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문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이주노동자 문제의 해결은 노동계급이 어떻게 자신을 하나의 정치적 세력으로 조직할 것이냐에 달려 있다. 바로 대중 속에서 배우고 대중과 함께 투쟁하며 대중이 스스로의 힘으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당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이주노동자 문제의 해결은 노동계급이 어떻게 자신을 하나의 정치적 세력으로 조직할 것이냐에 달려 있다. 바로 대중 속에서 배우고 대중과 함께 투쟁하며 대중이 스스로의 힘으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당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AfD의 약진은 AfD 혼자 만들지 않았다. 기성 독일의 자유주의 세력, 자칭 ‘온건’ 세력들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 보수우익 정당인 기독민주연합은 오랫동안 AfD와의 협력과 연립을 거부하는 이른바 방화벽 원칙을 내세웠다. 하지만 AfD가 우익 극단주의 세력이라는 것이 너무나 명징하게 밝혀진 후에도 기독민주연합은 AfD에 대한 적극적인 조치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며 AfD의 호위무사 노릇을 해주었다.
역사를 장식물로 삼지 말자. 물신의 대상으로 삼지도 말자. 그들의 생산적 패배를 거름삼아 우리의 승리를 만들자. 사회주의라는 말이 흘러가는 옛 이야기로 남지 않게 하자. 성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를 공정히 논하고 계승과 지양을 동시에 행하여 선배 혁명가의 무덤들에 남겨진 잔해들을 지양의 용광로로 보내 오늘날 우리가 휘두를 혁명과학의 전능한 검을 벼려내자.
한국의 모든 양심세력은 청해부대 파견을 비롯한 우회 파병에 단호하게 반대하고 이란 및 안사르알라와의 협상을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자신들이 벌인 침략전쟁에 한국을 끌어들여 한국인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려 하는 미국의 영향력에서 이탈하고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외교를 펼치는 것만이 작금의 상황을 평화롭게 풀어나갈 유일한 방법이다.
검찰이라는 진지 하나를 허물었다고 해서, 그 권한을 넘겨받은 경찰과 중수청과 공소청이 저절로 민중의 것이 되지는 않는다. 민주적 감시 및 통제체계를 구축하지 않는다면, 10월 2일 이후 우리가 손에 쥐게 될 것은 파시스트 진지 하나를 허문 자리에 세 개의 작은 요새를 새로 지은 결과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 연대세력은 팔레스타인 민중의 참정권과 자결권을, 그들이 그들 스스로의 정부를 수립할 권리를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방어해야 한다. 그것만이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이스라엘 정착식민주의를 몰아내고 팔레스타인 민족의 주권과 레반트의 항구적 평화를 이룩하는 위대한 길의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평화를 사랑한다면, 나라를 사랑한다면, 가족을 사랑한다면, 그리고 이 나라의 오천만 동포들을 사랑한다면 거리로 나와 전범국가 미제국주의의 깃발을 불사르고 우리에게 호르무즈 침략전쟁을 위해 병사를 바치라고 협박하는 트럼프와, 그 트럼프의 국내 대변인 역할을 하는 민족반역자들에 맞서 파병저지투쟁을 승리로 이끌자.
메가프로젝트는 한국 사회에 매우 큰 영향을 가져올 거대한 변화를 촉발할 것이다. 그 변화에 올바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세력은 도태될 수 밖에 없다. 구체적인 문제점을 폭로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하며, 구체적인 투쟁의 목표를 설정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메가프로젝트에 올바르게 대응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의 죽음은 태산보다 무거울 수도, 깃털보다 가벼울 수도 있다. 삶 또한 그럴 것이다. 깃털처럼 가볍게 살아가봤자 시대적 파국 속에서 불쏘시개로 전락할 운명이라면, 차라리 우리 함께 태산처럼 무거운 삶을 살아보자.
인간이 만들어온 모든 이상들의 기저에는 맹목적 필연에 대한 반역의 의지, 즉 자유에 대한 타오르는 사랑이 존재했다. 인간의 역사는 이상성의 부여와 이상의 실현을 통해 그 자신을 자유케 하는 역사이며, 동시에 즉자적 자연에게 이상성을 부여하여 자연을 맹목에 지배받는 즉자적 상태로부터 해방해 전체자연을 자유롭게 하는 프로메테우스의 역사인 것이다