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월드컵의 ‘가짜 중립’을 폭로한다
많은 스포츠 팬들은 스포츠가 정치 문제에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선수, 구단, 연맹 등 스포츠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들에게 이 중립을 강박적으로 요구한다. 그러나 지금의 스포츠는 과연 가치 중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는가? 애초에 스포츠의 가치 중립이란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현재 진행 중인 월드컵과 그 운영 주체인 FIFA(국제축구연맹, 이하 피파)를 중심으로 스포츠 '중립'의 실체를 해부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포츠의 가치 중립이란 지배계급과 제국주의 열강이 피지배 민중의 저항을 봉쇄하기 위해 동원하는 이데올로기적 허구다.
강자만을 위한 '중립'
이번 월드컵에서 아이티 축구 국가대표팀은 혼란에 빠진 본국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52년 만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기념하기 위해 유니폼에 특별한 그림을 새겨 넣었다. 아이티 흑인혁명의 대미를 장식하고 프랑스 제국주의를 격퇴한 베르티아르 전투를 형상화한 것이었다. 이에 피파는 "정치적 신념을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들어 즉각 삭제를 명령했고, 유니폼 제작사와 대표팀은 급하게 새 유니폼을 제작해야 했다. 피파는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과 흑인의 자기주권 확립이라는 인류적 상식을 “정치적 신념”으로 규정한 것이다.
만약 이것이 단순하고 기계적인 규정 적용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사태였다면, 피파는 모든 경우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피파와 UEFA(유럽축구연맹)는 수일 만에 러시아 축구협회를 모든 주관 대회에서 출전 정지시켰다. 반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과 가자 학살에 대해 피파는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서안지구에 불법으로 건설된 무장 식민정착촌을 연고지로 삼아 활동하는 이스라엘 축구 구단들의 문제도 묵인되고 있다. 심지어 '팔레스타인의 펠레'라 불리던 전 팔레스타인 축구 국가대표 선수 술레이만 알 오베이드가 가자 학살 과정에서 보급품을 기다리던 중 이스라엘 점령군의 총격으로 사망했을 때조차, 피파는 그의 죽음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미제국주의의 시종이 된 피파
2025년, 피파는 전례 없이 갑작스럽게 'FIFA 평화상'이라는 상을 신설했다. 그리고 그 첫 수상자로 노벨 평화상에 노골적인 욕심을 드러내 온 도널드 트럼프를 선택했다. 이것이 그저 과도한 아부에 의한 해프닝 정도로 보인다면, 이번 월드컵 운영 과정에서 피파가 보여온 행태들을 더욱 명백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 국무부는 피파가 공식 선임한 소말리아 국적 심판의 입국을 일방적으로 거부했다. 아시아·아프리카 출신 선수단에 대한 과도한 신체 수색과 장시간 외국인 억류가 잇따랐다. 이란 국가대표팀에 대해서는 경기 당일에만 입국을 허가하고, 팀 스태프 14명은 아예 입국을 금지했다. 사실상 정상적인 경기 준비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이는 피파의 행사에 대한 노골적인 방해 행위였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피파는 방관했다. 미국에게 최소한의 항의 조차 진행하지 않았다. '중립'을 외치며 아이티의 유니폼을 검열하던 그 기관이, 개최국 정부의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적인 입국 통제 앞에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이번 월드컵에서 피파는 경기 중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를 도입했는데, 표면적 이유는 더위 속 선수 건강 보호였지만, 피파가 과연 인간의 건강을 신경 쓴 적이 있는가?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카페라타 이주 노동자 수천 명이 경기장 건설 현장에서 열악한 환경과 착취로 인해 사망했을 때 피파는 침묵하지 않았던가? 결국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의 실제 목적은 경기 도중 추가 광고 시간 확보였다. 경기 흐름이라는 스포츠의 매우 중요한 요소마저 광고 수익을 위해서는 끊길 수 있었던 것이다.
피파의 본질
모든 정치의 본질은 누가 우리의 적이고 누가 우리의 아군인지를 골라내는 것이다. 우리는 같은 질문을 스포츠에 적용해야 한다. 피파의 결정들을 이해하려면, 피파가 누구의 기관인지를 먼저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피파는 외견상 전 세계 축구를 관할하는 중립적 국제기구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실질은 다국적 자본과 제국주의 열강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상부구조다. 피파의 결정은 이사회와 후원 기업들, 그리고 대회 개최국이 제공하는 막대한 투자 자본의 힘에 의해 좌우된다. 러시아 제재가 신속했던 이유는 서유럽의 전통적인 축구 시장, 즉 피파의 가장 큰 광고 소비 시장이 러시아와의 경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침묵하는 이유는 미국과 유럽 자본이 이스라엘의 집단학살과 식민정책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에게 굽실거리는 이유는 미국이 이번 월드컵의 개최국이자 최대 투자국이기 때문이다.
