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베네수엘라
무엇이 달랐는가?
지난 18일, 미국과 이란 사이의 정전이 합의되었다. 110여일간 이어진 미국-이란 전쟁이 마침내 멈춘 것이다.
양측이 체결한 양해각서는 총 14개의 안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레바논을 포함한 중동 전역에서의 즉각적인 적대행위 종식,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 철회 및 동결자산의 해제, 그리고 3천억 달러(약 458조 원)에 달하는 재건기금의 조성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이란 인민의 위대한 승리이며 미제국주의의 완전한 패배이다. 미국의 당초 목표는 이란의 레짐체인지와 저항의 축의 분쇄, 그리고 중동의 석유자원에 대한 수탈이었다. 이들 중 단 하나라도 이루어진 것이 있는가?
최고지도자와 내각 인사들의 몰살에도 불구하고 이란은 붕괴하지 않았고, 곧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중심으로 리더십을 재건하는데 성공했다. 이란을 무너뜨리는 데 실패했기에 저항의 축을 분쇄하겠다는 목표 역시 수포로 돌아갔다. 헤즈볼라와 후티는 물론, 누구보다 앞서 치열하게 투쟁한 팔레스타인 저항세력 역시 크나큰 희생을 치렀을지언정 완전히 짓밟히지 않았다. 전쟁의 폐허 위에 순종적인 괴뢰정권을 세워, 중동의 석유를 마음껏 약탈하고자 했던 미제국주의의 음모는 명백히, 그리고 처참하게 실패했다.
이란 민중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축하하기에 앞서, 이와 대조를 이루는 하나의 사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올해 초, 비슷하게 레짐체인지와 석유수탈의 목적으로 미제국주의에게 침략당해 대통령을 납치당하기까지 한 베네수엘라가 바로 그것이다.
이란과 베네수엘라의 사례는 매우 비슷하다. 두 나라 모두 풍부한 석유자원을 보유했고, 두 나라 모두 반미적인 성향의 정권을 지녔었다. 두 나라 모두 미국에 의해 기습적인 침략을 받고 수도가 폭격당했으며, 순식간에 지도부가 무력화되었다는 점까지 동일하다.
이러한 유사한 조건들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는 졌고, 이란은 이겼다. 어째서 이런 차이가 나타났는가? 혹자는 이란이 베네수엘라보다 미국으로부터 멀기에 화력투사가 제한되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이란의 넓은 국토와 험한 산세를 승리의 이유로 꼽는 사람도 있고, 중국과 같은 동맹의 간접적인 지원 덕분이라는 이들도 있다. 이란인들이 비합리적인 종교적 광신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러한 주장들에 터럭 같은 진실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이는 무가치한 것이다. 어째서인가? 그로부터 어떠한 교훈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거리가 문제라면 국토를 들어서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건가? 지형이 문제라면 흙산이라도 쌓아야 하나? 외국의 지원이 열쇠라면 우리는 다른 나라가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라면 되는 건가? ‘종교적 광신’을 운운하는 이들은 결국 이란인들이 서양인과는 다른 ‘무식한 야만인’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려는 것인데, 이는 달리 말해 이란으로부터 그 어떤 것도 배우지 않겠다는 소리가 아닌가?
과학적 사회주의자에게 있어 역사는 유일한, 그리고 가장 위대한 스승이다. 역사라는 시험대의 혹독한 검증을 통해 올바른 전술과 그릇된 전술이 가려지며, 전자를 본받고 후자를 폐기하는 것은 혁명과학이 과학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동일한 조건에서 베네수엘라는 패배했고, 이란은 승리했다. 승패의 원인을 외적 요인에 한정할 때, 모든 발전은 봉쇄되며 인간은 필연의 노예가 된다.
스스로를 변혁적 좌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사의 원인을 우연이라는 이름의 눈 먼 우상에게 돌릴 것이 아니라 이란과 베네수엘라의 내적 요인이 어떻게 달랐는지, 어떤 전략의 차이가 그들의 승패를 갈랐는지를 면밀히 분석하고, 그 교훈을 자신의 투쟁에 적용하려고 노력해야 마땅하다. 이 글의 목적이 바로 그것이다.
