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와 퀴어해방
서문
현실사회주의와 퀴어해방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
소련의 사례
동독의 사례
쿠바의 사례
베트남의 사례
종합평가
제국주의와 퀴어해방
서구는 정말 퀴어친화적인가?
서구 퀴어인권의 현주소
제국주의 이전의 제3세계 퀴어인권
제국주의와 기독교파시즘
마오주의, 유일한 해방의 무기
모순론
프롤레타리아 페미니즘
필리핀공산당의 성과
결론
서문
퀴어해방이 일반적으로 진보진영의 의제로 받아들여짐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맑스주의 등과 퀴어해방은 곧잘 무관한 것, 심지어는 상호 배타적인 것으로 여겨지고는 한다. 이해하기 힘든 일은 아니다. 인터넷을 떠도는 ‘사악한 공산국가들의 인권탄압 목록’에는 퀴어에 대한 탄압 또한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고, 중국이 성소수자를 검열한다느니, 북한이 동성애자를 처형했다느니 하는 뉴스도 심심찮게 들려오니 말이다. 현실에서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성소수자들에게 보이는 태도 또한 이러한 인식에 적잖은 기여를 했다. 많은 맑스주의자들이 퀴어에 대해 부르주아 퇴폐문화라느니, 민중을 분열시키는 서방의 공작이라느니 따위의 말을 부끄럼없이 내뱉는다. 성소수자에 우호적이라고 하는 사회주의자들조차도 대부분은 퀴어 의제를 노동해방, 민족해방 등의 과업과는 무관하거나 중요도가 낮은 보조적 억압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할 뿐이며, 간혹가다 형식적인 연대의 메세지를 낼 뿐 퀴어해방을 위한 실질적인 기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퀴어 대중들의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냉소와 불신은 전적으로 사회주의자들의 책임이다. 그러나 과거의 실책을 후회하는 것만으로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 그렇다고 퀴어들을 적대적 대중으로 치부하고 이들에 대한 조직화를 포기하는 것 또한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성소수자들은 오늘날 남한 사회에서 가장 억압받는 집단 중 하나이며, 그들이 겪는 억압은 우리 사회의 주요모순과 매우 깊게 얽혀 있다. 노동계급 성소수자들은 사회주의자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조직해야 할 집단임에 틀림없으며, 따라서 우리는 그들이 갖고 있는 사회주의와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불신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의 목적은 성소수자 대중들의 반공주의적 의식을 깨트리고,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성소수자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며, 오늘날의 사회주의, 즉 맑스레닌마오주의가 퀴어 해방을 위한 최고의 무기임을 설득하는데 있다.
현실사회주의와 퀴어해방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
소련이 붕괴한지도 벌써 35년이 지났다. 오늘날 제3세계 마오주의자들의 영웅적 투쟁이 점차 고양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사회주의가 이전처럼 자본주의를 실질적으로 위협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전기의 반공주의 프로파간다는 여전히 전세계적인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현실사회주의 사회를 객관적으로 평가함에 있어 여전히 커다란 걸림돌로 남아있다.
동구권 국가들이 자체적으로 생산한 자료들은, 그들이 사악한 전체주의 독재국가였다는 이유로 미화와 과장으로 점철된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지는 반면, 서방국가들이 동구권에 대해 남긴 자료들은 그들이 상호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객관적인 것, 정확한 것으로 취급된다. 이는 전혀 과학적이지 못한 태도이다. 모든 국가는 자신들의 체제를 미화하고 성과를 과장하기 마련이다. 미화와 과장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동구권 국가들의 자료를 완전히 무시해야 한다면, 서방국가들에게도 동일한 잣대를 적용해야 마땅할 것이다. 더군다나 이들은 그저 대외선전용 자료가 아니었다. 수많은 전문가들을 동원해 추출하여, 실제로 동구권 국가들의 행정에 이용되었던 자료들조차도 친서방 학자들의 불신의 시선을 피해가지 못한다.여기에 당파적인 이유가 없을 리는 없다.
이번 단락에서는 현실사회주의 하에서의 성소수자 권리가 실제로 어떠했는지를 살펴보고, 반공주의적 미신들을 반박하며, 그 성취와 실패를 분석할 것이다.