피파는 독자적 행위자가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 체제와 제국주의 열강에 복무하는 이데올로기 선전 기관이다. 소위 '스포츠의 중립'이란 이 구조적 종속 관계를 은폐하고, 지배 질서에 저항하는 피억압 민중의 목소리를 경기장 밖으로 밀어내기 위한 프로파간다 장치에 불과하다.
이 때, 주요한 모순은 무엇인가? 국제 스포츠의 주요 모순은 자본과 제국주의에 봉사하는 스포츠 지배 기구와, 스포츠를 통해 해방과 존엄을 표현하려는 피억압 민중 사이의 모순이다. 아이티 선수들이 베르티아르 전투를 유니폼에 새긴 것은 단순한 역사 기념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모순의 피억압 측이 스포츠를 해방의 언어로 전유하려 한 행위였다. 피파는 어째서 그들을 지우려 했는가? 규정의 수호를 위해서? 아니다. 피파는 전세계 피억압 민중에 대한 계급전쟁의 일환으로 아이티 선수들을 지운 것이다.
베르티아르 전투를 유니폼에 새긴 아이티 선수들, IRA의 구호를 외치는 셀틱 팬들,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는 리보르노 칼초의 울트라들, 우승 퍼레이드 중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든 라민 야말, 피파와 UEFA를 비롯한 각종 국제 스포츠 기관들은 앞으로도 그들을 지우려 할 것이고, 그것이 피파의 계급적 본질이다.
중립을 거부하라
"스포츠에 정치를 끌어들이지 말라"는 요구는 그 자체로 이미 정치적이다. 현상 유지는 언제나 지배 계급에 대한 봉사이다. 경기장 안에서의 저항을 금지하는 것은 곧 경기장 밖에서 자행되는 억압을 묵인하는 것이다.
2016년에 NFL 선수 콜린 캐퍼닉이 경기 전 국가 연주 시간에 무릎을 꿇은 것은 흑인에 대한 경찰 폭력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즉시 리그에서 사실상 퇴출당했다. 반면 NFL 경기장에서는 매 시즌마다 군산복합체가 생산한 침략무기들을 전시하고 미제국주의 군대를 찬양하는 행사가 진행된다. 이것이 스포츠의 정치적 중립인가? 아니다. 이것은 국가 폭력과 제국주의적 침략을 정상화하고 군사주의를 스포츠와 결합시키는 정치 행위다. 다만 그것이 지배 이데올로기와 일치하기 때문에 '중립'처럼 보일 뿐이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가 시상대에서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들어 올린 것, 이른바 블랙 파워 살루트는 미국 올림픽위원회로부터 즉각적인 퇴출로 응답받았다.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역사는 그들의 행위를 정당한 저항으로 평가했다. 이것이 스포츠 '중립'의 역사적 실체다. 억압받는 자의 저항은 금지되고, 억압하는 자의 이데올로기는 중립의 이름으로 자연화된다.
무엇을 할 것인가
관념적인 스포츠 중립화 구호는 문제의 은폐에 불과하다. 피파를 비롯한 스포츠 지배 기구들의 위선을 폭로하는 것, 그 기구들이 어떤 자본과 어떤 국가 권력에 종속되어 있는지를 대중에게 알리는 것이 진정한 해결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폭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국적 자본과 제국주의 열강들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국제적 스포츠기구들의 만행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세계의 스포츠 산업 구조 자체를 바꾸는 운동을 전개해야만 한다. 이는 아래로부터의 조직화를 수반하지 않을 수 없다. 선수 노동자들의 단결, 팬 대중의 비판적 연대, 피억압 민족의 스포츠 주체성 확보를 위한 투쟁이 그것이다.
경기장은 단순한 오락의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계급 모순과 제국주의적 위계가 재생산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경기장은 동시에 저항의 장소가 될 수 있다. 아이티 선수들이 베르티아르 전투를 유니폼에 새겼을 때, 그들은 바로 그 가능성을 실천한 것이다.
자본과 제국주의의 대리인이 되어버린 오늘날의 스포츠 산업 맞서려면, 누가 스포츠를 지배하고 있으며 그 지배가 어떻게 관철되는지를 폭로하고, 아래로부터 대중적 대항 권력을 조직해야 한다. 중립의 환상을 버리는 것, 그것이 진정한 스포츠 해방의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