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우타 난민위기와 소위 ‘모로코 음모'
세우타 난민위기
지난 7월 31일 목요일, 6만 명이 넘는 난민들이 타라할 해협을 따라 스페인과 모로코 국경을 넘었다. 최소 72명이 익사한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이 해협에 도달하려면 먼저 바닷물을 헤쳐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스페인 땅에 도착하자마자, 스페인 정부는 군대와 경찰, 민방위대를 투입하여 난민들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세우타에 대한 신속한 군사화로 24시간 안에 이주민의 95% 이상이 모로코로 추방되었다. 현재, 스페인 정부는 군사 작전을 피해 도망친 소수의 이주민들을 수색하고 있다.
난민 위기의 원인에 대해서 여러가지 이야기가 오갔다. 우선 난민 위기 발생 며칠 전 스페인 대법원은 “해상 국경으로 입국한 난민들을 육상 국경으로 입국한 난민들처럼 즉각 송환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 판결이 SNS 등지에서 배를 타고 입국하면 스페인에 체류할 수 있다는 내용 등으로 왜곡되어 전파되었고, 결과적으로 대규모 난민 행렬이 세우타와 모로코 사이 바다로 배를 띄워 입국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해당 판결을 이유로 트럼프는 스페인의 좌파 정부와 대법원의 미온적인 난민 대처가 세우타를 위험하게 했다며 난민 혐오를 선동했고, 이탈리아 정부는 유럽연합 가입국 간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솅겐 자유이동 협정을 정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외에도 스페인과 유럽 각국의 극우파들은 트럼프와 멜로니의 주장을 반복하며 국경관리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선전선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 스페인, 모로코에서는 인신매매를 통해 수익을 얻는 범죄조직들이 난민들에게 세우타로 넘어갈 것을 종용하며 수익을 취했다고 발표했으며, 대다수의 난민을 양 국의 합의를 통해 모로코로 재송환하였다.
모로코의 음모?
한 편, 일각에서는 모로코가 일부러 모로코-스페인 국경을 허술하게 만들어 세우타 난민 위기를 유발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들의 주장을 따르면 모로코가 스페인과 외교적 마찰을 빚고 있고, 모로코가 본인들의 이해관계를 스페인에 관철하기 위해 세우타의 난민을 보내는 것으로 스페인을 압박했다는 것이다.
그럼 무슨 문제가 이들 간의 갈등을 일으킨 것인가? 가장 유력한 이유로 추정되는 것은 서사하라 문제이다. 당초 스페인의 산체스 정부는 서사하라 문제에서 모로코의 서사하라 식민지배를 인정했다가 알제리와 사이가 멀어졌는데, 이를 다시 회복하고자 정상회담을 했고, 모로코 정부가 스페인과 알제리 간의 정상회담을 견제할 의도로 국경을 열었다는 것이다. 서사하라 지방은 모로코가 인산염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사하라위족의 독립을 부정하며 식민지배하고 있는 영토이고, 알제리의 민족해방전선 정권은 국제연대와 모로코 견제를 위해 서사하라의 사하라위족 독립운동 단체인 폴리사리오 전선을 지원해왔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미국이 모로코의 국경 개방을 지원했다는 주장도 대두되고 있다. 미국은 모로코의 서사하라 점령을 처음부터 지원해온 대표적인 국가이다. 1975년 모로코 정부가 동원된 민간인을 서사하라 지역에 행진시킨 녹색 행진에 물류 지원을 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 이후로도 계속 모로코 왕정과 협력을 이어가다 2020년 아브라함 협정(이스라엘과 수교, 협력을 골자로 하는 외교협정)을 맺으며 본격적으로 미국의 중동지배전략에 편입되기 시작했다. 이후 모로코 왕정은 이스라엘과 경제, 군사협력을 지속하며 이슬람권에 대표적인 친-이스라엘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반면 스페인은 최근 미국의 중동 침략에서 미국 정부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으며 지속적으로 충돌하고 있는 상태였다.
난민위기 2주 전, 공화당 의원들 주도로 모로코에 약 4천만 달러의 자금을 지원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때 같이 수록된 보고서에서는 스페인의 모로코 접경지역이자 아프리카 영토인 세우타와 멜리야 시가 모로코의 영토에 위치하고 모로코는 두 도시에 주권을 주장한다는, 두 도시를 모로코의 영토로 인정하는 듯한 내용을 집어넣었다. 또 난민위기 이후 주 유엔 이스라엘 대사는 스페인의 가자지구 학살 비판을 부정하는 과정에서 세우타와 멜리야를 제국주의 영토라고 비난하며 모로코의 영토 주장에 힘을 실어다 주었다. 일각에서는 모로코가 이번 난민위기를 촉발한 궁극적 목표가 스페인의 세우타와 멜리야 지배를 흔들고 최종적으로 합병하는데 있으며,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를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미국과 이스라엘은 왜 모로코의 음모를 지원하는 것인가? 이러한 음모의 실체를 긍정하는 이들은 세우타가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지점인 지브롤터 해협을 통제할 수 있는 전략적 위치이기 때문에 미국과 이스라엘이 친이스라엘 국가인 모로코에게 넘겨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미국의 병력이 지중해를 통해 레반트 지역에 접근하려면 영국의 해외영토인 지브롤터와 함께 해협 통제의 중요한 도시인 세우타가 미국의 중동지배전략에 철저히 복종하는 모로코의 통제 아래에 있는 것이 편하다는 계산이다.