소련의 사례
10월 혁명으로 수립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은 곧바로 러시아 제국의 봉건구습 일반을 분쇄하기 시작했다. 여성의 참정권과 낙태, 이혼의 자유가 보장되었고, 소수민족에 대한 억압이 철폐되었다. 이러한 성취에는 성소수자 권리에 대한 일정한 발전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1917년에 구 법률을 폐지하면서 이미 동성애는 비범죄화되었고, 1922년에 제정된 소비에트 형법에서도 이는 유지되었다.
당 내에 동성애를 ‘부르주아적 퇴폐’, ‘치료되어야 할 정신질환’ 등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존재하기는 했지만, 적지 않은 볼셰비키들이 적극적으로 동성애자의 권리 증진에 긍정적이었고, 이는 다양한 법적•정책적 성취들로 이어졌다. 공공고용부문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제한들이 철회되었고, 동성애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바라보는 여러 연구들이 진행되었다.
물론 이러한 진보는 스탈린 시기에 일정한 후튀를 겪었다. 1934년에 동성애 처벌법이 부활한 것은 사실이고, 소수자를 치료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인식이 대두되고 실질적인 차별을 시정하려는 시도가 중단된 것 또한 사실이다. 퀴어 권리에 대한 소련의 수준이 뒤에 살펴볼 다른 현실사회주의 국가들보다 뒤쳐진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소련의 이러한 후퇴를 ‘이전의 성취가 구색맞추기에 불과하다’는 증거로 보는 것은 잘못되었다. 이것을 스탈린이라는 개인의 악한 성정 탓으로 돌리는 것 역시 올바르지 않다. 1930년대의 후퇴는 혁명 직후 인구 감소, 중공업화 과정에서의 대대적 노동력 동원에 따른 여성의 가사노동력 필요성, 전시체제 하에서 이루어진 정교회와의 일정한 탄압, 이러한 일련의 상황 속에서 진행된 이성애질서 강화, 사회에 잔존한 봉건적 관습의 당과 국가로의 침투, 그리고 해당 의제에 관해 참고할 수 있는 과거 사례의 부재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동독의 사례
동독은 현실사회주의 국가들 중에서도 성소수자 권리와 관련해 가장 앞선 행보를 보인 사례 중 하나로 평가할 수 있다. 서독이 나치의 형법 175조를 그대로 계승하여 동성애자들을 계속 수감한 반면, 동독은 1950년에 이미 처벌을 중단했고 1968년 형법 개정을 통해 성인 간 동성애를 완전히 비범죄화했다. 서독이 동성애 처벌 조항을 완전히 삭제한 것은 동독보다 26년 뒤쳐진 1994년이 되어서였다.
80년대에 들어서는 성소수자 권리에 대한 내용을 교과서에 싣고, 성확정 수술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등의 더욱 급진적인 진보가 이루어졌다. 국가가 퀴어 퍼레이드를 지원하고, 퀴어공동체들이 당의 유관단체로 인정되었다. 동독의 이러한 진보들이 급격히 후퇴한 것은 서독과의 흡수통일 이후였다.
물론 이것이 동독을 퀴어 유토피아로 낭만화하려는 뜻은 아니다. 사회주의통일당의 노선은 여전히 시혜적 관용의 차원에 머물렀고, 자본주의적 소비문화와 동성애를 연결 짓는 기계론적 시각이 잔존했으며, 성소수자들의 정치조직화를 적극적으로 독려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동독의 사례가 ‘성소수자를 탄압하는 공산권과 그렇지 않은 서방세계’의 낡은 도식을 반박하는 증거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쿠바의 사례
오늘날 쿠바는 가장 퀴어친화적인 국가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쿠바의 사례를 사회주의의 성과로 들 때면 꼭 따라붙는 말이 있다. ‘60년대에 쿠바는 동성애자들을 수용소에 가두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수용소’는 1965년에 설립된 생산조력대(UMAP) 제도를 가리킨다. 이는 주로 농업노동의 보조를 목표로 전국에 창설된 것으로, 미국의 침공과 경제봉쇄에 대한 대응으로 전국민을 동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카스트로는 교육수준이 부족한 사람, 양심적 병역거부자, 그리고 동성애자가 생산조력대의 징집대상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것을 이들 인구집단에 대한 탄압이라고 보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당시 쿠바는 국가적 위기 앞에서 전민동원태세를 갖추어야 했으나, 사회에 존재하는 남성우월주의 분자들의 동성애자 징집에 대한 반발을 직면해야 했다. 병사들 중 상당수가 동성애자들의 징병에 반대하고, 그들을 군에 들여선 안 된다는 쇼비니즘적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고 이들을 징집하지 않자 그것을 핑계로 동성애자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이에 반발한 동성애자 집단은 쿠바 정부에게 공개적으로 ‘군역을 질 권리’, ‘징집될 권리’ 등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러한 요구를 일정하게 수용한 결과로 동성애자들을 징집하는 대신, 병역거부자 등과 함께 생산현장에 투입하는 조치가 이루어진 것이다. 생산조력대는 당면한 물질적 조건에 대한 대응이었다. 그것이 완벽하다거나 올바른 대응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생산조력대가 ‘사악한 전체주의 정권의 성소수자 탄압’이었다는 식의 주장이 악의적인 왜곡이라는 것 또한 분명히 해야 한다.