베네수엘라의 조건
미국은 냉전기 내내 몇 번이고 남미를 침략해 반미정권들을 무력으로 분쇄해왔다. 남미 반제진영의 중심축이었고 앞장서서 미제국주의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폭로해온 마두로 정권 역시 이를 몰랐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미제국주의의 침략에 대비해 마두로는 어떤 준비를 했는가?
마두로가 의지한 것은 바로 다극화였다. 중국, 러시아와 같은 신흥제국주의 국가들이 부상해 저물어가는 미국과 경쟁하게 되면서, 이들 간의 힘의 균형이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막아줄 안전장치로 기능하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그는 강대국들의 경쟁 속에서 외교적 처신을 잘 하는 것 만으로도 제국주의의 침략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다고, 나아가 제국주의 그 자체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한 낙관 속에서 마두로는 미국의 침략에 대비해 지도부를 보호할 수단을 마련하지도, 지도부 상실 시의 대응책을 마련하지도 않았다. 국민에게 무기를 쥐어주고 수백만의 민병대를 조직하였지만, 이들을 전쟁을 위한 실질적인 역량으로 취급하지도, 군대와 정부조직을 장기적인 전인민전쟁에 적합한 형태로 개편하지도 않았다. 노동계급과 농민들의 힘에 의존하기 보다는 끝까지 국내 신흥 재벌들과 타협하였고, 대중을 실질적으로 무장시키고 동원하기 보다는 형식적 민병대로 편제해둘 뿐이었다. 이는 대중을 무장시키고 대중에게 모든 권력을 제공하며 정치적 강령을 통해 대중을 전 사회의 전 영역에서 동원시키는 공산주의 정치를 두려워 하는, 기회주의적 민족자본가의 정치였다.
그러나 마두로의 이러한 기대는 망상에 불과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를 폭격해 수많은 사상자를 냈고, 대통령궁을 습격해 마두로를 납치했다. 베네수엘라는 그 어떤 실질적인 저항도 수행하지 못하였다. 부통령이자 마두로의 권한대행인 델시 로드리게스는 즉시 미국에게 납작 엎드려, 자국의 석유자원을 고스란히 미국 기업들에게 갖다바치기 시작했다. 마두로가 기대었던 중국과 러시아는 이를 손 놓고 지켜볼 뿐이었다.
제국주의는 스스로의 명줄을 늘리기 위해 끊임없이 식민지를 확장해야만 하며, 이를 위해 어떠한 폭력적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다. 다수의 제국주의 열강들이 부상한다면 이들은 서로의 식민지를 빼앗기 위해 전쟁을 불사하면 했지, 결코 가만히 앉아 스스로의 몰락을 지켜보지는 않는다는 것을 역사는 몇 번이고 증명해보였다. 베네수엘라의, 마두로의 실패는 제국주의의 야만적 본성에 대한 지루한 재증명에 불과했다. 이미 올바르지 않은 것으로 판명된 전술을 반복한, 비생산적인 ‘죽은 실패’인 것이다.
이란의 조건
이란은 오래전부터 미제국주의의 침략에 대비해왔다. 주변국들이 잇따라 미국의 침략을 받는 것을 보며, 미국이 자국의 군 지휘관을 대놓고 암살하는 것을 보며, 이란 지도부는 제국주의와의 싸움이 피흘리는 총력전의 형태를 띨 수 밖에 없음을 분명히 자각하였다. 이란 지도부는 비록 반동적이고 지주를 대변하는 성직자들로 이루어져 있으나, 그들은 평화공존이나 다극화 따위의 망상에 빠지지 않고 오직 대중의 힘을 통해서만 국가적 주권을 수호할 수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이란은 오래 전부터 미사일과 드론의 생산시설을 지하화했고, 바시즈 민병대를 중심으로 수백만 인민을 동원할 수 있는 전민항쟁의 태세를 갖췄다. 지역 단위의 독자적 병참과 지휘체계를 구축하는 모자이크 방어체계는, 설령 중앙 지도부가 붕괴한다 하더라도 각 지역이 독립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국내 생산을 확대하고 군수물자를 비축하는 ‘저항경제’의 건설 역시 장기전에 대비한 국가적 역량을 구축하려는 시도였다.