그렇다면 그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우선 모로코는 실제로 지난 2021년 폴리사리오 전선 지도자를 스페인 병원에서 치료해줬다는 이유로 세우타 국경을 의도적으로 개방한 적이 있다. 또 외신에 30일 자로 모로코 군인들이 국경에서 철수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실제로 해상 근처의 모로코 군 초소가 비워져 있었다는 난민들의 증언이 실리기도 했다. 현재 모로코 정부는 이런 주장을 부정하는 중이다.
사태의 본질
다만 우리는 사건의 구체적 상황을 짚기 전에, 모로코 국가의 성격 자체를 먼저 살펴보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모로코는 반봉건적이고 반식민지적인 국가이며, 매판자본주의와 관료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있는 동시에 제국주의, 특히 미국 제국주의와 그 뒤를 바짝 쫓는 스페인 제국주의의 억압을 받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모로코는 형식적으로는 독립을 이루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주권 국가가 아니다. 모로코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제국주의 세력에 예속되어 있다. 모로코 경제 전체가 직간접적으로 미국과 스페인의 독점 기업에 종속되어 있으며, 독립적인 산업은 전무하다.
대다수의 반식민지 국가들이 그렇듯이, 모로코의 대다수의 중대한 정치적-외교적 결정은 외국 제국주의자들의 이익을 위해 이루어진다. 모로코의 핵심 외교 정책에 관한 결정권은 모로코 인민들이 아닌 미제국주의자들과 스페인제국주의자들에게 있다. 모로코의 주인은 서구 독점 기업들이며, 이들은 사회 내의 반동계급, 즉 왕족과 대지주, 그리고 관료대자본과 결탁하여 나라를 장악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만약 모로코의 외교적 음모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모로코 ‘국가’의 자체적 의지라고 판단할 수 없다. 이미 모로코 정권 자체에 스페인이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경제적 부문에서도 스페인 제국주의 자본은 모로코의 전체 경제의 상당한 지분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모로코 내에서 스페인제국주의의 영향력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수준의 역량을 지닌 유일한 주체인 미제국주의 자본이 그 자신의 이득을 위해 모로코 정부를 조종하고, 모로코 국민들을 그 자신의 패권게임을 위한 장기말로 삼아 모로코 국가를 무익한 갈등에 밀어넣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즉, 일련의 국제외교적 가설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모로코의 음모’가 아니라 ‘미제국주의의 음모’인 것이다.
물론 스페인제국주의는 모로코 근로대중의 확고한 적이며 모로코가 반식민지적 상황에서 벗어나고 주권을 되찾기 위해선 스페인제국주의에 맞서 싸워야만 할 것이지만, 이 일련의 갈등은 반식민-반제국주의 투쟁이 아니며 스페인의 정치경제적 지배력에 맞서거나 국내의 제국주의 부역적 계급계층을 타도하는 과정도 아니다. 그저 과거의 반식민지 국가들이 흔히 그랬듯이, 한 종주국의 이득을 위해 다른 종주국에게 내던져지는 돌멩이가 되기를 자임하고 있을 뿐이다.
한 편, 이번 정세에서 스페인 정부를 일방적인 피해자로 내모는 것 또한 편협한 시각이다. 스페인은 모로코와 서사하라를 오랜 기간 식민지로 삼으며 착취했고, 현재에도 모로코의 관료자본들을 지원하며 착취구조를 확대재생산 중이며, 서사하라에서도 외견적으로는 중립을 유지한다지만 해당 지역에 자본을 투입하며 모로코 정부와 협력해 이윤을 챙기고 있다. 기실 서사하라 내의 자원 지분이나 자본 투입형태를 세심하게 볼 때에, 본질적으로는 서사하라의 식민지배 주체는 스페인에 가깝다. 모로코는 스페인의 서사하라 식민통치를 대리하며 스페인제국주의에 부역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이번에 세우타로 진입한 인민들 또한 이러한 스페인제국주의와 반식민지 모로코 정부의 만행에 의해 난민이 된 이들이며, 이들은 마지막 희망으로 유럽에 입국을 희망해왔던 것이다.
결국 이 모든 사태에 있어서 피해자는 서사하라와 모로코의 피억압인민들과 난민들 뿐이다. 미제국주의와 스페인제국주의, 모로코 왕정과 이스라엘 시오니스트 집단은 각기 다른 입장에 놓여 있을지언정 본질적으로는 인민들을 죽음으로 내모는데 일조한 살인집단들이다. 현재 스페인에 비교적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중도 좌파’ 정권이 자리잡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스페인제국주의를 옹호하는 이들, 그리고 모로코의 주장이 외견적으로 반식민주의적이라는 이유로 미제국주의의 꼭두각시인 모로코 정권을 옹호하는 이들은 모두 가짜 좌파, 제국주의 부역적 좌파에 불과하다. 남한의 피억압민중은 오직 반식민지 모로코 민족의 해방을 위해, 그리고 식민지 서사하라의 사하라위 민족의 해방을 위해 혁명적이고 국제적인 연대를 보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의 해방은 연결되어 있으며, 피억압민족들의 강고한 연대만이 세계제국주의체제를 분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