쿠바 인민들의 진정한 위대함은 불완전한 조치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오류를 끊임없이 교정해왔다는데 있다. 쿠바예술인작가민족연맹이 생산조력대의 동성애자 대우에 대해 항의하자, 피델 카스트로는 즉시 직접 생산조력대에 직접 잠입하여 현장을 확인했다. 백여 명의 청년당원들이 비밀리에 생산조력대로 파견되어 동성애자들의 처우에 관한 조사를 진행 하기도 하였다. 결국 생산조력대는 폐지되었고, 카스트로는 자신의 책임을 인정했다. 1979년에는 동성애 행위에 대한 처벌이 공식적으로 철폐되었다. 카스트로는 1986년부터 광범위한 퀴어 혐오에 맞선 대중운동을 지도하기 시작했으며, 1988년에는 동성애에 관한 사회와 당 내의 부정적 인식을 고쳐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논하기도 하였다. 1989년부터는 마리엘라 카스트로가 이끄는 국립성교육원(CENESEX)을 중심으로, 트랜스젠더의 성확정 수술과 HRT 국가지원, 동성 커플의 결혼과 입양에 관한 권리, 헌법에 동성애에 대한 차별 금지를 수록하는 것 등의 과제들이 추진되었다. 수십 년의 대중적 토론과 교육을 거쳐, 마침내 2022년 국민투표에서 동성 결혼과 동성 커플의 완전한 입양권을 포함한 새 가족법이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오늘날 쿠바는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성소수자 관련 법체계를 가진 국가 중 하나이다. 쿠바의 사례는 ‘사회주의 국가는 퀴어를 탄압한다’는 제국주의의 선전을 정면으로 분쇄하는 살아있는 증거이다.
종합평가
현실사회주의 사회들은 분명 퀴어 의제에 대해 현재의 기준으로 후진적인 요소들과 여러 오류들을 지니고 있었다.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 사회들이 성소수자를 무작정 탄압하기만 했을 뿐이라거나, 어떠한 가학적이고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을 하는 건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현실사회주의 국가들 역시 서방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으며, 그들의 실천에는 일정한 성취와 실패가 공존했다. 적지 않은 경우 이들의 성취는 동시대 서방 국가들보다 훨씬 선진적이기까지 했다. 이들의 성취를 모두 무시한 채 실패만을 납작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는 광신적인 반공주의의 발현에 다름없다.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이들의 성과와 실패를 동등하게 수용하고, 성과를 계승하고 실패를 지양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퀴어 의제에 관한 현실사회주의 실험들의 오류는 무엇으로부터 기인하였는가? 많은 이유를 들 수 있겠으나, 그중 가장 근본적인 것은 퀴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추출할 수 있는 역사적 경험의 부재였다.
인식의 발전은 오직 실천을 경유할 때에만 이루어질 수 있다. 파리코뮌의 실패는 혁명에 있어 통일된 지도력의 필요성을 인식할 계기가 되었고, 소련에서의 자본주의 복고는 사회주의 하에서도 계급투쟁이 지속된다는 사실을 인식할 계기가 되었다. 과거의 실패를 분석하여 이를 극복하고, 그 지평에서 새로운 실패와 조우해 다시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투쟁해온 것이 맑스주의의 역사였다.