이는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가? 이란은 저렴한 미사일과 드론을 끊임없이 생산•배치하여 미국의 값비싼 첨단무기들을 고갈시켰고, 중동 전역의 미군기지를 타격하여 이들의 전쟁수행능력을 파괴했다.
바시즈 민병대의 구성원들은 평시에는 학생, 노동자, 상인, 공무원 등 일반 시민으로 생활하지만, 필요할 경우 언제든 군사적 임무에 동원될 수 있도록 조직되어 있다. 바시즈 민병대을 통해 이란은 인민 전체를 제국주의에 맞선 항쟁의 주체로 세울 수 있었다. 이란 지도부는 대중의 무장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모자이크 방어체계를 구축한 덕에 이란은 전쟁 초기 지도부 상실이라는 크나큰 손실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와 달리 지역 부대를 중심으로 독립적인 저항을 이어나갈 수 있었고, 결국 지휘체계를 복구하는데 성공했다. 전 국토를 전선으로 삼는 이러한 전술 덕에 미국의 화력이 분산되어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기도 했다.
저항경제를 준비한 덕에 이란은 백여 일이 넘는 기간 동안 지속적인 저항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생산시설의 확충 및 지하화, 그리고 물자의 사전 비축은 미국의 계속된 폭격에도 불구하고 전쟁수행능력을 유지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무역이 마비되고 국가경제가 중단되었지만, 그것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의 사례처럼 대규모 기아나 사회 기능의 총체적인 붕괴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저항경제가 경제적 충격을 상당 부분 흡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란은 제국주의에 맞설 수 있는 무기가 오직 자기 자신의 힘 뿐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따라서 그들은 스스로의 힘을 키웠고, 적들의 피해를 최대화하고 자신의 피해를 최소화할 전술들을 고안했으며, 평화적 수사에 안주하지 않고 저항의 필요성을 이해했다. 그랬기에 실제로 전쟁이 닥쳤을 때, 이란은 결사항전하여 결국 제국주의 세력을 무릎꿇릴 수 있었다.
결론
마오쩌둥은 미제국주의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이는 제국주의와의 투쟁이 쉽다거나, 가만히 놔두면 제국주의가 알아서 고꾸라질 것이라는 의미가 결코 아니었다. 해일과 폭풍과도 같은 힘을 지닌 대중들이 우리와 함께 할 때, 그리고 호랑이의 이빨 하나하나, 발톱 하나하나를 뽑아버리는 길고 지난한 투쟁을 벌일 때, 미제는 비바람에 찢어질 수 밖에 없는 하찮은 종이호랑이가 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모든 제국주의 세력은 이같은 전술 앞에 항상 무릎꿇었다. 중국에서, 베트남에서, 알제리에서, 그리고 이란에서, 그들의 강력한 군대는 장기전과 총력전을 각오한 대중의 바다 앞에 언제나 종이호랑이처럼 찢겨나갔다.
외교적 줄타기와 강대국의 뒷배에 의존하는 유약한 자들이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그들이 대중의 힘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며, 적의 힘에 겁을 먹고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패배를 확신하는 지휘관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없음은 자명하다.
여전히 다극화라는 망상에 취해 있는 ‘반제국주의자’들은 이제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오직 전방과 후방의 구분을 없애며 인민과 병사의 차이를 두지 않는 대중동원전쟁, 전인민전쟁만이 식민지 피억압민족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전술이다. 그 외의 모든 공상적인 시도는 마두로가 그리하였던 것처럼 초라하게 몰락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