는 자들이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는 것은, 군사분계선의 위치 자체가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것만큼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군사분계선은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에 따라 설정됐다. 당시 정전협정 부록 지도에 군사분계선을 표시하고, 이를 현장에서 식별할 수 있도록 1,292개의 표식물이 약 500m 이내 간격으로 설치되었다. 이중 2015년 유엔사 조사에서 확인된 것은 181개에 불과하다. 70여년 전과 현재의 측량 오차. 표식물의 유실 및 훼손, 서로 다른 측량방식 등 여러 사유로 인해, 오늘날 군사분계선의 위치에 대해서는 일치된 견해가 존재하지 않는다. 남아있는 식별물들 사이를 직선으로 연결한 선, 정전협정 당시의 원본 지도에 따른 선, 실제 초소에서 사용되는 선 등이 모두 다르며, 국군, 유엔사, 미국 정보기관들이 규정한 위치 역시 상이하다. GPS 체계 대신 러시아 위성항법체계를 사용하는 북측 역시 이들과는 다른 MDL을 사용한다.
이런 상황에 과연 북이 정말로 군사분계선을 월선하여 지뢰를 설치하였는지 자체를 확인할 방법이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설령 해당 지뢰가 유실이 아닌 매설이 확실하다 하더라도, 북의 군사분계선이 어디에 그어져있는지를 알 수 없다면 그것을 의도적인 월선으로 볼 수는 없다. 사고 현장은 유엔사 기준 군사분계선에서 남쪽으로 10m 내려온 지점이었다고 한다. 지금처럼 군사분계선의 경계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10m의 오차를 명백한 고의적 도발로 단정짓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 심증을 갖고 북에 경고사격 등 위협을 하며 강압적인 지뢰작업 중단을 요구한다면 과연 북조선이 수긍할까? 이미 팽팽한 긴장상태인 남북 간 분쟁을 불필요하게 격화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겠는가?
현재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는 쪽이 국군 측임을 또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현상황이 본질적으로 양측의 MDL 위치에 대한 오해로 빚어진 일임에도 불구하고, 국군은 비무장지대 전역에서 북에 200여 차례나 경고사격을 가하였으며, 지난달 15일에서 17일까지 사흘 동안에는 동부전선 21사단 일대에서만 60회에 달하는 경고사격을 가한 바 있다. 국군이 과도한 대응을 통해 일방적으로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으며, 국제사회에 피해자가 아닌 도발 가해자로 받아들여지고 국제적 신뢰를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결론
호전주의는 결코 해답이 될 수 없다. 현재의 갈등 자체가 윤석열 정권의 전쟁광적 행보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생각하면, 호전주의는 사태를 악화시킬 뿐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먼저, 군사분계선 일대의 적대행위를 종식해야 한다. 무분별한 경고사격을 중단하고, 긴장을 키우는 대규모 야외기동훈련을 유예해야 한다. 이는 북에 대한 굴복도, 양보도 아니다. 사태를 더 나빠지지 않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양측이 서로를 향해 총구를 들이댄 채로는 어떤 협력도, 건설적 대화도 불가능하며, 들불 하나가 온 들판을 태우듯 작은 오판 하나가 곧바로 무력충돌로 번질 수 있다. 그 위험을 가장 먼저 감당해야 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최전방의 장병들과 접경지역 주민들이다.
다음으로, 군사분계선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야 한다. 이번 사건의 뿌리에는 MDL의 위치에 대한 남북 간의 입장 불일치가 존재한다. 이를 방치한 채로 책임 공방만 이어간다면 같은 일은 반드시 반복될 것이다.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를 활용하고 남북 군사당국 간 실무협의를 열어, 표식물 현황과 각자가 사용하는 기준선을 공개하고 대조해야 한다. 이후 접경지역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공통 기준을 만드는 작업도 뒤따라야 한다. 또한 지뢰 매설 및 제거 현황을 서로 통보하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국경선화 작업을 이유로 긴장이 계속된다면, 지뢰 정보의 공유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사고 예방책이기 때믄이다. 이는 오직 양측의 적대행위 종식이 선행될 때에만 가능한 방법이다.
이는 또한 남북간의 끊어진 소통창구가 복원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남북 군통신선이 복구되어야 사건이 터졌을 때 즉시 의사를 확인하고 오해를 풀 수 있다. 9.19 남북군사합의의 정신을 되살려 DMZ 내 적대행위 중단과 완충구역 설정, 상호 통보 체계를 재건해야 한다. 현재 북이 이러한 제안에 응하고 있지 않은 것은 남한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적대행위를 종식하는 것은 남북간 신뢰회복의 첫 단추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건의 조사는 투명하고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폭발물의 종류와 매설 시점, 유실 가능성에 대한 판단 근거를 국민 앞에 구체적으로 공개하고, 국회 및 독립적 전문가에 의해 검증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확인된 사실과 추정을 구분하지 않은 채 도발이라는 결론을 먼저 내리고 대응을 정당화하는 것은 진상규명이 아니다. 부상 장병들에 대한 예우와 치료는 당연히 최우선이다. 그러나 그들의 고통이 호전주의를 정당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