퀴어라는 집단이 역사의 무대에 주체로 등장한 것은 1969년의 스톤월 항쟁부터였다(스톤월 이전에 퀴어가 존재하지 않았다거나 퀴어들의 투쟁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이를 통해 퀴어들은 그들이 지닌 변혁적인 잠재력을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냈다. 서유럽에서 노동운동의 급격한 성장 이후에야 노동계급이 혁명의 주체로 파악될 수 있었던 것처럼, 퀴어들의 역사적 잠재력 역시 스톤월 항쟁 이전에는 파악될 수 없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스톤월 이전의 맑스주의자들은 성소수자 의제에 대해(그것이 온정이든 배척이든) 잘못된 인식을 갖거나, 아무 인식을 갖지 않는 것만이 가능했다.
물론 스톤월 항쟁 이후에도 맑스주의자들은 오랫동안 퀴어에 대한 이론화에 지지부진했다. 이들의 지적 나태는 맹렬히 비판받아 마땅한 것이다. 소련의 수정주의화와 중소대립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맑스레닌주의라는 틀 자체가 도전받고 있던 시기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도 있겠지만, 현재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는 선배들의 오류를 변명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오늘날의 맑스주의인 맑스레닌마오주의는 그 이전의 역사적 경험들을 종합하여 맑스레닌주의를 지양한 새로운 단계의 이론이다. 당연히 스톤월 항쟁과 이후 성소수자 권리 운동의 역사적 경험 역시 마오주의를 통해 종합되어야 하고, 종합되고 있는 중이다. 마오주의의 이론적 발전과 그것이 가져온 성취에 대해서는 글의 뒤에서 더 자세히 다뤄볼 것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편견의 거울쌍이라고 할 수 있는 서구의 퀴어친화 신화를 폭로해보고자 한다.
제국주의와 퀴어해방
서구는 정말 퀴어친화적인가?
북미, 서유럽 등의 소위 ‘서방 선진국’들은 으레 성소수자 인권의 선봉장으로 생각된다. 남한과 같이 퀴어에 대한 억압이 강한 나라의 성소수자들은 종종 서구를 퀴어억압이 종식된 유토피아 정도로 낭만화하고는 하며, 이는 퀴어해방이 ‘선진적인 서구적 시민의식’의 유무에 달린 것이라는 생각을 낳는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일까?
서구 퀴어인권의 현주소
동성결혼 합법화와 차별금지법 제정 등 제도적•형식적 진전에도 불구하고, 서구의 퀴어 대중은 착취와 폭력에 여전히 노출되어 있다. 미국에서 트랜스젠더, 특히 유색인종 트랜스 여성에 대한 살인과 경찰폭력은 전염병 수준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청년 성소수자의 홈리스 비율은 같은 나이의 이성애자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영국에서는 소위 ‘젠더 비판’ 담론을 내세운 터프(TERF) 진영의 공세로 트랜스젠더의 의료 접근권이 조직적으로 박탈당하고 있으며, 유럽 각국에서는 극우 정당들이 선거 때마다 퀴어 혐오를 동원하고 있다. 또한 소위 ‘서구적 가치’의 핵심이라 일컬어지는 기독교는 성소수자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와 배제를 부추기고 있는 기제로 작동한다.
서구 자본들은 6월이면 사방에 무지개 장식을 내걸며 진보와 포용을 연기하지만, 정작 이윤이 걸린 문제에서는 노동자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손바닥 뒤집듯 외면한다. 퀴어퍼레이드는 기업과 경찰이 후원하는 통제된 축제로 변질되었고, 팔레스타인과 연대나 사회주의와 같은 급진적인 저항의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된다.
서구 제국중심부에서 퀴어 인권의 진보는 이들이 ‘선진적 의식을 가진 발전된 나라’여서 거저 얻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성소수자와 그 동맹자 대중들의 치열한 저항이 있었기에, 자본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치경제적 권력이 여전히 자본에게 있는 한 가부장제와 퀴어억압 자체를 해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렇게 얻어낸 약간의 양보조차 언제든지 취소될 수 있다. 성별분업에 기초한 자본주의 가부장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를 위협하는 성소수자들을 탄압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전사회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퀴어인권에 대한 백래시는 여기에서 기인한다.
제국주의 이전의 제3세계 퀴어인권
서구가 오늘날 퀴어 인권의 기준인 양 행세하지만, 식민주의와 기독교가 도래하기 이전의 제3세계에는 이미 다양한 젠더·성적 존재 방식이 사회적으로 일정하게 수용받아왔다. 북미 선주민 사회의 투 스피릿 전통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젠더로서 공동체에서 영적·사회적 역할을 수행했으며, 남아시아의 히즈라 공동체는 무굴제국 시기까지 공식적 행정 직책을 맡을 정도로 존중받았다. 멕시코 오악사카의 무헤도 식민 이전부터 고유한 문화적 지위를 유지해왔다. 많은 사회에서 동성 간의 성행위는 암묵적으로 용인되거나 적어도 비가시적인 상태에 머물렀으며, 어느 정도 용인되던 곳도 적지 않다.
물론 이것이 제국주의 이전의 제3세계에 퀴어에 대한 억압이 부재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퀴어억압은 가부장제 억압양식의 일부로써, 남성에 의한 여성의 예속을 보장하기 위해 성별구분을 절대화하기 위해 발생한 보편적인 억압이다. 그러나 국가기구를 동원한, 박멸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대단위의 탄압은 오직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 자본주의와 유대-기독교적 성별규범이 강제적으로 이식된 후에야 나타난 것이다.
서구는 제3세계에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그에 따른 자본주의적 성별 분업을 강요했다. 이는 전혀 새로운 서구적 탄압을 들여옴과 더불어 기존 사회에 존재했던 억압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중억압 아래서 성소수자들은 ‘토착 미개구습’과 ‘외국의 퇴폐문화’라는 모순된 규정으로 낙인찍히고 가혹한 탄압에 직면한다. 여기에서 서구의 책임을 지우려는 모든 시도는 제국주의에 대한 부역이며 모든 것을 제3세계의 낙후성 탓으로 돌리려는 인종주의적 시각의 발현이다.
제국주의와 기독교파시즘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반성소수자 운동은 제국주의와 기독교 파시즘의 동맹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기독교 파시즘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소외된 대중들을 신성한 민족공동체라는 우상을 통해 동원하는 것이다. 교회들은 신도들에게 공동체와 자부심, 물적 지지를 제공하고, 그들 삶의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페미니스트, 사회주의자들을 지목한다. 1세계에서는 문화맑스주의 음모론과 반유대주의에 입각해서, 제3세계에서는 ‘외국 퇴폐문화에 맞선다’는 민족주의적 외피를 쓰고 이루어진다는 차이가 있지만, 그 본질은 동일하다. 곧 자본의 적들을 분쇄하기 위해 취약한 대중들을 돌격대로 삼는 것이다.
미국의 복음주의 우파 교회들은 막대한 자금을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에 쏟아부으며 동성애 처벌법 강화를 로비하고, 극우 정치세력을 조직한다. 우간다의 동성애 사형법부터 가나의 가족가치법까지, 제3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인륜적 법제화의 배후에는 항상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흔히 혐세라고 불리는 남한의 기독교 반성소수자 세력도 마찬가지의 경우이다. 이들이 미국의 교회와 극우 정치세력들에게서 자금을 받는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 아닌가.
기독교파시즘의 세계적 확산은 종교적 교리의 문제가 아니라, 제국주의 자본이 신자유주의적 약탈에 저항하는 민중들을 분열시키고, 자신들이 조성한 빈곤과 좌절, 분노를 성소수자에게 돌리게 만드는 전략적 기획이다. 기독교파시즘에 맞서기 위해서는, 그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서구 제국주의 자본을 폭로하고 이들에 맞선 전선을 조직해야 한다.
마오주의, 유일한 해방의 무기
모순론
마오주의는 모순론이라고 하는, 퀴어 담론을 분석함에 있어 기존의 맑스레닌주의에 부재했던 과학적 방법을 제공한다. 모순이란 무엇인가? 사물에 내재되어 있는 반대되는 힘들의 대립을 말한다. 음전하와 양전하, 산과 염기, 이화작용과 동화작용, 자본가와 노동자 등, 모순은 모든 곳에 존재하며 모든 운동의 원인이 된다.
마오 주석은 모순을 근본모순과 파생모순, 주요모순과 부차모순 등으로 나누었다. 한 사회에 있어 근본모순은 그 사회의 본질을 결정하는 모순, 즉 생산관계 상의 모순이다. 그러나 근본모순이 항상 그 자체로 발현되는 것은 아니며, 구체적 시공간 속에서 구체적 모순의 형태로, 예컨대 제국주의와 식민지 민중의 모순은 원청과 하청노동자 사이의 모순, 가부장제와 여성 사이의 모순, 기독교 파시즘과 성소수자 사이의 모순 등의 다양한 파생모순으로 드러난다.
수많은 모순들은 서로 독립되어 존재하는 대신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교차하고 뒤엉킨다. 이 때 하나의 모순이 그 순간의 정세를 주도하는 모순으로 부상하게 되며, 이것을 주요모순, 주요모순에 의해 주도되는 다른 모순들을 부차모순이라고 한다. 주요모순은 단순히 직관적으로 가장 중요한 모순이 아니라, 실제로 다른 모순들을 관통하고 이들에게 규정력을 행사하는 모순이다. 주요모순의 해소가 바로 부차모순들의 해소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요모순을 해소함으로써 부차모순들을 해소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다.
이같은 규정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먼저, 퀴어 의제에 접근하는 올바른 경로를 제공한다. 퀴어 억압을 ‘사회의 여러 불의 중 하나’ 정도로 인식하는 것을 넘어 사회의 근본모순이 구체적 현실 속에 현현한 것임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퀴어해방운동을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단일한 전선의 일부로 사고할 수 있게 된다.
둘째로, 퀴어 대중들에 대한 올바른 전술을 고안할 수 있게 한다. 퀴어들을 배척하거나 보여주기식 연대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현 정세의 주요모순을 폭로하고 이것의 해소가 퀴어들의 이익을 보장한다는 것을 선전함으로써, 사회주의자들은 퀴어 대중을 주요모순에 맞선 통일전선 아래 조직하고 이들에게 올바른 정치적 지도를 제공할 수 있다.
셋째로, 맑스주의자들의 고질적인 사회주의혁명 만능주의와 부문운동에의 무관심을 비판할 도구가 된다. 주요모순의 해소가 그 자체로 부차모순의 해소를 보장하는 것은 아님을 통찰할 때, 맑스주의자는 부차모순에 해당하는 억압들에 맞서 대중의 이익을 방어하고 대중의 의식을 고양시키는 ‘인민의 호민관’으로써의 사명을 다할 수 있게 된다. 사회주의혁명 이후에도 상부구조에 반동적 경향들이 잔존하며 자본주의 복고의 씨앗이 됨을 통찰할 때, 이러한 경향들에 맞선 지속적인 투쟁, 즉 문화혁명의 필요성이 드러난다.
프롤레타리아 페미니즘
프롤레타리아 페미니즘은 가부장제 이중억압양식의 분쇄를 추구하는 마오주의적 기획으로, 인도의 페미니스트이자 마오주의 혁명가인 아누라다 간디, 그리고 마찬가지로 네팔의 페미니스트이자 마오주의 혁명가인 히실라 야미에 의해 형성되었다. 이것이 다른 종류의 ‘페미니즘’들과 구분되는 것은 바로 그 이론의 과학성과 실천의 효과성에 있다.
프롤레타리아 페미니즘은 여성억압을 계급억압과 분리되거나 특정 생산양식에 종속된 부차적 억압으로 보지 않으며, 국가와 마찬가지로 계급 사회 자체에 기반을 둔 억압임을 분명히 한다. 이는 가부장제의 기원을 탐구하는 것을 거부하는 부르주아/소부르주아적 페미니즘은 물론 가부장제가 자본주의와는 비조응하는 봉건 잔재에 불과하다는 일부 맑스주의자들의 주장과도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지점이다. 가부장제 철폐와 여성 및 성소수자의 해방이 계급사회 자체를 철폐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음을, 따라서 오직 공산주의만이 가부장제를 분쇄할 수 있음을 프롤레타리아 페미니즘은 분명히 한다.
프롤레타리아 페미니즘은 또한 생물학적 결정론을 전적으로 거부한다. 이는 특히 가부장제의 계급적 토대를 부정하는 부르주아/소부르주아적 페미니즘과의 결정적인 차이이다. 계급을 부정하는 관념론적 페미니즘들은 필연적으로 가부장제의 기원을 생물학에서 찾게 된다. 이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구분의 절대화, ‘공격적이고 사악한 남성’과 ‘연약하고 순진한 여성’이라는, 사실상 여성이 남성에 비해 물질적으로 무능력하다는 주장에 다름 없는 반동적 관념으로의 회귀, 그리고 이러한 관념을 위협하는 성소수자, 특히 트랜스젠더에 대한 적대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서구에서 TERF들이 점차 힘을 얻고 있는 것은 이같은 이론적 토대에 의해서다. 프롤레타리아 페미니즘은 폭력 자체를 남성의 것으로 한정하는 부르주아 페미니즘에 반대하며, 여성 역시 남성만큼이나 무자비한 전사가 될 수 있음을, 그리고 인간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형이상학적인 ‘생물학적 특성’이 아닌 인간의 사회적 존재임을 분명히 한다.
마지막으로, 프롤레타리아 페미니즘은 가부장제와 맞선 투쟁이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를 분명히 밝히는 유일한 이론이다. 추상적이고 모호한 연대의 구호만을 생산하는 문화 페미니즘이나, 여성 개개인의 입신양명이 곧 여성해방이라 주장하는 부르주아 페미니즘과 질적으로 구분되는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여성과 퀴어의 해방은 진보적인 법안 한두 개나 레즈비언 CEO가 몇 명 더 생기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제국주의가 여성과 성소수자를 폭력으로 억압하기 때문에, 그들에 맞선 여성과 성소수자의 투쟁 역시 폭력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 페미니즘은 가부장제와 그 후원자인 자본주의, 제국주의에 맞선 폭력적 저항을 옹호한다. 이같은 폭력은 대중 속에 이중권력을 건설하고 바다와 같은 대중을 동원하는 장기인민전쟁의 형태를 띄어야 함을 증거한다. 혁명이 즉시 가부장제의 청산을 보장하지는 않기에, 혁명 이후에도 상부구조의 층위에서 끊임없는 계급투쟁을 전개해야 함을, 만약 당중앙이 반동적 이데올로기에 오염된다면 대중을 동원해 이를 타격하는 문화대혁명을 추진해야 함을 분명히 밝힌다.
필리핀공산당의 성과
이러한 마오주의적 노선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는 필리핀공산당과 신인민군의 혁명 실천이 찬란하게 증명되고 있다. 1992년 필리핀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동성 연애와 성별 변경 권리를 당 차원에서 인정하였으며, 1998년에는 프롤레타리아적 성 관계 지침(On the Proletarian Relationship of the Sexes)이라는 문건을 통해 신인민군 해방구에서의 동성 결혼을 허가했다. 2005년에는 실제로 동성 결혼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필리핀 역사상 최초였다. 필리핀공산당의 전 지도자인 호마 주석은 2019년에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의 동성애혐오적 발언들을 비판하며, 여성과 성소수자 역시 남성과 마찬가지로 신인민군의 자랑스러운 전사임을 이야기한 바 있다.
필리핀 구 국가는 가톨릭 근본주의가 뿌리깊게 박혀 있으며, 성별 정정과 동성 결혼은 커녕, 이혼조차도 인정되지 않는 극도로 보수적인 국가이다. 또한 지주계급의 힘이 매우 강력한 반봉건사회이며, 필리핀 정부는 남중국해 군사기지로써 미국의 막대한 지원을 받는 노골적인 친미 파시스트 집단이다. 이러한 열악한 조건들 하에서 필리핀공산당이 달성한 성과들은 무척 위대한 것이다. 특히 이들이 아직 혁명을 진행중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독점적인 권력과 국가기구가 부재한 상태에서, 이들은 건설된 해방구 내에서만 이러한 성취를 이루어냈다. 신인민군은 가는 곳마다 가부장적 구 질서를 분쇄하고 성소수자를 해방하였으며, 수많은 필리핀의 퀴어들이 그들에게 동참하고 게릴라 전사로써 신인민군에 합류하고 있다. 이들이 혁명을 성공한 이후에는 얼마나 더 거대한 성취를 이루어낼지 그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결론
퀴어해방은 선의의 법안 몇 개나 무지개 깃발을 든 기업 광고로 성취될 수 없다. 서구제국주의의 퀴어친화 서사는 핑크워싱과 기독교파시즘을 동시에 작동시키며 전 세계 퀴어 대중을 기만하고 분할하려는 음모에 불과하다. 오직 오늘날의 맑스주의인 맑스레닌마오주의만이, 이 모든 기만을 꿰뚫고 퀴어억압의 계급적·제국주의적 기원을 올바르게 해부하며, 그 타파를 위한 프롤레타리아 페미니즘과 모순론의 무기를 제공할 수 있다.
만국의 퀴어들이여! 맑스레닌마오주의의 깃발 아래 단결하자!
수천 년의 억압을 청산하고 가부장제를 분쇄하자!
자본의 시혜를 넘어 우리의 손으로 해방을 쟁취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